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D-day AM 02:00.
드디어 성좌 도살왕 토벌 작전은 야심한 새벽 02시 정각에 시작된다.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미사일 기지, 수도권과 강원도에 있는 각 포병 부대, 공군 부대에서 일제히 출격하였다.
긴 시간 동안 스캐빈저들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 위성 촬영을 하고 드론을 통해 알아낸 그들의 본거지들인 개성, 원산, 남포, 평양, 함흥에 있는 5개의 언더시티에 동시에 미사일 폭격과 전투기 공격이 개시되고, 어두운 밤에도 노예들을 데리고 놀던 언더시티는 금세 불바다가 되었다.
휘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앙! 퍼어어엉!
공기를 가르는 휘파람 소리와 각종 폭발, 연이어서 벌어지는 화재로 인해 인간의 비명들이 울려 퍼진다.
평소처럼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나신에 가깝게 노출한 여자 노예를 끼고 술을 마시던 스캐빈저들은 난데없는 공격과 진동에 투덜대면서도 계속 술잔을 기울인다.
“염병, 밤중에 지랄이 났네.”
“예상대로잖아, 이 시X년아. 이 세우지 마! 이거 일상이야, 일상. 계속해, 쉬벌년아. 우린 안 죽어.”
“맞아. 심심하면 터뜨리곤 하는데… 우리가 븅신도 아니고 대비도 안 했겠냐? 낄낄. 븅신들…….”
언더시티의 지표는 파괴되었지만 이런 공격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스캐빈저들은 생각 이상으로 침착했다.
한두 번 당하면 곧바로 개선안을 내놓는 그들은 북한 정권이 만들어 놓은 지하 방공호 및 벙커 시설을 증축하거나 그것들을 해석해서 신축하여 본거지로 사용하는 것으로 미사일 폭격에는 태연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방공호 시설이 무적은 아니었다.
“젠장, 이거 무너지겠는걸?”
“그러니까 공사 한 번 하자고 했잖아.”
만들어진 지 오래되기도 했고, 기존에 공격받았던 것을 그대로 쓰다 보니 부서진 상태로 유지된 것도 있었으며, 몇몇 시설에는 내부에서 폭발시키는 개량형 벙커 버스터까지 날아와서 위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캐빈저들은 쉽게 죽지 않았다.
“아니, 그냥 마법 한 번이면 되는 걸 어쩌라고~ 랜드 스웜프! 공사비에 마정석 쓸 바에야 이게 낫지.”
“으응~ 그렇게 아껴서 한 게 고작 노예 구입이었죠?”
“시X! 너도 쓰잖아! 개X끼야! 너도 묻어 버린다?”
쿠구구구구구구!
인간을 능가하는 초감각으로 미사일을 감지한 스캐빈저들 중 하나가 마법으로 땅을 진흙으로 만들어 벙커 버스터를 더 깊은 땅 밑으로 흘려보낸 다음 폭파시켜 버린다.
그리고 다른 얕은 시설에 있던 스캐빈저는 무너진 자신의 집에서 콘크리트 자재와 흙을 뚫고 올라와서는 침을 뱉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 진짜! 기껏 상납금 바쳐서 구한 집이랑 금발 노예가! 시X. 이걸 무너뜨리네! 염병! 크르르르!”
“어? 너 이 새끼, 크크큭! 살았네?”
“이까짓 걸로 뒈질 거였으면 진작 뒈졌지. 크르르르! 문제는 노예년 뒤져서 개빡쳐.”
그는 평양의 지배자인 박숙자처럼 몸 일부가 털과 악마의 피부로 덮인 타입의 스캐빈저로, 뛰어난 재생력과 방어력 덕에 미사일 폭파 정도로는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다만 기껏 열심히 사냥해서 얻은 자신의 집이 부서지고 노예가 생매장된 것에 짜증을 내며 변신을 풀고는 인벤토리에서 예비 옷을 꺼내어 입는다.
“근데 이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새끼들, 이번엔 진짜 쳐들어올 모양이네. 폭격이 평소랑 달라. 아주 그냥 쏟아붓는 레벨이던데? 아직도 쏟아붓고 있고 말이야.”
휘이이이! 휘이이이!
