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모두 잡았습니다, 폐하.”
“나가거나 도망친 놈은?”
“지하나 하수도로 나가지 않은 이상 없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아이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하아아아아~ 이거 큰일 났네.”
항복하든, 저항하든 직원들을 모두 구속해서 한곳에 모아 둔 천검군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 작업을 하거나 감금되어 있는 아이들을 모두 데려와서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체검사를 하여 학대 흔적이 있으면 찾아내고 진술도 받아 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원 체크가 먼저였다.
“아이들은 다 왔고… 여기서 돌보는 장애인분들은 아직인가? 진석은?”
“폐하, 문제가 생겼사옵니다.”
“문제? 혹시 숨겨 놓은 몬스터나 각성자라도 있던 거야? 아니면 던전 문이라도 열린 건가?”
“아닙니다. 이게 참 설명하기 애매한데… 아무튼 여기 대장인 그 마녀를 데리고 따라와 주십시오.”
진석의 묘한 반응이 신경 쓰인 유성원은 그의 말대로 박주변을 데리고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시설로 향했다.
사실 그가 있던 보호 시설에서는 군인들도 상태가 심각하면 약과 물자가 아깝다고 죽이는 판국이었기에 장애인들에 대한 보호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지금은 보호라도 하고 있으니 예전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눈앞에는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뭐야? 이거?”
안에는 수십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든 채로 팔에 링거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누워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하나 없거나 아니면 묶여 있거나 한,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자들뿐이었다.
언뜻 보면 시체를 모아 둔 것 같아서 섬뜩할 지경이었다.
대강 어떤 상황인지 느낌이 왔지만,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었던 유성원은 박주변의 입을 막고 있는 천을 풀고는 물어보았다.
“아줌씨, 저거 뭐야? 나도, 우리 애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좀 해 줄래?”
“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래? 모른다? 으음~ 추리해 볼까? 저 잠든 장애인분들 관리할 인력이랑 비용이 아까워서 얌전히 있게 약으로 재워 두고, 밖에다 내보일 때는 연기하는 사람을 섭외해서 해결하겠지. 댁들 성격이면 아마… 이거 한번 잠들면 영원히 못 일어나는 그런 약일 것 같은데?”
“…어, 어떻게 그걸?”
“그야 나도 댁처럼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던 놈 밑에서 자랐거든.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이건 하나도 안 변하네. 으음~ 보자… 진석 경, 혹시 이 건물 지하에 그… 뭐더라? 조교실? 재교육실? 핵심 교육실? 징벌방? 대충 이런 이름 가진 방 있지 않았어?”
진석에게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 예. 있었습니다. 뭐더라? 회개실이었나? 이름은 종교 시설 같으면서도 안쪽을 보니까 좀 수위가 약하지만 고문실? 비슷한 게 있더군요.”
“하하핫! 그렇지! 그렇지! 하하하하하핫! 있어야지! 없으면 재미없지! 하하하하하하핫! 어떻게 된 게 이 나라는 부정부패도 교과서식으로 하는 건지. 아니면 하다 보니 생각이 같아지는 건가?”
자신이 알던 썩은 보호 시설과 똑같다는 것에 슬픔이 섞인 광소를 터뜨리는 유성원이었다.
지금 그는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하하하핫! 하… 잡은 직원 중 유달리 체구가 크고, 건장하고 인상이 더러운 친구가 몇 명 있을 거야. 거기로 데려와. 그리고 이 아줌마 맡기는데, 죽이진 말고 솜씨 좀 발휘해 달라고 해. 어린애들과 장애인분들에게 군기 잡던 그 솜씨 말이야.”
“옙, 폐하. 대가를 치르게 하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요! 제,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정보든 뭐든 제가… 제가 다 말할 테니 거기만은 제… 으아아악!”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자행되었는지 모를 리 없는 박주변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눈치채고서는 이제야 유성원에게 빌 생각을 했지만, 늘 그렇듯 한번 떠난 버스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성원은 애초부터 그녀를 살려 둘 생각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하아아아아~”
그렇게 진석이 박주변 원장을 끌고 간 뒤, 홀로 남은 유성원은 안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의사를 불러와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아마 이 사람들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초부터 약으로 재워 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려 둔 이유는 더 볼 필요도 없이 시설에 보호하고 있는 인원이 많을수록 국가 지원금이 더 많이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보니까 진짜 깜깜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는 사이, 지하실에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올라왔다.
역시 약자들을 괴롭히던 ‘전문가(?)’의 솜씨답게 효과가 바로 나온 것이리라.
