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해신궁(海神宮).
이 바다 신의 궁전은 황금 갈기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으로 아무것도 없던 태평양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거대한 섬이었다.
섬은 그동안 봐 왔던 마법과 신의 축복이 내려진 각종 첨단 기술의 끝을 달리는 모습만 보이던 올림푸스 길드의 인상과 달리 환상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섬 위에는 푸르른 정원과 나무, 산, 호수가 있었으며 그런 자연 풍경 속에서 만들어진 해신궁의 궁전은 마치 신전을 보는 듯 그 외양이 숭고하고 환상적이었다.
엄연히 바다의 성좌를 모시는 곳이라서 외부와 내부 모두 바다에 관련된 동물이나 풍경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갑주나 보호복엔 꼭 비늘무늬 같은 것이 들어가 있는 게 특징이었다.
[결계 점검 서둘러!]
[메가 오션 이터 2마리, 결계를 뚫고 나가려고 합니다!]
[라이언 님을 불러! 라이스트리곤 군단 300명과 함께 잡아!]
[2함대, 3함대 보급을 위해 귀환 요청!]
[보급 서둘러! 바로 보급하고 다시 나간다!]
그리고 이 거대한 기지는 현재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인간들과 바다 생물 형태를 한 수인이나 거인까지 돌아다니면서 분주하게 일하는 중이었다.
“와… 진짜 레벨이 다르네. 게다가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네?”
“하하핫, 다들 황금 갑옷 같은 것보다 더 기묘한 걸 많이 본 사람들이니까요.”
“하하하…….”
낯선 데다 찬란하기 그지없는 황금 갑옷을 입고 있는 자신에게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고 다들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에 유성원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유성원은 그대로 올림푸스 길드원의 안내에 따라 건물 내부로 들어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야 성좌 포세이돈 님은 엄연히 올림푸스 길드의 주신들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시는 분이니 말이죠. 알현실은 지하 맨 아래에 있으니 해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 합니다.”
“이거 지하도 있어?”
“물론입니다. 알현실은 이 섬에서 지하 200미터가량 아래에 있습니다. 자, 타시지요.”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그들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벽이 유리로 된 덕에 바닷속 풍경과 해신궁 아래 시설들의 다양한 시설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전투 기지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가족과 살 수 있게 해 둔 것인지 거주 구역은 물론 쇼핑몰이나 상점 구역, 놀이공원 같은 것들이 있어서 여기가 진짜 최전선 기지가 맞는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와… 별게 다 있네. 여기 관광 산업이라도 같이하나?”
“그럴 리가요. 그럼 진작 저기 성좌 영원한 분노에 대해 세계에 알려졌겠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헌터들의 가족들이거나 올림푸스 길드에서 고용한 자들입니다. 헌터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긴 대우가 안 좋으면 저런 지옥 같은 전선에 누가 있으려고 하겠어. 또 이렇게 다 같이 살도록 해 주니 싸움에 더 필사적일 수밖에 없겠네.”
“예. 그리고 한번 입주하게 되면 남은 가족들은 평생 걱정 없이 살게 해 주니 다들 열심히 싸우게 됩니다.”
정말로 인류의 위협에 준하는 치열한 전장에서만 싸우는 만큼 올림푸스 길드의 길드원 대우는 최고일 수밖에 없는 게 이해가 되었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기본 A급부터 시작해서 S급이 난무하는 전선에 있으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정석을 얻을 수 있는 장소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유성원은 자신을 대체 왜 불렀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커져 갔다.
“이러니 점점 더 나를 부르신 이유가… 수상해지는걸?”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분께서 직접 말씀하시겠지요. 도착했습니다.”
띵!
엘리베이터가 지하 맨 아래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신전의 입구 같은 기둥 너머 예배당과 비슷한 내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비늘 같은 무늬가 있는 갑옷을 입은 3미터가량의 거구의 남자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신관복을 입은 한 남성. 가까이 다가온 그는 유성원에게 인사하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테이온’이라고 합니다. 유성원 헌터님, 포세이돈 님의 신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예예. 초대해 주셔서 정말 황송합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하죠? 어디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요?”
