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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01화 (201/293)

[201화]

“일단 가지고 있는 올림푸스 길드 쪽 자료 다 내놔.”

“…아니, 무슨 맡겨 놓은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그런다고 쉽게 줄 것 같나?”

“으음… 싫으면 여기서 한판 할까? 이거 나 같은 무지렁이는 잘 모르지만 귀중한 설비 같은데?”

“그, 그만둬! 함부로 손대지 마!”

자신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아주 잘 감춘 건 좋았지만, 오히려 잘 모르기에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으로 기기랑 설비들을 툭툭 치면서 협박하고 있었다.

이 설비가 보통 설비인가? 인간 공장. 장차 단순히 만들어 내는 경지가 아니라 원하는 상품(인간)을 자판기에서 뽑듯이 주문 제작할 수 있게까지 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설비로 가득한 중요한 곳이었다.

그걸 마구잡이로 건드리니 천하의 이 목사도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다행히 아직 내 연구를 모르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되게 신기하네. 당신, ‘인간 목장’을 만든다고 들었는데… 설비가 무슨 첨단 연구소 뺨치네.”

‘큭……!’

천만다행으로 상대는 아직 자신이 ‘인간 공장’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사실만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인류 최대의 금기. 그것을 들키게 되면 이놈부터 시작해서 주변국에 있는 인간들까지 자신의 연구를 부수려 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인간을 제압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철저하게 숨겨야만 했다.

“그, 그야 일반 목장도 이 정도 연구 시설은 기본일세. 품종과 먹이 개량을 비롯해서 매년 새로이 나오는 질병과 새로운 성좌와 몬스터에게서 오는 질병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하니까 나 정도는 작은 편이지.”

“그런가?”

“아무튼 올림푸스 길드의 자료를 줄 테니! 기다리게!”

이 목사는 안색이 파래진 채로 얼른 유성원을 내보내기 위해 자신의 컴퓨터를 켜서 자료를 외장 하드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빨리 저 이상한 놈을 이곳에서 보내 버리고 싶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옮기느라 낑낑댔다.

하나 안 되는 날은 꼭 안 되는 건지 올림푸스 길드의 자료량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것을 옮기는 건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분할에다가 데이터 케이블로 옮기려고 해도 자그마치 8시간 34분이나 걸리는군.’

그동안 유성원을 여기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 이 목사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시라도 빨리 보내고 싶으니 말이다.

결국 이 목사는 자신들이 쓰거나 팔아먹기 위해 미리 카피해 둔 것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이대로 바로 주면 아무리 저놈이라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러니 적어도 몇 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역시 시간 좀 걸리지?”

“그렇다네. 좀 걸릴 것 같으니 잠시 나갔다 오는 건 어떤가?”

“아니,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나갔다가 나에 대해 눈치채는 놈이라도 있으면 그것도 골치 아프고 말이지.”

그렇게 난데없이 기묘하고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성좌 도살왕의 사도를 쳐 죽인 놈을 가만히 놔두는 것부터가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지금 그에게 덤볐다가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게 이 목사의 입장이었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굴욕을 참는 건 누구나 하는 일 아닌가? 그러니 꾹 참으면서 그저 아무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길 빌 뿐이었다.

“한데… 이렇게 비밀리에 와서 슥 얻어 가는 걸 보면 올림푸스 길드에겐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나?”

“맞아. 길드 사회에서 최고가 되려면 결국 올림푸스 길드를 꺾어야 하거든. 그 새끼들, 심심하면 내가 무슨 자기들 똥강아지도 아니고 자꾸 부려 먹는다니까~ 그래 놓고는 막 동아시아 평화를 나보고 챙기라느니, 어쩌느니…….”

“허허허, 그렇구먼.”

가만히 있으면 유성원이 자신의 연구실을 마구 뒤적거릴지도 모르기에 그의 정신을 분산시키려 이 목사는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그의 속셈을 모르는 만큼 유성원은 구석에 앉아 태연히 그의 질문에 답하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허허허, 그나저나 올림푸스 길드를 꺾긴 힘들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몰라. 생각나는 대로 해 봐야지. 그보다 당신이야말로 무슨 생각으로 올림푸스 길드의 배를 턴 거야? 물론 성공할 자신은 있었겠지만 보통은 그런 벌집, 안 건드린다고……. 스캐빈저들은 일단 자기 목숨이 최고 아니었어?”

“허, 허헉! 그거야 뭐… 그, 그렇지! 그렇지. 하지만 그… 뭐냐? 때, 때론 이익을 위해 크, 큰 모험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일세.”

