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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12화 (112/293)

[112화]

결국 아영이에게 패배한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트레일러에 올라탔다.

다른 일들은 모두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했기에 나는 안에서 뒹굴거리면 될 거라 믿고 밖에서 일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고로 아영이와 소미 누님은 따로 뭔가 더 준비하러 간답시고 밖으로 나가서 나중에 합류한다고 하였기에 일단은 나 혼자였다.

“으음~ 바쁘구만.”

현재 기사들과 천검군 정예병, 드론들이 분주히 움직이면서 마치 전투 준비를 하듯 분주했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 정말로 놀러 가는 건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야, 우리… 놀러 가는 거 맞지?”

“예, 맞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고블린 던전의 뒤처리이지만 가서 휴식을 취할 것입니다, 폐하. 하나 시간이 좀 있으니 이 서류들 처리 좀 부탁합니다.”

“우으으윽.”

트레일러 안에서 얌전히 있는데, 언제 찾아온 건지 유청 녀석이 나에게 서류 뭉텅이를 내민다.

놀러 가는 거라며? 놀러 가는 거라며!

나는 반발하는 눈빛으로 보았지만 유청은 순정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반짝거리는 미소로 태연히 답한다.

“가는 길에 겸사겸사 처리해 두면 좋은 것일 뿐입니다, 폐하. 시간은 금이니 미리 해 둬서 나쁠 게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보기에도 좋고 말이죠.”

“하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나오지 말걸. 그냥 우수한 네가 알아서 하면 안 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폐하. 아무리 제가 더 유능할지라도 옥좌에 앉은 것은 폐하입니다.”

“…더 유능하다는 건 부정 안 하는구나. 근데 너, 너무 빨리 적응하는 거 아니냐? 이거 컴퓨터로 작업한 것 같은데 말이지. 역시 난놈은 어디에 놔둬도 날아다니는구먼. 하아~”

문체가 정말로 황제에게 공손히 말하는 말투를 써서 고루하다는 점 덕분에 눈치챈 거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고 생각할 정도로 작업이 잘되어 있는 서류들이었다.

그리고 체크할 사안은 전리품들 판매 문제였는데, 엄청 많기도 하고, 대박 상품도 많아서 난리였다.

“S급 마정석, A급 마정석 아주 그냥 풍년이네. 음? 그나저나 이거 뭔 소리야?”

“어떤 것입니까?”

“내 계좌 다시 막혔다네? 그러니까… ‘국가 비상사태가 종료되었기에 임시 조치는 끝났습니다. 이후 계좌를 다시 열고 싶으시면 해당 법적 분쟁을 모두 끝마친 다음 은행에 신고해 주시면…’이라고 되어 있어. 이거 지금 나 엿 먹이는 거지?”

“폐하께서 그렇게 느끼신다면 모욕이겠지요. 그럼 바로 그 모욕을 갚을 길을 찾아야겠군요. 하명만 하시면 대한민국 정부와 다른 길드를 처리할 계획을 즉시…….”

“하지 마.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아, 진짜로 무슨 말을 못하겠네.

유청 이놈은 진짜 날 황제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고 진심을 다해 섬기는 건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진지하게 생각해서 탈이었다.

제발 농담은 농담으로 들으라고! 아무튼 나는 그 서류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한다.

‘이거 참 짜증 나네. 신강남 새끼들은 기소됐다거나 범죄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소리가 하나도 안 나오는데 말이야. 왜 나만 갖고 지랄이지? 내가 X밥으로 보이나? 그건 아닐 텐데?’

뭐, 사실 신강남에 사는 높으신 분들의 기괴하고 고상한 취미나 범죄에 대해서는 큰 기대도 안 했지만, 유달리 나에게만 지랄을 하는 건 대체 이해가 안 갔다.

이 헬조선의 정서상 결국 강한 자에게 굽히는 건 당연한데……. 그럼 내가 아직도 X밥으로 보인다는 건가? 왠지 열 받네?

