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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21화 (121/293)

[121화]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이게 더 확실하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일 안 하면 그만. 얼마나 좋아요?”

“그, 그게 지금 말이 되는…….”

“말이 되는 소리일세. 협회장 대리.”

갑자기 유성원과 협회장 대리 간부 사이에 끼어드는 한 사람, 가만히 듣고 있었던 고천수 청룡 길드장이었다.

그의 난입과 발언에 협회장 대리는 안색이 더더욱 파래지면서 난감한 기색이었는데, 갑자기 그가 저쪽 편을 들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고천수는 팔짱을 낀 채로 좌중을 바라보며 이어서 입을 연다.

“S급 헌터를 일곱이나 거느리고 있는데, 왜 말이 안 되겠나? 심지어 S급 몬스터 상대로 동수 싸움을 역으로 이겨 버리는 초실력파들인데 말이야. 봤지 않나?”

개개인별로 일대일도 가능한 데다 버프까지 받은 S급 몬스터와 5 대 5로 싸워서 오히려 역으로 눌러 버리는 실력.

물론 그 몬스터들이 상호 호흡을 맞춘다는 개념이 없어서 이긴 것이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런 분들이 폭력으로 굴복시키지 않고 얌전히 계약서 들고 거래하자고 한 것만 해도 오히려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지.”

“하, 하지만… 그래서는…….”

“그동안 정부나 협회가 배짱을 부릴 수 있던 건 모든 헌터들을 관리한다는 ‘권력’ 때문이었네. 한데 저쪽은 그 모든 권력을 넘어서는 힘을 지니고 있지. 거기에… 딱히 모시는 성좌나 지켜야 할 규율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말이야. 아무튼 할 일도 많은데, 안 되는 일에 징징대서 시간 끌지 말게.”

‘X같은 기사도가 있는데… 뭐, 덕분에 말싸움할 거리는 줄었군.’

오랫동안 3대 길드의 장으로 있던 고천수가 말하니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며 유성원은 내심 안도한다.

애초에 그는 합의나 협상 같은 거 할 의사가 1도 없었고, 최충선을 지키기 위해서 돈 이야기를 꺼낸 것뿐이었다.

고천수가 말려 주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달라붙고 칭얼대는 저 꼴에 험악한 이야기까지 입에 올라갔을 것이다.

“그럼 이 문제는… 큭! 일단 미루겠습니다. 후우~ 아무튼 이 목사 사태와 S급 헌터의 정세가 변한 만큼 앞으로의 일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피해가 컸지만 그래도 S급 몬스터를 둘이나 쓰러뜨리는 큰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전에 쓰러진 레그혼을 포함하면 셋. 기존의 10마리에서 7마리로 줄어든 상황입니다. 거기에 거대한 세력을 가진 마인(魔人) 이 목사의 실각과 죽음으로 추정되는 사태로 인한 혼란. 한동안 질서를 잃고 폭주할 테니… 그 틈을 타서 저희가 성좌 도살왕의 영역을 공격하는 겁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데?’

슬쩍 좌우에 있던 기사들을 바라보는 유성원이었다.

그래, 반격에 성공한 지금 상대는 혼란스러울 것이고 이 틈을 타 공격을 하면 유효할 것이라는 이야기.

자신의 기사들이 한 번씩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과연 그래도 협회 간부랍시고 자리에 앉은 것들이니 아주 무식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결국 좋은 계획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여기에는 군의 힘도 필요하지만 당연히 헌터님들의 힘도 필요합니다. 언더시티들은 포격이나 미사일로 제거할 수 있지만 던전은 결국 헌터님들이 없애 주셔야 하니까요.”

“포탈 남기고 앞서갔다가 뒤통수 맞으면 그것도 난감하니 말이지.”

“그, 던전 공략들은 역시… S급들의 활약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둥이 되기도 하고, 또 저희가 치고 올라가면 언더시티를 지키기 위해서 S급 몬스터들이 올 테니 그것도 처리해야 하고 말이죠. 어쩌면 두 번 다시 없을 호기인데…….”

대놓고 유성원 쪽을 살펴보는 협회 간부였지만 갑주에 가려진 얼굴 때문에 반응을 살피기 난감했다.

아까 전 대놓고 부딪쳤기에 그는 이대로 자신이 대화를 이어 나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같이 온 정부 측 요인에게 슬쩍 눈빛으로 바통 터치를 요구한다.