“당신은 신중한 타입 아니야? 다른 스캐빈저들이 그러던데?”

유성원이 자신에 대해 파고들자 당황하며 떨기 시작하는 이 목사.

그야 인간 클론 공장, 성좌 도살왕에게 무한히 봉사한다는 거대한 목적이 있었기에 올림푸스 길드를 노린 것이지만 지금 그것을 말하면 저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힘들게 완성한 설비를 날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도 위험한 처지였다.

“나에게도 사명이라는 게 있네. 우리 성좌 도살왕께 봉사하는 몸으로서 나 또한 그에게 제물을 바칠 수 있으면 바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법이지. 일본 시장은 그래서 진출한 거고, 올림푸스 길드는 그 와중에 한번 노려 봄 직해서 해 본 걸세.”

“그래? 그러고 보니 코어 던전으로 끌고 간 배의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됐어? 아니, 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안부나 물어보려고. 어차피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정답이네. 덧없는 저항을 했지만 그곳이 어디 보통 장소인가? 심부에 있는 화신을 이기지 않으면 못 빠져나오는 곳이지. 다 사도님들 밥이 되었지.”

“그런가… 역시 그런 거겠지.”

“막 정의니, 기사도니 하면서 우리와 싸우던 친구치곤 반응이 무미건조하군. 보통 그런 건 용서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소문으로 듣거나 멀리서 보던 유성원과 직접 본 그의 태도가 많이 다른 것에 문득 의문이 생기는 이 목사였다.

기사도니 정의니 하는 소리를 외치며 황금빛 갑옷을 입고 치열하게 싸우던 기사의 모습과 달리, 지금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죽는다는 소리를 듣는 인간이 동일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긴 해. 사실 그 망할 기사도에 따르면 지금 당신들을 없애야 하는 게 맞고, 올림푸스 길드의 의뢰도 있으니 그래야 하긴 하지만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고, 그게 댁들을 살려 둘 이유가 된 거지.”

“우리를 미끼로 쓸 셈인가 보군. 살려 두면 살려 두는 대로… 올림푸스 길드의 시선을 돌리기 좋으니 말이야.”

“대충… 맞아. 뭐, 그래도 이번 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충분히 나쁜 짓을 많이 했잖아?”

“허허허, 나쁜 짓이라. 그건 어폐가 있군. 인간… 아니, 우리를 비롯해서 만물은 항상 타자의 생명을 빼앗으며 살고 있네. 그것을 나쁘다고 규정할 생각인가? 그럼 그것으로 이루어진 삶과 생명을 나쁘다고 규정하는 겐가?”

“규정까진 아니고, 그냥… 개인 의견이지. 그, 있잖아. 동네 똥강아지도 자기 맘대로 짖을 순 있잖아. 월월! 컹컹! 하고 말이야. 물론 그 똥강아지도 약하면 결국 보신탕이 되겠지만~”

“껄껄껄, 그거 맞는 말이구먼.”

그렇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해 대며 계속해서 시간을 죽이는 두 사람.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 목사는 슬슬 대화의 소재가 다 떨어졌다고 생각할 즈음 슬쩍 따로 카피해 둔 자료를 담은 외장 하드들을 꺼내어 유성원에게 줄 준비를 했다.

‘이제 이걸 넘기고 돌아가라고 하면…….’

“이 목사! 이 목사! 거기 있어? 물건 좀 더 떼 줘! 이거 진짜 중국이랑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서 난리야. 그러니… 어라? 못 보던 얼굴인데? 너 뭐냐?”

하나 타이밍이 좋은 건지 망한 건지, 한창 물건을 팔고 보충하러 온 박숙자가 이 타이밍에 자신의 연구소에 들어와 끼어들었다.

이 목사의 머릿속에선 경보음이 울리면서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해결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린 순간 유성원은 이미 티탄의 말뚝을 집어넣고 허리를 90도가량 숙인 자세로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그녀에게 인사 중이었다.

“아, 예! 저는 이 목사님의 지시로 심부름하는 자입니다. 이거저거 옮기거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그런 놈입죠. 헤헤… 헤헤헤헤…….”

“으음… 그런 것치곤… 뭔가 묘하게 다른데. 이 목사, 이번엔 또 뭔가 실험하는 거야?”

“커, 커흠! 그런 게 있네! 이, 일단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2시간 뒤쯤 오게! 빠, 빨리 나가게! 결과에 지장이 있을 수 있어!”

