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그리고 유성원이 떠난 뒤, 성좌 포세이돈의 신전에선 신전 안내역을 맡았던 테이온이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포세이돈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유성원의 눈앞에 나왔던 것처럼 테이온의 앞에 그대로 메시지가 떠올랐고, 그는 의외라는 듯한 말투로 유성원에 대해 평가했다.
“예상과는 전혀 달랐군요. ‘신조 병기’라는 카드를 거부할 줄이야. 냉큼 받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성좌 포세이돈’은 그 정도는 되어야 이 ‘별’이 선택한 수호자라며 오히려 감탄합니다. 다만 이 ‘별’을 손에 넣으려는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적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합니다.]
“아뇨. 안타까워하실 거 없습니다. 결국 의뢰를 승낙한 사냥개이니까요.”
[‘성좌 포세이돈’은 그를 얕보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합니다. 그는 엄연히 이 ‘별’의 수호자이며, 자신들이 쓰러뜨려야 할 마지막 숙적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흰 반드시 이 세상을 올림푸스의 아래에 다시 두게 만들 것입니다.”
올림푸스 길드. 현재 세계를 지키는 가장 거대한 길드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바로 세계를 올림푸스 길드 아래에서 통일하는 것이었다.
12명의 성좌 아래에 지구촌 전체를 통일하고 더 이상 분쟁과 싸움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
그리고 이후엔 다른 별로 나아가 12성좌 모두 하나씩 자신의 ‘별’을 가지게 하는 것이 그다음 목표였다.
“우리 인간은 결국 ‘신’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죠.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테이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할 일을 하러 물러났다.
이미 세계에 있어 올림푸스 길드는 없어선 안 될 존재. 세계의 안전과 문명 유지, 정치를 주도하는 길드인 시점에서 이 ‘별’의 주인이 되려는 목표의 절반은 완수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제 성좌 ’영원한 분노’ 같은 이 별을 위협하는 초대형급 성좌들만 어느 정도 처리하면 이 지구의 질서는 자신들의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어떻게든 처리하기만 하면 그때가 바로 올림푸스가 지구의 주인으로 자리 잡는 날이었다.
***
며칠 뒤, 연변 언더시티.
잔치가 크게 열리면 소문이 난다고, 연변 언더시티에 성좌 포세이돈의 황금 갈기 호에서 얻은 물자들이 풀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노리고 사방에서 현상금 사냥꾼들이 모이는 것처럼 동시에 스캐빈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림푸스 길드의 명성은 이미 세계급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장이나 장비뿐만 아니라 정보라도 얻게 되면 그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 하여, 저 멀리 중앙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유럽의 스캐빈저나 범죄 조직까지 몰려와서 거래를 하고자 했다.
“Hey! I’m… 컥!”
“야, 한국말 모르는 새끼들, 꺼져. 팍! 씨!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여긴 엄연히… 중국… 컥!”
“또 뒤지고 싶은 새끼 있나? 요새 번역기도 잘 되어 있는데 한국말 좀 배우지? 아니면 통역사를 구하든가! 글로벌리제이션이고 나발이고! 남의 땅에 왔으면 너희들이 한국말 해야지, 무슨 자기네 언어를 알아 달라고 난리야!”
언더시티의 중앙에서 박숙자는 올림푸스 길드의 장비와 무구, 시스템 정보를 사기 위해 몰려온 스캐빈저들을 통제하느라 한창 정신이 없었다.
죄다 스캐빈저들인 만큼 성격도 제멋대로고 룰 같은 걸 존중 안 하려고 하니 질서를 유지하려면 결국 힘 싸움이 중요했고, 수틀리면 서로 죽이고 난리였기에 박숙자의 손은 계속해서 피로 범벅이 되는 중이었다.
“야야, 거래하러 왔으면 멀쩡히 거래나 해! 그리고 시X! 우리 무조건 마정석이랑 인간 노예만 받아! 이상한 몬스터 사체 같은 거 가져오면 죽는다. 그리고 한국말 안 하는 새끼랑 거래 안 해! 알간?”
“Son of Bitch!”
“Drecksfink!”
“…에휴~”
스캐빈저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곳 언더시티의 스캐빈저들을 보고는 체념한 채 질서에 따르기 시작했다.
본보기도 보여 줬고, 놈들이 이미 올림푸스 길드에서 훔친 최신 장비를 걸치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게 무서웠기 때문에 각자 전자 단말기나 휴대폰, 컴퓨터를 꺼내 한국말을 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죠기… 우리눈 올림푸스가 쓰눈 전투복이 매우 갖고 쉽습니다.”
“누나! 눈하! 요기 올림푸스 길드가 쓰는 전자 장비 필요합니다.”
