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그 시각, 고천수의 패배와 동시에 그 대가로 모든 가호와 힘이 거두어지자마자 청룡 길드 내부에서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던전에 가 있는 인원과 한창 스캐빈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인원 모두에게도 변고가 생겼다.
“가, 갑자기 힘이…….”
“청룡쾌… 왜 기가 사라지는 거야?”
“으아아악!”
“청룡 님! 청룡 님! 청룡 니이이임!”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와 함께 가호를 빼앗긴 청룡 길드의 모든 인원들은 급격히 약해졌고, 무기나 방어구 역시 먼지처럼 부서지거나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한때 한국 최고의 길드였던 곳이라도 성좌가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면서, 그들이 상대하던 몬스터와 스캐빈저들은 변고 속에서 얻을 리 없는 승리를 얻게 되었다.
“뭐지? 갑자기 자기들끼리 난리 부리던데?”
“성좌 청룡이 사라졌다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거래?”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것은 현재 청룡 길드의 거주지인 인공섬에 있는 이들도 알 수 있었다.
고천용과 채지영은 자신들의 몸에서 청룡이 준 힘과 가호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는 결투에 나간 고천수가 결국 패배했음을 깨달았다.
“형님……! 큭!”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결국은 깨졌네. 에휴~”
“이건 뭔가 변고가 터진 게 틀림이 없어! 그 망할 자식이 뭔가 수작을…….”
“그랬다면 ‘청룡’ 님께서 가호를 거두실 리가 없잖아요. 완전히 패배한 거예요. 우리 길드장님은……. 에휴~ 레벨 다운에다 패시브랑 스킬 다 빠지고 보검도 사라져서 아슬아슬하게 B급이네.”
자신의 스테이터스와 스킬을 확인하며 내뱉는 채지영의 말에 고천용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형님은 패배했고 그 여파로 성좌 청룡은 큰 실망을 하게 되어 자신들을 떠난 것이리라.
만약 상대가 비겁한 수를 써서 이긴 거라면 당장 자신들에게 와서 복수하라고 하면서 새로운 ‘투쟁’을 지시했을 게 분명했다.
“이런… 젠장!”
“빨리 몸 숨길 준비나 해야겠다. 우리 다 B급따리 된 거 알면 애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테니 말이야.”
“난 아직 A급이다!”
“어휴, 잘났어요. 하지만 X 된 건 똑같잖아. 일단 가족 데리고 빨리 몸부터 숨겨야 해. 우리에게 원한 가진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요? 빨리! 빨리!”
그렇게 청룡 길드의 최중요 간부였던 고천용과 채지영도 성좌의 가호가 사라지자 S급이라는 특별한 등급에서 일반적인 헌터 등급으로 떨어져 버렸고, 그런 만큼 원한을 가진 이들에게 노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도망칠 준비를 시작했다.
동시에 이 소식은 협회에도 알려졌는데, 오랫동안 사고 안 치고 조용했던 유성원에 의해 또 커다란 사고가 터지자 협회는 다시금 난리가 났다.
협회장은 곧바로 아이언 포트리스에 사람을 보내 따졌다.
“아니…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대체 어떻게 했기에? 청룡 길드를 어떻게 한 큐에 날려 버리실 수 있었습니까?”
“대장끼리 판돈 올인하고 성좌에 맹세까지 해서 결투한 다음 이겼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고?”
“…그, 그렇더라도 날리진 말고, 그… 좀 더 온건한 해결책이… 아니,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S급이 단숨에 3명이 더 줄어 버리는데…….”
“내 알 바 아니야. 결투 신청은 저쪽에서 했고, 성좌님도 인정할 정도로 깨끗하게 끝났고, 이건 그 결과다. 우리도 바쁘니까 얼른 가.”
하나, 유성원이 이 현상 자체가 성좌가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협회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천문 너머에 있는 절대적 존재에게 무엇을 따질 수 있겠는가?
