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27화 (127/293)

[127화]

협회 본부, ‘도살왕 토벌 작전 사령부’.

경이에 가까운 마법 장벽과 초대형 괴수의 강림. 아크데몬 비스트의 진면목인 ‘승천’을 처음 본 사령부는 경악에 휩싸이고 있었다.

남북한을 가른 휴전선만 한 길이의 마법 장벽을 세우는 괴물에다 추정 높이 1,000미터의 거대한 오리 수인 괴물.

성좌의 시대가 되고 웬만한 경악스러운 것은 다 보았다고 생각한 조필성 대장이었지만, 이건 그 상식을 한 번 더 뛰어넘는 것이었다.

“…뭐야, 저거? 뭐냐고. 대체……?”

“그, 그게… 자,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허, 허허허헌터가 저걸 모르면 어떻게 해?”

“그, 그보다 사령관님! 명령을!”

“이, 일단… 일단 그래! 공군이다! 먼저 공군으로 저 거대한 오리 괴수를 공격해! 그리고 고천수 길드장에게 연락을!”

예상을 너무나 뛰어넘은 사태에 정신이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내려야 할 최선의 명령을 내리면서 조필성 대장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썼다.

그러지 않고 멍하니 있다가는 지금 저 위로 간 10만의 병력과 수많은 헌터들이 몬스터 밥이 될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고천수 길드장에게 연락을 했고, 화상 통화가 연결되자 곧바로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법 장벽에 대해선 여기서도 봤습니다. 그런데 오리 괴물은 뭡니까?』

“이놈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아크데몬 비스트를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드디어 고천수 길드장님이 활약할 때가 온 것 같으니 어서 빨리 와 주십시오! 이대로는 도망칠 곳도 없이 당할 겁니다!”

『그게 조금 곤란한 상황입니다.』

“어째서요?”

『저희도 이미 ‘아크데몬 비스트’와 교전 중이거든요.』

『푸르르륵!』

순간, 스피커에서 말의 투레질 소리가 들려오며 화면이 바뀌었다.

높은 하늘 위에 자리 잡은, 깃털이 달린 날개를 지닌 새하얀 백마의 수인. 새하얀 법의를 입은 프르제발스키의 모습은 어느 누구든 처음 보는 것이었다.

거룩한 빛을 머금고 나타난 신마(神馬). 마치 종말을 알리러 온 신의 사도 같은 모습에 조필성 대장은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신마승천을 이룬 프르제발스키의 부하들도 등에 날개를 단 채 날아올라 공중에서 강습하는 형태로 헌터들과 군대를 공격하고 있었고, 그 좌우에서는 스캐빈저들이 자신들 특기인 게릴라전 능력을 살려 미친 듯이 인간들을 사냥해 나갔다.

“푸하하하핫! 역시 군바리들이 고기가 실하다니까! 약해! 약해! 약해! 약해!”

“오오! 저것이 바로 장군님이 타시고 수령님이 부르시던 신마(神馬)! 오오오!”

“입 놀릴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잡으세요!”

개별 능력은 A급 헌터 이상인 언더시티 지배자들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쉽게 이기는 걸 좋아했기에 그들은 일반 보병들을 처리하면서 머리를 차지하고 고기를 수급해 나간다.

그나마 헌터들과 국군은 처음엔 반격을 해 나갔지만 이채롭게 변한 프르제발스키의 등장부터 해서 예상외의 힘이 다가오자 공포와 당혹감에 물들어 밀리기 시작했다.

“평양 쪽으로 간 부대의 후, 후방에! 또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 출현! 검은 소 형태의 수인! 아크데몬 비스트 와규입니다!”

심지어 상황은 더 안 좋아졌는데, 개성 쪽으로 후퇴하려고 해도 거기엔 이미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가 나타나 있던 것이다.

와규. 소의 머리를 한 수인인 그는 강피승천(强皮昇天)을 함으로써 전신이 아다만타이트로 뒤덮인 금속 소로 변해 있었다.

또 그를 따르는 소 수인들도 피부가 강철로 덮인 강철 소의 모습으로 탱크처럼 돌진하여 군이 퇴각을 못하게 가로막는 중이었다.

“…그러면 우리 쪽에만 4마리의 아크데몬 비스트가 나타났다고? 미친놈들인가? 아니, 러시아랑 중국에 땅을 뺏기는 건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아, 아무래도 우리 쪽에 전원 몰려와서 각개격파를 해 나갈 생각…….”

“아뇨! 러시아와 성좌 용봉왕 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쪽에도 아크데몬 비스트가 각각 하나씩 나타났다는데… 그게… 말도 안 되는 모습이라고…….”

그리고 북쪽을 담당하는 아크데몬 비스트들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승천을 통해 각자 러시아 연방 헌터군과 성좌 용봉왕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동안 보고에 없었던 힘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러시아 연방 헌터군과 성좌 용봉왕은 함부로 진격하지 않았다.

애초에 각자 요동을 비롯해서 서로 땅을 얻은 이익이 있었기에 무리해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젠장!”

