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다른 보상은 역시 기사 소환인가? 스킬 포인트인가?”
‘기사 소환’을 택하면 일단 인력이 많아지니 좋고, 천검군 병사들의 소환 코스트도 낮아져서 더 많은 숫자를 부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스킬 포인트도 끌리는 것이, 자신이 강해질수록 조직이 더 탄탄해지기도 하거니와 얼마 전 싸웠던 올림푸스 길드의 S급을 생각해 봤을 때 그녀를 이길 실력 정도는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으음, 역시 기사 소환이겠네.”
개인의 강함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면의 단련을 시작한 뒤에 생각하는 게 맞는 만큼 괜히 여기서 피지컬을 더 올려서 힘들어지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해서 기사 소환을 하기로 마음을 정한 유성원은 중한에게 갔다.
“음?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
“인력 보충! 으음, 널 매개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천검군 코스트 다운도 할 겸.”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전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득이니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그리고 곧장 소환을 개시했는데, 유청을 매개로 삼은 것처럼 천검군의 중한을 매개체로 삼자 예상대로 천검군의 다른 기사들이 셋이 등장했다.
마법진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유청 못지않은 미남자들로 유성원을 보자마자 허리와 무릎을 꿇고 각자 예를 갖춘 채 자기소개를 하였다.
“천검군 공병대의 장을 맡은 가청이라고 합니다, 폐하!”
“천검군 수송대를 맡은 성유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폐하.”
“천검군에서 흑암대를 맡은 중호다.”
‘…중한을 매개로 해서 그런가? 직접 전투보단 특별한 임무를 가진 부대장들이 나오네? 오?’
[‘천검군 공병 소환’이 개방되었습니다.]
[‘흑암대 암살단 소환’이 개방되었습니다.]
[모든 천검군 소환 비용이 줄어듭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병종이 해금되었다는 것과 기존의 천검군 소환 비용까지 줄어든다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눈 유성원은 곧바로 중한의 밑에 그들을 배속시켰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시키는 일까지 중한에게 맡긴 다음 이번엔 백가연 어르신을 찾아갔다.
“그래서, 나에겐 무슨 일인가?”
“특별 과외 좀 받고 싶어서요.”
“과외? 자네가?”
“예. 코어 던전에서의 일 들으셨잖아요? 그리고 이젠 다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각성자 학생들의 수업을 마친 백가연은 뜬금없이 찾아와서 넋두리를 시작하는 유성원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가 평소 이해 못할 행동을 한 것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특별 과외니 뭐니 하면서 가르침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건가?”
“무슨 바람이 불긴요. 이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죠.”
“무시… 아… 그럼 자네도 다 알고 있었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을 안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이젠 너무 뻔해졌잖아요. 저 같은 놈이 이 ‘지구’에게 선택을 받았고, 그리고 여기서 ‘성좌’들을 몰아내는 임무를 맡았어요. 그런데… 첫 코어 던전에서 아주 작살이 날 뻔했죠. 운이 좋아서 실패하고도 돌아왔지만… 앞으로도 그곳들을 돌려면 보통 정신 상태로는 힘들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정신 단련이라도 시켜 달라는 겐가?”
끄덕.
원하는 답이 나오자 유성원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이때까지는 그저 스킬을 얻는 것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래에 자신의 정신이라든가,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기에 그녀에게 가르침을 요청한 것이다.
“으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필요가 없다니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저 그 안에서 무슨 꼴을 겪었는지 다시 한 번 말씀드려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땐 자네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이 지구에서 극악했던 ‘성좌’가 한 명 사라진 건 사실이지 않나?”
“그건 운발! 한 번은 우연히 가능했어도 두 번째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니까요.”
“아니, 자네라면 계속 잘하리라는 걸 알기에 자네를 선택한 게 아닌가?”
“뭘 보고요? 대체 뭘 보고?”
지혜가 뛰어난 것도, 용감하거나 정의감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넓고 자비심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불운한 과거에 대해 편협하리만큼 옹졸하고, 선입견이 강하며 귀찮은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보려고 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글쎄? 그건 이 ‘별’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 언젠가 만나면 직접 물어보게. 이 ‘별’의 성좌에게 말이야.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자네는 이 지구상에 있는 수십억의 인간 중 유일하게 그분에게 선택받은 이라는 사실일세.”
“후우우우~ 납득이 안 가요.”
“여기서부터는 내 가정이니 적당히 흘려듣게나.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이곳, ‘별’님의 기준으로 볼 때, 이때까지 자네의 행보는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네. ‘인류’가 아니라 ‘별’의 기준으로 보면 말이지.”
백가연의 가정을 듣던 유성원은 순간 움찔했다.
여태껏 그가 제멋대로 한 행동들을 주욱 나열해 보면 인간 사회에는 큰 혼란과 파괴를 가져다주었지만, ‘지구’라는 ‘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좌’의 숫자가 줄어들은 것만은 확실했던 것이다.
“…그런가요?”
“가정이라는 걸 알아 두게. 언젠가 그분의 진심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자네가 그 정도로 빠르고 쉽게 강해진 이유도 납득이 가. ‘성좌’와 싸워야 할 ‘인간’을 만드는 거니 이 정도는 됐어야 하는 거겠지. 애초에 자네는 다른 ‘각성자’나 ‘헌터’와 싸우려고 각성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야.”
“네. 이건 저라도 이해가 가네요.”
시작부터 이어졌던 특혜의 향연. 전설급 무장에, 골라서 배울 수 있는 스킬, 거기에 특정 행동을 할 시 주어지는 각종 보너스까지.
유일하게 ‘기사도’라는 규칙은 약간 이상했지만, 아무튼 ‘성좌’가 밀어주는 사도라도 받기 힘든 특혜들을 산더미처럼 받은 그였다.