“아, 예. 대충 비슷합니다. 아무튼 따라오셔서 저기 앉으시면 성좌 포세이돈 님께서 곧 말을 거실 겁니다.”
“아… 직접 면담이었나요? 크흠!”
뭔가 회의 같은 걸 생각했는데, 성좌와 직접 면담이라니 살짝 쫄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 여기서 물러나거나 도망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어색하지만 일단 가서 앉기로 한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들이 말한 자리에 앉자, 눈앞에 이때껏 보지 못한 상태창이 나타났다.
[‘성좌 포세이돈‘이 당신에게 이 메시지가 보이냐고 묻습니다.]
“아… 예. 보입니다.”
[‘성좌 포세이돈’은 드디어 ‘별의 수호자’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안도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개별적으로 의뢰를 하고자 합니다.]
“그… 성좌 도살왕 말이죠? 뭐,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걸린 현상금 때문에 이미 세계에서 헌터들이 몰려가고 있는데 문제없지 않을까요? S급 몬스터인 사도들도 대부분 죽고, 남은 건 인간 부류뿐인데…….”
성좌 도살왕의 세력은 현재 사도급 몬스터가 다수 죽고, 사령 군단으로 길이 차단돼서 스캐빈저들도 고사될 정도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상태라서 상대적으로 위협이 적다고 판단하는 유성원이었다.
물론 이번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 봤자 전 세계의 S급, A급 현상금 사냥꾼들이 몰려가면 충분히 잡힐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좌 포세이돈’은 그건 인간들이 진짜 숨겨진 위협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짜… 위협요?”
[‘성좌 포세이돈’은 ‘그곳에 성좌 도살왕의 사도가 무한한 힘을 얻기 위해 성장하고 있다.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놈은 이 지상에 있는 사도 중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맙소사.”
[‘성좌 포세이돈’은 현상금을 걸긴 했지만 그 간교하고 사악한 성좌 도살왕의 사도가 당할지 의문이기에 보다 확실한 수를 쓰고 싶다고 당신에게 전합니다.]
보다 확실한 수. 대(對)도살왕 세력 전적이 압도적인 유성원과 그 기사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성좌라면 코어 던전 건을 제외하면 유성원의 몸과 정신이 상당히 회복된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성좌 포세이돈’은 그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줄 적당한 보상도 생각해 놓았다고 전합니다. ‘별의 수호자’이며 모든 ‘성좌’를 이 ‘별’에서 쫓아내야 하는 당신에겐 그 무엇보다도 ‘신조 병기’나 ‘카오스 아티팩트’와 같은 무구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으며, 이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시 ‘신조 병기’를 하나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시, 신조 병기를?”
성좌 포세이돈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유성원은 경악했다.
‘신조 병기’의 힘에 대해선 이미 체험한 지 오래였다. 절대적인 법칙을 가진 무구, 힘과 스테이터스나 스킬만으로 이길 수 없는 경지의 힘을 가진 무장. 가질 수 있으면 갖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걸… 제게 줘도 되는 겁니까? 나는 그… 아실 텐데요? 저는 모든 성좌를 이 ‘별’에서 없애야 하는 자입니다.”
이 ‘지구’라는 ‘별’에게 선택받은 유성원의 사명.
모든 ‘성좌’들을 이 지구에서 내보내야 하는데 그 대상엔 이 올림푸스 길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신조 병기’를 준다는 게 쉽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성좌 포세이돈’은 ‘지금 나타난 위험은 그대에게 신조 병기를 줘도 될 정도로 큰 위험으로 발전할 대상. 뼈가 부러지느니 살을 주는 게 나으며, 우리 또한 이 별이 아니면 정착할 곳이 없는 다급한 입장이다.’라고 합니다.]
“아… 맞다.”
