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다음 날, 아이언 포트리스.
약 17일간의 휴가 끝에 오랜만에 아이언 포트리스에 돌아온 유성원 일행.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고블린 제국 던전 지역 주변의 땅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던전 입구 포탈이 존재했기에 함부로 다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주변 산 전체를 구매해서 철망까지 치고자 한 것이었다.
“마정석 드릴 테니까 파셔서 돈 마련하시고, 어차피 아직도 던전 클리어가 완전히 안 된 곳이니까 땅값은 쌀 거예요.”
“자재만 배달해 주면 곧바로 철조망 공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천검군 병사(고블린)들의 한국 지형 적응 훈련도 되겠군요.”
“공사비도 아끼고 일석이조네. 아,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얘네들 소환수로 등록해야겠다. 얘네도 성소에 들어가지지?”
“예. 저희 병사로 등록한 시점에서 이미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충족되었습니다. 안에 새로이 병영도 만드는 중입니다. 수원지도 있더군요. 언제든 폐하가 부르시면 소환할 수 있습니다.”
대신 기존의 천검군 병사를 대체하는 존재라서 부를 때 마력이 소모되긴 하지만, 난이도 높은 공간 이동 마법이나 코스트가 비싼 천검군 정예병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1천 명의 고블린 병사들을 소환할 수 있는 건 장족의 발전이었다.
심지어 내부에 병영 및 시설까지 있다니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으음, 나도 들어가 보고 싶은데 못 들어가니, 원~ 대체 내 성소인데 왜 내가 못 들어가는 거야!”
“‘서약’하지 않은 기사여서 그런 거지요.”
“아, 또! 그놈의 서약! 그냥 대충 아무거나 해 버릴까 보다!”
“‘기사’의 운명 같은 것이라서 안 됩니다, 폐하.”
서약에 관한 이야기를 넘기고서 아무튼 고블린 제국에 대한 문제는 고블린 병사들에게 마정석을 선지급하는 것으로 대강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껄끄러운 안건이 시작되는데, 바로 총 소집에 관한 것이었다.
“총 소집. 전에도 말했지만 헌터 길드의 출석 체크 같은 것으로 일단 모두 모여야 하네. 대부분의 길드는 대표만 와도 되지만, B급 이상 헌터는 모두 집합해야 하는 점이 있지. 이건 아카데미아 학생도 예외가 없네.”
“아, 그러고 보니 그거 준비했던 기억이 있네요. 근데 자주 있던 게 아니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요.”
“그야 자주 할 일이 없으니 그렇지. 지금처럼 대한민국 헌터 사회 전체가 흔들리거나 혼란스러울 때만 하는 거니까 말이지.”
스캐빈저와 헌터의 경계 사이에서 사는 이들의 구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참석하고도 스캐빈저의 경계로 들어가는 놈도 있긴 하지만, 일단 모여서 협회의 위상을 세우고 한국 헌터와 길드들 간에 질서를 바로잡는 게 눈앞에 당면한 시급한 과제였다.
“그거 한다고 해서 뭐 달라질 건 없어 보이는데……. 아무튼 강제 참석이라 우리는 유청, 진석 빼고 다 데려가면 된다는 거죠?”
“그렇다네. 나도 같이 갈 거니 딴 데로 샐 생각 말게.”
“저 이런 모임 같은 거 최악이라 가기 싫은데~ 어디 갑자기 큰 던전 하나 생기지 않으려나? 아니면 이 목사가 한 번 더 깽판 치든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겐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소리를 태연히 하는 그에게 버럭 소리 지르는 백가연이었지만 유성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관심사는 다른 B급 던전들 리스트를 뽑아서 소미 누님과 아영이와 함께 도는 것에 있었는데, 백가연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무언가 책자를 내민다.
“받게.”
“이거 뭡니까?”
“총 소집 처음이지? 모든 헌터가 모인다고 해서 다 같은 곳에 있는 건 아니네. S급 이상은 알다시피 특별실에서 모이거든. 총 소집 안내 책자일세. 현장 지리와 행사 순서 정도는 익혀 놔야 할 거 아닌가?”
“무슨 전쟁 준비하는 것 같네요.”
“전초전도 전쟁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겠지. 아마 자네가 이번 총 소집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을 게야. 언론도 그렇고 수많은 헌터들이 주목하겠지. 사실상 자네를 위한 무대일세.”
