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현재 유성원의 신변에 대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를 말하자면 우선 그가 어떻게든 코어 던전에서 살아서 돌아왔으며, 트레일러 안에서 요양을 하다가 성좌 66천마의 남은 군세들과 대치를 하던 중 서로 물러났고, 그는 쓰러졌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지만 철통처럼 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아이언 포트리스의 소식을 알 도리는 없었기에 각종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며 예상해 나갈 뿐이었다.
“아이언 포트리스 내부나 전선 도시에서는 발표가 없었나?”
“없었습니다. 아, 그리고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때, 유성원 헌터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코어 던전을 갔는데… 멀쩡히 돌아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일단 사진으로 볼 때 머리가 하얗게 변했고, 성좌 66천마의 군대와 대치 후 힘없이 쓰러진 걸 보면 뭔가 저 천군대장군과 이야기가 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라……. 하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그 친구 상태가 걱정인데 말이지.”
협회장을 비롯해서 정부 요인 전부 유성원의 행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던전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도 궁금하고, 코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후의 보상도 신경 쓰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천군대장군과의 관계 등등… 유성원의 행보 하나에 이 동아시아 정세가 격변할 지경이니 온 정신을 집중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이 사라졌으니 조만간 일본은 안전한 곳이 되겠군요.”
“아… 그렇겠네요.”
“하아~ 그건 좀…….”
“끄으으으응~”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역시 일본의 문제가 되면 다들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관계도 문제였지만 동아시아 강대국 중 하나이기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그동안은 성좌 66천마에게 영토의 절반을 빼앗긴 채 시달리느라 힘이 많이 빠져 있었지만 거기서 해방되고 나면 전 국토가 정상화되고 결국 과거의 국력을 찾게 될 것이니 국가적 상황에서 보면 안 좋은 일이었다.
“그나마 성좌 66천마의 부하였던 대장군들이 아직 살아 있고, 사령 군대도 무사합니다. 다만 유성원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걱정입니다. 그게 우호적인 이야기일지, 아니면 언제 날 잡아서 서로 전쟁하자는 것일지 말이죠.”
“일단 적대적인 선택지는 여태껏 상황과 달라지는 게 없으니 제쳐 두지. 문제는 만약 우호적이 되어서 그 대장군 세력을 유성원이 흡수하게 된다면……?”
“그게 가당키나 하겠소?”
“이 앞의 상황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애초에 상식선에서 생각했더라면 그가 S급 기사들을 줄줄이 몰고 다니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현실로 일어났잖습니까? 그자의 행동에 상식을 요구해선 안 됩니다.”
유성원은 이때까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 1년 만에 헌터들의 생태계를 바꾸는 건 물론 한국 사회를 통째로 들었다 놨다 하는 놈이 정상일 리 없지 않은가?
한국을 장악하고, 일본에 있던 성좌 66천마의 세력까지 얻으면 이제 바야흐로 이 동아시아는 유성원의 무대나 다름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어떻게 하긴요. 그가 늘 말했잖습니까?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더 열심히 뛰어야지요.”
“…이제 진짜 좋은 시절은 다 갔군. 근데 그래도 사고 치거나 하는 놈은?”
“‘정의’롭게 처리해야죠. 예. 진짜 ‘정의’롭게요.”
그저 겉보기에 좋으라고 미사여구로 붙이던 말을 진짜로 실행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영역이다,
이때까지처럼 양심을 팔아먹고 형제, 친척, 선후배 다 엮인 대로 봐주면서 살아도 누구도 그들에게 뭐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이 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영역에서 제일 강한 자의 눈 밖에 나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그의 ‘양심’에 호소할 수 없게 되리라.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만 절대, 절대, 절대 유성원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그의 시대. 그에게 반발해 봐야 신강남의 전철을 밟을 뿐입니다. 명심하시고 검찰, 경찰, 언론사에 모두 알리십시오.”
“하아~ 예. 그리고 다음은…….”
“자, 잠시만! 지금 유성원 헌터가 코어 던전 공략 결과에 대해 공식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것 좀 하면 미리 알려 달라니까! 제기랄! 우리를 바보 취급하는 건가?”