“한국말 너무 가난해요. 그리고 나는 그들의 신이 부여한 종교적 물건 갖고 싶어요.”
“말 좀 똑바로 배워, 새끼들아! 번역기를 개차반으로 돌리나! 아무튼 대강 알았으니 마정석이나 준비해! 그리고 비싼 건 알고 왔지? 올림푸스 길드의 에이스들이랑 라이스트리곤 군단 애들이 쓰는 진퉁이야, 진퉁! 인증서도 있다고!”
겨우겨우 현장은 정리되고 거래가 계속되었다.
올림푸스 길드의 물건이었고, 가격은 폭리라 생각할 정도로 엄청 비쌌지만 어차피 이들이 구매하는 건 대부분 소량. 직접 쓰는 것보다 약점이나 관련 기술을 분석해서 마이너 카피를 만들거나 아니면 약점을 뚫을 전략을 구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급한 놈은 많이 사 가네. 짱개 새끼랑 일본 놈들이랑~ 유후~ 짭짤하네.”
“시발노무스키데스.”
“쪽발이 새캬, 말 다 했냐?”
“암말 안 했스무니다. 잘 샀스무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현재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데다, 당장 급한 전투에서 써야 할 이들도 넘쳐흘렀기에 대량 구매자도 넉넉히 있었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특히 그랬다. 넷으로 쪼개진 중국 중 하나밖에 차지하지 못했고, 국민들이 시시각각 천국 같은 성좌 용봉왕의 중국에 흡수되고 있어서 골 때리는 상황이었으며 침략을 막아 내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은 올림푸스 길드의 패배 소식이 알려져서 다시 세계 곳곳에서 범죄 조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기에 당장 쓸 무기가 급한 이들이 많았다.
“역시 올림푸스야. 큰 건을 하니까 크게 벌리네. 신선한 노예도 많고. 이야, 당분간은 걱정 없겠어.”
“허허허, 순조롭군. 역시 장사는 숙자 자네가 제일인 것 같아. 나는 섬기는 것만 잘하지, 이런 재주는 없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댁, 진짜야? 가짜야?”
인간 모습으로 다가온 이 목사를 보며 박숙자는 복제품인지 진짜인지 물었다.
한 번 장난친 사람이 두 번, 세 번 장난칠 수도 있을뿐더러 보통 그 인간은 웬만해선 연구하느라 바빠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으음? 진짜, 가짜 가릴 게 없지.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모두 한뜻으로 뭉쳐 있으니 말일세.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싸우고 일하는데 뭐 문제 있나?”
“…보통은 자기혐오라든지 아니면 자신이 진짜가 되고 싶다든지 그러는 게 일반적인 반응 아닙니까? 복제 양반.”
“신앙의 힘이란 그래서 위대한 것일세. 대의와 신의 이름, 이 두 가지로 뭉칠 수 있으니 말이야.”
성자(聖者)처럼 웃으면서 자신이 복제라는 것을 알아도 상관없다는 듯 말하는 복제 이 목사의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박숙자였다.
애초에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복제가 원본과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니 더 기괴했다.
물론 그러니 복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진짜 끔찍하네요. 아무튼 무슨 일입니까? 그냥 매상 확인하러 온 건 아닐 테고, 코어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아니면 필요한 물건이라도 있습니까?”
“중국 쪽과 러시아에 있는 ‘나’에게서 연락이 왔네. 현상금 사냥꾼들이 육로를 통해서 온다더군. 자세한 일정과 시간은 잘 모르지만 우리가 무장을 한 채 이것저것 팔고 있다는 소식과 스캐빈저들이 몰려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가? 아무튼 곧 올 테니 준비하고 있게.”
“뭐, 와 봤자 우리한텐 안 될 텐데요. 뭘~”
“방심해선 안 되네. 올림푸스가 우리에게 당한 게 단순히 계략이 좋아서만이 아니었네. 그들이 우리에 대해 방심했기 때문이지. 조금이라도 더 경계하고 조심해서 배에 라이스트리곤 군단이라도 남겨 두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걸세.”
“뭐, 잔소리는 거기까지 하시고. 대비할 테니 먼저 오는 쪽이나 알려 주세요.”
박숙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복제 이 목사를 진짜처럼 대하면서 그에게 정보를 얻었다.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주변국에 퍼뜨려 놓고 정보원으로 쓰는 재주라니. 정말 이 목사의 미친 짓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나 그의 미친 짓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변 언더시티 한구석에 마련된 이 목사의 연구실에선 오랜 연구의 결실이 드디어 꽃피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반나체의 서양 남성을 바라보면서 기쁨과 희열에 가득 차서 감격 중이었다.
“드디어! 성공했다. 성공했어! 코스트 다운도 성공, 유전자 및 신체 데이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찍어 낼 수 있는 완전 복제 설비! 드디어 성공했다.”