그저 이런 결투를 먼저 제안한 고천수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 뒤 협회로 돌아간 협회 간부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협회장을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고, 그렇게 대한민국 S급 현황이 또 한 번 급변하자 협회장은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단 1년 만에 S급 5명이 날아갔군요. 하아아아아~”
“이러면 한국 헌터계는 유성원 헌터가 주름잡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경쟁 상대조차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앞으로 국정 운영을 비롯해서 국가의 운명에 그의 영향이 더욱 절대적이 되었군요.”
이제 대한민국 S급 헌터 중에서 유성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남부 지역을 맡은 전지아 헌터와 협회장, 그리고 올림푸스 길드밖에 남지 않았다.
그 외 나머지는 모조리 죽거나 랭크 다운이 되어 버린 상황.
반면 유성원 측은 최충선, 백가연, 신소미에 본인까지 포함해서 최소 넷이나 S급 이상의 헌터들을 보유한 데다 기사들까지 합하면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니 이젠 무엇을 해도 유성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후우~ 여러분, 절대 그의 심기조차 거스르면 안 됩니다. 중상위급 길드장들을 모두 소집하세요. 새로운 질서를 잡아야 합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스캐빈저들도 강력히 통제하십시오. 뒷배가 없어진 것도 없어진 것이지만, 함부로 행동하는 놈은 저 친구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 두자고 생각한 협회장은 부디 조국이 혼돈과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3대 길드의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이번엔 그 질서를 바로잡아야 했다.
***
아이언 포트리스.
협회 간부가 떠난 아이언 포트리스는 현재 또 다른 혼란을 맞이하고 있었다.
성좌 청룡은 본래 지구상에 뿌려 놓은 자신의 가호를 거둬들여서 유성원과 부하들에게 재분배하는 형태로 나눠 주었는데, 유성원은 자신과 기사들, 천검군 병사들이나 신소미 모녀 정도까지만 받은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 곧바로 만난 크록베인은 몸에 푸른 비늘이 돋아나서 능력치가 올랐고, 가울프는 못 보던 푸른 검을 들고 있었다.
또한 아칼론은 에너지 팩을 추가 장착했고, 섬멸은 ‘블루 드레이크’라고 하는 새로운 탈것이 생긴 것을 자랑해 왔다.
유청과 진석은 각자 추가 패시브 스킬이 붙었다면서 좋아했고, 신소미와 신아영도 고급 스킬을 얻었다며 좋아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애들 중에 갑자기 각성자가 250명이나 나왔다고요?”
“그렇다네. 게다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나 어르신들도 갑자기 병이 낫거나 벌떡 일어서는 등등 장애가 사라지기까지 했네. 대체 뭘 한 건가?”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성좌 청룡 님과 거래했는데… 그분이 지구상에 있는 가호와 힘을 모두 거둬들이고 저랑 제 부하들에게 재분배를… 아니, 저기요? 애들은 제 부하가 아니에요! 성좌님! 청룡 니이임!”
“하아아~ 그런 거였군. 청룡 길드는 엄연히 국내 최대 세력인 만큼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네. 그 힘을 다 거둬들여서 재분배를 했다고 치면 자네와 기사들뿐만 아니라 아래로 쭈욱 퍼질 수밖에 없지.”
기사들과 주변 지인으로만 분배를 한정하다 보니 너무 많은 힘과 가호를 줘야 했다.
하여, 적절한 배분을 위해 결국 아래로 내리고, 내리고, 내리다 보니 청룡의 성향에 적합한 아이들에게까지 분배가 되었고, 그러고도 남아서 돌보고 있는 장애인들까지 다 고쳐 주었다는 것이었다.
“몸이 멀쩡해진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지금 감사하다면서 난리일세. 일단은 여기서 나은 게 되었으니 말일세.”
“뭐, 건강해진 건 그래도 잘된 일이긴 하네요.”
