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어? 몸이 다시…….”
그리고 동시에 유성원은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지는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상태창을 열어서 스킬을 확인했다.
지지직거리면서 하하(下下)급 민초(民草)라고 나오던 내용은 모두 사라지고,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사단의 성소의 문이 열리면서 아칼론, 가울프, 섬멸, 크록베인이 포탈 안에서 튀어나왔다.
[계약자여! 괜찮은가?]
“폐하! 무사하십니까?”
“뭐야, 저거?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러자 결계가 파괴되고 다시 싸우려고 하던 성좌 용봉왕의 근위대는 놀라서 한발 물러났다.
그사이에도 성소의 포탈에서는 다른 이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어디에 유폐되어 있었는지 모를 천검군 기사들도 모두 유성원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이어서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군단의 대장군까지 유성원 곁에 자리했다.
스테이터스가 돌아오고, 기사단의 성소에서 나오지 못했던 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패황 기사 유천의 소망검(所望劍)이 이곳에 뭔가 큰 영향을 끼친 게 확실했다.
[젠장! 망할 유천 자식이이이이이이! 감히 내가 구성해 놓은 시스템을 파괴해?]
그것을 증명하듯 성좌 용봉왕의 노성이 자금성을 울렸다.
패황 기사 유천에 의해 그가 지배하는 중국 영역에 있던 심사로 등급이 정해지는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파괴된 것이었다.
특특급 기사 여섯을 손에 넣기 위해 그를 소환한 것이 역으로 패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6근위대자아아앙! 네놈의 말대로 했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아!]
“죄, 죄송합니다. 용봉왕 님이시여!”
[그 죄는 나중에 묻겠다. 지금은 저 분수를 모르는 놈들을 모조리 쳐라!]
“예! 모든 병력을 이곳 용의 궁전으로 불러들여라!”
성좌 용봉왕의 노성과 함께 성내에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유성원은 성좌 용봉왕에 대해 고려할 사안과 그를 처리하고 난 다음의 문제 등등 생각할 게 많긴 했지만, 패황 기사 유천이 열어 준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검을 잡고 성좌 용봉왕이 있는 단상을 겨누면서 모인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천검군의 진짜 주인, 전설의 황제, 소망을 엮어 세계를 통일한 패황 기사 유천이 열어 준 이 기회! 놓치면 그거야말로 기사도의 수치! 전군! 오늘 이 성좌 용봉왕의 아집!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전락시킨 세계를 끝을 낸다!”
[건방지구나! 내가 아무리 이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곤 해도! 내 특특급과 상상급으로 이루어진 기사들과 근위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제1근위대장! 세계를 혼란으로 가득하게 하는 저 사악한 무리를 모조리 없애 버려라!]
“다들 가라!”
“오오오오! 와아아아!”
그렇게 성좌 용봉왕의 군과 유성원의 군대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먼저 포위하고 있던 성좌 용봉왕의 군대와 근위대가 파도처럼 몰아쳤지만, 포탈에서 하나둘 계속해서 나오는 유성원의 군대가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을 밀어내었다.
“뭐, 뭣들 하느냐! 어서 막아라! 막아라!”
“적들의 강공이 생각보다 거셉니다! 제1근위대장님! 저, 적진에 있는 특특급 기사들의 숫자가 우리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지금 각지의 지원군과 병사들을 호출하고 있지만 출동하는 데 시간이…….”
“젠장할!”
근위대가 구축하던 포위망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고, 땅에 깔리는 시체는 근위대의 것이 월등히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이곳이 그들의 홈그라운드인 만큼 백만 단위 이상 되는 군 전력이 이곳으로 출동할 수 있었기에 시간을 끌면서 아군이 오는 걸 기다리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유성원의 군대도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사령 군단 애들이… 참 많긴 많네.”
포탈이 열고 나온 천군대장군부터 시작해서 지군, 인군 등등 휘하 대장군들은 나오자마자 또다시 자신들의 사령 군단들을 무한히 쏟아 내었다.
그 물리적인 군세의 파도에 자금성의 근위대들은 점점 물러났고, 서서히 유성원의 군대의 공간이 넓어졌다.
“오오… 물량전은 역시 우리 애들이지.”
“그보다 폐하, 그 검은… 우리 유천 황제 폐하의 것이 아닌지…….”
“소망검을 시전하고 남기고 갔어. 필시 나보고… 쓰라는 의미이겠지. 그나저나 이거… 뭔가 기이하네?”
황금빛 술과 검은 보호대가 있는 은백색의 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는데, 정작 시스템창이나 상태로는 나오지 않았다.