“…크흠, 여기서부턴 작전에 대한 것이니 제가 이어받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군에서 생각하고 있는 작전은 우선 일반 무기를 통한 포격과 미사일 공격으로 언더시티를 파괴, 그리고 군부대와 길드를 같이 움직여서 던전을 처리하고 던전 생성 탐지기를 설치해 가면서 주요 거점을 수복해 가는 작전입니다.”

“적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S급만 말해서 좀 그렇지만, 도살왕 휘하의 A급, B급 몬스터들도 만만치 않은 놈들이고 수도 많잖아.”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서울이라는 한 도시에 적이 공격을 집중해서 생겨난 인식입니다. 결국 A급, B급도 S급에 비해서 많을 뿐이지 각각 백 단위, 천 단위를 넘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도 전선을 넓히고 공세해서 올라가면 놈들도 결국 전력을 분산해서 대응해야 할 겁니다.”

올림푸스와 청룡 길드는 군의 전략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단시간 내에 나온 것치곤 상당히 많은 고려가 담긴 좋은 전략이었다.

시기도 지금이 딱 좋은 게, 이 목사와 합류해서 배신한 세력들이 많았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났고, 이번 총 소집으로 전원 파악이 된 상태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부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만 주의하면 충분히 할 만한 공세였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우선 악명 높은 주요 언더시티들을 파괴하고 스캐빈저들을 몰살하는 것입니다만, 가능하다면 평양까지 수복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평양-개성-서울로 이어지는 허브를 완성하고, 평양을 전선 도시로 만들어서 국내에 주둔하는 성좌 도살왕 세력을 완전히 북쪽으로 몰아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꿈이 어마어마하게 크구먼. 하긴 누구나 서울대 가는 꿈은 꾸니까…….’

“더불어 이 작전에는 성좌 용봉왕(龍鳳王)의 중국군, 러시아 군과 공조할 생각입니다. 이른바 3면 공격이지요. 제아무리 성좌 도살왕 세력이라고 한들 이렇게 하면 모든 S급 몬스터를 이쪽에 보낼 수 없을 겁니다. 정말로 저희의 반격이 헛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뭔가 생각보다 멀쩡한 작전이 나오고 있어서 오히려 놀라운 유성원이었다.

성좌 용봉왕은 중국 공산당의 적이긴 했지만 일단 선(善)한 성좌로, 본인이 직접 화신으로 강림해서 현재 베이징 주변의 중국 동북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의 품에 들어온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성좌였고, 인간을 잡아먹는 성좌 도살왕의 세력과는 철천지원수였다.

“물론 중국 공산당 정부와 관계가 나빠지긴 하겠습니다만 국가 안전이 더 우선이기에 이렇게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근데 성좌 용봉왕도 결국 내부에서 성좌 진황, 중국 공산당 정부와 싸우느라 바쁠 텐데?”

“그래도 위험 하나를 치우는 것에는 동의할 거라고 봅니다. 러시아 군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만약 잘된다면 성좌 도살왕의 세력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코어 던전 공략도 노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코어 던전.

자신의 세력을 끌고 지구에 강림한 성좌 세력의 중심이 있는 곳.

지구의 인간을 선택하는 성좌와 다르게 코어 던전을 가진 성좌 세력의 경우 그 코어 던전이 사라지면 자연히 그 휘하 모든 세력은 사라지게 되고, 더 이상 성좌 도살왕은 지구에 세력을 이끌고 오지 못하게 된다.

다만 이후 기존의 다른 성좌들처럼 인간을 선택하는 식으로는 가능하지만 말이다.

‘코어 던전이라. 말이 쉽지, 그걸 누가 가려 해? 사실상 S급을 넘어선 S급 던전인데… 뭐, 애초에…….’

“뭐, 이건 너무 멀리 간 것 같으니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이 전략을 위해서는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S급 길드도 길드지만 S급 헌터의 힘이 가장 많이 필요합니다. S급 몬스터를 막아야 하니 말이죠. 특히 일대일 비율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헌터면… 더 좋고 말이죠. 청룡 길드분과 올림푸스 길드분들도 중요하긴 하지만 역시… 유성원 님의 힘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

그의 말을 들은 유성원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저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과연 양심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그였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참고 있었고 애써 피하려고 하던 이성이 뚝! 하고 부러져 버린다.

“유성원 님?”

“하하하… 진짜 웃기지도 않네. 아까 전에 한 짓거리랑 너희가 나한테 한 짓거리랑… 내가 너희에게 한 짓거리를 다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나에 대해서… 조사한 거 맞아? 아니지, 눈치가 없는 거지?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 거에 가까운 건가?”

“저, 저기…….”