두 스캐빈저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폭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나 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뭐, 그러면 우리야 좋지. 완전 레벨 업 찬스 아니냐? 키키킥. 벌써부터 몸이 쑤시는군.”
“씬나는 제물 찬스! 이번에야말로 나도 B급으로 올라가고 말겠어!”
“지금 다들 난리일걸? 아무튼 대장이 한번 모이라고 하니까~ 갑시다. 호텔 지하는 멀쩡할 테니~”
미사일과 폭격에서 대부분 살아남은 성좌 도살왕의 스캐빈저들은 각자 무기와 장비를 챙기고서 개성 특급 호텔로 향한다.
성좌 도살왕과 계약한 인간들은 알다시피 던전을 돌아서 레벨 업이 가능한 방법 이외에도 인간의 고기를 제물로 바치면 보상을 얻는 구조였다.
그런 만큼 이번 대규모 침공은 한편으로는 위기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알아서 경험치를 가진 몬스터들이 쳐들어와 주는 사냥 시즌이기도 한 것이었다.
***
D-day AM 04:00.
선제공격 2시간 뒤, 서울과 강원도에서 일제히 대기하고 있던 군부대와 길드 트레일러는 동시에 출진을 시작했다.
자잘한 던전은 무시하고, 달라붙는 하급 야생 몬스터는 마정석 화기로 제압하면서 개성, 원산, 남포 점령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현재 앞서서 진군하는 병력만 약 10만. 역대급 북진 작전으로 수많은 훈련을 한 병력들은 순조롭게 개성에 도착, 곧바로 점령 작업에 들어갔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여긴 이미 적진이다! 사전 포격으로 공격을 했지만 스캐빈저들의 잔당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보고하고! 화장실을 가도 무조건 2인 1조로 가도록!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헌터 길드분들이 던전으로 가면서 포탈 감시 장치를 설치할 거다. 우리는 임시 발전기를 보호하면서 이 폐허 점령 작업을 완벽하게 완료해야 한다! 다들 조심하도록!”
“예!”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배치된 군인들은 선제 포격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명을 설치하는 동시에 생존자나 스캐빈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같이 온 헌터 길드의 트레일러 또한 군 장갑차 주변에 정차한 채로 던전 클리어 조는 던전을 클리어하러 갔으며 스캐빈저에 대비한 타격 조는 주변 상황을 치열히 살피는 중이었다.
“으음… 안 보이는데요? 디텍트 매직으로 봐도 전혀 아무것도 안 보여요. 나이트 비전은?”
“저기 도망치는 무리가 보여요! 아무래도 평양 쪽으로 도망가는 것 같아요.”
“위에 알려! 우리는 일단 여기를 지킨다. 어차피 평양 쪽 진격 부대는 따로 있으니까!”
“예!”
스캐빈저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긴 했지만 길드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상부에 보고부터 한다.
정보를 받은 작전 사령부에서는 선제공격 진행 상황과 성좌 용봉왕과 러시아 연방 헌터군이 합을 잘 맞춰 주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일단 첫 단추는 제대로 끼운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개성 진입 완료. 원산, 남포는 곧 도달합니다. 적 스캐빈저들 대부분 평양으로 대피 중!”
“음… 러시아 쪽과 성좌 용봉왕 쪽도 각자 진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직까진 순조롭습니다.”
“전투가 일어난 곳은?”
“아직 없습니다. 헌터들의 던전 제압 및 포탈 감지 장치 설치도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조필성 대장은 사령부에서 상황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은 고천수 길드장도 아직 아크데몬 비스트급 몬스터가 감지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길드원들과 협회의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다.
***
D-day AM 10:00.
그리고 전쟁 시작 후 총 8시간, 진격 시작 후 6시간이 지났다.
개성, 남포, 원산 점령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주변 던전 클리어와 포탈 감지 장치 설치 작업은 순조로운 상황.
사령부에선 이다음 스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스캐빈저들은 모두 평양이나 함흥 쪽에 있는 언더시티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상황에서 저희는 기로에 놓여 있는데… 이대로 개성, 남포, 원산 라인을 굳히느냐? 아니면 평양으로 계속 진격하느냐? 인 상황입니다.”
“으으음… 다른 국가들 상황은?”
