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그럼 양측, 준비되었으면 시작하겠습니다!”
아이언 포트리스 지하 대련장에서 디오메디아의 외침과 함께 결투는 시작되었다.
청룡이 새겨진 푸른 무복에 권갑을 두른 고천수와 여전히 찬란한 황금 갑옷에 티탄의 말뚝을 든 유성원이 서로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고천수는 곧바로 무은의 진을 시전했다.
“이 땅은 이제… 그 누구도 별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니! 무은(無恩)의 진!”
“음?”
쿵! 촤르르르륵!
연회색 빛의 아우라가 유성원과 고천수를 감싸면서 딱 둘이 결투하는 공간만큼 연회색의 벽이 둘러졌다.
그리고 유성원의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 갑옷은 해제되었고,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어진 티탄의 말뚝은 당연히 바닥에 떨어져 땅 밑을 파고들었다.
계획대로 되었다고 생각한 고천수는 품에서 약물 부스터 앰플을 꺼냈다.
“뭐야? 이거? 어라?”
“이건……!”
‘예상대로다!’
그는 유성원과 참관인으로 있는 백가연, 심판인 디오메디아 셋 모두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띠었다.
그래, 아무리 잘나 봐야 각성의 은혜 없이는 맨몸의 인간. 갑자기 그 능력이 사라졌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고천수는 마지막 신의 한 수인 약물 부스터를 자신의 몸에 꽂아 넣었다.
“스읍… 후우…….”
약물이 몸 안에 퍼지면서 느껴지는 이 감각. 과거 특수부대원이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각성자가 되고 난 뒤 오랫동안 잊고 잊었던, ‘그땐 정말로 치열하게 싸웠었지.’ 하는 기억을 되새기며 고천수는 품에 조심스레 숨겨 두었던 택티컬 나이프 두 자루를 꺼내 손에 쥐었다.
‘됐어. 이젠 절대 질 수 없다.’
“어어?”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서 기운이 넘치는 몸 상태를 확인한 고천수는 각성자만큼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유성원을 노리고 달려 나갔다.
승리를 확신하며 그는 유성원의 급소를 향해 자비 없이 나이프를 찔러 들어갔다.
한데, 잠시 당황하던 유성원은 피식하고 미소를 띠더니 등에 손을 올려서 무언가를 꺼내는 게 아닌가.
“짜잔! HKK-447 Calibur! 몬스터 헌팅용 자동 소총입니다.”
“아니, 무슨……!”
그것을 본 고천수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총이라니? 기사가 총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놀라는 가운데 유성원은 총을 겨눈 채 아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아카데미아 스태프들의 기본 장비 중 하나죠. 우리가 하는 업무 다 모르죠? 애들이 훈련용으로 상대하고 잡을 몬스터 운반, 인(人) 클래스 애들의 E급~F급 야생 던전 실습 시 호위, 가끔 정부 행사나 협회 일로 사열 정도는 해야 해서 훈련도 받는다고요.”
“…어떻게 내 수를 알아챈 거지?”
“알아챈 건 아니에요. 그냥 이거저거 대비하다 보니까 약점이 ‘저’뿐이더군요.”
결국 상대가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점을 찾아야 했다.
유성원은 고심에 고심을 반복한 끝에 자신의 약점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전설급 갑주, 스킬, 특성, 기사들 모두는 완벽을 능가하는 것들이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자기 자신만 나약한 인간 그대로였다.
“사실 이거만 대비한 게 아니에요. 혹시 정신 공격이라든가, 환각을 사용할까 봐 정신 단련도 했고, 그래도 안 될까 봐 깨어나기 위해 여기 이렇게 전기 자극을 주는 장치도 붙였죠. 그리고 맨몸 육박전도 생각해서 이런 것도 준비했고요.”
“…참 비겁하군. 조금은 오만해도 되었을 텐데. 심지어 총을 준비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지.”
“원래는 권총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해 보니까 갑옷 사이즈 조절이 자유로워서 소총이 낫겠더라고요.”
“큭…….”
이렇게 되면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천수는 낭패라고 생각하며 유성원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부스터까지 썼다고 한들 총알보다 빠를 순 없다.
게다가 저건 인간을 넘어 몬스터를 살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인간의 육체 따위는 스쳐도 팔다리가 찢겨 나갈 것이고, 여기는 엄폐물 하나 없는 결투장이기에 더더욱 도망치거나 몸을 숨길 곳도 없었다.
