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으아아아아아아아!”
“빨리 올라가아아아아아!”
그리고 동시에 미끼 작전으로 인해 허탕을 치게 된 지하 주차장 쪽에서는 수많은 비명 소리와 절규가 유성원이 들어가고 있는 1층까지 들려왔다.
가능한 한 지하 주차장 깊숙한 곳에 주차하라고 해 놓았으니 다시 올라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고, 그 정도면 이미 자신은 VVIP들만 모인 층으로 가기에 충분했다.
‘뭐, 적당히 올라가다가 계단 시설을 뚫고서 멋대로 올라가도 되겠…….’
“‘히페리온 타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황금 용기사 유성원 님.”
완벽히 속였다고 생각하고 다른 용무가 있는 일반인인 척하며 들어갔는데……. 갑자기 나타난 정장을 차려입은 서양 여성 둘이 양쪽에 선 채 허리를 숙이면서 그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그 태도에 유성원은 유령이라도 만난 듯 화들짝 놀란다.
“어, 어떻게?”
“많이 놀라셨는지요, 유성원 님. 저희는 이곳 ‘히페리온 타워’의 직원이면서 성좌 아폴로 님의 가호를 받은 각성자들입니다. 그분의 은혜로 유성원 님께서 이곳에 오실 줄 미리 예상했을 뿐입니다. 따라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미리 예상했다니 더 할 말이 없어진 유성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두 사람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층수가 꽤 되다 보니 올라가는 시간도 길었다.
그리고 올라가는 동안 두 사람은 계속해서 유성원에게 타워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S급 이상 분들은 145층에 있는 VVIP 회의실에서 모입니다. 그리고 144층에 있는 개별 숙소도 배정해 드립니다. 유성원 님은 144-A호실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저희에게 언제든 말씀해 주시고, 이 ‘히페리온 타워’에 있는 모든 시설은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으니 개의치 마시고 사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책자에서 봤지만 입 다물고 있어야지.’
“더불어 A, B급 헌터들은 90~100층의 숙소가 배정되었으며 101층의 특별 회의장에서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C급 아래로는 30~50층에 숙소를 배정했으며 각 등급별 회의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난 숙소 안 쓸 것 같은데 말이지.”
“회의에선 어떤 이야기와 합의, 거래 등등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대비한 겁니다. 총 소집은 흔히 출석 체크라고 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업무에 한해서일 뿐, 대한민국 모든 헌터 길드가 모이는 상황은 수많은 비즈니스와 거래, 또는 이적 시장이 열리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죠. 그래서 총 소집이 끝나고도 많은 길드들이 오래 이곳에 머물곤 합니다.”
띵!
이야기를 마침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는 145층에 도착했고, 앞에는 복도와 VVIP 회의실 문이 있었다.
붉은 카펫에 신전 입구를 형상하듯 조각된 문 옆의 화려한 부조까지, 솔직하게 감탄하고 싶었지만 참는 유성원이었다.
아무튼 눈앞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회의실인 걸 안 유성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두 사람을 제지한다.
“어, 그러니까, 잠깐만 물러나 줄 수 있어?”
“왜 그러십니까?”
“그야 일단 이 차림으로 들어가면 나라는 걸 모르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S급 이상이니까 우리 애들도 소환해야 하거든.”
“아, 그렇군요. 그러면 잠깐 물러나겠습니다.”
유성원의 의도를 깨달은 두 여성은 복도 구석 쪽으로 쭈욱 물러났다.
그러자 유성원은 성소 포탈을 열어서 기사들을 부름과 동시에 금빛 신수의 갑옷을 착용한다.
맨 얼굴보다 이 모습이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것을 입으면 자신의 표정이나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에 더 좋았다.
현재 진석과 유청에게는 신소미와 신아영의 호위를 맡겨 두었기에 가울프, 아칼론, 섬멸, 크록베인 넷이 나와 유성원의 뒤에 선다.
[…주인… 천장이… 낮다.]
우드득!
덩치가 큰 크록베인은 나오자마자 천장을 부수었고, 유성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행히 올림푸스 길드의 수행원 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스태프에게 연락하겠다고 하고서는 회의실 문을 열고 내부에 알린다.
