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02화 (202/293)

[202화]

그리고 약 30분 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연변 언더시티에는 스캐빈저의 시체가 가득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각자 스킬로 만들어 둔 지하 셸터에서 빠져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며 투덜대었다.

“젠장… 결국 여기도 텄나? 이 목사~ 괜찮나? 이제 어쩌지? 음? 아~ 먼지 좀 봐.”

늘 있는 일인 만큼 박숙자는 당황하지 않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면서 이 목사의 안부를 물었다.

그가 죽을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또 폐허가 된 언더시티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와 살아남은 놈들과 중국 스캐빈저들과 투덕거릴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흐흐… 흐하하하하하하! 흐하하하하핫!”

“왜 그래? 뭐 문제… 아! 설비가 맛 갔구나. 그보다 그… 왔던 실험체는 죽은 것 같네. 아이고~”

“다시 만들면… 다시 만들면 되긴 하네. 하지만 우리 처지가 정말 굴욕적이군.”

“뭐, 스캐빈저 인생에 이런 적이 어디 한둘이야? 굴욕적이어도 그냥 버티고 사는 거지. 사도님 있을 때랑은 다르니까…….”

유성원과의 일을 모르는 그녀는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이 목사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대한 한우 수인의 모습. 아직 승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분노가 치솟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다.

물론 다시 만들어 낼 수 있긴 하지만, 자신이 밤낮으로 연구하고 노력한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면 누구라도 분노하기 마련이었다.

[무우우! 절대 용서 못해.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네네. 아무튼 이렇게 포격한 거 보면 곧 현상금 사냥꾼 애들이 온다는 건데… 적당히 화내고 정신 챙겨. 미사일 폭격을 요청할 정도면 S급 헌터도 끼어 있을 테니까……. 나는 애들 모아 올 테니까 그동안 정신 챙기쇼.”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박숙자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며 자신의 할 일을 하러 갔다.

하나 굴욕감에 몸서리치던 이 목사는 유성원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며 그의 모습과 복수할 생각을 머리에 한 번 더 새기고 난 뒤, 다시 해야 할 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전선 도시, 중앙 회의실.

정찰 겸 출장이 끝나고, 전선 도시에 돌아온 유성원은 오자마자 기사들과 주요 인물들을 모두 재소집했다.

긴 휴식과 귀찮은 의뢰 임무에 대한 일도 대충 그럴싸하게 마무리했고, 중요한 올림푸스 길드의 정보까지 수집을 완료했으니 이제 남은 건 다시 ‘사명’에 집중하는 일뿐이었다.

기존의 네 기사들을 포함해서 천검군 팀뿐만 아니라 새로 합류한 사령군단의 대장군들까지 모이자, 북적북적한 회의실은 마치 어전회의 같은 광경이었다.

“자… 뭐부터 말해야 할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강제로 선결재하셔서 떠맡은 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주 어렵고 험난하고 힘든 과업을 하게 될 것 같아. 무척 터무니없고 엄청난 일이지. 이미 알고 있는 녀석도 있겠지만… 이 지구에서 모든 ‘성좌’를 쫓아내는 일이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그 정도는 되어야지.”

[생을 몇 번 반복해서 완수한 일도 있는데, 더 힘들어도 상관없지.]

[반가울… 따름…….]

[하하핫! 이래서 ‘별의 기록’에 남을 수밖에 없다니까!]

분명 유성원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 세대의 인간이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무지막지한 일임에도 기사들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흥겨워했다.

반면에 신소미, 신아영을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다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유성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게… 가능할까요? 아니,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도 몰라. 그냥 해 보는 데까지 하는 거지. 쉬운 일은 아니야. 코어 던전 몇 개를 도전해야 하는 거야? 젠장! 아무튼 하나하나 해 볼 건데… 혹여나 내가 잘못될 때를 대비해서 아영이에게 전선 도시랑 아이언 포트리스를 계속해서 맡길 생각이야. 그리고 여차하면 전선 도시를 엎을 생각도 하고 있고. 벌어 놓은 돈 덕분에 딱히 걱정할 그런 건 아니니까… 여기 애들 보살필 정도는 되겠죠.”

“…대장님.”