지구인에게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름을 쓰고 있어서 착각한 사실이지만, 이 ‘성좌’들에게 있어 그 이름들은 이 ‘별’의 사람들에게 쉽게 자신을 소개하거나 혹은 추구하는 것을 알려 주거나, 혹은 이미 지구 역사상에 존재하던 자신과 유사한 신격의 이름을 빌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성좌 포세이돈도 그저 바다에 관한 권능과 힘을 유사하게 가지고 있으며 섬기는 이들에게 ‘가호’를 주는 것도 ‘사도’들의 충성심과 신앙심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후우우…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성좌 포세이돈’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
유성원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이건 좋은 제안이었다.
이번에 대형 사고를 친 이 목사가 지금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전에 상대했던 페르세포네의 가호를 받은 그 여자보다 강할 것 같지도 않았고, 아직 강해지는 중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면 충분히 불을 끌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끌리지?’
‘신조 병기’를 받기 딱 좋은 일인 데다, 성좌가 주는 건데도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천하의 올림푸스 길드의 성좌가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이 목사라면 충분히 악(惡)이었지만, 어딘가 찜찜하고 불안했던 것이다.
밑바닥 근성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상황이 좋은 게 기묘했던 그는 거부하고 싶었지만 명분을 생각해야만 했다.
‘…….’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조언을 받고 싶었지만 이곳엔 자신 혼자였다.
심지어 적진 한가운데.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많은 이들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만큼 유성원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하던 그는 자신의 갑주와 눈앞에 떠 있는 ‘성좌 포세이돈’의 상태창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결정했습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일이죠. 이 목사가 그 정도로 위험성이 높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성좌 포세이돈’이 궁금해합니다.]
“‘신조 병기’라든가 그 외의 보상은 받지 않겠습니다. 기사로서 한국 지역의 평화를 생각하는 입장에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안 그래도 길드에 손해가 막심하신 것도 같고.”
[‘성좌 포세이돈’이 당신의 대답에 긍정하며 알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조 병기’의 유혹은 컸지만, 유성원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냥 의뢰만 승낙해 버렸다.
이렇게 하면 이제 올림푸스 길드에 나쁜 인상을 남기지 않고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며, 신조 병기로 인해 찜찜한 기분이 들 일도 없어진 것이다.
결국 보수도 안 받고 의뢰를 승낙한 유성원에 대해 더 할 말이 없던 성좌 포세이돈은 사도를 시켜 그를 다시 보내기로 했다.
“몇 시간 걸려서 온 거치곤 별 이야기가 없었네.”
“포세이돈 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그냥… 이 목사가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라서 조지라고 한 거? 별말 없었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섬으로 올라가며 유성원은 이곳에 올 때 안내해 주었던 안내원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고 그가 성좌 포세이돈에게 얼마나 무례하게 했는지도 알아야 하는 건지 안내원은 적극적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곧바로 다시 한국으로 모실까요? 연료 급유만 끝나면 바로 가실 수 있게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
“아니,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너희가 쓰는 무기랑 방어구들을 좀 볼 수 있을까? 가능하면 황금 갈기 호의 재원이나 설계도 같은 것도 포함해서 말이야. 탈취당한 물건인 만큼 분명 스캐빈저라면 개조를 하든 뭘 하든 해서 사용할 거라고 보는데? 올림푸스 길드의 무기랑 방어구가 솔직히… 세계 톱급이잖아.”
“아아! 그렇군요. 어차피 의뢰를 받으셨다고 했으니 그럼 담당 부서에 연락을 해서 자료를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너희 ‘성좌’님의 의뢰를 받은 몸이야. 혹시라도 보안이니 뭐니 하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결국 보상은 거절한 채로 의뢰를 받았기에 이 목사와 싸울 준비를 위해 자료를 받으러 지상으로 올라와 해신궁의 길드 본부로 향하는 유성원이었다.
‘신조 병기’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찜찜한 보상을 받을 바엔 그냥 아무것도 안 받고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지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