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같은 시각.
베이징, 알 수 없는 도시 영역.
우선은 천군대장군을 이대로 그냥 놔둘 수 없었기에 유성원은 먼저 베이징 외곽으로 조심스럽게 빠져나간 다음 그를 다시 소환했다.
혹시 갑자기 어느 순간 성소를 못 넘어올 가능성을 대비해서 아이언 포트리스와 전선 도시에 자신의 위치와 사정을 미리 알려 두었고, 이 현장 파악에 가장 시급한 문제인 중국어 문제 또한 아칼론과의 통신으로 회복했다.
[마스터, 지금 제 번역 모듈과 지구의 인터넷에서 언어 자료를 수집해서 연결했습니다. 이제 그 디바이스를 끼고 계시는 동안에는 언제 어디서든 말이 안 통할 일은 없으실 겁니다.]
“진작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 꼭 상황이 닥쳐야 떠올린다니까……. 아무튼 덕분에 살았어.”
[칭찬 감사합니다. 한데 저희가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너희가 바다를 넘든 땅을 가로지르든 상대가 눈치채면 좋을 게 없잖아? 다만 외교 채널로나 계속 ‘저희 대장님, 어떤가요?’ 안부 정도나 물어. 그러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사실 그것보다는 지금 천검군 기사들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니…….’
다른 한편으론 그 점이 걱정이었기에 유성원은 다른 기사들에게도 오지 말라고 전해 두었다.
그리고 베이징 외곽에 있는 조용한 산에 천검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군단을 미리 대기시켜 두었는데, 되도록 대규모 병력이 아닌 소규모로 조용하게 있으라고 전했다.
유성원은 이제 홀로 도심을 돌면서 정보 수집에 나서기 시작했다.
‘휴우~ 이리저리 돌게 되었지만 드디어 이 이상한 나라에 대해 알 수 있겠군. 보자…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자신이 떨어졌던 허름한 도시로 돌아온 유성원은 한 술집에서 떠들고 있는 두 중년 남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둘은 막 일터에서 돌아온 듯 기름과 진흙이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나누며 떠들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주며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 글쎄! 내 아들이 이번에 용봉왕 님을 알현했는데! 중하(中下)급 군병(軍兵)으로 판별이 났더군. 하하(下下)급 혈통이어도! 꼭 하하급만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
“오늘 아침부터 하던 소리를 대체 몇 번이나 해야 속이 풀리는 겐가? 에이잉! 근데 그러면 자네 밑에서 양육되는 게 아니라 중(中)급의 가정으로 보내지게 되지 않은가? 용봉왕 님이 내린 법도에 의하면 급이 맞아야 가정으로 인정이 되고, 직접 육아할 수 있잖은가.”
“이 사람아! 누가 좋다고 자기 자식이 이런 일을 물려받길 원하겠나? 쩝! 무, 물론! 성좌 용봉왕 님께서 아무 재능도, 능력도 없는 우리에게 이렇게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자, 자비를 베푸신 거지만! 아무튼 중(中)급으로 진출한 것만 해도 난 감지덕지이네.”
“그렇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우리가 잘못이지. 아무튼 자네 아들은 이제 이런 망할 도시가 아니라 더 큰 곳으로 갈 테니 다행이야.”
유성원은 그 말을 들으면서 이야기의 내막을 파악했다.
성좌 용봉왕에 의해 사람들이 각각 등급으로 나뉘고, 직업도 부여받는 건 알았지만 그것에 여러 제약이 있는 것도 놀라웠다.
삶의 거처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식이 더 등급이 높을 경우엔 직접 기르지 못하게 되고, 결혼도 급끼리 맞아야 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와… 이거 생각 이상으로 기가 막힌 곳이네.’
“시끄러워! 여기 술집에서 너희만 술 먹나? 능력 찌꺼기도 없어서 하하(下下)급인 주제에! 조용히 먹게!”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실례했습니다. 하상(下上)급 민관(民官)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요.”
“이, 이 친구가 자식이 중하(中下)급으로 판명 나서 좀 들뜨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헤헤.”
그리고 같은 하(下)급이라도 또 상, 중, 하로 나뉘어 있으며 그에 따라 뒤에 붙는 명칭도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성원은 문화 충격을 받으면서도 대체 이런 사실이 왜 외국에 알려지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딱히 별스러운 일은 아니기도 했고, 완벽하게 성좌 용봉왕에 의해 통제되는 곳이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대상은 ‘하상(下上)급 민관’님이십니다. ‘하하(下下)급 민초’인 당신보다 높은 분이므로 존경과 존중을 표하십시오.]
