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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53화 (153/293)

[153화]

천하가 요동치면 자동적으로 군웅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3대 길드에 짓눌려서 야망을 펼치지 못하던 중상위권 길드들은 청룡 길드의 몰락 소식을 듣고는 드디어 자신들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움직일 준비에 들어갔다.

3대 길드가 기존 한국의 헌터계를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역시 C급 던전을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C급 던전을 통제하려면 결국 자본과의 협력이 필수지!”

“기존 청룡 길드와 연을 맺었던 기업과의 커넥션을 가져와야 한다!”

“다른 길드에 빼앗기지 마라! 3대 길드가 없는 이상! 이번에야말로 우리 아발론 길드가 차기 3대 길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청룡 길드의 유산을 빼앗아야 해!”

“어차피 정점은 유성원이 차지했으니 우린 그다음 자리를 노린다아아!”

그야말로 전국 시대. 기존에 청룡 길드와 서울 길드에서 일하던 스캐빈저들도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각자 흩어져서 손잡게 되고, 청룡 길드의 유산을 차지하려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협회와 정부는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러한 길드 분쟁을 말려 줄 만한 세력은 올림푸스 길드와 유성원 측뿐이었는데, 둘 다 나서는 데 소극적이었다.

“전선 도시 사업 바쁘니까 저기 올림푸스에게 물으세요. 또 이 기회에 전지아 양을 밀어주든지요. 아무튼 우린 청룡 길드 유산에 관심 없어요.”

“아이고…….”

유성원 측은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았기에 소극적인 입장이었고, 올림푸스 길드는 그들 역시 청룡 길드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움직이는 입장이라서 나서지 않은 것이다.

결국 서울의 신강남 다음으로 번영했던 청룡 길드의 인공섬 도시는 다시 한 번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청룡 길드의 유산은 우리 거다!”

“이히히! 이 많은! 연구 결과물! 던전 공략 데이터! 장비 데이터! 이히히히힛!”

“역시 소문난 맛집이라서 건질 게 많군.”

“게다가 애들도 약해 빠져서 아주 맛집이야, 그냥! 제길! 극천대 길드다! 도망쳐! 저놈들은 진퉁이야!”

약탈과 파괴. 바로 다리 하나 건너에 있는 인천은 평화로운 반면 절대적으로 안전할 거라 믿었던 이 청룡 길드의 인공섬은 지금 지옥 같은 풍경이었다.

그나마 민간인들은 청룡 길드에서 대피 소식을 전해 왔을 때 미리 대피하긴 했지만, 약한 길드에서는 뭐라도 얻어 가기 위해 그들이 살던 아파트와 주택을 모조리 헤집고 있었다.

“…정말 저걸 그대로 볼 겁니까? 트리토니아스 님.”

“이런 일이 어디 하루, 이틀이야? 뭐, 인공섬 밖에서 지랄하면 죽여 버린다고 하긴 했어. 그리고 어차피 우리 가지고는 포스가 약해서 말려도 안 말려져……. 유성원 정도는 와야지 먹히지. 하늘에 딱 황금용 타고 앉아 있으면 다들 지릴걸?”

“끄으으응! 안 온다니까 문제이지요.”

“그야 시시한 질서 유지나 시키니까 그렇지. 떡고물이 있으면 왜 안 올까? 우리도 그거 때문에 여기 온 거지만~”

어깨를 으쓱거린 트리토니아스는 협회 직원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가서 올림푸스 길드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익이 있을 때는 확실히 일하는 스타일이라서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수 없었으리라.

항상 국제적 전선 활동으로 바쁜지라 비용 문제에 대해 민감하기도 했으니, 청룡 길드의 유산을 챙기는 일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

다음 날, 아이언 포트리스 대련장.

다른 길드들이 청룡 길드의 유산을 놓고 싸우거나 말거나, 현재 유성원 측은 쌓아 놓은 일이 많아서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일의 해결을 위해 그동안 진석과 유청이 그렇게 말하고 말하던 보급대장 ‘중한’을 소환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전선 도시 건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각성한 사건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아지기도 했고, 청룡 길드장 고천수를 쓰러뜨리고 얻은 보상 포인트가 남아서 기어이 시도하는 유성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소환했는데 다른 기사가 나오면 어쩌지?”

“그럼 나올 수밖에 없게 해야겠죠.”

“그걸 어떻게 하냐고. 확실한 방법이 있는 거야? 아무튼 마법진은 그렸는데…….”

마도 기사 카일라이드의 소환술로 이미 매개물을 올릴 마법진은 그려 두었다.

문제는 역시 무엇을 올려야 확정 소환이 가능하냐인데…….

유성원은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유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청이 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준비는 되어 있사옵니다, 폐하.”

“딴 거 나오면 난 모른다.”

“걱정 마시지요. 읏챠.”

그러고는 허리에서 검을 뽑아서 조심스럽게 마법진에 올려놓는 유청.

평소 거의 뽑을 일이 없던지라 들고 있는 줄도 몰랐던 물건이었지만, 꾸준히 관리했는지 예리함은 살아 있었다.

유청이 그것을 올려놓자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한 유성원은 상태창을 열고 조작해 나갔다.

“후우… 그럼 간다.”

[보상 포인트를 소모하여 ‘기사 소환’을 실행하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소환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특히나 특정 기사를 뽑아야 하는 소환이었기에 평소보다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는데……. 마법진에서 빛이 나면서 그 위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인간… 이니까 어느 정도 맞나?’

“…왔군요.”

확신하는 듯한 유청의 말을 뒤로하고, 유성원은 서서히 빛이 사라지는 소환진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천검군의 상징인 흰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군복 타입의 제복을 입은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여성은 허리엔 얇은 검을 차고 한 손엔 서류철을 들고 있었는데, 은은한 검푸른 빛의 세미롱 헤어에 안경을 쓴 이지적인 미인이었다.

