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90화 (190/293)

[190화]

<친애하는 유성원 헌터에게.

‘코어 던전’ 공략 실패 이후 몸조리는 잘하고 계신지요? 전사에겐 때로는 신체적 상처보다도 정신적 상처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다시 무구를 잡을 수 없는 일도 있으니 실패에 대한 심적 고통을 빨리 회복하길 지금도 저희는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냥 안부 인사네요.”

“…내가 심성이 비비 꼬여서 그런가? 왜 이게 독촉하는 걸로 보일까요?”

<하나 휴식 중이셔도 당신은 SS급 헌터이며, 실패했다곤 하지만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을 성공적으로 닫아서 인류의 위협을 하나 줄인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웅의 의무는 죽을 때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당신은 동아시아 최강의 헌터로서 그 힘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짜증 나는 잔소리를 하려는 건데. 으으으…….”

“역시 그냥 보낼 리가 없죠.”

유성원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딱 봐도 뭔가 귀찮은 일을 지시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만큼 신소미 또한 반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유성원은 메일을 닫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성좌 66천마의 군세와 결전을 벌이기 위해 한국의 북한 지역에서 서로 대치 중이긴 하지만, 당신은 홀로 싸우는 존재가 아니며 휘하의 기사단과 S급 헌터들을 이끌고 있는 한 조직의 장입니다. 고로 모든 힘을 한곳에만 집중시킬 것이 아니라 유연성과 전략적 시안을 가지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행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싫다고~ 우리 애들 꾸리는 데 네가 보태 준 거라도 있냐? 이제 겨우 한국에서 살 만해지니까 나한테 동아시아 일 처리를 짬때리려고 하네. 왜 자꾸 일을 늘리려는 건데! 동아시아 평화는 얼어 죽을!”

“그래도 일본의 사태가 심각하긴 하죠.”

“뭐, 반쯤은 의도한 거지만요. 그렇지만 참 아이러니하다니까요. 평화로워지니까 오히려 더 막장이 되어 버릴 줄이야.”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이 사라지고 그 부하들까지 대부분 외국으로 건너갔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일본 정부로서는 웃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마냥 평화로워지는 것보다는 자국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할 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반증이기도 했다.

“듣자 하니 요새 일본 장난 아니라던데… 인터넷 게시물을 보니까 거의 국제 스캐빈저 올림픽을 열어도 될 정도로 몰려와서 분쟁 지역화가 됐다는데요?”

“뭐, 그렇다네요. 자국 S급 헌터들의 희생이 너무 컸던 바람에…….”

“솔직히 그중 대부분은 올림푸스 새끼들이 조져 놓은 건데……. 아, 물론 제가 3명 빼 오긴 했지만. 아무튼 그럼 올림푸스 애들이 고치면 될 걸 또 나한테 난리… 아, 그 부분 있네.”

<…물론 현재 일본의 상황에 우리 ‘올림푸스 길드’도 책임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만, 나날이 거세어지는 ‘영원한 분노’ 전선을 비롯한 세계 주요 거물급 악(惡) 성향 성좌들의 라인에서 빠질 수 없어서 동아시아 환경에 손을…….>

순간, 욱해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 버리는 유성원이었다.

진짜 적당한 호구 하나 잡았다고 온갖 일을 시켜 먹으려는 꼴이 아주 불쾌하고 짜증이 난 것이리라.

3대 길드 시절에 서울 길드나 청룡 길드에게나 똑같이 했으면 모를까?

그들이 있을 땐 그렇게 배려해 주는 척을 하더니 자신에겐 그런 거 없이 무슨 부하처럼 하대하니 짜증이 나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었다.

“사실 그들도 배려해 준 게 아니라 그냥 한계점이 분명해서 시킬 수 없었던 거겠죠.”

“하아~ 아무튼 요양하고 쉰다고 했는데 또 이러니 환장하겠네요. 이제야 좀 아침 뉴스 볼 맛이 나고 있는데 말이죠.”

