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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63화 (163/293)

[163화]

[*이 이후로는 실시간으로 통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대체 무슨 속셈이십니까? 우, 우리를 노예로 팔아넘길 생각이십니까?”

“그럴 거면 왜 굳이 불러서 대화를 해? 그냥 다 잡아들이면 그만이지. 어차피 시코쿠 섬 밖으론 도망도 못 치는데… 헤엄쳐서 갈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말도 안 되게 좋은 조건 아닙니까?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득이 없진 않아. 내가 하는 일에 도움 될 인력들이 생기는 거니까……. 물론 부당한 노동이나 노예로 부리려는 건 아니고, 다만 조건이 몇 가지가 있어.”

조건이라는 말에 시코쿠에 살던 부랑민 노인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근 수십 년간 여기서 시궁창 쥐처럼 살아왔지만 그들의 근본은 문명인이다.

그런 만큼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으면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국 정부마저도 자신들을 없는 인간들로 취급하는데 저 생면부지의 한국인이 자신들을 도울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조, 조건은?”

“하나, 넘어오는 인원 전원 다 1년 내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한국어를 익힐 것.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전부. 결국 한국으로 넘어가는 거니까 되도록 빨리 익혀. 일본어를 버리라곤 하지 않겠지만… 안 그러면 다시 여기로 돌려보내 줄게. 둘, 우리가 영역을 줄 건데, 그곳에서 한국의 규율과 관습을 지키면서 살 것. 위랑 마찬가지야. 셋, 이건 넘어가야 해서 하는 절차적인 일인데… 내 부하가 되는 것. 고용 관계로 할 거고, 계약서도 쓸 거야. 거기에 댁들 안전이랑 처우에 대해서 쓸 거고…….”

“그 계약이 블랙이면 어떻게 합니까?”

“‘기사도’에 이름을 걸고 맹세하면 되나? 그… 내겐 그게 ‘성좌’님 같은 거니까, 그거만큼 신뢰성 있는 게 없지?”

“성좌?”

‘성좌’에 대한 맹세. 시코쿠에 갇혀서 사는 이들도 잘 아는 거였다.

완전히 고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시코쿠에서도 길드와 헌터 특무부대가 활약하고 있었고, 지금도 자신들 안에 일부 각성자와 성좌의 가호를 받은 자도 있기에 성좌에 대한 맹세의 무게가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 그거라면 좋습니다.”

“오케이. 옆의 당신은?”

“어르신이 좋다면 저희도 좋습니다.”

“당신들만 OK할 게 아니라, 구성원들에게도 물어봐.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야. 혐한이니 뭐니 하는 인간들 말이야. 일단 3시간 줄게. 돌아가서 회의해 보고 기사들에게 말해.”

그렇게 처음 온 사람들을 돌려보냈고, 뒤를 이어 다른 곳에 숨어 사는 또 다른 그룹이 도착하면서 계속해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코쿠에 숨어 사는 모든 이들이 선량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칼론에게서 통신이 왔는데,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마스터, 또 하나의 거주지를 찾았습니다만 여기는 좀 질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화상을 보내겠습니다.]

“뭐야?”

아칼론이 보내온 화상에는 사람들을 마치 짐승처럼 철창 안에 가두거나 시체를 꼬챙이에 꽂아서 장식해 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결국 이런 지옥 같은 섬에도 사악한 일을 하는 인간들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딱 봐도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 거주지를 발견한 아칼론에게 유성원은 즉결 처분의 명령을 내렸다.

“갇혀 있거나 노예로 있는 사람 빼고 모조리 죽여서 제압해.”

[명령대로!]

그렇게 태풍 속에서 반나절. 이제 어두운 밤이 되고 폭풍을 멎게 한 유성원은 시코쿠 전역에 숨겨져 있던 모든 거주지를 찾아내어 사람들의 의사를 물었다.

스캐빈저나 다름없는 인간들을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이 숨어 사는 거주지의 숫자는 34개나 되었으며, 적게는 4인 가족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고, 많게는 1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합쳐진 인원이 약 만 명. 과거 시코쿠 전역의 인구를 생각하면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만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15개 그룹이 한국 이주 및 조건을 거부했고, 19개 그룹이 조건을 승낙. 어떻게든 문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단장님.”

“일단 거부한 15개 그룹에는 식량이랑 물자를 보내 줘. 유청과 중한에게 말해 놨으니 기사단의 성소에 들어가서 옮기면 돼.”