“오? 일하고 있구먼. 아영이 그 아이가 완전 특효약이구만. 하는 김에 이것도 해 줄 수 있겠나?”

유청에 이어서 보기 싫은 일 귀신이 하나 더 추가되자 내 표정은 더더욱 구겨진다.

백가연 어르신도 서류를 한 뭉텅이 들고서 안에 들어온 것이었는데, 이미 도망칠 곳도 없기에 나는 빠르게 포기하고 그것을 받아 들었다.

“가는 동안에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자마자 짜증 나는 안건이 제 손에 들어왔죠. 이거 보세요.”

“어디… 이게 뭐 어떤가? 내가 아는 법무법인 소개시켜 준다니까. 거기에 맡기면…….”

“어르신, 애초에 신강남의 높으신 분들 입김이 들어간 싸움판에 올라가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어떤 법무법인을 쓰든 결국 ‘판사’가 결정하는 거잖아요. 아, 판례니 법리니 뭐 복잡한 이야기는 할 생각 마세요. 알아먹지도 못하고 그거 다 좋은 핑곗거리일 뿐이잖아요. 정의의 여신이 든 천칭 그거 돈, 뒷배, 권력, 힘도 재려고 갖고 다니는 거라고 비아냥거리더만~”

수십 년 전부터 판사를 A.I로 대체하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판사도 결국 인간이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저것들의 영향을 다 받을 수밖에 없다.

‘정의’라는 가치를 위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지금 시대에는 결국 모든 부수적인 요소가 천칭에 달리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저 같은 무지렁이라도 뻔히 알죠. 피해자와 가해자의 힘, 권력, 재력 같은 것만 정의의 여신이 가진 천칭에 달아서 재 보면 되니까요.”

“…아니라곤 못 하겠군.”

“뭐, 우리 측도 아무 연고 없고 힘없는 서민은 아니니까 뭘 하든 일부 승소가 나와서 피해액의 일부만 배상하라고 판결이 나오겠죠. 제가 가진 게 5천억인데… 이걸 다 뺏으면 ‘이 목사’를 공략 못할 것 같으니 한 2~3천억 정도만 슬쩍 배상하라고 할 거예요. 뻔히 예상되죠. 근데 그 뻔히 예상되는 꼬라지가~”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더러운지 모르겠군. 평소 이거저거 다 타협하던 게 자네 스타일 아니었나? 돈이 중요하진 않을 텐데 말이지.”

백가연 어르신의 말이 맞다.

사실 내겐 돈 액수가 크게 중요치 않았고, 이대로 그냥 대충 법무법인 고용해서 타협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기분과 감정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인간을 가축인 양 기르던 그 개 같은 새끼들에게 내 돈이 간다고 생각하니 그게 그렇게 기분 더럽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이제 막 전쟁 끝났는데… 다시 또 신강남과 전쟁 한판 더 하러 갈 텐가?”

“제가 그렇게 무식한 짓을 할 놈으로 보입니까?”

“실제로 하지 않았는가?”

어? 그러네?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어지네.

하지만 이미 한 달 넘게 지지리 싸운 나는 더 이상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기에 몸을 쓸 필요 없는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만 했다.

“아! 그러면 되겠다.”

“뭘 또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일본 방위각성성(防衛覺醒省)랑 중국 공산당 국방각성부(國防覺醒部)에 전화 한 통씩 넣을까요?”

길드 단위로 군부와 독립해서 운영되는 우리와 다르게 일본, 중국은 정부가 각성자들을 통제해서 부대 단위로 써먹고 있었다.

민간 길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몬스터 처리가 아닌 생산계, 제작계와 같은 특기를 가지고 민간 기업과 결합한 형태였다.

왜 한국만 이런 식의 길드 형태가 되었냐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방부의 눈부신 활약 덕분이었다.

강제로 복무 경험한 남성들의 불신과 증오 때문에 갈라지게 된 것이다.