유성원의 전략이 먹힌 건지 아니면 한국 정부가 대오했는지 몰라도 그가 돌아오고 난 이후 최근 뉴스 보기가 매우 편안해졌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학연, 지연이 있는 이들에게 ‘인터넷 웹하드 상품권’인 양 풀어 대던 집행 유예와 무혐의 사건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과 군데군데 산재해 있던 부패들을 잡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신강남 쪽에 밀렸던 세금 20조를 거두기 시작한 거랑 100억 원대 국방 비리가 1심, 2심은 집유였던 게 갑자기 대법원에서 실형이 나온다든가? 그리고 ‘황제 노역’ 제도를 개선해서 금액만큼 형량에 보탠다든가… 음, 볼만했는데… 외국의 일, 심지어 동아시아 전역?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대한민국만 해도 그에겐 너무나 부담이 큰 동네인데 거기에 동아시아를 포함하라고 하면 중국, 일본, 대만, 몽골, 홍콩, 마카오까지로 국가적 영역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일단 끝까지 읽어나 볼게요. 하아~ 후우~ 후우~”

<…동아시아 환경에 손을 댈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니 부디 유성원 헌터님께서 자비와 정의로운 마음을 깨달으시고 기사도를 실현하시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혹시 다른 의문 사항이나 요청이 있으시면 저희 쪽으로 연락을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로 읽기 고통스러운 메일이었어요.”

간신히 다 읽은 메일을 지우고 유성원은 휴대폰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올림푸스 길드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선 코어 던전보다 더 X같은 게 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녀석들, 역사 공부 안 하나? 이 동아시아 정세는 그냥 싹 다 멸망시키지 않는 한 영원한 혼돈인데…….”

한, 중, 일은 기본이고 그 주변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끼면 이것은 이제 더 이상 한 개인이나 조직이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역사적인 원한도 원한이고, 이미 4등분이 난 중국은 도대체 어느 세력을 인정해야 할지 머리가 아픈 상황인 데다, 그 주변인 몽골, 대만, 홍콩, 마카오를 생각하면 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중국은 도대체 어딜 인정해 줘야 할까요?”

“어딜 봐도 성좌 용봉왕이죠.”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에에…….”

중국의 경우 각성자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중국 공산당 정부와 성좌 용봉왕이 세운 국가, 그리고 성좌 진황이 세운 국가로 나뉜 상황.

여기에 만주와 연변을 먹은 성좌 도살왕의 지역까지 총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커버한다는 말인가?

“어쨌든 인류가 세운 국가는 중국 공산당 정부이니까요.”

“하지만 국제적으로 책임감 있고, 선행을 벌이는 건 성좌 용봉왕과 성좌 진황의 중국이죠.”

“예. 그것도 그렇죠. 지금도…….”

한때 영토 크기와 인구수, 그리고 하층민을 쥐어짜는 식의 경제 발전으로 G2라고 자뻑하며 온갖 국제적 룰을 무시하고 대국의 풍모 따위는 없던 독재 국가 중국 공산당 정부는 몬스터 사태와 각성자들의 등장 시점까지는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는 국가적 위상을 유지한 채 인권 유린과 역사 개편 등등 세계 곳곳에서 원성을 쌓아 왔었다.

그리고 이후 성좌들의 등장으로 넷으로 갈라지는 바람에 이제 그 원성과 원한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는데, 현재 넷으로 갈라진 중국 가운데 정식 국가로 인정받은 곳은 성좌 용봉왕과 성좌 진황의 중국뿐이었다.

그 둘은 성좌들이 지배하는 국가이며 둘 다 방식은 다르지만 각자 대국(大國)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국제 조약과 각종 규칙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편이라 중국 공산당 정부에 비하면 수십 배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

“성좌 용봉왕의 중국은 언제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조화의 성좌이신 분이라 인터넷으로 본 도시 풍경도 너무 아름답던데…….”

“성좌 진황 님도 정복의 성좌이지만 그래도 중국 공산당보다는 훨씬 낫죠.”

“아무튼 세 나라 전부 국제 회의에 나왔을 때 엄청 웃기기도 했고, 그 두 성좌님 덕분에 세계 3차 대전은 확실히 막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일대일로를 비롯해서 세계를 향해 팽창해 가던 중국의 야욕은 두 성좌의 등장과 지배를 통해 확실히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겉으로는 네 등분이 났지만 인권 존중, 번영도, 경제 상황 등등 모든 것을 봤을 때, 애초에 피와 살을 즐기는 악마인 성좌 도살왕을 제외하면 중국 공산당 정부는 성좌 용봉왕과 성좌 진황의 다음, 즉 꼴찌였다.