이렇게 당황하고 화내는 이 목사를 처음 본 박숙자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물러났다.

그렇게 위급한 순간이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유성원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은 채 박숙자를 내보낸 이 목사는 그녀가 나간 뒤 문을 잠그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후우우우우~ 십년감수했네.”

“으음, 근데 역시 난 갑옷을 안 입으면 사람들이 못 알아보네. 방금 그 사람, 꽤 강한 것 같던데…….”

“그야 그 갑옷을 입었을 때의 기백과 지금의 기백은 천지 차이니까 말이지. 아, 아무튼! 크흠! 여기, 그대가 말하던 자료일세. 받고 어서 꺼지… 아니, 가게나.”

“생각보다 빨리 됐네. 여기 설비가 좋아서 그런가?”

“이곳 설비도 올림푸스의 것을 빼앗았으니 그런 거지. 허허허. 나의 신께 맹세코 이 자료들은 진짜 올림푸스 길드에서 빼앗은 모든 것일세!”

물론 진실은 예비용 복사본이었지만, 아무튼 이 목사는 능청스럽게 대답해 주며 유성원에게 외장 하드들을 넘겼다.

맹세도 들었겠다, 받은 것들을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집어넣은 유성원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실을 나섰다.

‘휴우~ 겨우겨우 들키지 않았군.’

“그럼 수고하시고, 오래오래 잘 살아남아서 미끼가 되어 줘. 가능하면 남쪽으론 오지 말고~ 그리고…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현상금 사냥꾼 애들이 러시아랑 중국에 미사일을 발사해 달라고 해서 여기에 폭격이 있을 거니까 슬슬 뜨는 게 좋을 거야.”

“뭐라고?”

“미끼 역할 마저 하려면 꼭 살아남으라고~ 그럼 이만!”

유성원은 그렇게 바람처럼 잽싸게 금빛 섬광을 남기며 사라져 버렸다.

연구소 밖까지 따라 나왔던 이 목사는 그가 갑옷을 입은 채 빠르게 장소를 이탈하는 걸 보면서 자신의 목적을 들키지 않았다고 안심을 하던 중 저 먼 하늘에서 미사일 같은 게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다음은 폭발 속에 가려져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

그리고 자리를 이탈하던 유성원은 폭발하는 연변 언더시티를 슬쩍 돌아보곤 살짝 미소 지었다.

사실 이 언더시티에 폭격 요청을 한 것은 바로 유성원으로, 이 목사에게 물건을 받아서 인벤토리에 넣는 틈을 타 기사들의 성소 포탈을 열어서 거기에 좌표와 시간이 적힌 쪽지를 던져 준 것이었다.

이제 자신의 이름 정도면 한국 정부에 미사일 몇 발쯤 폭격을 요청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마정석 탄두 미사일과 각종 장거리 포격을 다수 요청해서 제대로 엿 먹인 것이었다.

“뭐, 속인 건 나쁜 짓이지만 그래도 이 목사, 댁이 꾸미는 음모에 비하면 이건 약과지. 인간 복제라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모르는 척하긴 했지만, 이 목사와 만나기 전부터 유성원은 그가 연구소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눈치챈 지 오래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언더시티에서 고객인 척하며 정보를 수집하던 그는 ‘이 목사’의 복제가 언더시티를 서성이고 있던 것을 먼저 ‘만나’ 봤기 때문이다.

‘허허허, 뭘 사려고 오신 건가? 천천히 둘러보시게…….’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그 둘에다 인간 목장을 만든 이 목사라는 놈에 대해 떠올리니 바로… 그다음이 떠오를 수밖에 없지.’

원래 미친 짓을 하던 양반이 더 미친 짓을 못하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마스터, 방금 전 적의 시설을 스캔한 결과, 그곳은 단순한 농업 개량 시설이 아닌 생명 공학 기술을 시연하는 공장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내부 및 곳곳에 인간의 잔해물이 숨겨진 것을 발견했기에…….]

‘…내가 아니어도 성소에서 경계심을 바짝 올린 채 보고 있던 기사들이 알아냈겠지.’

그렇게 이 목사가 꾸미는 일도 간파해 낸 유성원은 이 자리를 절대 그냥 놔둘 수 없었기에 몰래 화력 지원 요청을 한 것이었다.

아마 지금쯤 설비 대부분이 파괴되어 이 목사가 절규하고 있으리라 생각한 유성원은 다음 일을 위해 전선 도시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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