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81화 (181/293)

[181화]

전라도 목포, 대‘성좌 66천마’ 사령 전선.

투다다다다! 타다다다다!

5미터 높이로 만들어진 합금 장벽 위의 포탑에서는 은탄과 마정석 탄환이 비처럼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곳 목포 전선과 전라남도는 일본의 대장군 이동 사건 이후 영원한 전쟁의 땅이 되어 던전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사령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편성된 군사들은 각종 화기와 포탑을 통제하면서 과열과 고장이 일어나는 걸 신경 쓰는 동시에 부상자를 옮기는 한편, 파견 나온 헌터들 또한 장벽 위에서 상급 몬스터들을 처리하느라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사령 승려! 저거 승려부터 잡아! 저게 힐 준다! 힐 준다고!”

“쏘고 있어! 근데 저 앞에 사령 무사가 나기나타로 방어하잖아!”

“누가 좀 뚫고 들어가서 어글 좀 먹을 수 없나?”

“이미 하고 있어! 근데 진짜 빡세네! 그나마 C급에서 막혔던 레벨 업은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나름 개꿀이긴 하지.”

파견 온 헌터들은 힘겨워하면서도 그동안 3대 길드의 C급 던전 독점으로 인해 막혀 있던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되어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거라도 없었으면 헌터 길드들은 대부분 참여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기에 지금은 오히려 3대 길드에게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들이 대한민국 헌터계의 발전을 막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천둥과 바람이여! 내 적을 멸하소서!”

콰르르르릉!

그리고 본래는 경상권을 지키던 헌터에서 이제 협회 중심 헌터가 된 전지아는 협회에서 새롭게 마련해 준 제복과 전설 등급 지팡이를 들고서 번개의 정령들을 소환하여 전선이 밀리는 곳을 지원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각종 마법, 정령술은 물론 중화기의 지원까지 모든 역량을 퍼부어도 결국 현상 유지가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잘한 마정석이나 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사령들의 공격이 너무 거센 탓에 그것의 회수도 쉽지 않았다.

“대체 일본 놈들은 어떻게 버틴 거냐?”

“몰라! 씨X! 닥치고 쏘기나 해. 뭐야?”

[아아! 현재 전투 중인 전 인원은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하늘에서 유성원 헌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전투 중인 전 인원은 한 발 물러나거나 엄폐물에 몸을 숨겨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순간 경보음과 함께 방송이 들려왔고, 한창 전투 중이던 군인들과 헌터들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자세히는 몰라도 높으신 분들이 관측해서 나온 내용을 따르면 손해는 없기 때문이었다.

몸을 숨기던 한 헌터는 하늘에서 섬광이 땅을 향해 내리꽂히는 것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 저게 그… 우와아악!”

“미친 새끼야! 빨리 숨으라고! S급 이상이 퍼뜨리는 전투의 여파는… 전략 무기…….”

투콰아아! 고고고고고고고!

섬광은 사령들이 몰려오는 중심에 충돌하더니 사방으로 충격파를 퍼뜨렸다.

바람과 함께 돌조각과 흙먼지들이 태풍처럼 모든 것을 밀어냈고, 사령들은 물론 C급에서 A급 몬스터들까지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싹 쓸리면서 몬스터들이 있던 자리엔 크레이터가 생기며 거대한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선 거대한 황금 용을 탄 황금의 기사가 고고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음, 역시 내가 직접 안 해도 미리 알려 놓으면 선전포고 안 해도 잔소리가 없군. 아무튼 대충 쓸었으니 길은 열렸고, 얘들아! 트레일러 갖고 나와!”

땅에 착지한 유성원은 성소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을 불러냈다.

그러자 곧바로 성소의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모든 짐과 기사들을 실은 트레일러가 튀어나왔다.

솔직히 유성원이 코어 던전 내부로 들어가서 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코어 던전 내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인 만큼 밖에서 불러서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진짜 뒤는 없는 거다? 화장실 마려운 사람 미리 갔다 오고, 짐 없는 거 한 번 더 확인해.”

“폐하, 그 말씀, 벌써 네 번째이십니다. 이미 트레일러에 실을 때 다 확인을 하였는데…….”

