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평양 언더시티의 물자 보급로가 끊긴 상황. 이것은 보통 심각한 위기가 아니었기에 곧바로 그곳의 지배자인 박숙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멀쩡하던 서울 쪽의 보급 루트가 끊겨 버렸다. 거기다 네오 신안 언더시티의 보급로까지 이중으로 잘려 버리니 단숨에 숨통이 막혀 버렸다.
“아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개성 위로 웬 유령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더니 지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니까요. 아예 무슨 장성을 쌓듯이 대한민국 북단을 둘로 뚝! 하고 잘라 버렸지 뭡니까? 해결 좀 해 주십시오, 두목.”
“거참,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일본 출장 다녀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난데없는 급보에 놀란 박숙자는 벌떡 일어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일단 다른 스캐빈저가 띄워 놓은 경보용 드론으로 상황을 살피는데, 진짜로 그동안 이 근방에서 본 적 없는 사령 몬스터는 물론 웬 일본식 성이 여러 개 세워져서 귀기(鬼氣)를 내뿜고 있지 않은가?
“이거 왜 있는 건데?”
“그게… 유성원 헌터와 관련 있습니다. 성좌 66천마의 남은 부하들과 결전을 벌이기 위해서 놈들을 불렀다고 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전선 도시 위이다 보니 저기에…….”
“그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일부러구나! 개자식!”
결전이라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뻔히 자신들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임을 금방 눈치챈 박숙자였다.
한국이 봉쇄되면 남은 건 러시아나 성좌 용봉왕의 영토였지만 그곳들은 들어가는 수고에 비해 이익이 적은 곳이고, 그렇게 되면 남은 건 바닷길을 건너 중국과 일본을 가야 하는데, 기존에 육로로 짧게 옮기던 것에 비하면 가격이라든가 물가가 엄청 비싸진다.
“아주 대놓고 우릴 고립시키려고 작정했네. 그 유령 타입들… 드롭하는 거 마정석뿐이지?”
“예, 맞습니다. 경험치도 주긴 하는데… 당연하지만 몬스터급에 따라서 또 경험치가 다르니…….”
“말 그대로 영양가 없는 뼛조각들뿐이라는 건데… 아오, 진짜 골 때리네.”
피와 살을 좋아하는 성좌 도살왕에게 저 영혼뿐인 뼈다귀는 반갑지 않은 제물이었다.
성좌 도살왕 휘하 몬스터들도 그렇고, 그 휘하 스캐빈저들도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몬스터로, 잡아 봐야 시간과 물자 손해만 늘어나는 놈들이라서 손대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여러분, 저 손해만 끼치는 몬스터들을 다 같이 처리하죠?’라고 할 수 없는 대상이 스캐빈저들로, 각자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놈들이고 이익에 따라 누구의 뒤에도 붙을 수 있는 놈들이라 그냥 답이 없었다.
“…어떻게 하죠? 물론 급히 바다 쪽 루트로 들여올 수 있긴 한데 그러면 비용이…….”
“연변 쪽에 있는 놈들은 이거 아냐?”
“예. 거기도 알고 있을 겁니다. 이미 물가가 단숨에 50퍼센트가량 올랐더군요. 꼬우면 러시아나 성좌 용봉왕 영토를 치든 아니면 남중국이나 일본으로 건너가라고… 그리고 내일 또 50퍼센트 더 올린답니다.”
“개X 같은 짱개 새끼들…….”
그리고 역시 정부나 통제 기관 없이 무법하게 돌아가는 스캐빈저들의 사회답게 경제 상태는 개판 5분 전에다 상황이 급변하자 각종 물가가 급상승했다.
물론 물가가 급상승한다고 해도 결국 무력으로 서로의 것을 뺏고 빼앗는 스캐빈저의 사회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사분오열하면 좋지 않은 걸 그들도 잘 알았다.
“이거 이대로 두면 성좌 도살왕 님이 따이겠는걸? 그 유성원이라는 놈, 성좌 66천마를 결국 몰아냈잖아.”
“그거 실패라면서요?”
“실패했어도 살았으면 ‘경험’인 거지. 코어 던전 무서워서 못 가는 새끼들이 한가득인데,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코어 던전을 클리어하는 이들도 거의 없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실패했지만 살아 돌아온 이일 것이다.
보통 실패하면 코어 던전에서 죽어 버리는 게 대부분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성원은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경험을 한 헌터가 분명했다.
“두목도 다녀오셨잖습니까?”
“그건 우리 도살왕 님에게 ‘초대’ 받은 거고! 아오! 빡대가리 새끼들, 진짜! 하아아~ 아무튼 나 잠깐 어디 다녀온다.”
