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58화 (158/293)

[158화]

아이언 포트리스.

그렇게 유성원 일행의 일본 원정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나 협회의 상황을 슬쩍 보니, 역시 일본이라는 자극제는 치트키인 듯 정부 주재 회의부터 열리기 시작해서 그 침착한 협회장이 창문을 열고 날아갔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였다.

“음~ 역시 일본이야. 효과가 아주 죽여주네. 자다가도 일어날 기세로 일하기 시작하는구만. 그보다 어르신이 승낙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일본보다도… 성좌 66천마도 만만치 않은 문제이니 말이야.”

어제저녁, 유성원 일행은 주요 멤버들을 모아서 회의를 했다.

그런데 백가연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멤버들이 OK를 하여 오늘 아침 단숨에 인터뷰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용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일본 측 대사와 함께 간단한 인터뷰와 원정에 대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언제 일본에 원정대를 보낼지는 나중에 연락하기로 합의를 본 뒤에 인터뷰를 끝마쳤다.

“성좌 66천마(六六天魔). ‘전쟁’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성좌이지. 다만 흔한 전쟁의 신들처럼 ‘용맹’이라든가, 영웅적인 기상, 무용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저 ‘전쟁’이 계속되는 걸 좋아해서 문제야.”

『すべて殺す! 殺す! 殺す! 戦い(전부 죽여라! 죽여! 죽여! 싸움이)…….』

자막과 함께 나오는 영상에서는 거대한 일본식 갑옷을 두른 무장의 영혼이 해골로 이루어진 말을 타고 전쟁터를 누비고 있었다.

자위대의 후신인 일본 방위군과 헌터 특무부대, 길드의 연합군이 맞섰지만 무장의 영혼을 비롯해서 뒤에 파도처럼 몰려오는 사령(邪靈) 군단을 막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이처럼 영혼을 사령(邪靈)들로 만들어 일으켜 세워서 계속 끝없이 싸우게 만드네.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행위만을 좋아하는 것이지.”

“사실상 언데드네요. 음, 티탄의 말뚝으론 힘들겠지만… 드디어 이것을 쓸 기회가 온 거네요.”

“그건…….”

성기사 프르제발스키의 랜스. 그가 결투에서 패배했을 때 주고 간 창이었다.

엄연히 S급 몬스터가 준 무기라서 딱히 처분할 곳도 없었고, 또 따로 쓸 일도 없었기에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딱 사용할 타이밍이 찾아온 것이었다.

순수 물리 무기인 티탄의 말뚝은 사령(邪靈)을 상대하기 곤란했지만, 이 성기사 프르제발스키의 랜스라면 성(聖) 속성이 깃들어 있는 만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전설)성기사 프르제발스키 경의 랜스]

장비 타입:기마창(Lance)

옵션:힘들고 고독한 길이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이 창은 결코 부서지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신을 위해서–이 창은 믿음으로 성(聖) 속성이 부여되었습니다.

지옥의 불길이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든–정신 상태 이상 면역

나는 두려움 없이 돌진하리라-탑승물 탑승 후 돌격 시 속도, 돌진력 증가, 신성한 방어막 생성

“대체 그 말 대가리 놈은 왜 이걸 나한테 쓰려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보면 전형적인 신성 타입 무구로 악령도 아닌 보통 인간이자 순수 물리 타입 기사인 유성원에게 사용하기엔 별로 메리트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나마 맨 위의 옵션만큼은 초고강도인 티탄의 말뚝에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긴 했지만 말이다.

“기사의 무기이니까요.”

“음, 맞아. 성기사라 불리하다고 해도 자신이 인정한 호적수에겐 자신의 애병을 드는 법이지.”

“저라도 자신의 전설을 써 내려간 무구라면 그걸 들겠죠.”

“무슨 변호인이냐? 아무튼 좀 가볍긴 하지만 나는 이걸 쓰면 되고. 보자… 그런데 일본에는 너희 전부 다 가지는 못해. 전선 도시 짓는 일도 계속해야 하고, 아이언 포트리스에 남아서 아이들도 보호해야지… 는 뭐, 이번엔 천검군 너희가 남는 게 좋겠다. 아칼론, 가울프, 섬멸, 크록베인. 이렇게 넷이 나랑 간다.”

이 넷을 뽑은 건 간단한 이치였다.

유청, 진석, 중한은 전선 도시 업무와 아이언 포트리스 업무의 주역이기도 했고, 선생님으로서 존경받고 있으며 전투 외의 일도 척척 해내는 만능 기사들이다.