“뭔가 수를 써야 합니다! 사령관님! 이대로 놔뒀다가는 저희 군 병력은 물론 헌터들까지 위험합니다! 올림푸스 쪽에도 연락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과연 이 사태를 해결해 줄지는…….”

“으으으윽! 어쩔 수 없군!”

조필성은 황급히 내선을 이용해서 청와대로 연락을 넣었다.

일단 올림푸스 길드에도 연락을 하겠지만 그쪽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이곳에 과연 인원을 더 투자할지가 걱정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쓸 수 있는 수단은 오직 하나뿐. 정말 아니꼽고 더럽지만 유성원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습니까?)

“아직 한창 교전 중이라서 잘 모릅니다. 하나 이대로 가면 우리 병사들과 귀중한 헌터들을 잃게 됩니다.”

총공세였기에 병사들도 그나마 체력 조건과 능력이 가장 좋은 최정예들로 모은 것은 물론 헌터들도 없어서 못 돌았을 뿐이지 C급 던전을 돌 수 있는 중견 길드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 이번 전쟁인데, 이대로 그들을 모두 잃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절망 아래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1조… 아니! 10조, 100조를 내서라도 불러야 합니다. 젠장! 젠장! 젠장! 아크데몬 비스트라는 놈들이 저 정도일 줄이야! 지금 체면 차릴 때가 아닙니다.”

(아, 알겠습니다. 곧바로 연락하도록 하지요. 협회 쪽에서도 접촉해 달라고 하시길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자네들도 어서 연락을 하게나!”

“예!”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군 병력은 죽어 가고 있었다.

그사이 던전에 들어갔다 나온 헌터들도 급변하는 사태에 놀라서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전투에 휘말렸다.

처음에는 유리하던 상황이 모두 도루묵이 되고, 어떻게든 전투는 하고 있지만 경이를 넘어 초월적인 아크데몬 비스트들의 진짜 힘으로 인해 위기는 확실했다.

“아이언 포트리스에서 여, 연락이 왔습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유성원 헌터는 ‘던전 공략’ 중이라 연락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이런, 큰일이군. 그럼 일단 사람을 미리 보내 놓고 협상할 준비부터 하게! 던전에서 나오는 대로. 알았나? 이러면 그럼… 중국과 러시아 쪽에 이야기를 넣을 수밖에 없겠군.”

던전에 들어가 있어 연락할 도리가 없자 낭패라고 생각한 조필성은 하는 수 없이 중국과 러시아 쪽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순간에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핵심적인 해결책 없이는 결국 10만의 군인들과 그 외의 헌터들 모두 저 성좌 도살왕 세력의 밥이 될 게 분명했다.

***

B급 던전, 야만의 도시 ‘꿈바꿈바까라라’ 왕의 투기장.

밖은 한창 난리통이었지만, 유성원 일행은 성좌 산거정의 던전을 매우 순조롭게 공략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번에 들어온 던전은 바로 투기장 타입으로, 일대일 혹은 다수 대 다수로 싸워서 이기면 잠시 휴식 시간을 주는 보스 러시 타입의 던전이었다.

생각보다 좁은 영역, 그리고 엄폐물이 전혀 없는 곳에서 육중한 야만인이나 대형 몬스터와 싸우기 때문에 대부분 인간인 헌터들에게 불리하며, 또 관중석에 있는 야만인들이 시시각각 뼈나 음식 쓰레기를 던지면서 방해까지 하는 고난도 던전이었다.

[용케 여기까지 살아남았군요! 그러면 도전자 ‘겁쟁이 황금 깡통과 인간들’을 맞이할 네 번째 마수는 바로 ‘검은 정글의 왕-바실리스크 킹’! 거대한 몸체에서 나오는 힘과 파괴력은 물론! 그 눈과 잘못 마주치면 몸이 돌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난항을 겪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선수가 등장합니다!]

목청이 큰 야만인이 투기장 지붕 쪽에 매달린 채로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기묘한 광경.

유성원과 신소미, 신아영은 다음 상대와 싸우기 전 나무 엘리베이터로 올라와서 투기장 앞에 섰다.

그리고 반대쪽 벽면에 있는 거대한 입구에선 딱 봐도 엄청난 크기의 도마뱀인 바실리스크 킹이 철창을 이빨로 물어뜯으면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전략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아영이랑 소미 누님은 눈 마주치지 마세요. 제가 정면에서 싸울 테니…….”

“그렇게 할게요.”

“아… 으음… 뭐, 이의 없어요.”

[자! 그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지그으으으으음! 시자아아아악! 합니다! ‘바실리스크 킹’을 푸십시오!]

크르르르르!

철창이 열리자 몸길이 약 30미터의 거대한 도마뱀 형태 괴물인 ‘바실리스크 킹’이 풀려나면서 곧바로 유성원 일행 쪽으로 달려온다.

신소미와 신아영은 빠르게 뒤쪽과 측면으로 물러서면서 견제 사격을 실시하였고,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을 잡고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달려갔다.

크르르르! 으르르!

“뭘 꼬나보냐? 아쉽지만 ‘석화’는 먹히지 않는다고!”

크아아앙!