“…사실 내가 긴장돼서 그래. 야, 나 화장실 한 번만 더 갔다 올게. 미안한데… 조금만 싸우고 있어 줘라.”

말과 함께 엘드라엔에서 내려서 트레일러 안의 화장실로 들어가는 유성원이었다.

아무리 사전에 정보를 얻고 훈련을 했다고 할지라도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시원하게 소변을 본 다음 밖에 나오자, 한바탕 쓸어 놨던 사령 몬스터들이 어느새 다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튼… 운전 잘해서 따라와. 코어 던전의 길은 내가 열게.”

“예, 폐하.”

그렇게 돌진하는 엘드라엔과 유성원의 뒤를 따라 진석이 운전대를 잡고 그대로 코어 던전에 돌입, 단숨에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코어 던전의 문이 닫혀 버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헌터들과 병사들은 기어이 그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는 전투하는 것도 잊고 깜짝 놀라 외쳤다.

“세, 세상에, 진짜 들어갔어?”

“유성원 헌터가 코어 던전 공략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건가?”

“오… 아무래도 진짜 같네요. 아무튼 공략에 부디 성공하길……. 이 지겨운 전장 좀 떠나고 싶네요.”

“정신 차려! 코어 던전은 닫혔어도 사령들은 계속 몰려온다! 전선을 유지해라!”

그렇게 병사들과 헌터들은 한바탕 쓸렸다가 다시금 몰려오는 사령들을 상대해 나가며 유성원 일행의 승리를 기원했다.

***

‘성좌 66천마’의 코어 던전.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던전의 안으로 돌입함과 동시에 유성원이 가장 먼저 느낀 감각은 타고 있던 엘드라엔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땅에 발을 딛고 선 그는 뒤에서 느껴지던 트레일러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선 내부 풍경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황무지로,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 있고 그 사이로 태양의 빛이 새어 나와서 어스름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고 했었지? 구성원들 모두 흩어져서 시작하는 거라고 했나?”

사전에 공부한 덕분에 유성원은 침착하게 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성좌의 코어 던전은 말 그대로 성좌의 성향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가 세운 룰에 따라서 이루어진 세계였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 유성원은 갑자기 몸이 무거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가벼운 한 걸음인데 마치 무게 추를 단 것 같은 묵직함.

“어라?”

스스스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금빛 신수의 갑옷이 갑자기 사라져 갔다.

몸 상태도 그렇고 갑옷이 사라진 것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은 유성원은 다급히 상태창을 열려고 했지만, 상태창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마치 예전에 청룡 길드의 장인 고천수와 겨루었을 때와 같았다.

“아~ 진짜 전쟁의 성좌이면서 무슨 이런 걸 하냐? X 됐네.”

‘각성’의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인벤토리도 못 쓰고, 무장이나 무구도 없어진 상태에선 유성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성좌 청룡도 그렇고, 모든 성좌들의 코어 던전이 다 이런가? 하는 편견이 생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여긴 진짜 아무것도 없네.”

“아무것도 없긴~ 진정한 평화와 화합이 있지.”

“…누구세요?”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불쑥 말을 걸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지만 유성원은 잔뜩 경계한 채 뒤로 물러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기로 이루어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시적인 막대기부터 시작해서 각종 검과 총기, 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손전등 같은 광선검 자루까지. 그런 쇳덩어리들이 다 달라붙어서 만들어진 인간의 형상으로, 마치 로봇 같은 느낌이 드는 그는 저격총의 스코프처럼 생긴 눈으로 유성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긴. 여기 주인이지. 정확히는 화신(化神:Avartar)이지만~”

“성좌 66천마가 맞나요? 그… 밖에 풀어 놓은 애들이랑은 너무 이미지가 달라서요.”

“맞아, 맞아. 66천마(天魔)라고 칭하는 별을 말하는 거라면 내가 맞네. 아무튼 나의 코어 던전, 진정한 평화와 화합이 있는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네.”

“…예?”

진정한 평화? 라는 말에 유성원은 어리둥절해졌다.

