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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14화 (114/293)

[114화]

고블린 제국 던전, 어느 호수.

약속한 대로 던전 내에 들어오자 유성원은 진정한 의미로 해방된다.

처음 던전 안에 들어와서는 멀블린이 준비한 의전이니 환영 행사 같은 걸 할 뻔했지만,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유성원이 말없이 티탄의 말뚝을 꺼내고 갑옷으로 갈아입자 아무도 그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게 되었다.

“왜 인간들은 꼭 무기를 들어야 말을 들어 처먹을까? 하아~ 사람이 쉬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말이야. 노조라도 만들까?”

“아저씨가 대표인데 어떻게 노조를 만들어요? 자, 레모네이드~ 받으세요.”

한 폭의 그림 같은 호숫가에 앉아서 투덜거리던 유성원은 신아영이 준 잔을 받아 들었다.

그녀와 모친인 신소미는 나들이 복장으로 현재 그의 곁에서 같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활달한 성격인 신아영은 청바지에 어깨가 드러난 오프숄더 셔츠 차림으로 시원해 보였는데, 반면 신소미는 원피스 차림에 모자와 안경까지 착용한 채로 조리대를 설치하고 무언가 요리를 만드는 중이었다.

“멀블린인지 멀린인지 그 고블린 녀석이 의전 행사 한다고 했을 때는 진짜… 이성을 잃을 뻔했다니까~ 아무튼 드디어 쉬니까 뭐라고는 못하겠고, 던전 내라서 와이파이랑 통신 안 되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드네.”

“근데 언제까지 쉬실 거예요? 저 레벨 업 더 하고 싶단 말이에요. 다시 45레벨 B급 카운터 스톱에 걸렸어요.”

“결국 이것도 일 이야기 아니냐?”

“사실 할 이야기가 그것밖에 없잖아요. 아저씨랑 우리 가족이랑 뭐, 공유할 만한 취미가 있어요? 드라마나 TV 프로그램도 그렇고 영화마저 안 보니 답이 없잖아요.”

“그건… 맞다. 시시한 인간이라 미안하네.”

신아영의 날카로운 지적에 유성원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한다.

확실히 각성자, 헌터 관련 이야기가 아니면 공유할 수 있는 테마가 없어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너랑 누님이랑 이야기하는 건 뭐랄까… 일이라기보단 그냥 일상 대화 같아서 마음 편하긴 해.”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이거 드세요.”

“오, 샌드위치입니까? 잘 먹을게요, 누님.”

“천만에요. 확실히 쉬어야 할 사람에게 일을 강요한 건 미안한 일이었어요. 당신이 바라는 걸 한 번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아뇨. 그게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저도 아니까요.”

유성원이 바라는 건 오직 평온함이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그 시작은 각성하자마자 받은 전설급 장비와 SSS급 특성 때문에 생길 문제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행동으로부터였다.

남에게 빼앗기거나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레벨을 키우고 싸움을 해 온 것이지, 딱히 뭔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뇨. 저도 그 마음, 어느 정도 이해해요.”

“예?”

“저도 오직 하나의 소원만 바라보고 살았거든요.”

더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유성원이었다.

바로 딸인 아영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현재 아영이는 어머니와 유성원 둘만 있게 만들기 위해 알아서 자리를 피해 호수 주변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근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처음엔 그래도 나름 각성자 이전엔 의사이기도 했고, 각성한 이후엔 성좌의 눈에 들어서 좋은 클래스와 스킬까지 얻게 돼 혼자서 키우는 것쯤은 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으음… 역시 사회가 참 무섭죠? 특히나 젊고 예쁜 여성이 예쁜 딸과 함께 단둘이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 늑대 같은 게 많이 달라붙기도 할 거고, 수작 부리는 놈들도 많을 테니 말이죠.”

“이해가 엄청 빠르네요?”

“저기, 이래 보여도 사회에서 10년 가까이 굴렀어요. 게다가 아카데미아엔 말이죠. 남성 스태프들도 많지만 여성 스태프들도 만만치 않게 많이 근무하고 있어서 유사한 주제로 노닥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많았어요.”

