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결국 성좌 66천마와의 거래는 올림푸스 길드의 개입으로 일본에 큰 손해와 극심한 피해를 주고 끝나게 되었다.
하나 이 개입에 그 어떤 국가도 반대나 반발을 하지 않았는데, 일단 올림푸스 길드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공헌도가 무척 컸고,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에 엿을 먹인 점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일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세계가 자신들을 이렇게 심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게 문제였다.
“결국 일본의 S급 헌터는… 16명에서 11명이 사라지고 말았네.”
아이언 포트리스로 돌아온 유성원은 이제 막 세계에 퍼지고 있는 현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감상을 내뱉었다.
16명이나 되던 일본의 S급 헌터는 이제 5명으로 격감되었다.
올림푸스 길드에서 경고의 의미로 4명의 두 배인 8명을 대가로 받고, 3명은 유성원이 죽기 직전 싸워서 교섭으로 구출해 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얘네 목걸이는 언제 풀었냐? 딱 봐도 쉽게 풀릴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유성원과 유청은 일본에서 구해 온 3명의 S급 헌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셋은 낯선 장소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탓인지 서로에게 꼭 붙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일단 대화를 시도하려던 유성원은 어느새 목걸이가 제거된 것을 발견하고는 유청에게 질문을 했다.
“가울프 경이 풀었습니다. 심연으로 감싸서 없앴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해결했습니다. 통역은 제가 할 테니 편히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정말이지 재주도 좋아. 넌 못하는 게 뭐니? 나는 아무리 이거저거 봐도 익혀지지가 않던데…….”
“그 보고 익힌다는 건 혹시 성인 성행위 영상물을 말하는 겁니까?”
“…너는 어쩜 그런 걸 말해도 고상해 보이냐? 아무튼 애들에게 여기는 안전한 곳이고, 너희에게 뭘 강요하거나 부당한 일 같은 건 절대 안 시킬 거니까 걱정 말라고 좀 해 줘라. 그럼 나는 이제 지겨운 인간들 보러 갈… 억!”
그렇게 유청에게 일을 맡기고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붙잡는 힘이 느껴졌다.
그 예의 바른 유청이 이럴 리 없는데 하면서 놀란 유성원이 돌아보자, 아까 전만 해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던 셋이 자신의 옷깃을 꼭 붙잡고 놔주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지 이해한 유성원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가기로 했다.
“…….”
“…….”
“…….”
“그래그래, 불안하겠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 같은 놈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말이 안 통하니까 말이야. 어쨌든 그렇게 해서 안심이 된다면 따라와도 된다고 전해 줘.”
“예, 폐하.”
유청의 통역을 들은 애들은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처럼 졸졸졸 유성원의 뒤를 따라갔다.
그 기묘한 풍경에 포트리스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이곳의 지배자인 만큼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회의실로 향하자 거기엔 백가연을 비롯해서 정부와 협회에서 온 사람들이 집결해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구성이었다.
“다들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별로 안 기다렸습니다.”
“뭐, 유성원 헌터님이 바쁘신 거야 잘 아는 사실이니까요. 하하하핫.”
“일본 놈들 꼴이 아주 그냥 보기 좋더군요.”
협회와 정부 사람들의 표정은 묘하게 밝았는데, 일본의 S급 헌터의 숫자가 11명이나 줄어 버린 것을 이들도 들었기 때문이다.
올림푸스 길드의 개입 덕분이라곤 해도 동아시아의 파워 밸런스가 완벽히 흔들릴 정도로 큰 사안인 데다 한국에는 엄청난 이익이었기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뭐, 좋아할 일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전남 쪽에 올라온 저것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일단 우리가 급히 전선은 막아 놨는데… 코어 던전이 생긴 것도 문제이지만, 상시 전선을 형성해 놔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게… 가능하면 그쪽에서 전선을 계속 맡아 주시는 건 어떠신지요?”
“거기 전선을 우리가? 우린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도 아닌데요?”
“정말 송구스러운 일입니다만, 현재 협회부터 시작해서 한국 내부의 헌터 구조를 바꾸느라 혼란한 상태입니다. 본래는 국가에서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맞지만, 정말 송구스럽게도 지금 사정이… 힉!”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에 유성원은 말하는 대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자신이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성좌 66천마의 사령 군대가 전라도 전역은 물론 충청까지 치고 올라갔을 텐데, 그걸 막아 주었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일을 인계받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아… 대충 뭐, 내가 여력 있어 보이니까 그냥 짬때린다는 거네요. 근데 어쩌죠? 나 손 놔도 별로 손해 없는데. 작은 불일 때 안 막았다가 불 번지는 거 보고 일하려고 하면 그것참 큰일 나겠는데요?”
