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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13화 (213/293)

[213화]

UN 회의에 참여하기 전에 유성원은 일단 유청을 남기고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고작 몇 달 지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랜 전쟁을 하고 온 듯한 그는 제1근위대장 장범이 마련해 준 전용기 안에서 최대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회의에 참여하기 전에 성좌 용봉왕의 중국에서 보낸 격전과 후속 처리로 인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좀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기 위한 준비였다.

‘돌아가면 애들이랑 누님… 아니! 여보랑… 가족끼리 모여서 다 같이 푹 쉬고 멘탈 충전을 한 다음에…….’

“그… 곧 한국에 도착하십니다. 그… 그… 폐하.”

“…하아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그… 보다 적합한 호칭이 없기에… 죄, 죄송합니다.”

창밖을 보며 쉴 생각을 하는 그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은 제3근위대장 오위의 도착 안내였다.

현재 유청을 중국에 남게 한 대신 그를 데리고 한국에 온 것이다.

목적은 S급 한 명이 빠지게 되었으니 전력을 채우려는 것도 있고, 이제 좋든 싫든 서로 협력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상호 간의 문화나 전략에 대한 소통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굳이 제3근위대장인 이유는 제1근위대장은 명목상 지도자로 지명, 제2근위대장은 유청을 견제, 자연히 그다음 순위인 그로 넘어가게 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됐다. 그냥 포기해야지. 밖에선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남들처럼 헌터님이라고 부르든가… 아무튼 슬슬 준비해야겠네.”

“예. 옷은 여기에…….”

그렇게 제3근위대장 오위의 시중을 받으며 유성원은 착륙 준비를 마쳤다.

착륙하는 시점에서 보통 이러면 안 되지만, 이들은 이미 보통 인간을 초월한 S급 헌터들로 오히려 위험하다고 하는 놈은 그쪽 협회에 재심사를 요청해야 할 사안이었다.

무사히 착륙한 유성원은 빨리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채 자기 짐을 가지고 문이 열린 전용기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 쪽에 달린 유리를 통해 밖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사람이 왜 저렇게 많지? 귀환이든 환영이든 하려면 우리 기지에서 하라고 분명 말을 했는데…….”

“그, 그러게 말입니다.”

“아… 이 씨…….”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본 결과, 착륙장에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인파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한민국 국군 장성들로부터 시작해서 정부, 국회 인사는 물론 헌터 협회 등등 각종 요인들이 모여 있었다.

대체 왜 저렇게 모여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던 유성원은 이런 일에 매우 사정이 밝은 백가연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날세. 한국에 들어왔나?)

“어르신, 저 지금 전선 도시 착륙장인데요. 밖에 있는 저것들 다 뭡니까? 나 저런 거 해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이해해 주게나. 지금 그들은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미칠 것 같은 병에 걸린 거나 다름없는 처지이거든. 허허허, 안 그런가? ‘아시아의 제왕’.)

“뭡니까? 그 이상한 호칭은?”

‘아시아의 제왕’이라니. 자신을 칭하는 것 같은데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유성원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백가연 어르신의 웃음소리와 함께 자세한 내막이 들려왔다.

(일본의 ‘성좌 66천마’를 추방시키고 그 아래의 ‘사령 군단’을 접수했으며, 중국의 중심을 차지한 ‘성좌 용봉왕’을 쓰러뜨리고 거기에 괴뢰 정권을 설립하여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 자.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 중, 일 동아시아 제패를 이루어 낸 ‘제왕’. 이게 지금 세간의 시선이 보고 있는 자네의 모습이네만?)

“네에에에?”

너무나 기가 막혀 유성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실제 내막을 보자면 성좌 66천마는 그냥 필멸자와 게임 한 판 한 걸로 승부가 나서 보내 준 거고, 성좌 용봉왕은 모든 것을 패황 기사 유천이 해낸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해낸 건 거의 없는데 무슨 업적들만 부풀려져서 아시아의 제왕이라니. 터무니없어도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누, 누가 처음에 그런 말을? 아, 아니, 나는 전혀 그런 게… 생각이 전혀 없는데…….”

(누구긴 누구겠나? 기자들이지.)

“으아악!”

(사실 근데… 내막을 모르고서야 정황만 보면 누가 봐도 자네가 다 한 걸로밖에 안 보이는 게 현실일세. 아무튼 남들은 10년, 100년에 걸쳐서도 못할 일을 고작 수년 만에 해낸 자, 중국과 일본을 제패한 남자이니 ‘제왕’도 많이 겸손하게 친 걸세. 허허허.)

“아니, 웃을 일이 아니라고요. 제왕이라니요. 미쳤나, 진짜…….”

(아무튼 자네도 밑바닥 출신이니 알지 않나? 이런 예우를 해 줘야 마음이 편하다는 걸 말이야. 그러니 의연하게~ 받아 주고 오게. 허허허.)

“아니! 어르신! 잠깐만!”

뚜… 뚜…….

그렇게 백가연 어르신의 연락은 끊어졌고, 유성원은 창문 밖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이 거북함을 느끼든 말든 저들은 지금 생존을 걸고 자신에게 대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제왕. 이러다 진짜 사람들에게 ‘폐하’로 불릴까 봐 불안해하면서도 유성원은 감당하기로 결심하고서 전용기 문으로 내려갔다.

‘최대한 말 안 하고 단답형으로… 대답해야지. 말해 봐야 내 근본 없는 밑바닥만 드러난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짝짝짝짝!