“아무튼 이제부터가 본론인데, 결국 올림푸스 길드도 없애야 할 대상에 포함되니 견제를 위해선 다른 경쟁자 성좌의 급을 키워 주는 수밖에 없어요. 물론 인류 멸망을 부르는 성좌도 잡아야 하지만요. 하아아~ 시소를 떨어뜨리지 않고 사람을 모두 비우는 게임 같은 거네요.”

한쪽으로 완전하게 기울지 않게 균형을 철저히 유지한 채로 시소에 타고 있는 성좌들을 모두 빼내는 것 같은 과업.

어렵지만 그래도 차라리 이게 한쪽으로 완전히 밀어낸 뒤에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인 만큼 그 일환 중 하나로 올림푸스 길드의 경쟁자 가운데 하나를 돕기로 하는 유성원이었다.

“그래서 내일 일단 천검대장군 저 친구랑 승부를 낸다는 걸로 적당히 하루를 때우고, 그리고 몇 달 뒤에 성좌 용봉왕이 있는 ‘중국’으로 갈 겁니다.”

“성좌 용봉왕이라……. 나쁘진 않지.”

중국을 네 등분 하는 세력 중 하나로 만주 쪽에서 기세를 떨치는 성좌 도살왕의 세력이 깎인 지금, 중국 공산당 정부와 성좌 진황, 성좌 용봉왕 이 셋이서 알력 다툼을 하는 형세인데, 이 셋 중 가장 도덕적이며 국제 사회에 도움을 주면서도 제일 번영한 곳이 바로 성좌 용봉왕의 중국이었다.

“물론 성좌 용봉왕도 결국 없애야 하지만, 적어도 올림푸스랑 비비려면 그곳밖에 없죠.”

“중국 공산당 정부는요?”

“…스캐빈저만도 못한 놈들이랑 어떻게 손을 잡아요?”

“그건 그렇죠.”

지금은 중국 공산당 정부라고 불리지만 과거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본격적인 자본주의 도입 이후 과거부터 지금까지 세계 2강을 자부하며 엄청난 경제 규모와 자금력으로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온갖 패악을 저질렀으나, 현재는 나라가 넷으로 쪼개졌고 그동안 쌓아 온 폐단과 원한이 너무나 많아 국제 사회에서도 이제 중국 정부가 아닌 중국 공산당 정부로 불리는 곳이었다.

이런 꼴이 되었으면 정신을 차릴 법했지만, 잘못된 중화사상 교육을 받은 세대 탓인지 아니면 아직도 상류층들은 살 만해서 정신을 차리지 않은 것인지 여전히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다가 맹세라고 하는 절대적인 계약을 준수하는 매너 넘치는 성좌 용봉왕과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운 성좌 진황의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였다.

“그 인간들이랑 손잡으려면 과거에 저질렀던 패악질과 각종 지적, 기술적 저작권에 대한 보상, 인권 유린에 대한 사죄 등등… 치러야 할 게 많은데, 배 째라 하고 있죠? 지금 국력이랑 그동안 벌어 둔 돈 다 깎아 먹어 가고, 각성자를 강제 징병해서 버티곤 있는데… 아무튼 제가 마무리 지으려고요.”

“으음… 성좌 용봉왕의 통일 중국을 만들 셈이군.”

“그거 나쁘지 않죠? 얼마나 좋아요. 일단 최소한 맡은바 책임은 다하잖아요.”

물론 국경을 넘어서 원조하는 건 주권 문제 때문에 이들이나 대한민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서 파병 요청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좌 용봉왕은 성좌 도살왕에 대응하려고 할 때 전하는 메시지대로 아주 잘 대처해 주는 편이었다.

“또 다른 선택지로 성좌 진황을 고려해야 하지만, 거긴… 정령 및 원소 군단이니 다른 선택지가 없죠.”

“환경오염에 아주 민감한 성좌였지. 그래서 중국 공산당 정부를 더더욱 가열하게 공격하는 곳이기도 했고…….”

“은근 협조적이면서도 결국 인류 문명에 적대적이신 분이나 다를 게 없으니……. 자, 아무튼 성좌 용봉왕의 중국으로 갈 준비를 합시다. 저는 천군대장군이랑 형식상의 싸움 준비를 할 테니까요. 보드 게임으로 할까? 가위바위보라도 할까?”

방침이 정해지자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선 도시의 일원들.

인간이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일의 첫걸음이 이제 시작된 것이었다.