금빛 신수 갑옷의 사기적인 능력 덕분에 바실리스크 킹이 아무리 마안을 빛내도 스킬이 통하지 않는 유성원은 정면에서 바실리스크 킹을 노려보았다.

바실리스크 킹은 감히 작은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맞서는 게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한입에 삼켜 버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이 본 것은 자신의 왼쪽 눈 방향으로 피해서 티탄의 말뚝을 휘두르는 유성원의 모습이었다.

“잡았다. 체크메이트.”

콰드드득!

그리고 바실리스크 킹의 머리 부분에 휘둘러진 티탄의 말뚝은 두개골을 부수고 두뇌를 짓이겨 뇌수와 피가 뿜어져 나오게 만들었다.

이 일격으로 바실리스크 킹은 의식을 잃어버렸으며 그저 남은 몸뚱이만 신경에서 전해져 오는 신호로 인해 움찔거리면서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거대한 몸뚱이에서 나오는 강한 생명력 덕분에 아직 살아 있는 몬스터 취급이었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제 죽게 될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 ‘겁쟁이 황금 깡통과 인간들’이 또다시 이겼습니다아아아아아! 이걸로 4연승! 그것도 지금까지 치러진 경기 모두 저 ‘겁쟁이 황금 깡통’의 몽둥이에 상대가 한 방에 쓰러졌습니다. 말 그대로 원샷원킬! 오늘도 돈을 잃어 눈물 흘리실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오, 마정석 나왔다.”

[자, 그러면 짧지만 화끈한 싸움을 보여 준 ‘겁쟁이 황금 깡통과 인간들’에게 박수를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투기장의 왕’에게 도전하기까지 앞으로 두 걸음! 기대해 주시길 바라면서 다음 경기는 앞으로 8시간 뒤에 다시 시작됨을 알려 드립니다. 이어서 투기장 특별 공연이 있겠습니다!]

“이 던전은 다 좋은데… 왜 다음 네임드 공략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그냥 계속 싸웠으면 진작 끝내고 나갔겠다. 초반엔 그래도 4시간씩만 기다리면 됐는데, 갑자기 8시간은 뭐래?”

“그야 투기장에서 이겨서 등급이 올랐으니, 스타 선수 같은 게 돼서 시간이 늘었다고 보면 되는 거죠. 쉽게 경험치도 얻어서 레벨 업도 하고, 이상한 미로나 복잡한 기믹에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돌면서 그런 말씀 마세요. 심지어 여기 ‘투기장’이라는 콘셉트 덕인지 이겨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숙소도 좋아지고 밥도 잘 주잖아요.”

“아영이 말이 맞아요. 하아~ 미로나 정글 타입 던전에서… 약 한 달가량 굶고 벌레 같은 걸 어떻게 해서든 조리해서 먹었던 걸 생각하면 여긴 아주 천국이에요. 풍뎅이… 껍질이 이빨에 끼는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대로 투기장에서 나와 이곳 NPC들이 마련해 준 숙소로 가니 방금 조리된 각종 산해진미와 음료가 차려진 상태에 노예들이 대기까지 하고 있었다.

성좌 산거정 계열은 도적단 같은 콘셉트로 재보를 약탈하고 모으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런 투기장, 도박장 같은 것도 좋아하기에 그 선수이자 도전자들에겐 싸움 외의 영역에서는 절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면 이렇게 잘 대해 준다.

“아니, 난 그래도 빨리빨리 돌면서 레벨 업 하고 스킬 포인트 얻는 걸 생각했지, 이런 관광 같은 걸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애초에 던전 내부 기믹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는 데다, 술이랑 고기를 그렇게 먹어 치우면서 이야기하니까 전혀 안 어울려요! 아무튼 이제 네임드 3개 남았으니까 아무리 길어도 24시간만 있으면 되네요.”

“어, 그래. 그나저나 나가도 딱히 별일은 없겠지?”

“…애초에 아저씨는 누가 이겨도 난감하잖아요.”

“아, 으음… 그건 맞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래도 일단 정부랑 협회, 길드가 이겼으면 한다는 거야. 신경전 정도나 한다고 해도… 문명은 유지되어 있잖아. 반대로 도살왕 애들이 이기면, 으으… 그 망할 것들이 살려 달라고 나에게 달라붙어서 앵앵대면서 지랄할 거 생각하니 위가 아파.”

“에이, 그래도 던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요?”

낙천적인 아영이의 말을 들으며 유성원은 알 수 없는 생물의 잘 익은 통다리를 뜯어서 질겅거렸다.

“하긴~ 설마 그렇게 빨리 처발리겠어? 암튼 빨리 먹고 눈 좀 붙인 다음 네임드 잡으러 가야겠다. 냠냠.”

“먹고 바로 자면 소가 된대요, 아저씨. 그러니까 연습실 가서 단련 한 탐 더 뛰죠.”

그렇게 아영이와 투닥거리면서 마음을 놓고 계속 맛있게 음식을 먹는 유성원이었다.

이게 던전을 온 건지 아니면 마치 3인 가족이 관광을 온 건지 구별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아무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었다.

바깥엔 지금 지옥이 펼쳐진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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