일단 병원에서 의사를 불러서 이 사람들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유성원은 곧바로 병원에 연락을 넣었다.
(예? 자매 복지원이요? 하지만 거기는…….)
“나 누군지 몰라? 돈 많아. 빨리 와. 사람은 한… 300명 넘게 있으니까 바쁠 거야.”
돈이라면 충분히 있다.
그리고 모자라면 또 이 망할 세상에서 뜯어내면 그만이다.
‘병원에 연락은 넣었고…….’
“아니! 당신들이 무슨 권한이 있어서 이러는 겁니까?”
“우린 오직 폐하의 명만을 듣는다. 넘어오면 즉시 벤다. 이미 두 번 보여 주었다.”
그렇게 장애인들의 숙소를 나와서 다시 직원들을 잡아 둔 곳으로 돌아가려는데, 입구에 경찰과 이 대전 지역의 길드 사람들, 그리고 군대가 들어오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입구에 세워 둔 천검군 병사들을 넘지 못하고 제지당하고 있었는데, 그냥 제지만 당하지는 않은 건지 바닥에 핏자국도 흥건했다.
“무슨 일이냐?”
“예, 폐하! 저자들이 감히 폐하의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오려고 했사옵니다.”
“유, 유성원 헌터! 이, 일단 이자들부터 치워 보시오.”
“지금 여기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충청 쪽에 사업하러 온다더니! 이게 사업입니까?”
유성원이 등장하자마자 천검군 병사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짜부라져 있던 인간들이 갑자기 기가 살아서 항의하기 시작했다.
유성원은 속이 끓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천검군 병사들을 좌우로 물린 다음 그들 앞에 다가가서 당당히 입을 열었다.
“그만. 한 사람씩 자기소개 한 다음에 이야기해라. 맨 왼쪽 대머리, 너부터.”
“대, 대… 머리 아닙니다! 며, 몇 가닥 남았는데… 크, 크흠! 협회에서 나온 고철균입니다. SS급 헌터나 되시는 분이 왜 갑자기 무력 행위를 한 겁니까? 이는 엄격히 협회 규정에 어긋나는…….”
“나 협회랑 돈 받고 일해 주는 관계로 계약한 거지, 엄연히 너희 소속 아닙니다. 그렇게 핑계 대면 뭐 할 말 없을 겁니다. 이건 출장비 하세요.”
적당한 변명을 던지면서 유성원은 두툼한 돈 봉투 2개를 꽂아 넣었다.
봉투를 받은 협회 직원은 처음에는 난감한 척을 했지만, 봉투 속에 있는 액수를 보자마자 눈이 확! 돌아서는 슬쩍 옷 주머니에 집어넣고 물러섰다.
“대전 지방경찰청에서 온 황조영 청장입니다. 스캐빈저는 엄연히 헌터이기에 헌터끼리 무력행사 및 분쟁을 벌여도 되긴 하나 이곳 자매 복지원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약자 보호 시설. 무언가 불행한 사건이 벌어지면 수사는 저희 경찰이 해…….”
“이거 엄연히 각성자 관련이야. 자, 각성자 아이들 팔아치운 장부. 스캐빈저에게 판매된 걸 알아내서 쫓아온 거야. 아무튼 일하는 데 조용히 해야 하니까 3장 받으세요.”
“이 대전과 충청 쪽의 수호를 맡은… 드림 사이클론 길드의 길드장 유현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헌터가 있다는 걸 알고 왔는데… 그…….”
“걱정 마. 폭로 안 할게. 우리도 사업하러 온 거니까 이거 소문 퍼지지 않게 묻어 줘라. 오케이? 너도 이거 받아.”
“크, 크흠! 아, 알겠습니다.”
애초에 정의 구현 같은 게 가능하고 자정 능력이 남은 사회였다면 자신이 나설 것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돈의 편리함과 권력의 힘을 이용해서 그들을 조용히 돌려보낸 유성원이었다.
어차피 진짜 목적은 정의 구현 같은 게 아니라, 이 지옥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하는 것인 만큼 그것만 이룰 수 있으면 뭐든 상관없었다.
“후우~ 자, 일단 귀찮은 인간들은 다 치웠고. 경찰, 군대도 물렸으니 본격적으로 할 일부터 할까? 얘들아, 안녕? 혹시 나 아니? TV에서 봤다면 알 거고, 못 봤다면 모르겠지?”
그렇게 직원들과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돌아온 유성원은 갑주를 벗고 웃으면서 아이들과 소통을 하려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서로 달라붙어 덜덜 떨고만 있을 뿐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자신들을 악랄하게 괴롭히던 직원들을 잔혹하게 제압한 천검군이 무서워서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리라.