신소미와 유사한 느낌이었지만, 그녀는 현명하며 차분한 느낌이라면 저쪽은 냉철하고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천검군 보급대장 ‘중한’이 소환되었습니다.]

“뭐야? 여, 여성이었어? 중한인데?”

가장 경악한 이는 유성원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지기로는 고기를 철근처럼 씹어 먹고 돌덩이를 맨손으로 옮길 것 같은 거한의 이미지였는데, 나타난 것은 지적인 미인이라는 점에 깜짝 놀란 것이었다.

“오, 역시 성공했군요. 음? 폐하, 왜 그러십니까?”

“…아니, 보급관이라며? 나는 이런 모습일 줄은…….”

“‘중’ 가문의 여식인 한(翰)이라고 하옵니다. 음… 청의 말을 들어 보니 폐하께서 저희의 지도자이시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 잘 부탁합니다.”

꾸벅.

미모도 미모였지만, 워낙 우아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져서 유성원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빠르게 그녀의 예의 있는 인사를 받아 주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보급관이 미녀인 것도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무섭도록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에 솔직히 속으로 쫄았다.

‘나 이런 타입이랑은 영 친해지기 어려운데…….’

“아무튼 신(臣) 중한, 보급대장으로서 폐하를 위해 분골쇄신하여 일하겠사온데, 청이 하나 있습니다.”

“어? 뭔데?”

“잠깐 무례한 모습을 보여도 용서해 주시길.”

짜아악!

그렇게 말하곤 중한은 벌떡 일어서더니 그대로 유청에게 다가가서 뺨을 시원하게 갈겨 버렸다.

난데없는 폭력 사태에 유성원은 당황했지만 끼어들 틈새가 안 보였다.

중한이 이어서 유청의 멱살을 잡으면서 아침 드라마 같은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 죽고 싶어서 날 부른 거죠?”

“아뇨. 중한 경의 힘이 필요해서 부른 겁니다.”

“그러면 곱게 부를 것이지, 내 목숨을 빼앗은 칼로 날 불러요?”

“이 소환이라는 게… 좀 불확실해서 확정적으로 부르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뭔가 충격적인 이야기가 계속해서 오가는 가운데, 유성원이 당황하면서도 최대한 정황을 파악해 보려고 하는 순간 또 한 번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목숨을 빼앗은 칼? 문맥상으로 보면 유청이 중한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더 골 때리는 건 그런 중한을 부르자고 강하게 주장한 것이 유청이었다는 점이다.

‘…뭔가 심히 복잡해 보이네. 그런데 유청 저놈도 진심 미친놈이구나.’

“아무튼 그때의 일은 저 먼 시간과 공간 너머의 일이니 묻어 두고, 지금은 저희를 소환해 주신 이 주군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봅시다, 여보.”

“…여보? 심지어 부인이었어? 야이 미친놈아!”

그리고 유청의 입에서 나온 또 다른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결국 유성원은 도저히 못 참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중한’이라는 기사가 유청의 부인인 것도 충격과 공포였지만, 심지어 인과 관계를 들어 보면 자신의 부인을 손수 죽이기까지 했는데 지금 여기에 부른 것도 그였으니 아주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예, 폐하.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말이죠.”

“무슨 사정이 있어서 자기 마누라를 죽여?”

“그녀 집안의 막냇동생이 태자비(太子妃)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외척은 늘 황권에 거대한 위협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처리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니라서… 그래서 제가 손수 처리하고 저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 사람 뒤를 따라갔었습니다.”

“아니…….”

엄연히 자기가 겪은 일인데 마치 남의 일인 양 태연히 말하는 유청의 태도에 유성원은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역시 높으신 분이나 위대한 인물은 생각하는 가치가 다른 건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자 이번엔 중한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성원에게 다가왔다.

“하아~ 폐하께선 모르셨겠지만 저 사람, 그런 인간입니다. 머릿속엔 온통 나라와 주군에 관한 것뿐이지요. 아무튼 이번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시대나 상황이 다르니 말이죠. 자, 회포는 나중에 풀고… 중한 경, 바로 봐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저도 이리저리 배워서 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잘 안 되는 게 있어서…….”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 저 관계도……. 그리고 저 미친 유청도 유청이지만, 한 대 때린 걸로 딱 끝맺어 버리고 갑자기 일 모드로 들어가 버리는 저 여자도 만만치 않은 것 같네.’

급속도로 일 모드로 들어간 둘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는 유성원이었다.

서로 죽고 죽인 사이니 뭐니 하면서 계속 싸울 줄 알았는데, 아까 전 으르렁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둘 다 이미 업무 모드에 돌입한 뒤였다.

“으음… 이거 단순히 봐도 심각한 게 많군요. 하지만 일단은 이곳의 물류와 유통, 경제에 관한 것부터 배워야겠습니다. 그쪽으로 안내해 주세요, 유청 경.”

“아, 그렇지만 이번엔 예전과 다르게 재정이 매우 풍족한 진영이니 힘 좀 빼셔도 좋습니다.”

“재정이 풍족하면 더더욱 손볼 곳이 많겠군요. 풍족하면 풍족할수록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득실거릴 테니 말이죠.”

자신에게 맞는 전장에 온 듯 당당히 걸으며 살벌하게 눈빛을 빛내는 중한을 본 유성원은 그녀를 소환한 것이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유청 하나만 해도 귀찮을 정도로 시달리는데, 저 깐깐한 여자 보급관이 반대편에 붙어서 난리 피우는 걸 상상하자 벌써부터 위장이 쪼그라들 듯이 아파져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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