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성좌 66천마의 군대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보통 사태가 아니었다.
아이언 포트리스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유성원은 가용할 수 있는 천검군 병사, 고블린 병력, 거기에 간이 요새를 세울 건설 자재까지 듬뿍 채운 트레일러 10대가량을 성소에 옮겨 놓고는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자신은 엘드라엔을 탄 채 가울프와 유청을 데리고 목포 쪽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 성소의 문을 열고 모든 물자를 꺼낼 수 있으니 시간 면에서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목포시에 도착하자, 이미 그곳에 주재하고 있는 길드와 전투에 들어간 성좌 66천마의 사령들의 모습이 보였다.
“맙소사! 진짜였네? 게다가… 저 불타는 사령들과 성의 모습은! 화군(火軍)이군.”
[음, 그런 것 같군. 흠하핫, 어떻게 된 거라 생각하나?]
“생각하고 말 것도 없지. 일본 새끼들 짓이야. 당장 따지러 간다. 제대로 말 안 하면 대가리 다 부숴 버릴 거야. 일단 트레일러 준비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면서 저쪽 지원이나 하러 가자.”
방침을 정한 유성원은 그대로 강하했다. 사령들과 화군의 공세를 받아서 위태위태하던 목포는 그의 등장으로 다행스럽게도 구원받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현장을 지키던 길드와 상의한 유성원은 트레일러가 도착하자마자 방어 전선을 꾸리도록 하는 동시에 화군대장군의 공략을 지시했다.
그러자 목포 현장을 지키던 그 지역 토박이인 길드 사람들은 대한민국 최고 헌터인 유성원의 지시를 당연하다는 듯 따르면서 방어선 구축을 도왔다.
“자, 그럼 일본으로 가 볼까? 이번엔 따지는 일이니까… 유청, 네가 필요할 것 같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정치적인 상황을 따져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쪽으로 전문가인 유청을 부른 유성원은 다시 엘드라엔을 타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폐하, 그런데… 정부에 알리지 않고 가는 겁니까?”
“알려서 뭐 해? 기껏해야 외교부 사람 몇 명 보내서 ‘응애! 혹시 이런 짓 하신 거 아니에요?’ 하고 찌질하게 묻는 게 전부일 텐데, 내가 가서 해결하는 게 더 빠르지.”
“뭐, 그렇습니다만, 알려는 두는 게 나을 겁니다.”
“으음, 그래. 네 말대로 하지.”
유청을 존중하자는 생각에서 유성원은 그의 말대로 일단 한국 정부에 알리기로 했다.
물론 직접 연락하는 건 아니고, 이런 일에 전문인 백가연 어르신이 있기에 그쪽에 말하는 걸로 해결하였다.
(…뭐, 좋네. 그런데 일본에 가선 어쩔 생각인가?)
“따져야죠. 어떤 새끼가 이런 짓을 했냐고요. 이거 엄연히 인류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나도 안 하는 짓인데 말이죠. 아무튼 한국 정부에 잘 말해 주세요.”
유성원이 아무리 제멋대로이긴 해도 성좌 도살왕과 손잡거나 그들 편에 서지는 않았다.
‘기사도의 길’ 특성 탓도 있지만, 차라리 체념할지언정 선을 넘는 짓은 안 했던 것이다.
그렇게 백가연에게 용건을 다 전한 유성원은 엘드라엔을 탄 채 계속해서 일본으로 향했는데, 그 와중에 또다시 연락이 들어왔다.
“아주 난리다, 난리야. 일본 놈들 때문에 이게 뭔지~ 보자… 이번엔 소미 누님인가? 뭐지? 전선에 문제라도 생겼나? 여보세요? 누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 생겼습니까?”
(예. 아주 큰 문제가 생겼어요. 화군대장군의 공략을 위해 정찰을 시행했는데, 그의 성 뒤에… ‘코어 던전’ 입구가 생겼어요.)
“…네에?”
코어 던전. 이 지구를 침략한 악(惡) 성향 성좌의 핵심 던전이자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
이곳이 클리어되면 그 성좌는 더 이상 지구에 나타날 수 없게 된다.
다만 그 내부는 쓰러뜨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자, 모든 성좌의 사도가 모여서 지키기에 난이도는 S급 던전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략을 하려면 아주 큰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시도조차 할 수 없으며, 시도한다고 해도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게 생겼다고요?”
(예.)
“…아, 미치겠네.”
자연스럽게 골치가 아파 오는 유성원이었다.