“…….”
“…….”
“…….”
“아, 맞다, 맞아.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저 쓰레기들은 잠깐 다른 데 가둬 놓고, 그리고… 얘들아, 먹고 싶은 거 있냐? 지금 바로 시켜 줄게. TV에 나온 거 막 말해도 돼. 아니다. 여기 출장 뷔페 가장 비싼 데가 어디지? 아니, 그냥 내가 부를게. 그리고 애들 마실 물 좀 가져다주고, 화장실 갈 사람은 자유롭게 다녀와도 돼.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도 이런 데서 자라서 잘 알아.”
유성원은 계속해서 떠들면서 덜덜 떠는 아이들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직도 경계하는 기색이 강했지만, 누구라도 이런 곳에 있으면 경계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자신 또한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을 기억하기에 유성원은 최대한 미소를 띤 채 일정 거리까지만 다가가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뭐, 세상에 이런 구원이 있을까? 믿기진 않을 거고, 같은 보호 시설 출신이라도 그냥 나도 여기 원장이라는 그 아줌마처럼 너희들 등쳐 먹거나 괴롭힐 생각을 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경계심을 품는 게 당연해. 그러니까~ 일단 밥이나 먹자.”
“…….”
“그래, 일방적으로 들어 주기만 해도 좋아. 혹시 지루한 꼰대의 말 같으면 잠을 자거나 무시해도 돼. 너희가 지금 누굴 믿을 수 있겠니~ 나도 자기 자신을 못 믿고, 또… 무상으로 약자를 돕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이게 너희들 마음이겠지. 자자, 떠들고 싶으면 마음껏 떠들어. 밥 오면 이야기해 줄게.”
자신들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말에 아이들은 안심이 되었는지 조금씩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거액을 지불하겠다는 손님의 주문 덕분인지 아니면 사고 친 소식이 들어가서 두려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호텔 출장 뷔페는 아주 신속하게 도착해서는 유성원의 지시 아래 음식을 세팅해 나갔다.
“맘껏 먹어. 눈치 보지 말고 먹어… 라곤 해도 눈치가 보이겠지만! 아무튼 후회하기 싫으면 먹어! 그리고 싸우지는 마라. 얼마든지 추가로 주문하면 된다.”
“네, 네에!”
“자, 잘 먹겠습니다!”
생전처음 보는 화려한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지자 욕망이 두려움을 이긴 것인지, 아이들은 유성원을 향해 작게 인사를 하고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 애들한테는 먹을 거랑 장난감이 최고지. 특히 이런 쓰레기 시설일수록 애들에게 들어가는 밥값 아끼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니까…….’
멀쩡한 유치원, 어린이집에서도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런 보호 시설을 빙자한 착취 시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매혹적인 맛과 향기를 자랑하는 호텔 출장 뷔페 요리에 저항할 수 없었다.
“애들 밥 먹는 동안 시간 있으니까… 유청, 여긴 너에게 맡긴다.”
“폐하, 어딜 가십니까?”
“이런 곳이 여기 하나만 있을 리 없잖아. 게다가 이미 소문이 다 났을 테니까 뒤가 구린 데는 도망을 치거나 증거를 숨기느라 정신없을 거야. 도망치든 뭘 하든 상관없지만, 애들은 구하고 봐야지. 그나저나 돈이 진짜 편하긴 편하네. 기사도 하나 안 뜨는 거 봐. 하하핫.”
이 정도로 난리를 쳤는데, 정말로 인터넷 기사 한 줄도 안 뜨고 주변에도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주민들의 신고라도 있을 법하건만, 이곳 지역 사람들에겐 이 자매 복지원이 집값을 떨어뜨리는 혐오 시설이었기에 유성원이 난리를 쳐서 없어진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참… 세상~ 아무튼 우리 목적은 이룰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가울프, 섬멸, 크록베인, 아칼론, 안에서 다 봤지? 시설 지도랑 돈 줄 테니까 가서 하나씩 다 점령해라. 거기 직원이랑 위의 놈들이 도망가는 건 상관없으니 아이들과 장애인분들의 안전부터 챙겨라.”
그렇게 인간의 이기심과 돈의 힘 덕분에 다른 시설을 급습하기 편해진 현실에 유성원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지시를 내리고 곧바로 다른 시설들도 급습하기 위해 계속 움직인다.
본래 세웠던 인수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져서 나중에 백가연에게 혼날지라도 지금은 이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건물을 넘어 다니며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