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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62화 (162/293)

[162화]

[흠? 계약자여? 왜 그런 표정인가? 약속대로 승리를 바쳤는데 말이지.]

“…아니,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삶이라서……. 그러니까… 너는 아까 그놈 하나 잡으려고 나락이니 뭐니까지 쫓아가고, 그다음에 자신의 삶까지 신에게 맡겼다는 거지? 꼭 그럴 가치가 있는 거야?”

[‘서약’을 한 기사라면 당연한 일이지. 그 내용은 뭐, 흔해 빠진 이야기일세. 지켜야 할 것을 못 지킨 ‘기사’가 숙적을 쫓아 산을 넘고, 바다를 넘고, 나락까지 가서 ‘나락의 왕’과 계약해서 심연의 존재가 되고, 그것도 넘어서 ‘성좌’들과 계약을 하고 무수한 세월을 기다려 여기 도달한 거지.]

태연하게 말했지만, 유성원에겐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엄청난 세월을 바쳐 저 암군대장군을 쫓은 가울프의 집념에 경악하며 유성원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되는데?”

[흐음~ 뭐, 지금은 계약자의 아래에서 싸우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신들의 기록 속에 있다가 또 누군가의 부름에 불려 나가 싸우겠지. 그것을 조건으로 계약한 것이니 말이야. 아무튼 계약자에겐 감사하고 있다. 덕분에 고대하던 숙적을 만났으니.]

“…….”

가울프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유성원은 아직도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서약’ 하나를 위해 영원한 안식 없이 신들의 장기말로 전전하며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 신세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남겨 둔 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1/???]

[???]

“뭐, 아무튼 이겼으면 된 거지. 그럼 남은 병력은… 어?”

[그어어어!]

[그아아아앗!]

[으아아아! 끼이이이이!]

대장을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사령병들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암군의 사령병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열려 있던 던전까지 그대로 문이 닫히면서 시코쿠 섬은 텅 비어 가고 있었다.

놀란 유성원은 지도를 열어 상황을 확인하고는 가울프에게 물었다.

“가울프, 네가 했냐?”

[아니, 나는 다른 것을 받기로 했는데? 아마 성좌 66천마의 룰인가 보군. 군을 지휘하는 대장이 사라지면 휘하 부대와 던전이 모두 사라지는 식인가?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 사기적이긴 했지.]

무한(無限)의 병력. 그것도 단순한 머리의 몬스터가 아니고 다들 각자 무용과 전투 기술을 가진 자들을 무한히 끌어 쓸 수 있으며 그 휘하 병력의 종류도 다양하고 전술, 전략적인 통제도 가능하다.

바다를 못 건넌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오직 일본에 자리 잡아서 생긴 문제일 뿐, 대륙에 성좌 66천마가 자리 잡았다면 아마 그런 문제를 느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뭐,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게다가 던전 밖의 놈들은 마정석을 이렇게 두고 사라지니 말이야. 보자. 나는… 이제 왔군. 아마 계약자 그대에게도 갔을 텐데?]

“아, 왔다.”

[‘성좌 66천마’의 사도 암군대장군을 쓰러뜨리고, ‘서약’에서 해방된 가울프 경이 ‘영웅 등급:성 소환’을 습득했습니다.]

[(영웅)성 소환(Summon Castle)]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건축물인 성을 소환합니다. 양식 및 구성, 규모는 소환자의 능력치와 위상, 위업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 걔네가 쓰던 스킬이구나.”

한눈에 암군대장군이 보유하고 있던 스킬임을 안 유성원은 확실히 좋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서나 머물 수 있는 건축물을 소환하는 스킬은 확실히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 갑자기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났다.

[심연의 기사 ‘가울프’ 경이 보상인 ‘영웅 등급:성 소환’ 스킬을 당신에게 양도하고자 합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야, 이걸 왜 날 줘?”

[승리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서약’을 이룬 것만 해도 충분하다, 계약자여.]

“아니, 네가 얻었잖아.”

[어차피 내가 가져 봐야 이곳에서의 싸움이 끝나고 ‘신들의 기록’으로 돌아가면 없어질 물건이다. 그러니 계약자가 받는 게 낫지.]

가울프의 말을 들은 유성원은 어떤 의미인지 금방 깨달았다. 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것을 승낙하여 성 소환 스킬을 받았다.