“나는 이 세상에 절망했어. 그래서 너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그런데 왜 자꾸 너희는 기대하는 건데? 나한테 뭘 원하는 건데? 너희가 늘 말했잖아.”

어느샌가 일어나서 갑주가 벗겨진 채로 계속해서 울분을 토하는 유성원이었다.

부족함과 고통, 비탄으로 가득한 인생사에 적응한 이 소시민은 자꾸 눈치 없이 자기 할 말과 입장만 강요해 대는 인간들의 행태가 당연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젠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순응하며 살라고! 체념하라고! 포기하라고! 까라면 까라고! 행동하지 말라고! 지금이 어느 시국인데 그러냐고! 그 개X 같은 보호 시설에서도! 그 X같은 군대에서도! 심지어 아카데미아에서도! 법원에서도! 정부에서도! 너희들이…….”

그는 보호 시설에서 인간 생명의 하찮음을 배웠다.

군대에서 인간 가치의 하찮음을 배웠다.

아카데미아에서 인간 위에 또 다른 인간이 있음을 배웠다.

정부에게 있어서 인간은 결국 사회의 톱니바퀴, 부품이라는 걸 배웠다.

인간은 늘 진보한다고 했었지만 ‘각성자’와 ‘성좌’ 사태로 다시 모든 것이 퇴보하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그는 이 세상은 그저 잠깐 약 100년간 살다 가는 곳임을 배웠다.

그렇기에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일이 있어도 결국 그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기대나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했다.

그게 유일한 소망이었다.

“꼭 이렇게 직접 말을 해야 알아 처먹는 눈치 없는 새끼들아. 원망할 게 있다면 나 같은 새끼를 이따위로 강하게 각성시킨 ‘신’을 원망해라. 아포칼립스가 되든 뭐가 되든 간에 상관 안 해. 거래 좀 편하게 하려고 내가 협약이니 뭐니 한 거지. 얘들아, 나가자.”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만약…….”

“내게 한마디 할 수 있는 건, 나 같은 새끼에게도 무상의 은혜를 베푼 저 할망구 한 명뿐이야. 거기서 한 번만 더 개소리하면 여기서 다진 고기로 만들어 주마.”

“히, 히이익!”

말리려 했으나 살기를 전력으로 띤 유성원의 눈빛에 정부 요인은 그대로 다리를 떨며 바닥에 넘어진다.

기사들은 말없이 알아서들 기사단의 성소 포탈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갔고, 최충선은 슬쩍 눈치를 보다가 유성원의 뒤를 따라간다.

남은 이들은 폭풍처럼 분노하고 떠나간 유성원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뭐, 정신병자도… 각성자가 될 수 있는 법이긴 하지.”

“저도 지지지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어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저, 저거 놔두면 나중에 크, 큰 위협이 되는 거 아닙니까? 사상이 너너너너무 무서운데요?”

“아, 아니, 왜 갑자기 급발진이래? 참 나~”

고천수를 시작으로 다들 분위기 환기를 위해서인지 나간 사람을 매도하며 필사적으로 떠들고 있었다.

하나 백가연과 고천수를 제외한 참석자 모두 유성원의 진노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건지 다들 손이나 발을 떨면서 쉽게 진정하지 못했다.

‘아이고, 머리야.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그걸 못 참나. 하아아아아~ 저 천치들이 저러는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대충 긍정하고 나중에 무시해 버리거나 잠수 타면 되었을 것을 대체 왜 어른답지 못하게 이런 건지 모르겠군.’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여기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혼재된 상태로 백가연은 안 그래도 늙었는데 기력이 빨려 더 늙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 그… 아무튼 일단 자,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바, 바지를 갈아입고 와야 해서… 처, 청소도 하고 말이죠.”

“뭐, 그럽시다. 두세 시간 뒤에 다시 만나도록 하죠. 그… 말씀하신 대로 성좌 도살왕 공략에 대한 논의는 꼭 필요하니 말입니다.”

“예. 확실히 지금만 한 호기는 없을 것 같네요. 그 공략에 대해선 저희 올림푸스도 바로 상부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영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도 말이죠.”

의외로 올림푸스 길드는 유성원 측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슬쩍 하고서 회의실을 나갔다.

이 목사가 일으킨 사태 때 렘렘에게 당할 뻔한 디오메디아를 구한 빚도 있었고, 엄연히 서울 장벽에서 싸워 준 유성원의 말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는 행태에 약간 화난 것이리라.

그렇게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파국을 맞게 된 이 총 소집은 결국 한국 내 길드와 정부, 협회의 분쟁만 더 크게 키운 꼴이 된 채로 휴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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