“유사합니다. 러시아 연방 헌터군은 만주, 성좌 용봉왕의 부대는 요동을 진격해서 먹고 굳히는 중입니다. 다들 들어올 때는 신속하면서 먹은 땅부터 굳히려는 것 같습니다.”
“스캐빈저들은?”
“군과 길드의 보고로는 대부분 도시를 빠져나가서 도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생 몬스터들은 순조롭게 처리하고 있고, 던전들도 다소 피해는 있지만 클리어 중입니다.”
“으으으음… 아크데몬 비스트도 안 보이고, 스캐빈저 놈들도 움직임이 참 일사불란하고…….”
일이 잘 풀리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오히려 잘 풀리기 때문에 조필성 대장은 뭔가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찜찜한 건 역시 스캐빈저 놈들의 움직임. 야만인이나 산도적 레벨인 놈들이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뭔가 찜찜했던 것이다.
“고천수 길드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딱 봐도 모여서 정비를 한 다음 도망칠 궁리를 하는 거겠죠. 저놈들이 사람 잡아먹는 야만인이긴 해도 다들 살 방법 하나는 귀신같이 찾는 간교한 놈들입니다. 북한 정권이 가지고 있던 배라든가, 잠수함이 있을 수 있으니 아마 평양에서 모인 다음 함흥으로 가서 바다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그들이 움직이는 루트를 지도로 보면서 판단하는 고천수.
전혀 싸우지 않고 도망만 치니 그들이 동해로 빠져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눈치챈 것이다.
“코어 던전을 버리고 말이오?”
“그거 공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들어가면 클리어 전에는 다시 못 나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코어 던전 안에서 아크데몬 비스트들이 전원 다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그것들만 살아 있으면 성좌 도살왕과 거래하는 스캐빈저들은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비겁한 놈들……!”
“비겁하지 않으면 스캐빈저를 못하죠. 아니, ‘비겁하다.’는 말이 스캐빈저와 동의어니까 동어 반복이 되는군요. 아무튼 장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능한 한 추격해서 섬멸하고 싶군요. 놈들이 밖으로 도망친다면 결국 전선만 넓어지고 게릴라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커지니 말이죠. 이대로 추가 화력 지원을 해서 타격함과 동시에 평양 쪽으로 가서 가능한 한 놈이라도 더 많은 스캐빈저를 없앱시다!”
그렇게 여러 정보를 모두 수집하고 미래까지 고려한 조필성 장군은 결단을 내렸고, 고개를 끄덕인 고천수는 길드도 그에 합을 맞춰야 하니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조필성 장군에게 말한다.
“알겠습니다. 작전이 그렇다면 전장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제가 직접 저희 애들과 상위 길드 헌터들을 데리고 평양 쪽 공격에 나서도록 하지요. 화력 지원 시간과 위치를 확실히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우선 예비 군단을 올리고 지금 개성에 있는 군단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천수 길드장님도 건투를!”
곧바로 사령부를 나선 고천수는 현재 휴식하고 있는 고천용과 채지영을 깨워서 청룡 길드 전용기로 향한다.
‘으음, 아직 싸움이 나지 않아서인가? 뭔가 찜찜하군. 그러나 불안해할 거 없다. 어차피 비겁한 놈들이 비겁한 짓을 할 거 다 예상하고 있었으니 말이지.’
어차피 상대가 쓸 수는 한정되어 있다.
아까 전 말한 대로 한국을 버리고 도망치는 수가 있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아크데몬 비스트와 함께 게릴라전을 벌이거나 영격에 나서거나 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고천수는 협회 본부 비행장에 마련된 청룡 길드의 전용기를 탄 뒤 부하들이 오길 기다리며 태블릿 PC로 계속 전장의 상황을 보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전술을 가다듬는다.
‘내분이 있는 스캐빈저들치고 협동하는 움직임이 좋은 것 같지만, 놈들이라도 ‘비상 연락 체계’ 같은 건 갖고 있을 수 있지. 어느 정도 저항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
쥐들처럼 혼비백산 흩어지는 걸 상상했지만, 생각 외로 살아남은 놈들끼리 연대가 강했다.
하나 그래 봤자 스캐빈저.
SS급 헌터인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투쟁’에서 살아남은 길드원들을 믿는 고천수는 그 정도쯤은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부하들이 탑승하는 것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