특별한 아이템이 아니라기엔 너무나 기이한 힘이 느껴졌고, 은은하게 빛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범상치 않은 검인 것 같았다.
그저 신기하게만 바라보는 유성원과 달리 유청은 거의 존경심이 묻어 나오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것에 대해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것은 저희 ‘별’의 고대로부터 내려져 오는 검입니다. 물론 자루나 칼날받이는 새로 만든 것이지만 검날만은 계속해서 내려온 겁니다. 그 유래로는 저희 ‘별’이 인간에게 내어 준 검이라는 전설이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특이하며 신비한 힘 덕에 고래로 왕권과 신권을 상징해 오다가 저희 제국에서도 당연히 폐하의 검으로 쓰인 것입니다.”
“…엄청난 물건이네. 그런 걸 나에게?”
“심지어 보통 사람이 들었을 땐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특별한 운명이나 힘을 가진 사람이 잡으면 이렇게 빛을 발한다고…….”
“내, 내가?”
“폐하는 엄연히 이 ‘별의 수호자’이시잖습니까? 충분히 조건이 달성된 거죠. ‘별’이 내어 준 검, 신조 병기. 이거라면 어쩌면 저번에 고전하셨던 하데스의 사도라든가 더 나아가선 성좌를 벨 수 있을 겁니다.”
유청의 말에 유성원은 검과 단상 위의 성좌 용봉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패황 기사 유천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며 자신의 사명에 맞는 무기가 지금 손에 들려 있자 고양감과 흥분, 그리고 소망까지 떠올랐고, 성좌 용봉왕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럼 가 볼까? 마침 길이 열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전황은 현재 계속 보충되어서 물밀듯이 밀고 가는 유성원의 군대와 성좌 용봉왕의 근위대가 계속해서 치열한 격전을 이어 나가는 중이었다.
또 화력 지원 요청으로 인해 폭격과 미사일까지 날아오고, 사령 군단에서도 후방 지원 부대가 나타나면서 공세를 이어 나갔다.
하나 그럼에도 계속 영역을 넓혀 가는 건 유성원 측. 근위대는 결국 밀려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어떻게 내 근위대가 밀리는 거지? 근위대장들은 뭐 하는 게냐? 너희는! 내가 뽑은 최고의 재능과 자질을 가진 자들이며!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너희가 왜 밀리는 거냐?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었거늘!]
점차 밀려나는 근위병들을 보면서 비통한 신음을 내는 성좌 용봉왕이었다.
서서히 밀려오는 유성원의 군세,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며 어딘가 신비한 검을 들고 오고 있는 유성원의 모습을 보며 성좌 용봉왕은 그 검이 무엇인지 눈치챘지만, ‘성좌’가 인간을 두려워해서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서 막아라! 저 분수를 모르는 것들을! 어서 몰아내란 말이다! 아니, 아니, 시간이라도! 시간이라도 끌어!]
인간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성좌’라니.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위엄과 명예가 떨어지는 건 기본이고 이는 같은 ‘성좌’들에게까지 비웃음 받을 일이었다.
차라리 ‘게임 오버’당할지언정 인간에게서 도망은 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성좌 용봉왕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전력을 다해 자신의 영역의 부서진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유청! 애들은 너희에게 맡긴다.”
“예, 폐하. 끝을 내십시오. 전군! 폐하에게 길을 열어 드려라! 목표는 저 단상! 성좌 용봉왕! 인간에게서 도망치는 추태를 보일 수 없을 테니, 저곳까지 도달하면 우리의 승리다!”
“간다아아!”
유성원에게 지휘권을 위임받은 유청이 제장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유성원은 유천의 검을 들고 전장에 본격적으로 돌입!
천검군의 기사, 처음부터 함께했던 네 기사, 새로이 합류한 사령 군단의 대장군들은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유성원을 확인하고 근위대장들을 밀치며 필사적으로 길을 열었다.
하지만 근위대장들도 뻔히 자신들의 성좌를 노리는 유성원을 쉽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저 황금 갑옷! 저자가 적장이자! 이 기사들의 소환자다! 다들 공격해라! 저자만 없애면 된다! 오위! 뭐 하는 거냐? 고작 하하급 민초에 지나지 않는 자에게 우리가 추태를 보일 수 없다.”
“예! 가겠습니다.”
“성좌님을 지켜라!”
“외쳐라! 모두 분투하라! 성좌 용봉왕 님 아래! 혼란이 멈추고 질서가 유지되는 세상! 누구도 사악한 욕망을 품지 못하는 이 이상향을 지켜야 한다고! 외쳐라!”