“정말 당신을 보고 있으면 제가 그동안 쌓은 헌터계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에요.”

(전설)흔적만 남은 기사단의 성소 차원문. 그동안은 기사 및 유성원의 직속 부하들이 전투를 하기 전에 잠시 머무는 대기실이었지만 이런 응용도 가능했다.

포탈을 열기만 하면 어떻게든 유성원에게 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한국에 있는 유청이 성소 안에 물건을 집어넣으면 다른 기사가 성소에 들어가서 물건을 꺼내 오는 방식으로, 한국과 일본 간의 거리를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괜히 이것도 전설 스킬이겠습니까? 아무튼 편리해서 좋네요. 단점은 저는 못 들어간다는 거지만요. 서약 안 해서 기사로 인정을 못 받았다나? 서약하면 들어갈 수 있대요.”

“아, ‘서약’인가요. 그런데 협조 안 한다는 곳에 식량과 물자는 왜?”

“뭐, 일단 인도적 차원인 척하면서… 그동안 쓰레기랑 폐기물, 사냥해서 먹은 것과 달리 간만에 문명의 이기를 다시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죠. 후우~”

그래, 사람의 마음은 결국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이다.

아무리 그동안의 삶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잊고 있었던 좋은 시절을 기억하게 되면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더구나 만약 아이들이 있는 경우, 그 생각의 바뀜은 더 폭이 커진다.

자신들이야 이 지옥 같은 시코쿠에서 야생으로 살아간다고 쳐도 이런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알게 되면 어쩌죠? 어쨌든 자국민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거잖아요. 어디든 마찬가지이지만, 국가란 국민이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 것. 그걸 하면…….”

“자기들이 버려 놓고 이제 와서~ 어차피 여기 살던 인간 중에 스캐빈저나 다름없던 놈들도 있었으니 그놈들 사진이랑 시체를 보여 주면서 처분했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나저나 또 사고 쳤다고 난리겠네. 휴우~ 아무튼 태풍 지속 요금도 요금이고, 일본 정부가 움직이면 큰일 나니까 빨리 일을 도와야겠… 어?”

일하러 가려던 중 수송선의 통신기가 울리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연락을 받았다.

화면엔 일본 정부 측 사람이 미소를 띤 채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한국말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추, 축하드립니다, 유성원 헌터님. 세상에 출동한 지 반나절도 안 돼서 벌써 S급 몬스터 하나를 처리하실 줄이야. 정말 대단하시고, 역시나 명불허전이십니다.』

“무슨 용무야? 내 할 말은 다 전했을 텐데? 왜? 이제 와서 마정석 좀 떼어 달라고?”

『아뇨, 아뇨! 당초 맺은 협약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실력을 봤으니 말이죠. 다만 그, 저기… 시코쿠에서 돌아오는 날짜를 좀 미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왜?”

『그게 너무… 너무 빨리 잡으셔서 말이죠. 반나절 만에 해결될 일을 왜 여태껏 아무도 처리 못했느냐는 비판과 비난이 나오면 길드와 특무부대의 사기도 사기이고, 분쟁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한 일주일만 거기 그대로 계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물론 보도 및 이동 통제는 하겠습니다.』

자국 헌터들의 무능론을 막고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정보 통제를 요구하는 일본 정부.

웃긴 일이었지만, 그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자국민까지 버리는 모습을 봤으니 충분히 납득이 갔다.

유성원은 자신들에게 딱히 손해가 아니었기에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잡는 데 일주일 걸렸다고 하면 되나? 영상은 너희가 필요 없다고 하면 되겠지?”

『말이 아주 잘 통하시는군요. 그렇게 하죠. 하하핫. 그럼 승낙하신 걸로 알고… 아! 돈은 물론 일주일 뒤 도쿄에 오실 때까지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설마 일본 정부 쪽에서 알아서 머물러 달라고 할 줄이야.’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인지라 유성원은 곧바로 승낙했고, 일본 정부도 곧바로 OK해 주는 그를 반겼다.

그렇게 시간이 추가되자 한시름 놓은 유성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곧바로 밖으로 나가 기사들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

일본 도쿄, 야스다 길드 본당.

흔히 야쿠자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거대한 일본식 저택. 주변 빌딩들과 각종 최신식 건물 사이에서 위화감이 들게 만드는 곳이었지만, 여기가 바로 야스다 길드의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며 최고위 간부만이 모일 수 있는 ‘본당’이었다.

