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그렇게 일본의 야심 찬 토벌 작전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유성원은 이번에 비록 S급 몬스터의 킬 카운트를 추가로 올리지는 못했지만 나고야 전선을 훌륭히 방어했고, 새로이 일어날 피해를 예방하는 데 성공해서 두둑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돈도 받았으니 이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와 특무부대에서는 아직 할 말이 남은 건지 그에게 며칠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급한 불 껐으니 저 이제 쓸모없는 거 아닙니까?”
“그, 그게 맞습니다만, 아직 못 찾은 S급 헌터도 있고 또 전선 상태도 심상치 않으니 한 2~3일만 더 이곳에 머무시면 안 되겠습니까?”
“음… 돈만 준다면?”
“예! 물론입니다. 당연히 드려야죠.”
“그러면 OK.”
돈만 주면 뭐든 해 주는 유성원이었고, 일본 정부도 확실한 안전을 확보한 뒤 다시 한 번 더 S급 구출을 하기 위해 서로 OK하였다.
그리고 유성원은 당연하다는 듯 도쿄에 있는 최고급 호텔의 VVIP실을 배정받았고,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갑옷을 벗고 씻은 다음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 침대 부드러운 거 봐. 역시 고급인가? 애들 불러서 놀아야지. 가울프, 섬멸, 아칼론, 그리고… 크록베인은 내가 다른 곳에 불러서 먹거리 먹게 해 줄게.”
[고맙다… 주인…….]
[흠하핫, 딱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군. 아주 최고야. 계약자여, 술이 여러 종류인데… 어떤 게 가장 도수가 센가? 섬멸 경도 한잔하겠나?]
“저는 됐습니다.”
먼저 술판을 벌이기 시작한 기사들을 내버려 둔 채, 유성원은 호텔 프런트에 연락해서 크록베인을 위한 식사를 따로 마련해 달라고 하였다.
엄연히 조국을 수호해 준 VVIP였기에 한국말로 해도 알아듣고 극진히 대접해 주는 호텔이었다.
잠시 후, 호텔 직원이 옥상에다 불판을 여럿 깔아 두고 크록베인을 위해 암소들을 통째로 굽기 시작했다.
[오… 이건 마음에 든다. 우걱우걱…….]
“그래, 마음껏 먹어. 쉴 때는 푹 쉬어야지. 그러면 적당히 먹고 넌 성소로 돌아가라. 쟤 배부를 때까지 든든히 먹여 주십쇼.”
“무, 물론입니다, 유성원 헌터님.”
그렇게 호텔 직원에게 크록베인을 맡겨 두고, 유성원은 그대로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남은 셋과 술판을 즐겼다.
호텔 룸서비스로 온갖 요리들이 배달되는 만큼 걱정 없이 각종 요리들을 맛보면서 신나게 떠드는 넷이었다.
“근데 아칼론은 식사를 못해서 어떻게 하냐?”
[괜찮습니다. 여기 전기도 꽤 맛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건 다 같이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것에 그 본질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 그리고 아칼론, 혹시 이 안에 우리를 도청하거나 감시하는 기기가 있냐?”
[아뇨. 전혀 없습니다.]
“좋아. 그러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군. 너희들, 나고야에 갔을 때 거기 S급 아이들 상태가 어떻더냐?”
단도직입적으로 이번 브리핑했을 때 보았던 아이들에 대해 묻는 유성원이었다.
말로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도저히 눈에 밟혀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개 목줄처럼 생긴 기계식 목걸이를 차고 멍하니 있는 그 아이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흐음, 마치 기계처럼 싸우더군. 자기 몸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지.]
“아프지 않은 건 아닌 것 같던데… 뭔가를 엄청 두려워하는 것 같았어요, 단장님.”
[하지만 뭔가 하려고 한다 해도 그 아이들은 S급 헌터입니다, 마스터.]
S급 헌터.
던전과 몬스터가 나오는 현시대의 최종 병기 같은 존재이며, 그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국력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로 평가해도 모자람이 없다.
오죽하면 한국 정부에서 자신에게 구출 작전을 늦게 가 달라고 은밀히 부탁까지 했겠는가?
그런 아이들에게 손을 댄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썩 느낌이 좋지 않아.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없지.]
[좋은 방법, 검색 결과 없음.]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유성원은 안타까운 마음을 씻어 내려는 듯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론 일본과 적대할 각오로 무리를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나 무력으로 S급 헌터를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가 돌게 되면 진짜로 세계의 공적이 될 수도 있어서 일을 벌이려면 각오를 크게 가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신중해야만 했다.
[나로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만? 흠하하핫.]
“자기는 서약 다 이뤘다고 막 나가자고 하네?”
[흠하하핫, 그저 제안일 뿐일세.]
그렇게 유성원 일행은 어린 S급 헌터들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밤새 계속해서 나누었지만, 별 뾰족한 타개책은 나오지 않았다.
S급 헌터의 가치는 몇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해결되지 않은 고뇌만을 남긴 채 유성원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
같은 시각, ???.
“으으… 으으음…….”
첨벙!
후지와라 길드장은 깊은 수면을 마치고 서서히 눈을 떴다.
뇌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제 있었던 일과 지금 상황의 조각을 맞추었고, 논리 회로와 판단 구조를 깨워서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낯선 동굴, 그리고 몸에 느껴지는 것은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싸늘한 바닥의 감각.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그는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야? 무슨…….”
철그럭.