반대로 가울프, 섬멸, 크록베인, 아칼론의 경우 아칼론을 제외하면 전부 전투에 집중된 타입이고, 실제로 그동안 전투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어필하던 차였다.

그리고 아칼론도 이 기지 내부 설비와는 호환성이 안 맞는 탓에 서로 은근히 충돌이 있어서 한번 바깥에 데리고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문제는 없지? 유청.”

“예. 합당한 인선이라 봅니다. 다만 기사분들 외에도 추가 인선은?”

“적절한 레벨 업 타이밍이니까 누님이랑 아영이도 데려갈 거고……. 음, 애들 중에 벌써 두각을 나타내거나 실전에 투입할 만한 애는 없지?”

“한 명 있긴 한데… 좀 더 훈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일단 사전 투입은 소수로 하고, 내가 더 레벨 업 하고 보상 뜯어내서 천검군 애들 확대 편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그럼 이 정도면 되겠네.”

그렇게 일본에 갈 인원과 기사들의 편성을 완료한 유성원은 곧바로 출동 준비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를 호출하여 내일 수송기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마쳤고, 갈 인원도 한정되었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가 완료되었다.

또 기타 무장이나 아이템은 사령(邪靈)을 상대로 쓸 성수 정도만 추가하는 게 전부라서 따로 신경 쓸 것은 없었다.

“갈아입을 옷이랑 소지품들만 챙기면 되겠네. 오히려 아영이랑 소미 누님이 바빠 보이네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요. 에휴~ 갑자기 은탄이랑 와이어랑 ‘신성 수류탄:더 할렐루야’랑… 꺼내야 할 게 얼마나 많다구요.”

“근데 그런 건 일본에서도 팔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대사령(邪靈) 장비 쪽은 아마 일본산이 더 효율이 좋을 거야. 차라리 뒤통수칠 염려를 생각해서 독이라든가, 다른 감지용 무장을 준비하는 게 좋을걸?”

“…어? 그런가? 그것도 그러네요!”

유성원의 말에 눈이 번뜩 뜨인 신아영은 가지고 갈 물건 리스트를 단숨에 바꾸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가득해서 대사령(邪靈)용 장비를 별도로 챙겨 가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성원의 말대로 그런 놈들이랑 싸워 온 일본이야말로 그쪽 장비가 더더욱 발전했을 게 분명했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마정석을 사용하는 탄환이라든가, 살상력이 높은 클레이모어나 폭약, 그리고 화력 장비 같은 게 발달했잖아. 아카데미아에서 배우지 않았나?”

“아… 그랬던 것 같기도……. 근데 아저씨는 의외로 잘 아네요?”

“나 아카데미아에서 9년 일했거든?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넘어 시도 쓴다는데~ 너네 듣는 강의를 9년 동안 귓등으로라도 들으면 머릿속에 새겨지게 마련이지. 뭐,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구멍숭숭 엉망이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쪽을 더 챙기도록 해.”

“그러고 보니 조선 시대 때는 유령 같은 게 나오면 거기다 양기(陽氣)를 뿌린다고 대포나 화약을 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그렇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챙겨 갈 무기와 장비를 계속해서 고르는 신아영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소미 또한 폭발력과 화력 위주로 장비를 챙겨 나갔다.

마정석으로 가공된 산더미 같은 폭약과 폭탄은 물론 포탄까지 든든하게 인벤토리에 챙겨 넣는 것도 모자라서 컨테이너 하나까지 빌려서 넣을 생각인 듯했다.

이 정도면 거의 후방에서 지원하는 저격수가 아니라 포병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법한 세팅들이었다.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네요. 원한다면 여기 남으셔도 돼요.”

“아뇨. 헌터의 길을 걷는 이상 싸우는 건 숙명이죠. 또 어차피 레벨 업 하려면 던전을 가야 하고, 싸워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리고… 좋은 일을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사실 우리 정부를 존X 꼽고 더럽게 만드는 거라 좋은 일은 아니죠. 아마 잘되면 저부터 족치려고 할걸요?”

“그래도 예전의 그 귀찮아, 귀찮아하던 때보단 멋있다고 생각해요.”

“아, 그렇지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어요. 일본 좀 도와줘서 우리 정부를 꼽게 만든 다음 정신 좀 차리면 대충 핑계 대고 돌아올 거예요. 진심으로 66천마를 제압할 생각도 없고, 적당히 돈만 벌다가 튈 생각이거든요.”

일본은 어디까지나 한국 자극제 역할일 뿐이라서 오랫동안 싸울 생각도 없고 어울릴 생각도 없었다.