‘나도 이렇게 뜨니……. 그냥 사람끼리도 상태창 같은 걸 가지고 서로의 등급을 확인할 수 있으니 감시하는 것도 되겠지. 아무튼 성좌 용봉왕의 나라… 생각 이상으로 골 때리네.’
성좌의 통치 아래 모든 것이 통제되는 국가.
신의 눈으로 적성, 재능을 살펴 일을 부여하고,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곳이다.
가장 최하급인 하하(下下)급의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먹고사는 데 불편이 없고 최소한의 인간 대우는 해 주기에 누구도 불만 가질 일은 없는, 어떻게 보면 낙원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등급에 따른 대우 차이도 있고, 자식을 부모에게서 떼어 놓는 강압적인 정책도 있지만 잔혹한 인간 사회는 패배자는 한없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뜨리며, 이런 최소한의 안전장치 따위 고려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능력에 따른 대우는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게임에서도 캐릭터와 직업을 티어랍시고 우열을 가르고, 나누어서 관리하지 않는가?
이 세상도 성좌에게 있어서는 게임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성좌 66천마와의 만남에서 이미 알았고, 그렇게 본다면 성좌 용봉왕은 아주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그것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버려지는 하(下)급 인간에게서도 언제든 상급, 중급 인재가 나올 수 있는 농장이기에 마찬가지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리라.
“…으으으음~”
그렇게 여러 조사를 마친 뒤,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안 유성원은 잠시 망설임이 생겼다.
지금은 SS급 헌터에다 온갖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그의 근본은 성좌 용봉왕이 판별했듯이 하하(下下)급, 열(劣)에 속하는 자다.
같은 인간끼리 약자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또 인간 사회에 대한 혐오가 가득해서 그동안 아니꼽게 굴었던 걸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이 성좌 용봉왕의 나라는 이상적으로 굴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불쾌하지?”
가슴속에 뭔가 미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 유성원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도 가 보았다.
평범하면서도 깔끔한 현대의 중급 도시와 마치 리조트나 호텔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상급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 구성원들 모두 성좌의 눈으로 재능과 능력을 판별해서 그들에게 맞는 일을 주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렇게 모든 상황을 확인하고 난 뒤, 유성원은 드디어 눈치챘다.
이곳에 없는 것을, 이곳 사람들에게 없는 것을.
그리고 가슴속에 몰아치던 불쾌감이 왜 생성되었는지 깨달았다.
이 성좌 용봉왕의 땅에 사는 사람들에겐 ‘소망’이라는 게 없었다.
아니, 있어도 소용이 없다.
‘엄마, 나… 꼭 군사 학교 다녀야 해? 나… 그냥 식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데?’
‘얘가! 정신이 있는 거니? ‘성좌’님께서! 너의 재능은 무(武)에 있다고 했는데 허튼 생각할 거야? 그랬다간 저기 하(下)급 도시로 가게 된다고!’
‘저… 저기… 저 피아노 좀 쳐 봐도 될까요?’
‘아앙? ‘성좌’님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음악 학교 학생이 아니라면 웃기지 마! 너는 너 할 일이나 해!’
‘그럼 나는… 평생 이대로 밭이나 갈아야 하는 거야? 나에겐 다른 걸 해 볼 기회조차 없는 거야?’
‘당연하지. ‘성좌’님께서 너에겐 그게 어울린다고 했잖아! 허튼 생각하지 말고 일해!’
있어도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모두 그 ‘소망’과 ‘도전’을 꺾고, 사라지도록 거세시켜 버린다.
그 결과 남은 건 그저 성좌가 짜 놓은 임무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말들. 아니, 더 심하게 말하면 이 국가 전체가 기계이고, 그들은 모두 기계 부품들이었다.
기계 부품은 도전하지 않는다. 소망도 품지 않는다. 그저 마모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구르고 또 구르다 교체될 뿐이다.
“…이건 뭔가 기분 더럽네.”
세상에 대해 포기하고 외면한 유성원조차 이건 아니라고 부정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닌가? 잠시 혹하기도 했었지만, 모든 인간의 소망과 도전을 없애 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에 불쾌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소망하기에 도전하는 생물이다.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갖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원하는 것이 있어야 그것에 필사적일 수 있고, 그 삶의 궤적이 엮여져 인생으로 성립한다.
이 성좌 용봉왕은 신앙을 요구하는 올림푸스 길드보다도 인간에게 악질인 곳이었다.