하나 그 전에 또 해야 할 일이 있는 유성원은 회의실을 나간 뒤 신소미 모녀만 따로 모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 갑자기 엄청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쩝, 상의도 없이 진행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부여받은 사명은 어쩔 수 없죠.”

“이젠… 그러려니 해요. 뭐, 일도 익숙해졌고. 근데 그러면 식은 언제 올려요? 우리 엄마, 이대로 놔둘 건가요? 딸은 어서 예뻐해 줄 수 있는 동생이 필요합니다.”

“보통… 새아빠 같은 거 들어가면 동생 생기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니? 아무튼 또 일이 꼬이기 전에 미루던 것부터 얼른 해야겠다. 누님, 아영아, 그… 내 가족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말. 그리고 그동안 미루어 온 말을 드디어 용기 있게 꺼내는 그였다.

앞으로 성좌들을 없애는 전쟁을 하다 보면 더 혼란스러워질 테고, 그러면 이 말을 할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해야만 한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저는 태어난 뒤 사고 때문에 가족들 얼굴도 기억 못하고, 시설에서만 자라서 가족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알려 주시고 같이… 같이… 행복하게 되도록 노력하죠.”

“예, 그러죠.”

“아싸! 이제 진짜 아빠라고 불러도 되는 거네요?”

그렇게 유성원은 드디어 혼자가 아닌 새로운 가족을 성립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혼인신고를 비롯한 행정적 절차로, 가족이 된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이제 신아영이 전선 도시와 아이언 포트리스의 정식 후계자로 인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사랑의 힘이니 결혼 버프니 하는 것을 빌미 삼아서 천군대장군과의 결투를 하루 만에 처리하고, 식을 치르기로 했는데……. 기사들을 비롯한 내부에서는 결속을 위해 성대하게 결혼식을 열자고 했지만, 이번이 재혼인 신소미의 사정으로 언론이나 정부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곤란했기에 전선 도시에 있는 호텔에서 백가연 어르신의 주례로 아이언 포트리스의 식구들만 모여 소박하게 치르고 끝내 버렸다.

“그… 누님에게 여보라고 하는 거 엄청 어색하네요. 아, 익숙하지 않아서 돌겠네. 그보다 진짜로 여행 안 가도 돼요? 미국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데요.”

“어딜 가도 주목받는 것도 별로 안 좋고… 사실 전선 도시가 제일 좋은 곳 아닐까요? 게다가… 이미 가족이 이렇게 많으니까요.”

“아… 그렇죠. 여행 가면 그 분위기가 절대 안 나오겠네요.”

“그렇죠.”

부부가 된 유성원과 신소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 앞에서 떠드는 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가족이 된 순간 아이들이 동시에 넷까지 생겨 버린 기묘한 구성.

신아영을 포함하여 일본에서 거두어 온 세 아이들도 이제 호적에 등록할 수 있게 돼서 단숨에 총 6인 가정이 되어 버린 유성원네 집이었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파파, 파파, 파파, 파파.”

“아빠야~”

“그… 어머님?”

“북적거리네. 참…….”

이렇다 보니 신혼여행은 결국 접어야 했지만, 그래도 휴가를 보내는 셈 치고 느긋하게 지내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다 보니 여행 못지않게 이 시간이 만족스러운 유성원이었다.

아무리 급박해도 신혼여행 기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 비매너는 스캐빈저를 제외하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유성원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정의 아늑함을 느끼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이 안정감… 뭔가 다르네. 음?’

“아빠랑… 잘래.”

“아버지랑 있으니 너무 좋아요.”

“하아… 진짜 가족… 너무 좋아…….”

주로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각종 보조는 해 주어도 이렇게 직접 돌봐 주는 걸 오랫동안 못 느낀 건지 애완동물처럼 유성원에게 달라붙는 재영, 수영, 하영이었다.

셋 다 특무부대의 S급 헌터이지만 지금은 그런 무서운 모습 하나 없이 작은 동물들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부엌에선 신아영과 신소미가 재잘거리면서 무언가 간식을 만드는 것 같았다.

‘이게 가정인가… 하아… 확실히 혼자 있을 때와는 뭔가 다르네.’

이 행복한 공간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 유성원은 예전처럼 죽으면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걸 더욱 절실히 느끼며 다시 성좌 66천마 같은 코어 던전을 만난다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