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다음 날, 서울.
아이언 포트리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상처만 남은 싸움을 하고 온 군대와 헌터들은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고 헌터와 군인들 유가족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든 이번 싸움의 성과를 부풀려서 광고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유성원이 아이언 포트리스로 돌아오자마자 본 것은 바로 이딴 기사였다.
<(뉴스)쾌거! 도살왕의 사도 ‘아크데몬 비스트’ 2마리 토벌!>
국민 여러분,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위협해 오던 성좌 도살왕의 사도 ‘덕덕’과 ‘와규’가 토벌대에 의하여 쓰러졌습니다. 또한 평양, 개성 등등… 기존에 스캐빈저들이 지배하던 도시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노예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출한 것은 물론 헌터들의 레벨 업에도 큰 성과가…….
“염병한다. 길드 애들은 이거 보고도 화 안 난대요?”
“원래 세상이 타협으로 굴러가지 않나? 길드와 협회가 힘 좀 쓰게 해 주는 대신 이런 광고나 언플 같은 거 이해해 주는 거지. 그보다 그런 뉴스보다도 자네 뉴스가 더 많을 텐데~”
“그건 이야기하지 마세요. 하아아아~”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유성원에 대한 기사도 신문, 인터넷, TV방송을 가리지 않고 잔뜩 실려 있었다.
100조나 되는 보수를 계약으로 투입된 것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최강 헌터라는 주제와 같이 다니는 기사들까지, 무슨 연예인 기사처럼 도배되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물론 정작 본인은 불편하기 그지없고, 위장에서 통증이 올 것 같은 스트레스였지만 말이다.
“내 과거부터 해서 아카데미아에서 직원 인터뷰까지, 뭐 하나라도 더 기삿거리로 만들려고 난리네요. 뭐가 그렇게 관심이 많아~”
“그야 인기인이니까 그렇지 않겠나? 아무튼 레벨은 올랐나?”
“예. 그 망할 와규 덕에 2개 올랐습니다. 덕분에 72레벨입니다. 그러는 어르신 쪽도 문제없었나 보네요.”
“그야 S급이 둘이나 있고, 자네의 용도 있어서 아무 문제없었지.”
“S급 둘요? 어르신 혼자가 아니라?”
“…이보게, 왜 그러나? 자네가 광주에서 데려온 S급 최충선 그 친구 말일세.”
백가연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제야 최충선에 대해 기억해 내는 유성원이었다.
그쪽에서 사정사정해서 자신들 쪽에 합류했지만 묘하게 전위라는 포지션 겹침도 있고, 유성원이 주로 기사들하고만 다니거나 아니면 다른 쪽에서 사고만 치는 일이 많아서 근래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어느새 존재감마저 잃어버릴 정도였던 것이다.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인데. 설마 했는데 까먹을 줄이야. 우리 보유 헌터 숫자도 헷갈리는 거 아니지?”
“…헷갈린 것 같은데요? 생각해 보니 그 아저씨를 우리 보유 헌터 숫자에 넣었다가 뺐다가 한 것 같은 기분이…….”
“맙소사. 나중에 만나서 꼭 사과하게.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텐데, 상처 받겠구만.”
“예. 그, 그럴게요, 어르신. 아니, 당장 가서 사죄하겠습니다.”
유성원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최충선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키지 않긴 했지만 자신이 받아들인 사람인 만큼 책임은 져야 했기 때문이다.
내부 시스템을 통해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는데, 그는 현재 물류 창고에서 이번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 대장님 아닙니까? 뭔가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일에 대해서 보러 오셨습니까?”
“그러니까… 같이 일하는데 얼굴 본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요.”
“뭐, 바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오셨으니 보고하자면… 내부 창고가 모자랄 정도로 전리품이 너무 많습니다. 애초에 이 ‘아이언 포트리스’는 미래를 대비하는 비축 기지라서 그런지 기존에 저장되어 있는 물자가 너무 많아서~ 다른 공간을 활용해서 보관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한계가 올 겁니다.”
“아, 예. 그러고 보니 저번 싸움에서 혹시 다치거나 한 부분 있나요?”
“아뇨. 워낙 잔챙이들만 오기도 했고, 후방이 든든해서 말이죠. 대장님 따라오길 잘했다니까요. 편하게 일하고, 돈도 잘 벌고, 경험치도 달달하고~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제대로입니다.”