“아무튼 그런 개판인 곳을 관리하고 싶지 않아요. 아… 상상만 해도 두통이 온다. 러시아는 아직도 ‘그’분이 지배하고 계시는데… 진짜 140년 동안 지배할 생각이신가?”

“아, 하하하. ‘그’분 말이죠. 그래도 그들을 제외하면 몽골, 대만, 홍콩, 마카오는 뭐…….”

몽골은 주변이 혼란스러웠지만 별다른 성좌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어 대피 국가로서 은근 호황을 누리는 한편 대만은 중국 공산당을 부정하며 다른 성좌와 우호 관계를 맺고 압박을 넣고 있었고, 홍콩은 중국 공산당이 약해진 틈을 타서 대만과 손을 잡았으며, 마카오 또한 중국 공산당에게서 독립된 스캐빈저들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역시 이 모든 걸 다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그 정도 규모도 되지 않아요. 결론은 일본을 구해 달라는 이야기이겠지요.”

“…그것참 하기 싫은 일을 시키네요. 괜히 일하는 모습 보였다가 꾀병인 거 들키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시코쿠 원정 때처럼 그냥 또 보수를 받고 일하는 방안이 존재했지만 직접 나서자니 꾀병인 걸 들킬 것 같고, 기사들만 보내자니 어딘가 찜찜했다.

몬스터나 스캐빈저 처리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문제는 그들의 극단성이었다.

‘별의 기록’에 남을 정도의 기사들이며 하나하나가 다 전설적인 무용을 쌓아 온 자들.

분명 그들이 가진 신념과 정의감의 무게는 엄청날 것이기에 그들만 보내기에는 무척이나 불안했던 것이다.

“으으음… 역시 거부해야겠어요. 이대로 계속 휘둘리다 보면 올림푸스 제2지부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느낌이고…….”

“느낌이고……?”

“결국 제 팔자는 ‘성좌’들과는 담을 쌓을 운명이라서요.”

[??에서 ??한 성좌의 숫자]

[2/???]

[???]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을 닫은 이후 보상을 받고 나자, 상태창의 메시지가 조금 개방되어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성좌 청룡을 보냈을 때 어느 정도는 눈치챘던 사실이지만, 그래도 직접 메시지가 보이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에서 ??한 성좌의 숫자’. 판단컨대 ‘지구’에서 ‘추방’한 성좌의 숫자라고 보면 아귀가 딱 맞아떨어진다.

“하아~ 그리고 이 추방이라는 말을 보면 결국… 가능한 한 많은 ‘성좌’들을 지구에서 없애야 한다는 거네요.”

“으음… 역시 그렇죠. 실패했다곤 하지만 성좌 66천마를 추방한 보상도 받았으니까요.”

“예. 청룡 때보다도 더 좋은 걸 받았죠. 상대가 거물이라서 그런가…….”

[당신은 ‘사명’이었던 ‘성좌’의 추방을 다시금 완료했습니다. 그것도 당신의 ‘세계’를 침략하려던 침략자를 말이죠. 그렇기에 이전보다 더 큰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기사 소환×3 or 무구 소환×3 or 스킬 포인트×3]

[추가 특별 보상:보상 강화권 1]

자신은 주사위를 굴렸을 뿐이고, 싸운 건 게임판 위의 말로 변한 부하들이어서 직접 싸워 승리한 것이 아니기에 경험치는 얻지 못했지만, 그만큼 보상은 두둑했다.

다른 선택지 셋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건 역시 특별 보상! ‘청룡’과는 급이 다르다는 걸 말해 주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진 특별 보상.

그것은 작은 황금색 티켓으로, 유성원은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보상 강화권]

당신이 받은 보상을 한 단계 강화시킵니다. 물론 확정 강화입니다. 찢으면 곧바로 효과를 발휘합니다.

‘역시 이런 건 보험으로 갖고 있어야 제격이지.’

딱 하나뿐인 만큼 비장의 카드로 아껴 두는 게 맞았다.

그리고 지금은 어차피 이런 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달은 상태이기도 했다.

‘스킬이나 기사 소환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나 자신부터가 달라져야 해.’

저번 코어 던전의 혹독함을 제대로 느낀 그는 앞으로 또 다른 코어 던전을 가게 될 경우에 대비해야만 했다.

어떤 코어 던전을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각종 불합리한 조건과 상황을 헤쳐 나가야 될 팔자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인벤토리 안에 보상 강화권을 다시 집어넣은 유성원은 다음 할 일을 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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