“제, 제발 좀 봐주십시오.”
“봐 달라고 해서 봐줄 리 없는 거 아시죠? 세상사가 그리 만만하지 않잖습니까? 애초에 지금 거기 장벽 깔고 계속 밀고 오는 사령들 잡는 것만 해도 큰돈이 들어가는데, 우리보고 계속 일하라고요? 당신들, 대체 존재 의의가 뭡니까? 국민들에게 4대 임무 강요할 건 다 하면서!”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쪽도 나름 사정이 있는 게…….”
어떻게든 유성원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나름 합당한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우선 근 1년간 대한민국은 큰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도살왕 수하 토벌전부터 청룡 길드의 붕괴로 이어진 헌터들의 내전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 큰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전선을 만들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되면 정부에 대한 지지율과 신뢰도의 박살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보고 희생해 달라는 거네요?”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하긴 제대로 한번 박살이 나 봐야 선거니 뭐니 할 때 똑바로 사람 보고 뽑을 생각을 하겠지. 에휴~ 딱 한 달 드리죠. 그 안에 전남 전선 구축할 준비하세요. 되든 말든 기간 되면 우린 뺄 겁니다. 이상.”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를 마친 유성원은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참 인간들이란 얼마나 역겨운 존재인가를 다시금 확인한 그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혐오감이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 뒤처리는 또다시 백가연의 몫이었다.
“으음… 한 달 정도면 꽤 많이 준 것 같네만? 저 친구 성격상 며칠 여분을 줄 순 있어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걸세. 그러니 빠르게 일하러 가게나.”
“아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아닌지요?”
“뭐, 언제는 안 그랬나? 서울 길드가 신강남과 서울만 지킨다고 배짱부리던 일도 있고, 올림푸스 길드는 뺀질대기만 하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어서 가게.”
그 말대로였다.
이때까지 다른 3대 길드의 횡포는 넘어가 주었으면서 유성원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정부와 협회는 오늘도 아무 수확을 얻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되었다.
한편, 투덜거리면서 중앙 통제실에 들어간 유성원은 신소미를 만나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가 젊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만만히 보는 걸까요? 소미 누님.”
“그냥 찔러 보는 거겠죠. 근데… 그 애들은 뭔가요?”
“아, 얘네요? 그러니까… 일본에서 구해 온 S급 헌터 애들인데, 말이 안 통하는데도 믿을 게 저뿐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달라붙어 있네요.”
“아, 그렇… 잠깐만, 방금 뭐라고요? S급 헌터 애들이라고요?”
“예. 뭐, 문제는 없게 해 놨어요. 거기 덮치던 올림푸스 애들이랑 협상했거든요. 그런데… 맞다. 얘네 이름을 모르겠네. 좀 물어봐 주실 수 있을까요? 저 일본말을 몰라서요.”
처음에 깜짝 놀랐던 신소미는 유성원이 불평불만은 많아도 무언가 하기로 결심했으면 반드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부탁대로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세 아이들의 대답을 들은 신소미는 일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어두워진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이 애들 이름이… 그게…….”
“예? 뭔가 어려운 발음인가요?”
“아뇨. 그러니까… 10321번, 13114번, 25844번이라고…….”
“……!”
인간다운 대우를 해 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물건 관리하는 것처럼 번호를 붙이다니.
특무부대라는 놈들도 마냥 착한 놈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놈들은 자기들도 사정이 있었다며 변명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충격받을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번호가 왜 2만 번이 넘어가는지에 대해 설명 좀 해 달라고 해 보세요. 겁먹지 말라는 말도 부탁해요.”
“아……! 예.”
그래, 심심해서 10321번이니, 13114번이니, 25844번이니 하는 번호를 붙여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든 유성원은 불길한 예감으로 몇 가지 대답을 더 요구했고, 곧 특무부대라는 놈들이 벌이는 짓거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각성자들의 시대부터 일본은 알게 모르게 헌터와 각성자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인체 실험’ 같은 것을 해 왔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하아… 이제 와서 신기할 일도 아니네요.”