별로 반갑지 않은 무대였지만 유성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곤 책자를 읽으며 바로 내일 있을 총 소집을 준비한다.
B급 이상 전원 집합이니 신소미는 물론 신아영까지 모두 가야 했기에 자연히 두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한다.
“소미 누님은 이거 참석해 봤죠? 어땠어요?”
“최악의 행사죠. 아, 참고로 외국에서도 찾아오니까 더 조심하셔야 해요. 주변국 헌터 업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행사거든요.”
“아, 역시 가기 싫은데…….”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게, 우리도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도 있고, 거기서 서열을 정리해 두면 차후가 편해요. 3대 길드가 어땠는지 보세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유성원은 계속해서 책자를 바라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총 소집,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최대한 대비를 하자고 생각하며 성소에 있는 기사들을 부르기로 한다.
***
다음 날.
서울, 히페리온 타워.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이 호텔은 ‘올림푸스 길드’의 자본이 들어간 150층짜리 초고층 빌딩으로 각종 고급 숙박 시설과 레저 시설은 물론 하늘 위에 떠서 움직이는 올림푸스 길드의 천공섬이 정착해서 쉽게 보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세계 최고의 길드라고 불리는 데서 만든 곳답게 규모도 규모지만 여러 기호를 만족할 수 있는 시설로 가득하며, 동시에 안전까지 확실한 곳이었기에 이런 총 소집 외에도 각종 행사에 사용되었다.
하나 그 어떤 행사보다도 역시 전국의 헌터가 총 소집되는 이번 행사가 가장 화려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수많은 길드의 트레일러와 차량들이 몰리는 건 물론 늑대, 말과 같은 짐승을 타고 오는 이들도 군데군데 보이고 있었다.
개별적으로 강약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성좌의 가호와 선택을 받고 각자의 야심과 목적, 성좌의 인도 아래 이 세계에서 싸우는 헌터들이었다.
물론 개중엔 스캐빈저들도 섞여 있지만 말이다.
“야, 하늘 똑바로 보고 있어. 언제 ‘황금 용기사’가 올지 모르니까.”
“근데 진짜 용을 타고 올까요? 전에는 멀쩡히 트레일러 타고 오던데…….”
“총 소집은 특별하니까 다를지 모르잖아. 아무튼 잘 찍어. 오늘은 무조건 대박 터지는 날이니까……. 아! 크로스페인 길드다. 빨리 찍어. 근데 표정이 안 좋군. 장벽 수호에서 희생이 컸나?”
그리고 헌터들이 모이는 총 소집이지만 손님은 그들 외에도 많았다.
우선 이미 히페리온 타워 입구 쪽에서 카메라를 세팅한 언론인들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헌터 길드들을 촬영하면서 기사로 올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올리는 기사는 가십거리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협회에 별도로 제출되어서 참석한 길드를 확인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선배님, 그런데 오늘은 특히나 엄청 많네요?”
“그야 늘 오는 사람들 말고도 추가로 더 왔으니까……. 저기랑 저기 봐. 경상도 도지사랑 전라도 도지사도 와 있고, 기업인들도 엄청 많지? 보통은 잘 안 오는데 말이지.”
“오, 그러네요? 역시 그… 저번 사태로 인해 이탈 헌터가 생긴 것 때문인가요?”
“그렇지. 남부 지방에 있는 S급 2명 중 하나가 빠져나갔고… 길드 하나는 전멸해서 공중분해. 이 목사를 물러나게 했다고 해서 좋아할 게 아니야. 지금 피해가 심각하잖아. 이러다가는 안 그래도 작은 나라가 더 작아질까 걱정이야.”
예로부터 내려온 수도권과 지방의 안전 균형은 이번 전쟁에서 최충선의 이탈로 드디어 무너지고 만다.
성좌 도살왕의 공세에 북쪽에 힘을 많이 주고 버티면서 남쪽의 균형을 잡아 주던 두 기둥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 사태는 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오늘 총 소집이 일어나기 전부터 계속해서 ‘최충선 헌터’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쯧쯔쯔, 진작 좀 신경 써 주지, 이제 와서 저 난리라니…….”