“아, 그리고 ‘폐하 만세!’라고 하더군.”
“…잘된 게 아니네요. 으아악! 아무튼 애들은… 어르신이 봐 주실 거죠?”
“나 지금 하는 일도 있는데… 아카데미아에 보내지 그러나?”
“애들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죠. 괜히 다른 데 보낸다고 하면 애들이 무서워하니까요.”
아이언 포트리스에서 너무 잘 지내다 보니 단점이 하나 생겼다. 바로 아이들이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과연 각성했다고 해서 아이들을 아카데미아에 보낼 수 있을지, 그리고 보내더라도 애들이 잘 지낼지가 걱정스러운 유성원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진석이랑 유청에게 시켜야죠.”
“그 둘은 무슨 도X에몽인가? 뭐만 하면 나오는구먼.”
“대신 중한인지 중환자인지 보급대장 그 기사, 소환해 주기로 했어요. 게다가 지금 새로운 스킬인 투쟁의 위광 덕분에 천검군 소환에 드는 마력이 더더욱 줄어서 10포인트에 한 명이라, 300명 소환이 가능해요.”
“점점 더 말이 안 나오게 되는구먼. 그럼 순수 자네의 휘하에만 800명의 병사, 거기에 250명의 헌터 지망생까지 하면 1천 명이 넘게 되는군.”
고블린 병사들은 애매하지만 천검군 병사들은 충분히 현역 헌터급이었고, 게다가 각성자 250명은 더 큰 전력이었다.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아주 산으로 가라고 하는 듯 규모가 더 커지니, 둘 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리고 원래 4명의 기사들도 애들이랑 잘 어울리고 있고, 나름 통제도 돕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어쨌든 청룡 길드도 쓰러졌으니 이제는 진짜 평화롭겠네요.”
“뭐, 이쪽에 대항할 세력이 아예 없어졌으니 그렇겠지. 아무튼 축하하네. 천하 통일일세.”
“예예. 아, 맞다. 그리고…….”
“하나 방심하긴 이르지. 아마 그동안 3대 길드에 눌렸던 길드들에서 자네 아래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엄청 싸워 댈 게야. C급 던전 독식을 막아 줬으면 하는데… 뭔가?”
“아뇨. 됐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죠.”
다른 안건에 밀려서 유성원은 이야기하려던 걸 멈추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긴 했지만, 현재 그의 상태창에 수상한 체크 메시지가 생겼는데… 이게 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백가연 어르신의 말을 들으면서 유성원은 슬쩍 상태창을 띄워 그것을 응시했다.
[???]
[1/???]
‘…이게 대체 뭔지 모르겠네. 으으음~’
일단 정황적 증거로 봤을 때, 성좌 청룡이 지구를 떠난 순간 카운트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저 숫자는 자신의 손에 의해 지구를 떠나게 된 성좌의 수를 표시하는 것일 터였다.
문제는 ‘???’로 표기된 것들인데… 과연 저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아마 숫자 뒤의 물음표는 지구에 있는 성좌들의 수를 의미하는 거겠지? 물론 불분명하니까 표시 안 되는 거고… 위의 것이 문제인데…….’
알 수 없는 위의 표기를 봤을 때 자신에게 또 뭔가를 강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유성원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대충 성좌들을 지구에서 몰아내면 카운트가 올라갈 것이고, 아마 일정 수치가 되면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겠지만 그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면 끝까지 열지 않는 성격이었다.
‘…이번엔 우연히 수가 맞아서 다행이지. 애초에 다른 성좌를 처리하려면 보통 일이 아닌데… 어휴~’
악(惡) 성향 거대 세력만 해도 사도가 득실거리는 ‘코어 던전’을 공략해야 하고, 인류에 우호적인 성좌는 함부로 처리하면 역으로 스캐빈저나 마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 만큼 저 새로운 상태창에 대해선 일단 잊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유성원은 지금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아이언 포트리스의 일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