“그 중국발 역병이 왔을 때도 집단 감염 실험을 한다고 했을 정도이니, 각성자 가지고 연구하는 건 일도 아니겠죠.”
“이 건은 그러니까… 나중에 생각을 하죠. 후우우~ 이미 우린 허용량 오버이니까요.”
조직적 역량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무리였다.
일단 한 나라와 싸워야 하는 문제인 데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습성을 생각하면 사진 및 영상을 눈앞에 갖다 줘도 날조니 조작이니 하면서 부정할 게 뻔했다.
여태까지 쭉 그래 왔으니 말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망할 쪽발이 놈들로부터 아예 일을 안 받는 것뿐이네요.”
“이미 안 받을 상황이 되었긴 하죠.”
여러 나라에 핵똥을 싸지르는 민폐를 끼친 만큼 국가적 위상도 추락했으니 당분간 일을 안 받아도 뭐라고 할 곳이 없을 터였다.
물론 사라진 S급 헌터 11명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또 더한 짓을 저지를지 모르지만, 지금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러려면 더 강해지고, 더 큰 세력을 만들어야만 한다.
일본을 단숨에 심판하던 그 올림푸스처럼.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한 유성원은 일단 이 아이들에게 붙여 줄 이름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
일본, 도쿄 특무부대 비밀 연구소.
도쿄 외곽에 위치한 이 비밀 연구소는 공식적으로는 특무부대의 마정석 무기 및 각종 장비를 개발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상은 전국 곳곳에서 데려온 각종 헌터들과 각성한 아이들을 데리고 실험하는 장소였다.
데려오는 헌터로는 더 이상 싸우지 못할 정도의 큰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치유할 돈이 없어서 국가 시설에 몸을 의탁한 아이들, 혹은 길드 내 경쟁에 밀려서 은퇴한 아이들 등등…….
다양한 사유로 이곳에 보내진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거나 혹은 연구소 직원으로 고용된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체 실험에 희생되고 있었다.
“오늘도 시체 천지군요. 어휴~ 힘들다. 기무라 상, 빨리 다 소각해 버리고 가죠.”
오늘도 이곳의 연구원들은 새하얀 방호복을 입은 채로 각종 실험으로 인해 죽은 시체를 짐수레에 가득 실어 와서 야외 소각장에 집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이, 성별 모두 제각각에 각종 상처는 물론 고름과 질병의 흔적까지 있어서 더욱 참혹해 보이는 시신들을 마치 쓰레기 넣듯이 무감각하게 소각장에 넣으며 연구원 하나가 말했다.
“후우~ 대체 왜 소각 시설을 밖에다 놓은 건지 모르겠어요, 기무라 상. 요새는 아예 기계가 다 해 줄 수 있는데… 왜 굳이 우리가 일일이 이렇게 날라야 하는 건지. 참~”
“시설 설치 비용이 우리 노동 비용보다 비싸서 그런 거지. 또 설비가 고장 날 우려도 있고 말이야. 이 시체 같은 경우 안에를 봐. 몬스터랑 합성 실험을 한 것 때문에 강산성 위액을 내는데… 이걸 기계에 넣으면 손상되는 일이 많을걸?”
“아, 그렇군요. 아무튼 빨리 넣고 기계를 작동시키겠습니…….”
툭.
부하로 보이는 사람이 시신에 손을 댄 순간, 갑자기 석궁 화살인 볼트가 목을 뚫고 지나가면서 그대로 즉사했다.
그 광경에 침입자라고 생각한 기무라라고 불린 남자는 무전기로 사람을 호출하려고 했지만, 그 또한 이미 입을 열기 전에 목에 석궁 화살이 관통해서 숨이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것을 확인하자 수풀 속에서 어떤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하죠?”
“원호 네 솜씨야 뭐, 깔끔하지. 오! 시체가 엄청 많아! 아주 재수!”
[나는 입구나 찾겠네.]
수풀에서 나타난 것은 바로 성좌 도살왕을 섬기는 자들, 인간을 초월한 이 목사와 박숙자, 곽원호였다.
그들은 짐수레에 실린 시신을 보고는 횡재했다는 듯 기뻐하면서 들어갈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S급 헌터가 16명에서 단숨에 5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일본의 소식을 접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것저것 약탈하러 먼 바다를 건너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