적당히 돈 벌고 와서 전선 도시 사업을 마무리하고, 한국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게 유성원이 생각하는 목표였다.

“그렇게 해서 전선 도시에 자리 잡고 성좌 도살왕 애들 크는 거 계속 막고, 스캐빈저들 말려서 성좌 산거정 같은 꼴로 만들면 딱 맞을 것 같아요.”

“코어 던전은 공략할 생각 없나요?”

“너무 위험도가 높아요. S급, SS급의 목숨도 보장 못하는 게, 그곳은 성좌의 화신이 있는 곳이잖아요.”

성좌의 화신(化神:Avatar). 말 그대로다.

성좌 도살왕의 코어 던전엔 그가 직접 만들고 정신을 이은 화신이 자리하고 있어 거기에 가면 그것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천문의 살아 있는 경이요, 신 그 자체인 성좌를 상대한다는 건 보통 담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클리어하면 이제 그 악(惡) 성향 성좌는 더 이상 침략하지 못하게 되겠지만… 리스크가 너무 커요. 너무너무 커서 터질 지경이죠. 그래서 그냥 안 들어가고 나오는 거 관리하는 측이 더 많잖아요.”

“예. 그게 사실이죠.”

S급 헌터 이상이 아니면 비벼 볼 만하지도 않았기에 괜히 무리해서 헌터들을 밀어 넣었다가 성좌의 화신에게 죽거나 클리어하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국가적인 대손해였다.

그래서 대부분 코어 던전을 잘 클리어하지 않고, 성좌 산거정을 포위한 신강남처럼 방위선만 구축한 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지금 도박하기에는 짊어진 것도 많아서. 쩝~ 더더욱 무리일 것 같아요. 아무튼 일본 갈 준비 잘하시고… 그… 잘 다녀오도록 하죠.”

“예. 당신도 준비 잘하세요.”

“후우~”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듯 유성원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번 일본 원정을 무사히 다녀온 뒤 전선 도시의 틀을 완성해서 안정화만 시킨다면 아이언 포트리스와 함께 완벽한 자신의 영역이 구축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즉시 이 망할 임시 관리자 직을 아영이에게 넘겨주고, 완성된 전선 도시 안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함께 살자고 소미 누님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한 것이다.

‘쩝, 원정 준비 중에 말하는 건 역시 너무 노매너고, 무드도 없잖아. 다녀와서… 그… 올림푸스가 운영하는 호텔 같은 근사한 데로 가서… 거기서 제대로 격식을 갖춰서 이야기해야지.’

고블린 제국 던전 방문 때 했던 약속.

책임질 상황이 되면 이야기하겠다는 걸 기억하고 있던 유성원은 앞으로 전선 도시가 완성되어 거기에 자리 잡게 되면 어느 정도 그 상황에 부합하기에 그때 확실히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슬쩍 신소미의 왼쪽 손가락을 바라보며 ‘반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오전 11시 경.

일본 도쿄 헌터특무부대 기지.

협상에 하루, 협의서에 도장 찍는 데 반나절, 그리고 다음 날 곧바로 도착한 수송선에 트레일러와 각종 짐을 싣고 다시 일본으로 출발.

그렇게 원정 출발 후 약 2시간 만에 유성원 일행은 일본 도쿄에 있는 헌터 특무부대 기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해외라곤 해도 바로 옆 나라였기에 여행하는 기분 하나 없이 마치 그냥 지방에 놀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유성원은 창밖에 자리한 특무부대 기지를 바라보았다.

“…저것들 보니까 그래도 다른 나라라는 게 실감이 되는군. 후우우~”

“일본 길드는 처음 보는데… 뭔가 엄청나네요?”

군청색의 전투복을 입고 사열해 있는 헌터 특무부대원들과 반대편에는 마치 코스프레 현장처럼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일본 길드 조직원들의 모습이 명확하게 대비되었다.

한국은 아예 ‘길드’ 중심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속감을 중시하여 통일성 있는 디자인의 무장을 하는 반면, 일본 길드는 통일성이라곤 하나도 없고 완전히 게임 아바타처럼 자기가 꾸미고 싶은 대로 입고 서 있는 모습이 큰 차이점이었다.

“외양은 뭐, 상관없겠지. 나도 만만치 않으니까… 후우우~”

“아, 이건 지지 않겠네요.”

그 말대로 화려함에 있어서는 만만치 않은 황금 갑옷을 장착한 유성원은 몬스터 잡는 것보다 더 힘들고 귀찮은 인간을 상대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방위군이 열어 준 수송기 문을 걸어 나가 직접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