여자 화장실이나 탈의실 같은 시설의 청소나 다친 여성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여성 스태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설 유지부 스태프는 곳곳에 물자를 공급하는 일도 하기에 비품 관련 일로 만나러 가는 경우가 잦았던 만큼 여성 스태프들의 수다를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다.

“특히… 아줌마들 토크는 지겹도록 들었어요. 묘한 곳에서 과장을 하고 막 자기들 멋대로 살을 붙인 이야기가 굴러가는 것까지 말이죠. 또 그런 부류 아줌마들 토크 중에 가장 화제가 되는 건 역시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이잖아요? 누구누구네 집에서 바람났다? 누구누구네 딸이 사실 딸이 아니라 아내였네? 하는 식의 사건 같은 게 매주 드라마 보듯이 들려오니 알기 싫어도 잘 알게 된단 말이에요.”

“꽤 힘들었나 보네요?”

“예.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글쎄, 총각은 어떻게 생각해?’라면서 갑자기 방청객한테 묻듯이 물어 오는데, 이게 상당히 지뢰인 게 대답을 잘못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몹쓸 놈이 돼서 평판이 내려가 버려서 그거 꽤 공포였다고요? 물론 생각보다 금방 다른 소문으로 덮어져서 조금 참으면 조용해지지만, 그동안은 시선이 따가워서 한때는 막장 드라마 보고, 네X트판에 가서 공부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래서 눈치채신 거군요. 후우~ 그래요. 혼자서 아영이 키우느라 꽤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안심이 안 되네요. 그 아이… 아영이를 B급 각성자의 경지까지 키웠는데 말이죠. 아무튼 저도 다른 거 상관없이 저 아이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소박한 하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하던 두 사람은 그대로 평범한 이야기를 하며 계속 시간을 보낸다.

홀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지만, 이렇게 스트레스나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꽤나 힐링된다고 생각하는 유성원이었다.

“뭐, 아영이라면 어떻게든 잘될 것 같은데요.”

“그건 모르죠. 당신이 일개 스태프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해서 SS급이 된 것처럼, 저 아이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요.”

“…윽, 확실히 부정 못하겠네요. 하지만 어떤 일이 찾아오든 간에 결과는 두 가지예요. 강해져서 싸워서 이겨 내느냐? 아니면 패배해서 굴복하고 지배당하느냐?”

현재 한국 내에서 분쟁 요소는 넘쳐흐르는 상황이다.

1조를 줬는데 5천억을 다른 사유로 뺏는 분쟁이라든가? 청룡 길드에 SS급이 생긴 점이라든가? 아직 살아 있는 이 목사라든가?

이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선 더 강해져야만 한다.

물론 렘렘을 쓰러뜨리고 난 후 64로 상승한 레벨과 남은 스킬 포인트, 거기에 이번에 얻은 재화도 있으니 더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님의 ‘그거’, 한 세대 밀린 기술이지만 도움이 엄청 되던데요?”

“성좌 메타에 밀렸을 뿐, 여전히 좋은 기술들이죠. 숙달이랑 제반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도 많고, 소모품도 많아서 비용이 점점 올라가서 문제이지만.”

“아, 탄환이라든가 그런 거 말이죠?”

“예. 그래도 다행히 아이언 포트리스 내부에 생산 시설이 있어서 원자재만 구하면 자체 생산할 수 있어서 코스트 다운이 되었지만요.”

대체 그 아이언 포트리스란 무엇인가?

대충 권한만 받아서 아직 시설에 대해 모든 걸 모르는 유성원은 자체 생산 가능하다는 말에 순간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거기는 뭐 하는 데인 거지? 뭐,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걸 생각하고 만든 거고, 시설도 엄청 커서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저도 그 시설들 보고 많이 놀랐다니까요. 성좌의 시대가 오기 전 이렇게 많은 발전을 했었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도 지금은 결국 모두 성좌만을 바라보지만요.”

아이언 포트리스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인간이 몬스터와 싸우면서 스스로 발전시킨 기술들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병기와 접목되어서 초기엔 빠르게 발달한 헌터들의 장비들이었지만, 교육과 숙달이 필요하고 생산 비용 증가 및 소모품이라는 점이 너무 커서 발달되다가 성좌들의 강림과 그들의 시대가 되면서 선호도가 떨어진 것이다.