그러고는 시험 삼아 작동해 보니 마치 게임처럼 어느 위치에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조감도 같은 게 나오면서 실행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성의 양식은 유성원의 기사(騎士) 특성 탓인지 서양식 성의 모습이었다.

“으음… 이건 도움이 되겠네. 어라? 누님, 언제 오셨나요? 진지 구축은요?”

“이쪽 일이 걱정되어서 왔습니다. 보아하니 싸움은 잘 해결된 것 같은데… 문제가 바로 하나 더 생겼습니다.”

“문제요?”

“이 시코쿠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싶어 유성원은 크게 당황했다. 그러자 신소미는 자신이 탐색한 것을 기반으로 유성원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방사선이 나오는 부분에서 조사를 시작해 본 결과 폐기물과 쓰레기들이 투하된 것을 알 수 있었고, 이곳에 숨어 살던 인간들이 그것을 이용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지금 몇 군데 찾아보니… 일단 지하 시설이 있는 건물이라든가, 오래전에 지어 둔 셸터 같은 곳을 거점으로 해서 지내고 있더군요.”

“아니, 일본 정부가 이걸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왜 안 구했대요?”

“그 사정은 또 따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러 방치했거나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던 것일 수도 있죠. 어쩌면 스캐빈저 무리일지도 모르고요.”

“하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아슬아슬하게 가울프가 암군을 이기자마자 이번엔 또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코쿠에 살고 있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어떤 사정으로 이곳에서 지내게 된 것일까?

일본 정부가 버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사람들이 있는 장소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아아~ 암군대장군이 쓰러지고 던전이 닫혔다는 거 알면 금방 좋다고 들어올 텐데……. 가울프! 섬멸! 크록베인! 아칼론! 지금부터 한시라도 빨리 이 섬에 거주하고 있는 인간들의 영역을 찾아내! 그리고 거기 대표나 리더를 데려와!”

“알겠습니다, 단장님.”

[명대로 하지.]

“나는 일본 정부에 연락해서 상륙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다행히 던전들 다 사라져서 마정석들 떨어져 있으니까! 그걸로 시간을 벌겠어. 그리고 엘드라엔! 혹시 날씨 바꾸는 마법도 가능해? 드래곤이니 불가능한 건 없겠지?”

[기상 변화급 마법은 특별 옵션이라 가격이 좀 비싸다만? 뭐, 너라면 충분히 낼 수 있겠지.]

드론으로 촬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액을 들여 엘드라엔에게 기상 변화까지 시키는 유성원이었다.

그녀가 마법을 쓰자 먹구름이 몰려들고 비바람이 몰아쳐 도저히 드론이 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광경을 확인한 유성원은 수송기로 돌아와서 일본 정부에 일방적인 통보를 하였다.

“…아무튼 암군 놈들 잡고 난 뒤에 마정석들이 깔렸어. 그러니까 내가 여기 마정석들 다 회수할 때까지 절대 오지 마라. 오는 놈은 무조건 스캐빈저로 알겠다. 이상! 좋아. 이것도 해결됐고… 밖에는 이제 갑작스러운 태풍이 불어서 드론이든 비행기든 사용 못하겠지. 배로 사람이 오려면 시간 좀 걸릴 거고, 걸리면 내 손에 다 아작 나는 거고…….”

“이다음은 이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뿐이네요.”

“참고로 저 일본어 못하니, 누님이 통역 좀 해 주십시오. 실시간 통역기를 써도 좋긴 한데, 사투리 같은 게 있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알았어요.”

잠시 후, 기사들이 하나둘 부랑자 같은 패션을 한 사람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꾀죄죄한 몰골에 대충 누더기 같은 것을 걸치고, 썩은 내가 물씬 풍기는 노인과 중년 남성들은 유성원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なぜ! なぜ… 今……!”

“뭐라는 거야?”

“왜 지금에서야 왔냐고 하는 것 같네요.”

일본어를 모르기에 유성원은 태연히 그들의 분노를 받아들였다.

또한 내용을 알고 나서도 어차피 자신들은 일본 정부나 그쪽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태연했다.

오히려 놀란 것은 이곳 시코쿠에 숨어 살던 사람들로, 자신들을 구하러 온 게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 더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한국인이 우리를? 아니, 어떻게 여길 온 겁니까?”