“와아아아아아아!”
성좌 용봉왕의 세계는 인간의 소망을 제거하고 부품화했지만, 의식주를 만족시키고 덧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이 마음에 드는 자들도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모르기에 노력하고, 싸우고,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하고, 가지고 있는 보석 같은 재능을 너무나 늦게 발견해서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 성좌 용봉왕의 세계는 그런 불행, 슬픔, 어긋남은 없다.
모두가 자신이 가진 것만큼 활약하고 일하다 가는 세상, 필시 그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우리 특특급과 상상급은 성좌님이 공인한 자들이다. 그 능력을 보여라!”
“젠장! 아주 바보들은 아닌가 보군!”
[음, 바로 진형을 다시 잡은 건가? 꽤 하는군.]
카아앙!
성좌 용봉왕의 근위대와 근위대장, 중국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을 모아 단련시킨 이들이다.
그렇기에 처음에 쉽게 밀렸지만 금방 다시 수세를 정비하고 타깃을 유성원으로 돌려 그곳에 모든 힘을 쏟는 진형으로 바꾸었다.
하나 뛰어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천검군! 집결! 망할 자식들! 감히 우리에게서 폐하를 빼앗으려 하다니! 용서 못한다!”
“…진석아, 그거 좀 이상한 의미 같은데!”
“아! 대충 넘어가십쇼, 폐하! 오… 그 검! 유천 황제 폐하께 인정받으신 겁니까?”
“그… 뒷일 땜에 받긴 했는데…….”
“경하드리옵니다. 역시… 폐하라면 인정받으실 줄 알았습니다. 천검군이여, 보아라! 우리 폐하께서! 유천 황제 폐하께 검을 받으셨다!”
“와아아아아!”
유성원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천검군과 기사들의 외침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울려 퍼졌다.
천검군의 창립자, 제국의 시조, 패황 기사 유천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싸움의 가치는 훨씬 올라갔기에 모두의 사기가 급격히 오른 것이다.
패황 기사 유천과 함께 전설을 쌓은 병사들과 기사들에겐 이제 이 싸움은 그저 소환되어 주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설의 서사시의 후속편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장군을 따르는 게 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즐겁군요.]
“그러냐?”
[재미도 있고 말이죠. 지군대장군! 인군대장군! 날 따라와라! 장군님이 가시는 길을 연다!]
[예!]
[가겠습니다.]
천검군이 연 길을 지나 맨 앞에 사령 군단이 열어 준 길로 근위대를 돌파해서 전투 최전선에 겨우겨우 합류했고, 천군대장군, 지군대장군, 인군대장군은 길의 좌우를 지키면서 유성원을 앞으로 보내 주었다.
최전선엔 역시 언제나 보는 익숙한 친구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포탈을 열고 나와 싸우기 시작했으며 가장 처음부터 유성원을 따랐던 기사들, 가울프, 크록베인, 아칼론, 섬멸이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호칭 변경 제안. 승인하시겠습니까?]
[…축하… 한다.]
“너희까지 그러지 마라. 아무튼! 나 좀 보호해 줘라. 이걸로 끝장을 보게!”
끄덕.
제일 맨 앞까지 다가온 유성원은 성좌 용봉왕을 바라보며 검을 겨누고 심호흡을 했다.
패황 기사 유천이 종장(終場)으로 길을 열었고, 자신에게 그것을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에 화답하듯, 제대로 된 사명을 시작하는 의미에서 패황천검류 제1장을 펼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우~ 역시 이거지. 신호하면 다들 비키면 돼.”
“기꺼이!”
“하늘이여! 지고(至高)에 이른 나의 검을…….”
[자, 잠깐! 기다려! 기다려라! 유성원! 내가 사라지면! 내 나라가 사라지면! 이 중국 판도는 물론이고 세계 판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니 생각을 좀 하고… 아니! 교섭! 교섭을 하자! 나, 나는 이대로…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
유성원이 유천의 검을 들고 패황천검류를 쓰려고 하자 성좌 용봉왕은 다급히 교섭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굴욕을 겪고 전쟁까지 벌어진 상황이고, 이곳의 진실도 밝혀진 마당이었다. 거기에 원래부터 이 ‘별’에서 모든 ‘성좌’를 추방해야 할 사명이 있는 유성원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이 일격은 내가 이 대지에 선 별이라는 것을 증명할지니! 다들 비켜어어어!”
[패황천검류(覇皇天劍流) 제1장–지성섬(地星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