“후우… 와, 진짜 이걸 어떻게 하지?”
이곳 성좌 용봉왕의 나라에 대해 결론을 내렸지만 머리는 더욱 아파져 왔다.
이미 수억 명이 기계 부품처럼 통제되며 자리 잡혀 사는 나라. 그러면서도 일단은 인류 문명을 긍정하는 축이기에 다른 파괴적인 성좌와의 싸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다.
당장 성좌 도살왕 쪽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아아아~ 얘들아, 나 왔다.”
고민을 가득 품은 채로 그는 일단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군단이 숨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해결이 안 되면 그들에게 상담이라도 요청해 보기 위해서였다.
[오셨습니까? 장군.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론은 내렸는데… 이거 너무 어렵다.”
[뭐가 어려우신 겁니까?]
“여기도 개샹또라이 같은 곳이라는 건 확실한데, 그다음이 어렵다고오오! 하아아~”
이 정도로 막장이면 기존에 파괴와 살육 같은 걸 좋아하는 악(惡) 성향 성좌에 준한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사는 사람들에겐 다를 수 있지만, 인류라는 종의 레벨에선 완전히 적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 성좌 용봉왕이 지구를 점령하게 되면 그땐 ‘인류’라는 종이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남은 것은 오직 성좌 용봉왕이 굴리는 기계가 된 세계와 부품으로 변한 ‘인간’뿐일 것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물어보려고…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냐?”
[태풍은 지나가고 난 자리를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
“뭔 말이야. 쉬운 말로 해 줘.”
[해야 할 사명이 있으시다면 그것에만 집중하시라는 의미입니다. 후폭풍은 시간의 흐름이 치유해 주거나… 아니면 질서니 피해니 흔들리기 전에 모조리 없애는 방법도 있습니다.]
천군대장군의 의견은 매우 극단적으로 주변이나 그 여파를 신경 쓰지 말고 할 일을 하라는 의미였다.
심지어 속도전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답변이니 역으로 더 기가 막힌 유성원이었다.
물론 천군대장군의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세상 꼴이 뭐든 간에 자신은 사명만 완수하면 남은 건 인류끼리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니 말이다.
“예전의 나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하지. 후우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은… 그러네.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지. 우리 기사들부터 돌려받으러 가자.”
[예. 장군.]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일과 확실한 것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유성원은 먼저 베이징 중심에 있을 자신의 기사들을 돌려받기 위해 움직이고자 했다.
기사들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는데, 자금성 방향으로 가는 동안 이미 특특급 용사의 탄생이니 뭐니 하면서 여러 매체랑 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떠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 채널! 특특급 기사 여섯 합류. 상, 중, 하에 위치한 모든 백성들이여, 우리의 영역을 지키는 힘이 더욱 공고해졌으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여 국가의 기량을…….』
“…아, 쟤네들 어디 있는지 다 보여 주네. 보자. 용의 궁전이라는 곳에 있다고 하네? 위치는 자금성에 쳐들어가 보면 알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장군님. 근데 저희 사령 군단 모두가 아니라, 대장군들만 데리고 가도 괜찮으십니까?]
“많이 불러서 뭐 해? 진짜 전쟁하자는 것도 아니고. 일단 내 상태도 이렇고 하니 우리 애들만 돌려받고 나갈 생각이야.”
아직도 지지직거리면서 제대로 된 능력과 스킬이 보이지 않는 상태창을 보여 주며 설명하는 유성원이었다.
자신의 몸 상태도 제대로 된 게 아니라서 제약이 크기 때문에 그는 일단 기사들만 몰래 챙겨서 그대로 중국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들의 소재는 알아 두셨습니까?]
“물론이지. 도시를 살펴볼 때, 이미 뉴스에서 신나게 걔네에 대한 소식을 떠들어 대더라. 자금성 안에 새로 지은 용의 궁전에 있대~ 그럼 몰래 다녀올게. 여차하면 구하러 와 줘라.”
[예, 장군님.]
그렇게 유성원은 다시 홀로 베이징, 자금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인 만큼 차량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기에 천군대장군에게 탈것을 빌려서 도시 입구까지 들어간 다음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차분히 자금성으로 접근, 용의 궁전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상태창이 이상하게 변한 채로 지지직거리지만… 그래도 스테이터스나 스킬은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휴우~ 아무튼 뭔가 갑자기 또 변하기 전에 후딱 가자.’
다소 오락가락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일반인 상태였다면 이런 구출 작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유성원은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서 용의 궁전 쪽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