“솔직히 성좌 양반들이 내려 주는 축복, 가호 같은 게 사기이긴 해요.”

“예, 특히 화살 회피의 가호라든가 바람의 축복 같은 기괴한 게 부여돼서 헌터끼리의 분쟁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또 아예 그냥 헌터들의 강함이 상향돼서 스테이터스발로 총알 정도는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래도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에요. 아직도 중하위 현역 헌터들은 총기류를 쓰기도 하고, 성좌가 없거나 그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사용하거나 아니면 민간 장비로 넘어가곤 하니까요.”

현재 육군이 사용하는 마정석 총기, 전차 같은 것들이 다 헌터들 장비의 개발 발전 과정을 겪고 파생되어 만들어진 것인 만큼 아직도 현역 장비로 사용 중이긴 했지만, 역시 성좌의 가호나 힘의 편리함이 선호도가 더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 아영이도… 마찬가지로?”

“예. 평소 입던 무복에서 이제 아주 전투복으로 바꿔 입은 거 보셨죠? 그 애는 애초에 무투가 계열이라 민첩이 높아서 저보다 훨씬 업종 변경이 쉬웠어요. 사용하는 총기나 트랩도 다른 걸로 바꿀 수 있구요. 후방과 측방의 변화를 막고 정보를 모으기 쉬운 스킬들을 주로 배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 혼자였으면 아마 현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저 ‘기사’들만 데리고서 대처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유성원의 ‘기사’들과 ‘엘드라엔’은 조직력도 있고 전투력도 뛰어났지만 유성원 외에는 전부 현대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배려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모든 스킬들이 전투력에만 몰려서 상대의 스탯이나 스킬을 별도로 읽지 못해 상황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고, 대처할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다.

이번 전투를 해결하는 데 거의 3할 넘는 공이 사실상 신소미와 신아영에게 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알기에 유성원은 감사의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젠…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 누님이 뒤를 봐주지 않으면… 역으로 불안하다고 해야 할까? 그… 편리함에 한번 물들면 버리기도 힘들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보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레벨 업 보조해 드릴 테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누님.”

“그렇게 말하면 저희가 이익만을 생각해서 도운 걸로 들리는데요? 아영이 건의 은혜도 은혜지만, 애초에 싫은 인간을 위해 귀중한 각성자의 스킬 트리와 포지션을 정하지는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누님. 저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평생을 혼자 살아왔고, 무엇 하나 잘못되어도 저 혼자서만 감당하면 되는 방식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 가족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부족한 게 많은 인간인 것 같아서 말이죠.”

호감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드는 게 당연했다.

아름다운 외모도 외모지만, 대화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전혀 없으며 오히려 독선적일지 모르는 자신을 품어 주는 여성인데! 싫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능력도 있고 딸인 아영이와의 인연 덕에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시점에서 이성적인 호감도는 이미 MAX치를 뚫은 상태였다.

‘그러니 더더욱 신중해야지… 나 혼자 팔자라면 모를까, 엮인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의 인생을 멋대로 흔들 수 없잖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군요. 하지만 인연이라는 건 완벽하게 준비되고 나서 만나는 게 아니에요. 미완성의… 혼자서 그려 나가던 스케치북을 하나로 합쳐서 같이 그려 나가는 것이죠.”

“무, 물론 누님의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해 보셨으니 더 잘 아시겠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스스로가 생각할 때 준비라든가, 계획이 아예 없어서… 그러니까! 이기적인 것 같지만… 시간을 좀 주십시오, 누님.”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유성원이었다.

이게 연애에 대해선 잘 모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애초에 가족을 만든다거나, 누군가와 사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기에 이렇게 서툴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서글픈 그였다.

조금은 다른 방식이나 좀 더 세련된 대사가 있을 것 같아서 더욱 갑갑했다.

그에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 같은 걸 열심히 볼걸.’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멋없는 자신에 대한 후회만 늘어 간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아, 예.”

“저도… 나이가 좀 있어서 걱정되니까요.”

“예. 예! 가능한 빨리 해 보겠습니다!”

한때 성좌의 최고 사도이자 축복까지 받았기에 지금도 외모는 20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신소미였다.

하나 실제 나이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것은 사실이었기에 유성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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