후지와라는 현재 어느 동굴 안의 철창에 갇혀 있었는데, 손과 발은 알 수 없는 쇠사슬 같은 것으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철창 밖에는 지겹게 보아 온 사령무사들이 나기나타와 검을 멘 채로 자신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아, 맞아. 어제 쫓기고 쫓기다가 정신을 잃는 바람에……!”
도주하던 상황 속에 포션도 모두 떨어지고 수면도 제대로 못 취하던 그는 결국 숲속에 쓰러져 버린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저 사령들의 모습을 봤을 때 자신은 아마 포획되고 만 것 같았다.
“이런 젠장…….”
“이런 젠장할!”
“…거기 누구 있습니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동시에 울리는 욕지거리가 이곳에 자신만 잡혀 온 게 아님을 알아차리게 했다.
동굴 안에 사람을 가두는 방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지와라는 열심히 기어가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동굴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전신에 불꽃을 머금은 갑옷을 입은 무사 형태의 거대한 몬스터, 화군대장군(火軍大將軍)이었다.
[일어난 모양이군. 그러니까… 후지와라 야스케였나? 일본의 S급 헌터 중 하나, 클래스는 ‘퇴마술사’로 우리 사령들에 대항하는 각종 주문과 부적 마법이 특기인 헌터.]
“…마, 맞다. 그런데 어째서 날 살려 둔 거지?”
[인질, 그리고 교섭 재료다.]
“인질? 교섭 재료? 뭘 요구하려고?”
‘전쟁’의 성좌랍시고 끝없이 싸움만 해 온 이 성좌 66천마의 사도들이 갑자기 인질과 교섭이라는 말을 꺼내자, 후지와라는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의 길. 너희같이 시시한 놈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싸울 만한 적과 전쟁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 시시하다니!”
[싸우지도 않고 잡혀 온 주제에 말이 많군. 아무튼 죽일 생각은 없으니 얌전히 있어라. 허튼수작을 부리면 팔다리를 자르고 영원히 불타는 고통을 선사해 주지. 참고로 이곳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에 사령무사와 사령승병들이 대기 중이니, 어디 탈출 시도를 해 보든가? 그럼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러 가야 하니 이만.]
“자, 잠깐만… 기다려!”
다급히 불러 보았지만 화군대장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 안쪽의 다른 곳으로 향했다.
후지와라 길드장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그가 말한 ‘바다의 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말뜻을 보아하니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성좌 66천마의 군대를 바다 건너로 옮겨 달라는 뜻 같았다.
‘그러면 결국 갈 곳이… 한국이나 중국 혹은 러시아? 아니면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
그 외에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 같은 곳도 있긴 하지만 역시 육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땅으로 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터였다.
그렇다면 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대한민국. 일본에서 최단 거리인 대륙으로 들어가는 통로.
놈들은 그곳을 통해 대륙으로 들어가 더 큰 전쟁을 하고 싶은 것이고, 그러기 위해 자신들을 인질로 삼아 일본 정부와 교섭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뭐… 다행이군. 후후후, 설마 S급 헌터인 나를 버리겠어?”
성좌 66천마의 군대를 상륙시키는 것은 한국에 엄청난 폐를 끼치는 일이지만, 일본의 국익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S급 헌터를 구하는 게 우선시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기에 다른 나라라면 모를까, 한국이라면 폐를 끼쳐도 양심의 가책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상관없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난 뒤, 귀신같이 유성원이 한국으로 돌아간 타이밍에 맞춰 화군대장군은 다른 인간을 통해서 일본 정부에 서한을 보내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난리가 났고, 다급히 특무부대원 및 길드 대표들을 소집해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모두가 모이자, 총리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죽간으로 된 서한의 매듭을 조심스럽게 풀고는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대(大) ‘성좌 66천마’ 군세와의 혈투에 힘쓰는 일본 정부 귀중(貴中)에게 전한다.
현재 우리는 너희가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S급 헌터라는 작자 넷을 포로로 붙잡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너희와 거래하고자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 휘하 대장군 중 넷을 바다 건너 땅에 보내는 것이다.
S급 헌터당 한 명씩, 대장군을 바다 건너 한국, 미국, 러시아, 호주 대륙에 안착시키면 된다.
대장군 한 명이 넘어갈 때마다 S급 헌터 한 명을 무사히 너희 품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며, 현재 구성된 전선 이상으로 진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우리 ‘성좌 66천마’ 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만약 거래에 응하지 않고 거절할 시엔 이 4명의 S급 헌터는 모두 공개적으로 처형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 둬라.
또한 우리 거래에 타인, 타국, 타 성좌의 수하나 사도가 끼어들어도 마찬가지다.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해라.
-‘성좌 66천마’의 사도, 화군대장군(火軍大將軍)로부터->
“끄으으응…….”
“이것 참 난감하군요.”
“저들이 거래를 요구하는 것부터가 생소한 일인데…….”
“이를 어찌해야 좋을지…….”
웅성웅성.
총리를 비롯해서 내각과 특무부대장, 각 길드의 수장들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돌아볼 뿐이었다.
S급 헌터 4명. 그 가치는 감히 돈으로 견줄 수 없는 것이며 나라의 생명줄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좌 66천마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는데, 타국에 저 ‘대장군’들을 옮겨다 주게 되면 이제 그곳에서 무한히 사령병들이 만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민폐를 넘어서 침략 행위보다도 더 악질 같은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