설마 그 성좌 66천마가 코어 던전을 옮긴다는 발상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지간히 대륙으로 나오고 싶었던 그들의 심정은 둘째 치고, 이런 사태를 일으킨 일본을 도저히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이건 진짜 가만있을 수 없겠는데? 엘드라엔! 빨리 가자! 코어 던전이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내가 그냥 놔둘 것 같아?”
납득할 수 있는 변명이 아니면 진짜로 크게 사고 칠 생각까지 한 유성원은 엘드라엔을 재촉했다.
만약 허튼수작을 부리면 그땐 진짜 그냥 전쟁이든 뭐든 크게 일으킬 생각으로 빠르게 날아간 그는 약 2시간 만에 일본 도쿄 부근의 상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연기가 나는군요. 그리고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가…….”
“아, 저기… 뭔가 거대한 게 떠 있군. 저 천공섬은? 올림푸스의…….”
도쿄 상공에 도달한 그들이 본 것은 거대한 천공섬과 지상을 파괴하고 있는 올림푸스 길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미 자신들이 오기 전에 누군가가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것이 저 올림푸스 길드라는 것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국에 있던 올림푸스 길드는 조용하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말이다.
“애초에 쟤네는 왜 저 난동을 부리는 거지?”
“아마 일본이 성좌 66천마와 손잡고 대장군을 보낸 게 한국뿐만이 아닌 것 같군요.”
“아! 그렇구나!”
유청의 지적에 유성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대륙은 물론 이 세계를 노리는 성좌 66천마라면 아시아 대륙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에도 대장군을 옮겨 달라고 했을 게 분명했다.
아메리카, 호주 등등 섬이나 여러 대륙에도 하나씩 떨어뜨렸다면 올림푸스 길드가 저렇게 파괴 활동을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일도 아니었다.
“올림푸스는 특히나 전 세계를 커버하는 길드였지?”
“예. 태평양 영향권을 비롯해서 유럽까지, 상대하는 초대형 악(惡) 성좌 세력만 열 곳이 넘는다고…….”
“올림푸스 자체가 12성좌의 집합체이니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아무튼 우린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네. 쟤네 진짜 어지간히 빡쳤나 본데?”
콰아앙!
유성원은 엘드라엔의 위에 앉은 채 올림푸스 길드의 활약을 마음 편히 지켜보았다.
일단 소속은 잘 모르겠지만 검은색 장식이나 옷감을 단 것이 평소 보던 올림푸스 길드의 헌터나 병사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같이 싸울 때 용맹한 기상이나 전투력을 보이던 것과 달리 저들은 마치 처형자(處刑者) 같은 느낌이었다.
[모조리 없애라.]
[대가를 치르게 하라.]
[지옥을 부른 자, 지옥에 가게 되리라.]
[저들이 부른 죽음만큼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죄다 흉흉한 하얀 가면을 쓴 채로 무섭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물론 각종 건물 및 인프라를 폭파시키는 데 자비가 없는 모습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아무리 봐도 악(惡) 성향의 군대였지만, 저들은 올림푸스 길드의 특정 임무를 위한 성좌 소속의 군단이었다.
“저게…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성좌 하데스의 휘하들 같습니다.”
“그러네.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태평양 전선에서 잘 안 나오는 최정예라는데……. 그러고 보니 저 천공섬도 뭔가 좀 다르네!”
보통은 아름다운 초목과 꽃이 어우러진 우아한 고대 도시의 느낌이 살아 있는 천공섬인데, 유독 일본 하늘에 떠 있는 천공섬은 검은 먹구름에 가고일과 박쥐들이 날아다니며 지옥불을 입에 머금은 개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으스스하고 무서운 분위기였다.
“같은 길드의 천공섬이라도 저런 차이가 있구나…….”
“뭐, 그런 법이지요. 한데 폐하, 이러면 이제……?”
“그러네. 뭐 할 게 없네? 돌아가서 코어 던전 대책이나 세울까?”
일본의 어리석은 행동은 올림푸스 길드가 처벌하고 있으니 굳이 자신들이 낄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에 유성원은 그대로 엘드라엔의 머리를 돌려 돌아가고자 했다.
하나 그 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듯 유성원이 지상 어딘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지 티탄의 말뚝을 꺼내 들고 엘드라엔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이런… 젠장할!”
“폐하?”
[계약자여?]
돌아갈 거라고 말한 순간 갑자기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의 모습에 유청과 가울프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각자 검을 뽑아 들고 유성원의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유성원이 무기를 뽑아 들고 움직인 것으로 보아 싸울 의지가 있다고 보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
일본 정부 총리실.