잘 지내는 것도 모자라서 만족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유성원도 안심이 되었다.
혹시나 홀대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었고, 이상한 짓을 할까 봐 우려되었던 것이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혹시나 해서 걱정했거든요.”
“제 걱정은 뭐 할 게 없죠. 이미 싸악 인연 다 끊고, 대장님 밑이라는 걸로 얘기 다 끝났는데……. 오히려 대장님이 더 걱정 아닙니까? 저도 S급 헌터 나부랭이라서 잘 압니다만, 지금 완전 대한민국 스타던데요?”
“아, 그거 때문에 머리 아플 지경이에요. 지금까지야 협회나 다른 길드와 적대시하고 있었고, 신강남의 원한을 사 놔서 알아서 날 묻어 주려고 한 듯한 느낌인데~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 헌터죠. SS+급 확정. 중국,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주목하는 헌터. 어라? 대장님?”
“싫어… 살려 줘. 나 그런 거 싫어어…….”
정부는 자신들의 실책과 군인들의 피해를 덮기 위해 유성원을 띄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사실 일부러 광고하지 않아도 성좌 도살왕의 사도 S급 몬스터를 넷이나 쓰러뜨린 유성원의 존재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이런 관심과 주목을 미친 듯이 싫어했지만 말이다.
“…하하하, 그러는 거 보니 저 루키일 때가 생각나네요. S급 테스트 통과 딱 했을 때, 주목도가 장난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 씨, 골치 아파. 좋은 방법 없어요?”
“없습니다.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론사 건물 폭파시키기라도 할 겁니까? 정부에 연락해서 기사 내지 말라고 협박할 겁니까? 물론 대장님은 뭐든지 가능하겠지만요.”
“…하아~ 그냥 무시하고 짱박히는 게 답이네. 아무튼 그럼 나중에 일 있으면 부를게요.”
“예이~ 수고하십시오. 대장님.”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최충선과의 대화도 무사히 끝낸 유성원은 다시 중앙 통제실로 돌아왔다.
마음의 짐도 덜었으니 이제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일을 봐야 했는데, 화면에 빽빽하게 가득 찬 업무 내용들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그래, 전투가 엄청났던 만큼 전리품도 많기도 했고 또 새로이 주목받는 다크호스인 만큼 여러 곳에서 연락도 많았다.
“특히 가장 많은 건 하이에나들의 메일인가?”
“하루아침에 100조를 번 남자가 되었으니까요. 콩고물로 몇 억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하는 이들이 오죽 안 생길까요?”
“윽, 할 말이 없네요. 하아아~”
계약 사항에 대해 딱히 비밀로 유지하자고 하지 않은 만큼 이미 유성원이 100조를 받기로 하고 이번 전투에 참여한 것에 대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받은 건 선금 30조였지만, 그것 또한 말도 안 되는 금액인 건 맞았기에 소식이 알려지자 현재 수많은 단체와 업계들 곳곳에서 유성원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절박해도 그렇지, 30조가 말이 되냐? 우리 세금이 그렇게 X으로 보이냐!>
<아니, 힘이 있으면 당연히 나라를 위해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100조나 뜯어 가다니, 그게 사람인가요?>
<황금 용기사를 다시 마인으로 지정하라! 지정하라! 지정하라!>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삐슝빠슝, 싸이버렉카TV입니다. 오늘은 한탕에 30조를 받아 챙긴 헌터 유성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각종 뉴스와 인터뷰, 그리고 인터넷 방송에서까지 유성원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비난이 가득한 것과 별개로 메일함을 보면 아주 가관이었다.
<저희 기간 테크 산업과 함께 새로운 마정석 장비 연구에 투자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땅 사세요. 땅 사세요. 땅 사세요. 땅 사세요. 입지 좋은 땅 있습니다.>
<주식 투자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지금이라면 500퍼센트 이익률이 현실로!>
<세계의 고통을 나눕시다. 월드 세이비어입니다. 숭고한 기부 바랍니다.>
<여기 100퍼센트 확실한 투자처가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유성원 길드장님께. 저희 마정석 무장 회사 엘보니아스 테크에서 이번에 신제품을 출시하게 되었기에…….>
“내 메일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저한테 비난하는 거랑 행동이 너무 다르네요?”