자신의 작품을 보며 감탄하는 이 목사였다.
드디어 코스트를 최대로 줄이고,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설비를 완성한 것이다.
인간 복제의 완성, 클론 계획의 성공! 이제 남은 건 모든 공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각종 재료와 약품, 마력 공급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원하는 인간을 그때그때 편리하게 복제해서 제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후후후… 이걸로… 이걸로 좀 더 다양하고 맛 좋은… 식사를 대접할 수 있겠어. 단순히 남녀노소, 인종을 넘어서 인간 하나하나를 브랜드화한 재료로 쓸 수 있게 되겠어. 후후후, 그러면 가히 무한의 조합, 무한의 조리법이 나오게 된다. 신께 나는! 무한히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통은 클론을 만든다면 똑같은 고급 인간을 찍어서 가호를 받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 목사는 그 어떤 일에도 정성을 담는 자다.
인간들 중 특상품을 복제하는 것만으로는 누구나 입맛이 달라 질릴 수도 있기에 다양한 특상품의 인간을 복제해서 새로운 조리법을 만들고 신에게 바치는 요리를 계속해서 대접할 생각으로 이것을 기획한 것이었다.
“범인(凡人)은 나의 뜻을 이해 못하니 숨겼지만, 아무튼… 드디어 일단락이 되었군. 일본 놈들의 데이터 덕분에 일이 빠르게 단축이 되었어. 허허허.”
이제 남은 일은 완벽한 설비의 보조와 그리고 더 맛있고 재능 있는 인간의 샘플을 잔뜩 모아서 메뉴에 올리고 더 많은 조리법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신께 올리는 식사도 중요하지만 다른 할 일도 중요했다.
신전을 쌓는 일도 중요하나 그 신전을 이교도의 손에서 지켜야 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해야 할 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연구가 완성된 이상 이제 더 이상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보자. 이다음에는…….”
“와, 대박이네. 이게 말로만 듣던 악의 조직의 기지인가?”
“…누구냐? 감히 신을 경배하는 이곳에 멋대로 발을 딛고 들어온 자가?”
한참 자신의 성과에 자아도취하고 있는 타이밍에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이 목사는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거기엔 평범한 청바지에 후드 티 하나를 걸친 30대 청년이 자신의 설비와 신전을 이리저리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경비랑 보안 시스템 따위를 두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성좌의 사도인 이 목사는 불쾌해하는데, 멋대로 들어온 이는 능숙하게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 그러니까… 이거 많이 익숙하지?”
쿵!
나올 땐 검은색이었지만 그의 손에 잡히니 금빛으로 물드는 긴 쇳덩어리. 낯익은 그 무기에 대해 이 목사는 보자마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저 금색 쇳덩어리에 얼마나 많은 성좌 도살왕의 사도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신이시여!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은 상대가 지금 이 타이밍에 나타났다.
SS급 헌터로 유명한 유성원 놈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한 것. 왜 황금 갑옷을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체를 아는 데는 충분했고, 이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열심히 굴리면서 조심스레 그에게 물었다.
“네놈이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아니지, 여기 있을 이유는 많겠군. 또 날 방해하러 온 건가! 그런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기가 찰 노릇이군.”
“…스캐빈저 커뮤니티에 다 알려졌던데? 너네 숙자인지 말자인지 하는 아줌마가 여기서 물건 판다고 소문을 쫙 내서 말이지. 그래서 그냥 왔지.”
수많은 경계와 경보 장치가 있는 이 언더시티를 혼자 그냥 왔다는 말에 섬뜩해진 이 목사였다.
물론 상대 또한 이젠 조직과 본거지를 가진 놈이기에 충분히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했지만, 소문에 의하면 요양 중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오다니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소문에 의하면… 코어 던전의 후유증으로 요양 중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거 일하기 싫어서 한 거짓말. 회복은 이미 다 끝났어. 좀 쉬려고 했는데 사람은 속여도 성좌님은 못 속여서 너 쳐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지. 아무튼 너희들이 갖고 있는 내 이미지가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건지, 그냥 평범하게 차려입고 언더시티로 굴러들어오니까 아무도 의심을 안 하더라. 세상에~”
마침 다른 스캐빈저들도 잔뜩 와서 거래하는 판국이라 황금 갑옷을 입지 않은 유성원에 대해서는 그저 다른 고객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언더시티의 스캐빈저가 굴러들어온 거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으로 얼굴도 공개되었지만 늘 그렇듯 사람들은 유성원을 황금 갑옷 차림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얌전히 있으면 싸울 때와 분위기가 너무 다르기에 조용히 들어오면 판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슨 목적으로 온 거지? 죽이러 왔다면 그 차림새는 아닐 텐데 말이지.”
“그러니까… 뭐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