도쿄 도심 전체가 한창 올림푸스 길드의 전면 공격을 받고 있는 이 시점, 일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 거대한 모니터에 나온 하얀 가면을 쓴 남자의 앞에 다 같이 엎드린 채로 그의 말을 경청하는 중이었다.
『헤이, 뻐킹 잽스 몽키스? 몇 번이나 말하는데… 진짜 대가리에 든 게 없나요? S급 헌터 4명을 구하려면 멀쩡히 작전이나 처 하든가, 아니면 다른 일을 해야지. ‘성좌 66천마’에게 홀라당 넘어가서 이런 배신이라니, 참~ 우리가 몇 개의 악(惡)신과 싸우는지 알고 있습니까?』
“저,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 저희도 그저 살고 싶어서 저지른 일이라…….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히프시스 님.”
화면에 나온 남자의 이름을 말하며 엎드린 채 벌벌 떠는 총리였다.
언제나 세계 평화에 힘쓰느라 바쁜 그들이 이번 사태에 이렇게 화를 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것이었다.
‘젠장! 그 망할 대장군 놈들 같으니! 설마 가자마자 그런 대형 사고를 칠 줄이야.’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미국 방향으로 보낸 성좌 66천마의 사도 대장군 때문이었는데, 태평양을 건너서 올려 주자마자 그들은 사령들을 만들고 전쟁을 일으켜서 미국 본토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태평양 쪽에 있는 올림푸스 길드의 주요 전선의 보급에 큰 지장을 줘 버린 것이었다.
『내가 처음에 왔을 때 뭐라고 했더라? 너희는 그런 적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했었지? 아주 입에 거짓말만 달라붙어서 무슨 거짓말 매뉴얼이 다라라라락! 있더라? 우리가 너희들이 그 대장군인지 뭔지 하는 잡스러운 사령 데리고 바다 건너는 모습 찍은 거 보여 주니까 그제야 깨갱하고 말이지.』
세계 최고의 첩보력을 가진 미국 정부를 동원한 만큼 일본 정부가 아무리 거짓말 매뉴얼을 완벽하게 만들었어도 각종 실물 증거가 있기에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수 있다면 세상 사는 게 이렇게 힘들 리가 없지. 아무튼 한번 불러진 우리 하데스의 군대는 대가를 받기 전엔 돌아가지 않으니까… 각오해 둬.』
‘젠장! 하데스의 군대가 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어. 그들을 아메리카로 보낸 것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줄이야!’
올림푸스 길드 내에서도 성좌의 격에 따라 그 아래 부하들의 힘의 차이가 다른데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이 세 성좌의 힘은 그리스 신화를 아는 이라면 더 말하지 않아도 그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성좌 하데스의 사도 중에서도 지금 눈앞에 나타난 남자 히프시스는 바로 ‘히프노스’의 가호를 받은 S급 헌터.
하지만 엄연히 ‘신격’의 가호를 얻은 만큼 여느 S급 헌터들과 차원이 다른 권능을 가지고 있기에 일개 S급 헌터와 같은 취급을 해선 안 되는 자였다.
『‘형’의 집행은 시작되었다. S급 4명을 구하기 위해 배신했으니 우린 S급 8명의 목숨을 받을 거고, 당신들이 몰래 캘리포니아에 그 더러운 ‘사령’을 떨어뜨린 것에 대해서도 거기서 입은 피해의 딱 2배만큼 돌려줄 거야.』
“저기, 다른 건 어떻게 되어도 좋습니다만, 역시 S급 헌터들만은 좀 어떻게… 충분한 사죄와 보상을 할 테니…….”
『푸핫! 그 사죄와 보상, 제대로 한 적이나 있어? 역사를 봤을 때 주변국에 폐 끼치던 거 죽어라고 부정하면서 발뺌하던 게 너희들이잖아. 참 나~ 아? 근데… 야, 뭐야? 이거 너희가 불렀냐?』
“예? 부르다니요?”
『이거 안 보여? 지금 우리 올림푸스 길드의 SS급 헌터이자! ‘페르세포네의 가호’를 받은 성좌 하데스 님의 최고 사도인 ‘페르세이아’ 누님을 막은 이 황금 덩어리 말이야! 잠깐… 이거 ‘티탄의 말뚝’ 아니야? 이걸 무기로 쓰는 놈이면… 소문의……?』
곧 모니터에 작은 화면이 생성되고, 거기엔 해골로 장식된 거대한 낫을 든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검은 수의를 입고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하얀 가면을 쓴 채로 긴 백발을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앞에는 황금 갑옷에 ‘티탄의 말뚝’을 든 유성원이 낫을 막아 낸 채로 그녀를 노려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