하지만 그 목적이 지구에서 ‘성좌’를 쫓아내기 위함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아무튼 중요한 일을 받았으니 열심히 하게나.”
“하아~ 저기, 그런데요, 어르신.”
“왜 그러나?”
“그 ‘성좌’에는 성좌 66천마나 성좌 도살왕 같은, 딱 때려잡을 만큼 대의명분이 넘쳐서 모두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분들만 있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아… 그렇군.”
그래, 이 지구상에서 지구인과 소통하는 ‘성좌’들이 모두 악(惡) 성향인 건 아니다. 물론 이것도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이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성좌’가 있는 반면 인류에 우호적인 ‘성좌’도 존재했다.
가령 현재 지구의 안전 대부분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는 열둘의 강력한 ‘성좌’가 모여서 만들어진 올림푸스 길드라든가, 혹은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각종 산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성좌’들도 있다.
“나보고… 그거까지 다 없애라고 하는 걸까요?”
“그렇… 겠지. 성좌 청룡 때도 보상이 주어졌으니 말일세.”
“…….”
포악하고 잔인한 성좌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번영시켜 주는 이로운 성좌나 몬스터에게서 인류를 지켜 주는 고마운 성좌까지 모조리 없애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 유성원이었다.
마치 애초부터 이 ‘별’에 ‘성좌’들이 온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처럼 모든 성좌를 지구에서 없애는 게 사명이라니. 황당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져 버린 것이다.
“…하, 하하하. 코어 던전 클리어도 막막한데, 하하하! 나한테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야죠? ‘지구’에서 ‘성좌’를 모조리 추방? 하! 어이가 없네. 진짜… 이게 인간 수명 내에서 가능하겠어요?”
“자네 정도 되면 스킬 중 ‘불로장생’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만?”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꼭 모든 성좌를 추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만? 그렇게 막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걸세.”
“예?”
“‘성좌’란 세상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권속이나 사도를 찾으러 ‘놀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말이지. 이 악물고 이 ‘별’을 정복하고,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는 자들만 봐서 그렇지, 안 그런 성좌가 대부분일세. 가령~ 지금도 저 아래에 있는 성좌 산거정은 어떤가?”
신강남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세력, 성좌 산거정.
좋아하는 것은 ‘보물과 재화의 약탈’. 오직 도적질만을 목표로 한 사도들을 데리고서 서울 및 주변 도시를 노리지만, 이젠 거의 몬스터와 마정석 생산지로 전락해 버린 약체 세력이었다.
이런 경우처럼 ‘성좌’의 세력이지만 다른 세력에 치이거나 힘이 약해 세계 정복 같은 건 노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까지 자네가 상대한 ‘성좌’들이 워낙 특급 클래스들이라 그렇지, 실제로는 성좌 산거정 같은 이들이 더 많다네. 즉…….”
“즉?”
“큰 세력들을 잡아 가다 보면 자네도 그만큼 강해질 거고, 어느 정도 강력한 세력이 되면 엄포만 해도 알아서들 나가게 되겠지.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또 수십 년간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네. 유일한 문제라면 역시 올림푸스 길드와 같은 인류 사회의 평화를 지키는 데 손을 보태는 성좌를 어떻게 하느냐? 겠지.”
대형 악 성향 성좌는 서로 협력해서 잡는다고 쳐도, 인류를 수호한다고 하는 올림푸스 길드 같은 곳의 성좌들은 과연 어떻게 없앨 것인가?
지금 대부분의 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인류 문명을 후퇴시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악 성향 성좌들과의 전투에 그들이 끼어 있어서였다.
“어우, 이런…….”
백가연의 말을 듣고 상상하던 유성원의 안색이 파래졌다.
성좌 하데스의 사도 하나도 못 이기는 판국인데, 그런 자신에게 내려진 과업이 너무나 무겁고 허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자신이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현기증이 나고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그 올림푸스 길드를 내가……? 그 외에도 모조리 다 내가? 무슨 라그나로크도 아니고… 나보고 이 ‘별’에서 성좌의 시대를 끝내라고? 하……!”
“…갑자기 허용 용량을 초과해서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군. 정신 차리게. 그거 하루아침에 다 하는 거 아니고,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헉! 허억… 허억…….”
패닉에 빠져 있던 유성원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 듯했지만,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듯 여전히 안색이 퍼런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세상에 아무리 공짜가 없다곤 하지만 이런 힘을 줘 놓고 하라는 일이 너무너무 터무니없어서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쿵쾅거렸다.
“그럼… 하아, 하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일단 인류에 위협이 되는 성좌 양반들부터 다 정리한 다음에 남은 이들끼리 ‘별의 주인이 될 사람 정하기’ 게임이라도 해야 할까요?”
“…가당키나 하겠나?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네는 토사구팽될 확률이 크지. 올림푸스 길드를 비롯한 모든 ‘성좌’들이 손을 잡고 자네부터 없애 버리려 할 게야. 이 ‘별’의 수호신 같은 존재이니 말일세.”
“후우우우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거 뭐… 저는 감도 안 오는데요?”
“으음… 내 말이 100퍼센트 옳은 건 아니지만, 내가 자네일 경우를 생각해서 가정은 해 볼 수 있지.”
“그렇게라도 해 주세요.”
마치 새까만 안개 속에 들어온 듯 눈앞이 캄캄한 유성원에게는 백가연의 조언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 거대한 과업을 수행할 견적조차 낼 수 없었기에 허황되더라도 그녀의 말을 반드시 들어 봐야 했다.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백가연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휴대폰을 열고 PC와 연결해서는 세계 지도를 띄우면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