살짝 언질만 줘도 나쁘지 않으련만, 그런 걸 신경 쓸 유성원이 아니었기에 다들 한숨만 쉬고는 별도의 화면을 틀어 그의 발표 장면을 보기 시작했다.
‘코어 던전 공략 성과 설명 및 발표회’라는 자막이 뜨면서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린 유성원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머리가……? 아! 보고대로군.”
“안에서 무슨 일이 있긴 했나 봅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크흠, 그…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아무튼 헌터 유성원입니다. 얼마 전 ‘코어 던전’에서 복귀해서 치료받고 이제야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 이렇게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지금도 부담이 크니… 콜록! 콜록! 콜록!』
정말 아픈 것인지 그는 거칠게 기침까지 하며 몸을 가누지 못했고, 좌우에 있는 기사들이 몸을 받쳐 주고 물까지 마셔 가며 진정하고서야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변변치 않은 모습 보여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 빠르게 본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시도한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 공략은 일단 공식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뭐? 시, 실패?”
“그럼 어떻게 나온 거야?”
충격적인 발표와 함께 경악하는 협회와 정부 인사들.
하지만 유성원의 발표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기에 일단 진정하고 들어 보기로 했다.
『‘코어 던전’ 내부의 기믹은 상세히 설명드릴 수 없으나 역시 성좌 66천마의 군세와 용맹, 그리고 그 던전의 사악함은 저와 역전의 용사인 기사들조차 상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막바지에 모두가 쓰러지고 저 홀로 남아 패배의 끝까지 몰렸지만, 성좌 66천마의 자비와 그 던전의 ‘룰’ 덕분에 간신히 살아 돌아오게 된 겁니다.』
“…뭔 소리야? 그럼 코어 던전이 사라진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현재 ‘코어 던전’이 사라진 것은 제 기사들이 던전 내에서 보인 용맹으로 인해 얻은 것으로, 던전 내에서 얻은 ‘성과’로 간신히 성좌 66천마와 ‘거래’를 해서 코어 던전을 닫고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성좌 66천마의 하수인들인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군대과 싸울 뻔했지만, 간신히 후일로 미루었습니다.』
“뭐야? 그럼 아직 완전히 싸움이 끝난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러면… 이거 좋은 소식 아닙니까?”
“그렇지?”
언뜻 듣기엔 안 좋은 소식 같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성좌 66천마의 군세가 계속 일본에 주둔하며 세력을 유지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한국 정부로서는 아주아주 반가운 소식으로, 성좌 66천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일본이 몸을 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본이 동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 당분간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휴식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성이 있으며 그 이후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몬스터 토벌 작업에 복귀할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콜록! 콜록!』
발표를 마치자마자 다시 기침을 해 대면서 기사들이 미는 휠체어에 탄 채로 물러나는 유성원.
발표가 끝난 뒤, 정부와 헌터 협회 사람들은 골몰히 생각에 잠겼지만 달라질 것은 별로 없었다.
유성원이 잠시 몸이 안 좋다고 해도 그의 밑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있고, 전선 도시의 혼란은 끝이 날 것이기에 세력은 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아이언 포트리스.
발표를 끝낸 유성원은 화면 뒤로 퇴장하자마자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 사실 몸이 안 좋은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운신을 못할 정도로 다친 것은 아니었다.
한데, 왜 방송에서 대놓고 이런 쇼를 벌였냐면 유성원이 너무나 원해서였다.
“좋았어! 이제 자유다! 이렇게까지 아픈 척을 했으니! 올림푸스 새끼들도 더 이상 지랄 안 하겠지!”
“내부의 반역자를 색출하는 용도가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맞긴 하지만, 코어 던전 들어갔다가 멀쩡히 나왔다고 하면 올림푸스 길드에서 뭐라고 할까?”