“일본 정부와 계약해서 시코쿠에 있는 몬스터를 잡으러 온 것입니다. 그보다 여러분은 어째서 이곳에 살고 계셨습니까?”

“살아? 그 말엔 어폐가 있군. 우리는… 우리는 버려진 것이야. 그 망할 정부 놈들! 비행기와 배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가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알렸는데! 마치 우리를 없는 인간 취급했어!”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우리는 각성자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몬스터 사태가 일어났지만 그때는 일본 전역이 문제라서 어찌어찌 이겨 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바로 성좌 66천마의 군대, 그중 암군(暗軍) 무한의 사령병(邪靈兵)들이 이곳에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한 사태에 육지로 대피하지 못한 인원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본 정부에 계속 구원 요청을 하면서 기존에 만들어 놓은 몬스터 대피 시설에서 버티고 있었다.

줄어드는 식량과 식수, 계속해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령들을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 언젠가 구하러 오겠지 기대하면서도 어떻게든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육지로 사람을 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본토는… 정부는 우릴 시코쿠에 불법 점거 중인 스캐빈저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구원 요청을 하러 넘어간 인원은 그대로 죽어 버렸고, 심지어 소중한 우리 고향땅에 망할 쓰레기와 폐기물들을 버리기 시작했죠. 어차피… 어차피 항의할 국민이 없는 땅이니 말입니다.”

“아마 안 좋은 면을 감추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 ‘어느 가족’이었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임에도 일본의 어두운 부분을 표현했다고 정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날조라고 비난했으니까요.”

“네. 바로 그겁니다.”

시코쿠에 남은 시민들이 있고, 그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의롭고 올바른 일본 정부를 지향하는 그들에겐 매우 창피하고 부끄러운 진실이었다.

‘정의롭고 훌륭한 일본 정부가 자국민을 버렸을 리 없다! 자국민을 구하지 못할 리가 없다! 너희는 스캐빈저다! 그러면 조국의 명예는 해치지 않는다! 그렇게 조국을 위해 죽어라!’

그러니 차라리 그곳에 사는 이들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스캐빈저로 규정해 버리면 사악한 스캐빈저를 토벌하는 일본 정부라는 식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항의할 주민이 없어진 시코쿠는 그대로 각종 폐기물과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땅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사실상… 사실상 우린 이미… 없는 인간 취급입니다. 이제 와서 밝혀진다고 한들 부라쿠민(部落民) 취급이겠지요. 후쿠시마 때처럼…….”

“아, 아니, 기무라 상,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럼 내 말이 틀렸나? 우리 꼴을 보게! 죽지 못해서 쓰레기장과 폐기물을 뒤지는 꼴을! 원시인처럼 사냥과 채집하는 꼴을! 수십 년째 이러고 있지 않나!”

유성원 측에게 그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하다 보니 울분이 터진 듯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지르는 기무라였다.

문명을 누리던 인간이었는데, 믿었던 정부와 사회가 ‘체면’ 때문에 자신들을 버렸고, 심지어 외국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처지가 얼마나 한스러웠겠는가?

그런데도 살아남겠다고 수십 년간 쓰레기와 폐기물을 이용해서 바득바득 버텨 온 게 이들이었다.

“음… 그러면 뭐, 한국에라도 갈래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아닌, 제 영역 같은 곳이지만 말이죠. 라고 제안해 줄래요? 제약이 좀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여기 생활보다는 나을 거라는 내용도 포함해 주세요.”

사정을 다 들은 유성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신소미에게 자신의 제안을 전해 달라고 했다.

“진심이신가요?”

“…알게 된 이상 두고 갈 수도 없고, 이미 정부에서 버린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나라도 챙겨야죠. 망할 ‘기사도’ 님도 약자는 지키라고 하셨으니까요. 돈이야 더 열심히 벌면 그만이고…….”

“하지만 한국엔 어떻게 데려가려고요? 한두 사람이 아닐 텐데…….”

“수단이야 많죠. 비싸도 엘드라엔 마법으로 해 보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구요. 남은 건 저 사람들의 의사죠. 그러니 어서 물어봐 주세요.”

유성원의 제안을 들은 신소미는 곧바로 일본어로 번역해서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들은 서로 웅성거리면서 토의하더니, 곧 기무라라고 하는 중년 남성이 손을 들고 유성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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