“그야 살고 나니까 돈이 아까운 거겠죠. 그리고 이미 준 돈도 어떻게든 재투자를 하게 만들 생각이고요. 아무튼 투자나 사업에 대해 생각하신 거 있나요?”
“없어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 놈으로 보입니까? 애초에 전 소시민이라고요.”
투자니 뭐니 하는 건 기껏해야 연금이나 보험이 끝인 게 유성원의 스케일이었다.
1조니 100조니 하면서 내질렀던 건 자신에게 일을 시키지 말라고 배짱부린 것일 뿐이지, 그 돈으로 뭔가 투자를 하겠다든가, 다른 큰 욕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죠. 그랬었죠.”
“게다가 대부분 마정석으로 받아서 굳이 밖에 풀 필요도 없고 말이죠. 근데 어디 갑니까? 소미 누님?”
“유청 경을 부르려고요. 딱 봐도 이런 경우 당신을 자극해서 미래 설계를 하게 할 사람이 그 사람밖에 더 있나요? 제가 미래를 생각해 보라고 말해 봤자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르신도 모셔야겠네요.”
“…엑?”
이쯤 되면 이제 유성원의 지식과 한계를 잘 알고 있고, 그를 압박할 수 있는 유청이라는 존재를 망설임 없이 부르러 가는 것이다.
현재 그는 다른 기사 및 멀블린과 모여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중이었는데, 신소미가 다가가서 몇 마디를 나누자 눈을 빛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폐하, 신(臣)에게 맹세하신 게 있는 줄 아옵니다만?”
“…그, 그렇지. 청룡 애들 조진다고 했지. 그래.”
‘기사도’라는 게 역린인지 유청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평소 유했던 그가 압도적인 프레셔를 뿜어내자 유성원은 얼어붙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사에게 ‘맹세’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기에 약점을 찔리자 유성원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 다만 일단 밀린 일부터 하고. 하, 할 수 있는 것부터 끝내야지. 스킬 포인트도 보상, 전리품 처리 같은 걸 하면서……. 아무튼 좋은 아이디어가 없지만 일단 할 일부터 하면서 좋은 생각이 나면 하, 할 생각이었어. 예,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안심했습니다. 역시 폐하께선 생각이 있으시군요.”
‘…없어! 없고 싶어!’
“알겠습니다. 신 또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 볼 터이니 폐하께선 먼저 내정에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유청은 그렇게 예를 표하고서 물러났다.
하지만 유성원의 부담은 장난이 아니었는데, 이제 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청룡 길드 처리’라는 새로운 과제를 강요받으니 멘탈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자네, 괜찮나?”
“…왜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보이는 걸까요? 그래, 국토 개발 회사에 투자하자. 대한민국에 있는 산을 모두 다 밀어 버리고 평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정신줄 잡게. 아무튼 청룡 길드는 그 수많은 헌터 길드, 정부, 협회와 싸운 끝에 대한민국 최고가 된 길드일세. S급 숫자는 자네 집단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적지만, 그 길드의 영향력은 한국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규모이지.”
독립적인 인공섬 기지 및 거주 영역, 길드 독립 부대 운용, 수많은 기업 연줄로 묶인 카르텔.
신강남의 후원자들을 등에 업은 서울 길드에 만만치 않게 이쪽 청룡 길드도 거대한 세력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그들을 친다는 건 단순히 상층부만 없애고 보는 게 아니라, 그 세력 전부를 초토화시키는 건 물론 성좌 청룡의 영향을 받는 헌터를 모조리 사라지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르신, 좋아하는 티가 너무 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더 막장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보단 낫겠지. 자네들에겐 기사도가 있으니 말이야.”
“…아, 그거 하지 마요, 진짜. 아무튼~ 확실히 한국만 정리하지 않고선 이제 평온히 지내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청룡을 조져야겠어요.”
좋든 싫든 그것을 해야만 인생이 평온해질 거라고 생각한 유성원은 결국 새로운 목표를 수립했다.
사고 나는 걸 막기 위해서 던진 공수표라지만, 자신이 맹세한 만큼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
또한 어차피 놈들을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또 찝쩍거릴 게 뻔하니, 성좌 도살왕의 세력이 주춤한 이때 해결해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