“…그 ‘춍’ 놈들이 반나절 만에 암군대장군을 잡았다고?”

“예, 예! 그렇습니다, 길드장님.”

아무리 정보 통제를 한다고 해도 정부 내부 사람들 모두 모를 수는 없다. 거기에서 사람들로 소식을 받기 때문에 유성원이 고작 반나절 만에 성좌 66천마의 군대 중 하나인 암군대장군을 격파한 사실은 알려진 지 오래였다.

“하찮은 ‘춍’에게 반나절 만에 잡힐 수준이었다면 진작 우리가 나설 걸 그랬군. 쳇! 그 특무부대 놈들만 아니었어도……!”

“후지와라 길드장님의 실력이면 충분한 일이죠. 아무튼 정부에서는 놈에게 제안해서 일주일 뒤에 잡았다고 발표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 특무부대도 그렇고, 길드의 자존심이 걸려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 ‘춍’이 실력을 갖춘 건 사실이다. 미리 정보를 제공했다곤 하지만 견적도 보지 않고 시코쿠로 가서 그냥 암군대장군을 때려잡은 걸 보면 확실하지. 제길…….”

그동안 한국에서 싸운 것을 보고 주작이거나 한국 정부의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하며 강함을 인정하지 않았던 후지와라 길드장이었지만, 지체 없이 수송기를 타고 가서 금방 때려잡은 것도 그렇고, 그의 스킬로 확인한 결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튼 암군대장군이 잡혔으니 시코쿠도 정상화. 그곳을 거점으로 이제 서쪽 본토를 회복할 수 있는 유리한 전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고야 쪽 방어선을 강화하긴 해야겠지만, 시코쿠에다 포병 진지를 세우고 펑펑 쏴 대기만 해도 사령병들을 소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으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반나절이든 일주일이든 갑자기 나타난 ‘춍’ 놈이 큰 활약을 했다는 소식이 나라에 퍼지면 어떻게 될까? 를 생각하고 있네. 우리가 수십 년간 서로 눈치 보면서 쓰러뜨리지 못하고 매일매일 수십~수백 명씩 죽어 나가는 ‘나고야 방어선’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춍’ 한 놈이 그걸 깼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하지만 그는 SS급입니다. S급보다 한 단계 위죠. 게다가 그와 함께 동원된 S급 숫자만 5명. 일개 길드 수준을 넘어선 화력입니다. 반나절이면 너무 충격적이라서 일주일로 늘리긴 했지만, 저희 체면은 상하지 않을 수준입니다.”

“내가 우려하는 건 그게 아닐세. 그 ‘춍’부터 시작해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다는 게 문제야. 뭐, 가축에 불과한 민간인들이야 상관없지만, 나고야 전선을 유지하는 특무부대 헌터들은 어떻겠나?”

지옥 같은 전쟁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나고야를 비롯,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특무부대 헌터와 방위대의 군인들은 이 승전보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반나절이든 일주일이든 그 지옥 같던 전쟁의 승기를 인류 쪽으로 넘겨준 유성원에게 우호적이 될 것이다.

어차피 강력한 카르텔을 구축한 시점에서 개돼지에 불과한 국민들은 두렵지 않지만, 특무부대 헌터들이 친한파로 돌아서게 되면 장래 한국 정복의 야망을 가진 야스다 길드로서는 성가신 일이 된다.

“특히 특무부대 헌터 놈들은 생각이 불온한 비국민 놈들이 많아서 더 골치다. 심한 놈들은 아예 우리나 정부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 아주 몹쓸 놈들이지. 우리 대일본을… 자랑스러운 조국을 다시 회복시킬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쯧쯔쯔…….”

“그, 그러면 어찌하실 겁니까?”

“당연히 놈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의 거리를 벌려야 한다. 무력을 쓰는 게 아니라, 그저 비즈니스 관계인 걸로 거리를 유지하는 거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선 아주 좋은 치트키급 화제들이 있지. 예를 들면 다케시마라든가, 야스쿠니 문제라든가 말이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관계는 물론 영토 분쟁이라는 각종 역린이 있는 것을 잘 알고, 그것으로 인한 정부 간의 외교적 다툼은 이미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작 그 분쟁의 요점인 다케시마와 울릉도는 지금 태평양을 지배하는 성좌 ‘영원한 분노’의 세력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한국인의 감정적 역린을 자극하는 방법은 조금만 조사하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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