그리고 내려가자마자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며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군악대까지 연주를 시작하는데, 그 상황에 유성원은 위장이 말려 들어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곧이어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이제는 얼굴을 몇 번 봐서 익숙해진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과 여야 대표 의원들이 떼거리로 뭉쳐 있는 와중에 대통령이 먼저 앞으로 나와서 악수를 청하는 상황.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으면 기절할 것 같았다.

“중국에서의 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성원 헌터님. 큰 사고라도 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 예. 저도… 그… 세계대전 같은 건 안 좋아해서 말이죠.”

그나마 다행히도 대통령이 먼저 언급한 화제는 성좌를 처리한 쪽보다 그 후 조치에 대한 거였다. 그쪽에 관해서는 말할 게 있는지라 유성원은 차분하게 답하면서 그들과 함께 착륙장을 나설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 작자들이 여기서 풀어 줄 게 아니라는 거였다.

‘…보나 마나 만찬회니 뭐니 하면서 이거저것 같이하자고 하겠지? 와 나, 미쳐 버리겠네.’

“아무튼 일단은 서울로 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중국 내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국제 회의 참여에 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선 저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화는 이른 것 같으니… 며칠 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차후 계획에 대해서 아주 조금 귀띔이라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도 없는데…….’

일단 쉰 다음에 국제 회의에 나갈 생각밖에 없는 유성원은 그 이후의 계획 같은 건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본래 계획이었던 성좌 용봉왕을 키운다는 계획은 거기서 일어난 분쟁으로 인해 깨져 버렸기 때문에 지금 별의 수호자 사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정을 모두 이야기하자니 자신이 ‘별의 수호자’라는 것도 들킬 것이고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다른 변명을 해야만 했다.

“음, 구체적인 건 말할 수 없지만 일단 벌여 놓은 일들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한, 중, 일 삼국에 끼칠 영향과 또 상황을 재점검하고 말이죠. 국제 회의에 참여하고 난 뒤에도 당분간은 이 방향대로 할 겁니다. 이래저래 지쳐서 말이죠.”

“으음… 그렇군요.”

‘잘 둘러댄 것 같지?’

‘당분간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있겠습니다.’라는 원론적인 대답이었기에 별 탈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유성원 쪽이 갑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때까지 사고 친 전적 때문에 태도를 조심하게 된 건지 몰라도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누구 하나 그에게 강압적으로 굴거나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사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착륙장에 나간 유성원은 전선 도시 본부에서 보내온 차량을 타고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후우우우~ 정말이지, 입장이 완전히 바뀌니 속이 쓰리군요. 여러분도 안 그렇습니까?”

“‘제왕’이라……. 하아아~”

“일본, 중국을 손에 쥔 게 한국 국민이자, 최고 세력의 헌터라니…….”

“상황을 재점검한다고 했으니, 그 뒤에 또 뭔가를 한다는 거겠죠?”

유성원이 떠난 후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은 불안한 얼굴로 앞으로 그가 무슨 일을 벌일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과거엔 우습게 봤었지만, 그의 행보는 말도 안 되는 레벨로 파격에 파격의 연속이라서 그 파장에 대처하는 일만 생각하는 것도 벅찰 지경이었다.

“…이젠 진짜 딴 세상 사람이 되어 버려서… 젠장!”

“그것도 그거지만, 국정원 요원들이랑 잠입한 협회 친구들이 말하는 거 다 뻥이잖습니까? 어디가 ‘평온을 바람, 게으른 편이지만 책임감이 강해서 일을 못 그만둠.’입니까? ‘결혼한 후 온건해짐?’은 얼어 죽을! 야심으로 가득 찬 놈이구먼!”

유성원의 행보는 들려오는 보고와 너무나 상반되었기에 그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가 헌터 세계에 등장하고 난 이후의 행보는 거의 ‘제왕의 비상’이라고 할 정도로 빠르고 단단했는데, 늘 보고와 영상으로 들려오는 성격이나 성향은 ‘온건하다, 귀찮다, 하기 싫다.’라는, 부정적이면서 평범한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대체 뭐가 맞는 건지. 원 참!”

“저게 본성을 감춘 연기면 무서운 거지만… 천성이면 더 무서운 거 아닙니까? 귀찮은데 세계 정복이라니…….”

“어떻게 보든 조만간 또 사고 칠 게 뻔합니다. 점검하고 난 뒤의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장관님 말이 맞습니다. 이젠… 그렇게 안 보려고 해도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평소 인간적인 태도와 업적에서 보이는 이 갭이 너무 커서 처세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못하는 상황이었고, 구별되면 그건 그것대로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된다.

아무튼 이제 유성원이라는 존재는 국가 단위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커져 버린 바람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의 처지였다.

“…이젠 개혁을 버티는 놈들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겠군요.”

“적어도 그의 위상이 떨어지지 않는 한은… 아시아의 제왕에게 밉보이려는 자는 없을 테니까요.”

“기업들도 이제 중국 중 알짜를 손에 쥐게 된 그에게 어떻게 해 볼 생각을 한다면… 그냥 접어야죠.”

딱 하나 좋은 점은 그의 입지가 너무 커져 버리는 바람에 여러 개혁에 저항하는 인간들에게 버티지 말라고 압박할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하아~ 하지만 과연 그의… 궁극의 목적이 뭔지가 알고 싶군요.”

“궁극의 목적이라…….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세계 정복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설마 거기까지야? 아무튼 이번 국제 회의에서 뭔가 밝혀지겠죠. 그의 의중을 알아내려고 벼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휴식 뒤에 기다리고 있는 UN 국제 회의. 공식적으론 이번 성좌 용봉왕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현재 그날을 벼르는 나라와 성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공식 석상에 올라갔으면 설명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여러 질문 공세가 쏟아질 것이고,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성의 있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이뤄 놓은 것들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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