“자, 유언 한마디 정도는 하시죠.”
“후우, 자네에 대해 좀 더…….”
탕!
총성과 함께 고천수의 머리가 물 풍선처럼 터지면서 주변에 피와 뼈, 뇌수가 뿌려졌다.
그리고 남은 육체는 실이 끊어진 것처럼 그대로 땅에 쓰러졌고, 그걸로 끝.
3대 길드의 정점으로 한국을 지배하던 청룡의 길드장 고천수의 최후라기엔 너무나 허망하고 시시한 결말이었다.
“끝. 이겼네.”
유성원 또한 흥분도 뭣도 없는 승리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총을 메고 결투장을 빠져나왔다.
현장은 싸늘하리만큼 조용했는데, 심판 역할인 디오메디아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백가연도 이번엔 충격이 컸는지 안색이 파래진 채로 고천수의 시신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보자… 죽으니 역시 각성한 상태로 다시 돌아왔네. 갑옷도… 다시 입혀졌고. 읏챠, 말뚝은 넣어 두고… 역시나 각성이 풀린 상태에서 한 일은 그 잘난 기사도도 체크가 안 되는 군. 아, 너희 대장 시체는 너희가 챙겨. 손도 안 댈 테니까…….”
“…크윽! 예! 연락해서 챙기겠습니다.”
비서는 비통한 듯 입술을 깨물었지만 승패는 명백히 결정 났고,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혹시 몰라 아이언 포트리스 밖에 대기시켰던 청룡 길드의 스태프들을 전화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계약 내용 이수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차기 길드장이 고천용이던가? 걔한테 해야 하나?”
[‘성좌 청룡’이 당신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 역시 직접 납셨습니까?”
성좌급은 존재 레벨부터 다르기에 유성원은 나름 예의를 갖춰서 눈앞에 뜬 성좌의 상태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상대는 존재 위의 존재들인 만큼 건방 떨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아카데미아 시절부터 잘 배워 왔기에 즉시 몸이 반응한 것이었다.
[‘성좌 청룡’은 자신의 사도의 계획을 사전에 읽고 투쟁에서 승리한 당신의 용기와 지혜를 칭찬합니다. 훌륭하다고 한 번 더 말합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지만 말이죠.”
게임창으로 보면 ‘Well Played.’ 같은 느낌으로 칭찬을 해 주는 ‘성좌 청룡’이었다.
심지어 이모티콘까지 넣는 걸 보면 꽤 인간 친화적이면서도 승패엔 깔끔한 성격 같았다.
투쟁을 좋아한다고 해서 혹시 분노해서 저주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성좌 청룡’은 사도 고천수가 했던 계약을 대신 책임지고 이행하고자 합니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청룡 길드의 부하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분노해서 저항할 수도 있기에 성좌가 직접 해결해 준다고 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맹세도 지켰으니 이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려는 판국. 성좌 청룡은 유성원에게 계속해서 처리 방식을 제안해 왔다.
[‘성좌 청룡’이 당신에게 보상받을 방식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1. 현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가호를 받는 인원 모두를 당신에게 절대 복종시킨다. 단, 계약을 끊은 자는 손을 떠날 것이니 후환이 있을 수 있음.]
[2. 현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가호를 모두 거두고 그만큼 당신에게 맞는 형태로 재설정해 준다.]
[3. 현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가호를 모두 거두고 그만큼의 가치 있는 물건으로 지급한다.]
“뭔가… 엄청 세세하고 친절하시네요.”
[‘성좌 청룡’은 여기서는 재미를 볼 만큼 봤고, 당분간은 좀 쉬고 싶기에 정리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딱 보아도 1번은 자신의 대장을 죽인 적에게 복종하는 것이 되니 자존심 강한 이들이라면 대부분 성좌 청룡의 가호를 버리더라도 떠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니 계약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려면 역시 2번이나 3번을 선택해야 했는데, 그중 어떤 게 좋을지 궁리해 보는 유성원이었다.
“음… 그러면 2번으로 할게요. 어차피 돈이나 재보가 부족한 건 아니라서요. 저에게 맞는 형태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다른 것보단 낫겠죠.”