“SS급 헌터, 황금 용기사 유성원과 그를 따르는 S급 기사 네 분이 입장하십니다.”
‘…시선이 모두 모이는군.’
수행원의 말과 함께 회의실에 원형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유성원에게 몰린다.
내부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S급 헌터들을 보면 늘 있는 청룡 길드 3인방과 올림푸스 길드에서 이번에 함께 싸웠던 디오메디아와 트리토니아스 헌터, 그리고 경상도 쪽을 담당하던 전지아, 자신 쪽으로 넘어온 최충선, 백가연 어르신이 다였다.
나머지는 이제 TV에서 자주 보던 국방부 장관과 협회장 대리로 온 협회 간부 한 명, 그리고 대통령 정무 수석 비서관이 끝이었다.
‘서울 길드 양반들이 없네?’
“바로 앉으십시오, 유성원 님.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벌써 그냥 나가고 싶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출석 체크 다 했으니까 그냥 나갈게.’ 하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백가연 어르신이 당부했기에 유성원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도 살짝 멀리서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유성원은 그대로 자리에 앉았지만, 그의 좌우로 보이는 네 기사들은 의자를 부수거나 치워 버리고는 제멋대로 서 있었다.
“저기, 기사분들? 다들 앉으시는 게…….”
[흠하핫, 신경 쓰지 말게. 우리는 이게 편해서 말이지. 기사로서 주군과 나란히 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의자가… 작다. 흠.]
“그럼 역으로 묻지요. 당신들은 모시는 ‘성좌’ 옆에 나란히 앉을 수 있습니까?”
[동의한다.]
스산한 말투로 말하는 가울프부터 시작해서 셋 다 한마디씩 날카롭게 던지자 협회 간부는 유성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무시한다.
결국 어쩔 방도가 없던 협회 간부는 한숨을 깊게 쉬고는 그대로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럼 총 소집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다시피 협회장님은 긴급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본부에 남으셨기에 제가 대리자로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총 소집은 얼마 전 이 목사가 일으킨 대란으로 인한 사태의 수습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며 대한민국의 안보와 미래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두들 성실히 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가식 돋는 소리에 소름이 돋으려고 하네. 벌써 나가고 싶다.’
갑주를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맨몸이었다면 분명 팔과 다리를 긁고 싶을 정도로 소름이 돋는 유성원이었다.
아무튼 그는 간신히 참아 내면서 그 덧없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 5분여간 상투적인 위로와 감사, 그리고 정부와 협회가 대충 ‘최선을 다해서 미래를 이끌어 갑시다.’라는 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오늘 불참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모이신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서울 길드 S급 2명의 불참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박순원 헌터는 지난 신강남 사태 이후 모습을 감추었었는데, 서울 길드를 조사한 결과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테이터스가 C급 수준으로 내려갔으며 클래스마저 바뀐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 추측을 해 보면 유성원 님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나 딱히 뭐 한 거 없어. 그런 복잡한 능력도 없고 말이지. 스테이터스 다운이 되었다면 자신의 클래스에서 문제가 생긴 거겠지.”
“하나 그러자니 현재 그분은 당신을 만나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단 C급으로서 참석 중이니 회의 후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무슨 학교 폭력도 아니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억지 화해라도 시키려고 하나? 염병하고 있네.’
유성원은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생각하며 절대 만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이어서 협회 간부는 다른 나머지 한 명의 실종 소식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오경훈 헌터. 매우 귀중한 버프 및 서포터, 지휘에 특화된 로드 클래스의 S급입니다. 이분은 얼마 전 이 목사가 일으킨 전쟁 때 신강남 방어선을 지휘하다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으며, 휴대폰 및 전자 기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체 어딜 간 건지, 참…….”