“전지아 헌터도 화가 많이 났는지 계속 뉴스에서 뭐라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코로나 때도 그렇고, 고생하는 사람 대우를 자꾸 짜게 해 주니 이 모양이지. 쯧쯔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아마 모여서 출석 체크 하고 나면 회의를 크게 한 번 할 거야. 하나 확실한 건… 더 이상 지금처럼 배 째라면서 버틸 수는 없을 거다.”
S급 상황만 보면 최충선의 이탈로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전지아 헌터의 조짐도 심상치 않았다.
거기다 서울 길드에 있던 2명의 S급 헌터 오경훈과 박순원은 지금 소식도 없이 사라진 상태라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물론 그것은 여기 선배 기자가 예측하는 대로 정부, 협회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시간 다 되어 가는데, 황금 용기사는 언제 오는 거야? 주인공이랍시고 마지막까지 뻗대는 건가?”
“보니까 아예 늦을 작정 같은데요?”
“대체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아서 꽁꽁 숨기고 다니는 건지. 씁, 무슨 성좌를 섬기는지도 모르겠고, 목적이나 방향성 같은 것도 일절 안 보이니…….”
협회 회의 같은 것도 단 한 번만 참석했을 정도로 황금 용기사 유성원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아카데미아 직원 시절의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해도 워낙 조용하고 우직하게 일을 하던 직원이다 보니 인상이 옅었다는 증언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이상의 과거를 파 보려고 해도 지금은 사라진 협회 산하 보호 시설에 있었다는 것뿐인데, 현재 그 보호 시설은 기록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거… 냄새가 완전 특종감인데 말이야. 씁~”
“뭐가 없으니 건질 건 결국 본인 인터뷰뿐인데 말이죠.”
“인터뷰하려다 목숨 날아갈걸? 어! 저기저기! 청룡 길드다! 빨리 찍어. SS급 승급 문제도 아마 이번에 나올 거니까……! 사진 더 많이 찍어 놔.”
“예. 근데 그러면 슬슬 시작한다는 건데… 유성원은 대체 언제 나타나는 걸까요? 안 오려나요?”
“가능성이 없진 않지. 그 1조 거래를 신강남의 높으신 분들이 어깃장을 제대로 놔 버렸으니 말이야. 5천억 받고도 못 쓰게 한 거 참, 졸렬하더구먼.”
유성원이 일으킨 신강남 사태에 대해 원한이 있는 이들과의 대립이 아직도 이어지는 상황이니, 충분히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법한 절차라곤 해도 무슨 계좌를 벨트 조이듯이 묶었다가 풀어 줬다가 다시 막는 걸 보면 평범한 사람으로서도 충분히 화가 날 일이었다.
“안 오면 뭐 안 오는 대로 기사를 쓸 수밖에…….”
“선배, 저기… 구형 트레일러! 저거!”
“왔구나! 왔구나! 왔구나! 어서 쫓아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멀리서 투박한 모양의 구형 모델 트레일러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물론이고 다른 기자들과 유성원에게 용무가 있는 공무원, 그리고 그를 모시려는 협회 직원들이 무리를 이루어 트레일러 쪽으로 달려간다.
거기에 마치 비상이라도 걸린 듯 ‘히페리온 타워’의 스태프들도 여기저기 무전을 치면서 유성원을 맞이하러 움직인다.
그리고 동시에 한산해진 입구에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누군가가 나온다.
“8,500원요.”
“와, 얼마 안 왔는데… 밀려서 엄청 나왔네. 자, 여기요.”
택시 안에서 나온 이는 바로 유성원이었다.
그는 초식동물 떼거리처럼 몰려가는 인간들을 보며 예상대로라는 듯 피식 웃는다.
인터뷰라든가 귀찮은 회담은 질색이었기에 오다가 먼저 내려서 조용히 택시를 타고 빠져나온 것이었다.
현재 그는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머리카락을 왁스로 세워서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기에 가까운 이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아~ 그러면 일단 귀찮은 일 하나는 넘겼고. 이제 진짜 들어가 볼까? 후우우~”
던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왠지 긴장이 되는 유성원이었다.
아카데미아 스태프로서 헌터나 길드 관련 주요 행사 일을 도왔던 적이 있어서 처음엔 긴장되지 않았는데, 막상 자신이 주역이 되니 갑자기 긴장이 몰려온 것이었다.
부디 무사히 이 출석 체크 행사가 끝나길 빌며 유성원은 기합을 넣고 ‘히페리온 타워’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