이미 청룡 길드를 타도한 시점에서 목적은 이루었으니 사실 보상이 뭐든 상관은 없었다.
알맞은 형태로 재설정해 준다는 게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스킬이나 가호가 늘어나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2번을 선택하는 것을 본 ‘성좌 청룡’은 지구상의 다른 이들에게서 힘을 거두고 당신을 비롯한 당신의 수하들에게 각자 보상 및 가호를 나누어 주겠다고 합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성좌 청룡’은 그럼 이제 자신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니 잘해 보라며 당신의 투쟁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어 줍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성좌 청룡의 상태창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차피 보상이나 가호는 알아서 내려 줄 터였다.
유성원은 이제 곧 청룡 길드가 사라진다는 걸 알리고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벌써부터 반응이 온 건지 고천수의 시신을 옮기던 청룡 길드원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아! 뭐야? 왜, 왜 청룡 님이? 청룡 님의 힘이!”
“목소리가 사라졌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했는지 놀라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이 기묘한 반응에 백가연 및 디오메디아도 황당해했지만, 이내 태연한 유성원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언가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음… 시작했나?”
“자네 짓인가 보군. 아무튼 승리를 축하하네.”
“예, 뭐~ 정확히는… 그… 청룡 님의 짓이죠. 아무튼 이걸로 청룡 길드는 끝입니다. 성좌님이 가호 다 거둬 가신대요. 우리한테 재분배해 주신다고 했고요. 그게 뭔지는…….”
[‘성좌 청룡’이 당신을 비롯한 당신의 휘하에게 지구상에 있는 가호와 권능의 재분배를 완료했습니다.]
[당신에겐 ‘청룡의 은혜 1개’와 ‘보상 포인트 3개’가 부여됩니다.]
설명하는 동안 유성원에게도 보상이 주어졌다.
지금은 S급 몬스터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보상 포인트가 무려 3개나 주어졌고, 또 특수한 보상인 청룡의 은혜가 하나 부여된 것이었다.
보상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며 그는 곧바로 ‘청룡의 은혜’를 눌러서 그 옵션을 확인해 보았다.
[청룡의 은혜]
투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특수한 스킬을 배우거나 장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단, 사용자의 자질에 따른 제약이 존재합니다.
“오… 이건 또 뭔가 굉장하네. 특수한 스킬이라니, 뭘까?”
[현재 당신이 청룡의 은혜로 얻을 수 있는 스킬]
(전설)‘투쟁’의 위광
(영웅)용의 역린
(전설)‘청룡 제1궁을 지키는 자’ 수문장-델 트라이드 소환
(영웅)청룡 무투병 소환
(영웅)청룡 기병 소환
…….
…….
…….
그것은 ‘성좌 청룡’을 따르면 얻을 수 있는 스킬이라든가, 성좌 청룡의 직속 사도급을 소환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블루 와이번이나 청아룡(靑牙龍) 같은 유사 용종 탈것을 얻을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웬만한 것은 다 가지고 있는 유성원이었기에 늘 그렇듯 패시브 스킬을 우선시하였고, 가장 위에 있는 (전설)‘투쟁’의 위광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게 딱 시너지 생길 것 같아서 좋네.’
[(전설)‘투쟁’의 위광]
싸우는 존재들 사이에서 당신은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 성좌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싸우는 자’들에 대한 카리스마, 매력이 대폭 상승하며 관련 스킬들에 유리한 효과를 얻습니다.
해당 스킬:‘패황 기사 유천의 천검군 소환’, ‘마도 기사 카일라이드의 소환술’, ‘천검군의 규율과 전투 지침’
*습득 시 보상 포인트 2개 소모
‘예상대로다. 천검군 병사들이 잔뜩 늘어날 것 같네. 바로 배우자.’
보상 포인트 2개를 쓰게 되지만 그래도 한 개가 남아 있어 결국 2개였다.
이러면 이제 유청과 진석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행정 보급관인 ‘중한’을 소환할 수 있게 되니 딱 좋았다.
그렇게 (전설)‘투쟁’의 위광을 배우면서 줄어든 천검군의 포인트를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또 하나의 상태창이 유성원의 눈앞에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
[1/???]
“…뭐야? 이건?”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무언가의 카운트가 올라갔고, 그 수상한 상태창을 보며 유성원은 굳은 듯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