“다만 스캐빈저들 사이에서 묘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가 이 목사에게 잡혀가서 아크데몬 비스트들에게 잡아먹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서울 길드 내부에서 그가 이 목사와 손잡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것 등등…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모두 진실이었지만, 시기를 특정하지 못하고 한 번에 늘어놓고 보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애초에 오경훈은 서울 길드의 새로운 장이자 신강남의 후원자들과 깊이 연계된 자라 그가 인류를 배반했다는 이야기는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와 같은 이유로 S급 헌터 두 분과 협회장님 총 3명이 불참하게 되었으며, 그 외의 분들은 전원 참석해 주셨습니다. 청룡 길드의 세 분, 올림푸스의 두 분, 남쪽의 두 분, 백가연 어르신, 그리고… 유성원 님과 기사들을 포함한 다섯 분 모두 말이죠.”
‘출석 체크는 여기서 끝난 것 같은데… 뭔가 더 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럼 이어서 바로 추가적인 회의 및 정부와 협회에서 파악한 중요 사안들에 대해 확인하고 정책을 수정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가장 먼저 최충선 헌터님 사안입니다. 그… 주요 길드원 모두를 잃으시고 유성원 님 밑으로 들어간 게 사실입니까?”
출결 확인만 한다면서 갑자기 청문회장으로 변해 버린 회의장이었다.
유성원은 슬쩍 백가연을 보았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아주 가관이었다.
「보낸 사람:할망구
그 ‘출석 체크’라는 건… 대한민국에 별일이 없을 때를 이야기하는 걸세. 일이 있다면 당연히 모인 김에 의논 같은 걸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이럴 줄 알았어.’
“맞습니다, 협회장 대리님. 저는 이제 유성원 님 밑에서 일하는 충실한 하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제 거취에 대해선 모두 그분을 통해 지시를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최충선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유성원 뒤에 서 있는 가울프의 옆으로 가서 선 다음 눈을 감는다.
이것은 더 이상 협회장 대리가 뭐라고 해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자, 잠깐만, 최충선 헌터님.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닙니까? 당신이 그렇게 물러나면 남부 지역의 안전은 어떻게…….”
“알게 뭐야. 그딴 건 당신들이 생각해야지.”
“유성원 헌터님, 지금은 당신에게 물은 게 아닌…….”
“저 아저씨 말 안 들었어? 그러니 저 양반에게 뭘 요구하고 싶으면 나에게 말하라고~”
최충선을 책망하는 협회장 대리 간부의 말 사이에 유성원이 끼어들었다.
스스로 유성원의 밑으로 들어갔다고 분명히 말했고, 유성원도 긍정했으니 최충선의 문제는 이제 그와 이야기해야 했지만 SS급이면서 아직 밑바닥이나 약점을 하나도 모르는 그와 협상을 해서 이길 자신이 없는 협회 간부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했다.
‘S급은 국가 안보의 기둥. 어떻게 해서라도 복귀시켜야…….’
“대충 무슨 소리를 할 건지 뻔히 보이지만~ 시민의 안전이니 뭐니 하면서 지원과 보상을 넉넉히 해 줄 테니 복귀해 달라고 딜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막상 복귀하면 부서가 어쩌니, 시가 어쩌니, 예산이 어쩌니 하면서 미룰 테고 말이야.”
국가도 어떤 의미에서 이기적인 생명체와 같다는 걸 유성원은 협회 보호 시설에서 뼈저리게 배웠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더 좋은 방법 있어?”
‘…저 망할 자식이!’
속만 끓이면서 유성원을 노려보는 협회 간부였지만, 그렇다고 뭔가 주장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혁신적인 방법이 있었다면 그걸 진작 먼저 제안해서 마음을 돌렸을 테니 말이다.
지금 협회나 정부에서는 ‘사실상 그냥’ 언론 플레이나 압력으로 최충선을 복귀시키는 게 목표였는데, 그가 유성원 밑으로 숨어 버리니 답이 없었다.
“뭐, 저도 아주 나쁜 놈은 아니고, 나라가 망하는 것까지는 그리 바라지 않으니까 ‘협상 조건’에 따라서 복귀시켜 드리죠.”
“뭐… 조건? 무슨 조건?”
“당연히 이거죠. ‘돈’.”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여 줌으로써 고금동서의 진리이자 가치 교환 수단인 돈에 대해 언급하는 유성원이었다.
그것을 본 협회 간부와 정부 인사는 그와 맺은 ‘1조 협약’을 떠올리면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