성좌 66천마는 ‘전쟁’의 성좌로서 무수한 사령의 군대와 함께 끝없는 전쟁을 하는 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하는 말은 밖에서 알던 그와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이라서 충격이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외양은 ‘전쟁’의 사도다운 무기로 가득한 육체였는데, 전쟁이나 파괴 같은 것은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평화와 화합을 이야기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무슨…….”

“저 하늘을 보라.”

“하늘……? 먹구름밖에 없… 헉!”

성좌 66천마의 말에 유성원은 햇빛을 가리고 있던 하늘의 먹구름을 다시 보았다. 한데,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들은 사실 구름이 아니었다.

거기 있는 것은 유령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었다.

영체(靈體) 상태의 사람들은 구름처럼 뭉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두둥실 떠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 영체의 색이 회색빛으로 어두웠기에 먹구름으로 착각한 거였는데, 자세히 보면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뭐야, 저거?”

“진정한 평화와 화합을 받아들인 인간들, 내가 정복한 ‘별’에서 모은 영혼들, 그리고 가끔 내 명령에 따라서 다른 ‘별’에 전쟁을 하러 가는 나의 병사들이다. 물론 보내는 데 약간의 대가가 필요하지만 말이야.”

“……!”

“나는 이들과 함께 모든 ‘별’들을 정복하고 모든 세상에 진짜 평화와 화합을 주고자 하고 있지. 그래, 내가 ‘전쟁’의 성좌는 맞지만 그 ‘전쟁’은 오직 수단일 뿐이야.”

여러모로 충격 가득한 이야기를 던지는 성좌 66천마.

유성원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의 풍경과 저 하늘 위에 있는 영혼들의 모습이 저자가 바라는 평화와 화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정한 평화와 화합. 저 하늘 위의 영혼들은 확실히 이제 더 이상 다투거나 싸우는 일은 없을 터였다.

“어떤가? 자네도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내 백성이 되어 영원한 평화와 화합을 누리는 건?”

“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죠.”

“그래, 뭐지?”

“왜 하필 성좌님의 이름이 66천마(六六天魔)인 거죠?”

일단 말하는 것을 보면 평화와 화합을 주장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보자니 이름과 맞지가 않았던 것이다.

“고작 궁금한 게 그건가?”

“다른 것도 많지만 역시 그게 가장 궁금하네요.”

“별거 없다. 그건 그저 끝없이 싸우는 지성체의 본성을 전혀 모르고 그것을 끝내고자 발버둥 치던 때에 얻은 오명(汚名)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붙인 이름, 멍청한 별들이 나의 싸움만 보고 붙인 이름! 결과가 아닌 쌓인 시체만 보고 붙인 이름! 이 평화로운 별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불태운 별만 생각하고 붙인 이름!”

오명. 더러워진 이름.

성좌 66천마가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부르게 된 이름.

지배하는 별에 있던 영혼들을 이용해서 별들을 넘어 다니며 끝없는 전쟁을 하고, 그 별들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죽이면서 얻은 이름이었다.

이 평화로워진 별의 결과물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붙여진 이름이기에 그는 더럽혀진 이름이라 칭하는 것이었다.

“궁금증은 풀렸나? 자, 내 던전에 들어온 침입자여, 너는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내 이상에 굴복한다면 너도 영원한 평화와 화합 속에서 살게 해 줄 것이며, 전선에 나가 있는 대장군들과 같은 영광을 주도록 하겠다. 나의 아래에서 모든 별을 불태워 영원한 평화와 화합의 세계를 만들지 않겠나?”

“…아뇨. 저 사람들, 별로 행복해 보이질 않는걸요? 그리고 무엇을 위한 평화나 화합인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시궁창 같은 지구가 훨씬 낫겠네요.”

“인간 개개인의 행복은 커다란 가치 앞에서 희생할 수 있지. 아무튼 상관없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지금부터 너와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그러고는 총으로 된 한쪽 팔을 휘젓기 시작하는 성좌 66천마.

드디어 본격적으로 코어 던전 공략이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한 유성원 역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내 하늘에 먹구름처럼 모여 있던 영혼들이 서서히 내려오며 대지에 깔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유성원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