잘하는 사람에게 떡이 아니라 일감을 하나 더 준다는 사회의 진리를 깨닫고 있는 유성원이기에 못해도 반년은 넘게 요양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러면 유성원의 요양을 빌미로 북쪽에 있는 도살왕 세력의 견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였는데, 물론 기사들은 모두 든든하게 있으니 상관없더라도 한 가지 방안을 더 준비한 유성원이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대장군이랑 사령 부대들을 불러다가~ 전선 도시 위쪽에 깔자. 명분은 우리랑 붙을 거 기다린다고 하면 되는 거지. 딱 맞지 않냐? 유청?”
“현명한 계책이십니다, 폐하.”
성좌 66천마의 부하였던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부대들은 별도의 보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언데드 군세의 일종. 숫자는 수백만을 넘어 천만 단위였으니 그들로 하여금 전선 도시 위쪽으로 북방 라인을 형성해서 막을 생각이었다.
“인간의 피와 살을 갈망하는 성좌 도살왕의 군대가 과연 남쪽에 잔뜩 깔린 사령 군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네.”
“무엇 하나 건질 것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놈들인데, 지나가려면 싸우기까지 해야 하니 아주 속이 터지겠죠. 그리고 북쪽 스캐빈저들의 언더시티와 남쪽 사람들의 영토가 완전히 분리되는 거니 이중으로 효과적이구요.”
“그거까진 생각 못했는데… 아무튼 이득을 본 거면 아주 좋은 거지.”
그리고 요양할 동안 안전하게 지내면서 동시에 한국 내부와 북한 지역을 단절시켜서 도살왕 소속의 스캐빈저들까지 고립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작전이었다.
성좌 도살왕 세력의 주 사냥터는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으로 다양했지만, 그래도 역시 지역적으로도 가깝고 인구 천만 도시인 서울이 있는 한국 쪽이 주 사냥터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스캐빈저 그룹에 몰래 정탐 가고 싶네.”
“거의 생명줄이 잘린 느낌일 겁니다. 남은 건 성좌 용봉왕의 영토랑 러시아뿐인데, 러시아는 생각보다 실속이 없고, 성좌 용봉왕의 땅도 만만한 영토가 아니죠. 그럼 결국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바다로 건널 만큼 가까운 곳이면서 만만한 곳이…….”
“남쪽에 있는 중국 공산당 정부랑 일본이지?”
“예. 그리고 그 둘 중 하나라면 역시 다수의 S급 헌터를 잃은 일본이겠지요.”
어떻게 하다 보니 떠넘기기가 된 판국이지만, 아무튼 이걸로 당분간 누구의 터치도 받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유성원은 마음 놓고 쉬러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유성원과 겨룬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을 가로질러 전선 도시 북쪽으로 몰려온 천군대장군을 비롯한 사령 군단들이 전선 도시 북쪽에 쫘악!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나란히 북방 라인을 건설하여 본격적으로 대기하기 시작했고, 그곳을 지나는 모든 것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
평양 언더시티.
“아니, 염병!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 술이랑 밥 오기로 한 거 왜 트레일러로 안 오냐고!”
쾅!
언더시티에서 술집을 운영하던 스캐빈저 하나가 탁자를 치며 운반 담당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이들의 경제 활동은 약탈 혹은 주변 도시에서 사 오는 것이 전부인데, 주변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인 서울에서 다양한 물건들을 가져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갑자기 하루아침에 우리가 오던 길에 웬 몬스터가 깔렸다고…….”
“아! 몬스터 나오는 거야 일상이잖아. 거기 담당하는 애들이 잡을 거 아니야?”
“잡아 봤는데… 경험치도 쥐똥만큼 들어오고 피나 살, 뼈가 하나도 없는 유령 타입이라 손해만 본다고 안 잡는다는데요? 여, 여기, 걔네가 보내 온 사진입니다.”
“대체 시발… 이게 무슨…….”
한데, 사진을 본 스캐빈저가 경악했다.
운반 담당 스캐빈저의 말대로, 사진에는 자신들이 운반 루트로 사용하는 곳들마다 죄다 사령 타입의 몬스터와 군대들이 서성이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딱 봐도 도살왕 계열인 스캐빈저들의 먹이로 적합하지 않은 유령, 언데드 타입 몬스터들이라 난감한 상황이 맞았다.
그야말로 북한 지역 쪽의 모든 언더시티에 알려야 할 위기 사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