“어, 어디 가십니까? 지금 바쁜데?”
“이 사태를 해결해 줄 유일한 인간… 은 아니구나! 아무튼 유일한 놈!”
박숙자는 그렇게 부하들을 버리고 평양 시내의 어디론가로 향했다.
바로 김일성 대학이 있던 부지였는데, 현재는 인간의 몸으로 승천을 완료하여 성좌 도살왕의 사도가 된 ‘이 목사’가 그곳에 이것저것 설비를 만든 채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복제 인간 생산을 통한 인간 공장의 설립. 한 사람은 적어도 배 속에서 열 달, 태어나서는 적어도 15~2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간을 혁신적으로 줄이고 무한히 제물을 공급하기 위한 연구였다.
“…무슨 일이지?”
“오늘은 웬일로 인간 모습이래?”
“허허, 발굽으론 일하기 힘들어서 말이지. 축복받은 모습인 건 좋지만, 일단은 효율이 중요하니까.”
“뭐, 그거야 댁 마음이니 됐고. 연구는 어때?”
“아주 순조롭다. 역시 일본 놈들, 마루타의 민족답게 자료가 아주 많았어. 그 연구소 놈들, ‘각성자’를 복제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온갖 발악을 했더군.”
얼마 전 일본에서 거둔 성과 덕분에 이 목사의 연구는 수십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들이 덮쳤던 일본의 연구소에서는 어린아이들과 하위 각성자들을 상대로 한 유전 공학을 이용한 복제 및 일반인을 인위적으로 각성자로 만드는 연구 등등 온갖 짓을 벌여 왔던 것이다.
“아무튼 놈들 덕에 얼마 남지 않았어. 남은 건 이제 성장 가속, 코스트 다운, 지식 유지야. 으음~ 역시 인간의 뇌가 가장 큰 문제인데… 먹기는 많이 먹어 봤지만, 그 세세한 구조에 대해선 전혀 모르거든. 뇌의 전기 신호라든가 흐름 같은 걸 해석만 하면 딱 좋겠는데… 그 부분은 지식이 부족하니 결국 전공자를 잡아 오는 수밖에 없지만, 일단은 내가 직접 배우고 있네. 그래서, 용건이 뭔가?”
“유성원 새끼가 우리에게 빅엿을 던졌어. 자, 이거 봐.”
“으음… 허, 이것 참~ 곤란하군. 기술 개발을 위해선 아직 노예가 아주 많이 필요한데 말이지.”
남쪽에 사령 군단 라인이 생성된 소식을 보자마자 이 목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장 많은 노예와 각종 전자 제품 및 원료를 가져오는 곳이 서울인데, 그곳으로 통하는 길이 막혀 버리면 그의 연구에도 큰 지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사태는 별로 좋지 않았기에 이 목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한우 수인으로 돌아오며 입을 열었다.
[음무우, 이건 심각한 사태군. 이러면 오직 바닷길 아니면 러시아 쪽이나 ‘성좌 용봉왕’을 노려야 할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므우우우~ 의외로 답은 간단할 수도 있겠군. 성좌 66천마의 사령들이 여기에 왔다는 건 반대로 일본이 텅 비었다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일본으로 가도 될까? 그럼 코어 던전 입구가 완전히 뻥 뚫리는데.”
[애초에 현재 우리 ‘도살왕’ 님의 ‘코어 던전’을 갈 만한 놈은 유성원 그놈뿐인데… 지금 상태로 막을 수 있겠나? 또 놈도 ‘코어 던전’ 공략에 한 번 실패한 몸이라 쉽게 재도전하진 않을 게야. 그리고 그 주변엔 수많은 휘하 악마들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 걱정 없을 걸세. 오히려… 지금 S급 헌터가 다수 없어진 일본 뒷세계의 패권을 잡으려고 모두가 모여들 텐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이 목사의 판단은 이랬다. 어차피 유성원은 못 막을 놈이고, 무주공산이 된 일본에 먼저 가서 깃발 꽂는 놈이 임자라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코어 던전 주변이 텅 비게 되지만, 그 안엔 성좌 도살왕의 사도들이 아직 남아 그곳을 지키고 있어서 쉽게 넘어갈 리 없었다.
듣다 보니 이 목사의 계획이 옳다고 생각된 박숙자는 곧바로 무전으로 연락을 넣어 동해상을 통해 일본으로 갈 방도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으음, 우리는 갈 수 있는데, 댁은 이건 어떻게 옮기려고?”
[므우움, 걱정 말게. 물건을 구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옮기는 건 쉬운 일이라네. ‘코어 던전’ 내부에 있는 내 전당에 넣어 두고 옮기면 되니 말일세. 그럼 바로 이사 준비를 해야겠군.]
“사도라는 거, 보면 볼수록 편리하구먼. 그럼 나는 배편을 수배할게. 넘어갈 애들 모으고~”
그렇게 이 목사의 계획 아래 성좌 도살왕 휘하 스캐빈저들은 별다른 다툼을 하지 않고, 민족 대이동을 하듯 각자 배편과 항공편을 이용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갈 준비를 마쳤다.
거기다 일본을 노리는 세력은 그들 하나만이 아니었으니, 러시아, 중국 마피아들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모조리 그곳으로 향했다.
그 덕분에 한국에는 토박이나 잔챙이 스캐빈저들만 남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가 되었고, 정부는 편안히 유성원의 눈치를 보며 여러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
한 달 뒤. 일본, 도쿄.
꽃이 너무 아름다우면 벌레가 많이 꼬인다고 했던가?
결론적으로 성좌 66천마가 사라져서 안전해져야 할 일본이었지만, 이젠 스캐빈저와 마피아들의 천국이 되어 괴로움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니 취팔러마! 죽어라, 짱개 새끼야!”
“同志……! 他妈的! 死!”
“何これ! 鬼畜ヤロ! 殺す!”
“Заткнись!”
“Goddamn! Monkeys! Kill them all!”
콰아앙! 펑! 탕탕!
벌건 대낮부터 일본 도심 내에서 갖가지 외국어들이 들려왔다.
총격전은 기본이고 각성자들의 능력과 그들의 나라에서 주로 쓰이는 스캐빈저들의 장비가 작렬하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들고 있었다.
이미 민간인의 피해는 안중에도 없는 스캐빈저들의 살육전.
제압을 하려고 해도 A급, B급 같은 어쭙잖은 헌터들로는 무리일 만큼 온갖 거물들이 참여한 잔치였다.
“말도 안 돼. 언더시티 지배자가 무려 넷이나 왔다고? 이 미친, 사람 잡아먹는 조센징 놈들! 게다가 하나는 심지어 성좌의 사도야!”
일단 가까운 곳에 사는 성좌 도살왕 휘하의 인간 사냥꾼들.
이 목사의 제안을 듣고 따라온 스캐빈저들이 표면적으로는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놈들이었다.
사람을 납치해서 죽이고 제물로 바치는 악질들인데, 헌터들을 더 비싸게 쳐주는 만큼 일반인뿐만 아니라 특무부대 헌터들도 사냥하려고 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 정부랑 러시아는 아무리 봐도 움직임이 완전 정부 소속 헌터예요. 미우라 대장님, 외교적으로 항의 안 한답니까?”
“항의가 되겠냐? 둘 다 ‘아닌데요?’ 하면서 입 싹 닦으면 끝인데!”
한술 더 떠서, 남중국 공산당과 러시아는 아예 정부 소속 특수부대 헌터들이 스캐빈저인 척하고 일본 내로 와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각종 작전을 실행하며 날뛰는 중이었다.
물론 외교 채널로 항의할 생각도 못하는 게, 그들을 보낸 자들이 정부 소속이라는 증거를 사전에 모두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또 악명 높은 ‘이블 컴퍼니’랑 ‘머니 푸스트 머니머니’ 같은 대형 스캐빈저 회사들이 들어와서 돈이랑 무력으로 시장에 장난치고 있고…….”
“거기다 베트남, 싱가폴, 인도, 호주… 아주 그냥 여기에서 스캐빈저 대회를 열어도 되겠어!”
“에휴~ 아무튼 미우라 대장, 지원 병력이 왔답니다. 그리고 협회에서도 일단 국외 헌터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고 했으니 좀 더 버텨 봅시다.”
“그래. 젠장! 그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 S급 3명 그 애새끼들만 있었어도… 크악!”
“이거… 보우건? 볼트? 이, 인간 사냥꾼! 으아아아! 빠, 빨리 도망칩시다. 그 새끼들한테 걸리면 진짜 뼈와 살이 발려서 제물로 바쳐진다고요!”
투다다다다!
특무부대원은 본래 자신들의 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S급 헌터들의 부재를 아쉬워했지만, 이미 일어난 사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한눈파는 사이에 도살왕 계열 스캐빈저의 보우건에서 날아온 볼트를 맞은 그들은 대응 사격을 하며 그 자리를 이탈했다.
일본은 그렇게 헌터와 스캐빈저들의 분쟁 지역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