“자네, 제정신인가?”

“아, 물론 진짜 거래할 생각은 없고 그냥 떡밥만 던지려고요. 그럼 알아서 설레발칠 거고, 다시 그 정보가 돌아가면 볼만하겠죠.”

“그러다가 진짜 판이 커지면? 자네의 ‘1조 협약’도 실제로 이루어졌지 않은가.”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어르신의 말에 등골이 싸해진 나는 그 선택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대화 트고 판 벌렸다가 또 스케일 큰 싸움에 끼는 건 딱 질색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중국, 일본에서 올 연락을 차단하는 게 답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긴 열 받는데? 아니다. 그냥 역으로 아무것도 안 해서 배상 금액을 최대로 당기죠! 신강남에 제가 입힌 파괴, 못해도 수조원급이잖아요?”

“배상 금액을 늘린다고? 무슨 생각인가?”

“만약 일해도 돈이 안 벌린다면 누구도 일 안 하려고 하겠죠? 게다가 이 목사 잡는 게 보통 일도 아니라서 예산이 필요한데 빚더미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천재적인 역발상이었다.

그래, 까짓것 배상액이랑 빚을 왕창 늘리고 이자까지 연마다 수백억씩 나오게 만들자.

그러면 암만 의뢰니 뭐니 돈을 받아도 돈이 안 벌리기 때문에 나는 일을 거절할 명분이 생긴다.

“어차피 제 공식 직함은 여기 임시 관리자니까 여기 건 압류당할 게 없을 거고~ 행여나 압류하려다가 S급 이상 각성자 다섯, 아니 일곱을 상대할 미친놈들도 없을 테니~ 남은 건 어떻게 하면 배상액을 풀로 당길 수 있느냐 하는 거네요?”

이 목사 공략을 거부할 수 있으면 다른 압박이든 뭐든 상관없다.

금융 거래만 막혀도 뭐, 능력만 있으면 불법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거래 같은 것도 있고, 현찰, 마정석으로 해도 그만이었다.

정 안 되면 다른 나라로 건너가서 사는 것도 고려할 만하고 말이다.

“흐흐흐, 좋아. 그럼 재판에서 화려하게 지기 위해 법정에 출두해야겠네요. 참가 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랬다가는 무언의 압력을 줄 수 있으니 오히려 나가서 법정 모독죄까지 추가하자.”

그렇게 지침을 적어 두고 나중에 법정에 출두할 날짜를 잡기로 한 뒤 서류를 넘긴다.

그다음은 ‘전리품 처리’인데, 어차피 이건 도살왕의 가호를 받은 반지를 통해 성좌의 상인과 거래해서 무구나 스킬 북으로 바꿔 먹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전리품은 처리 말고 그냥 보관해 둬. 내가 쓸데가 있으니 말이야.”

“따로 어디에 쓰려는 겐가?”

“그… 성좌와의 거래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그 렘렘이라는 녀석이 뱉은 마정석이랑 소재는 거래할 수 있거든요. 돈이 필요하다면 머맨 워로드에게 얻은 A급 마정석이랑 다른 소재로 충당하고 말이죠.”

“아예 인연 없는 게… 아니었나? 아니지, 자네 같은 헌터라면 오히려 성좌가 주목해야 정상일 테니…….”

사실은 ‘성좌’의 관심은커녕 이야기도 못 들어 본 나이지만 일일이 도살왕의 가호를 받은 반지라든가, 이 깨끗하신 할머님에게 그들과 거래하는 걸 언급해서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대충 그대로 넘긴다.

“다음은… 다른 길드나 협회 관련 문제인데, 어르신께 드릴게요.”

“요구 사항이나 변동 내용 정도는 체크하게. 청룡 길드에서 SS급이 나왔는데 무시할 텐가?”

“청룡에서요? 보자… ‘청룡 길드의 길드장 고천수와 길드원들의 활약으로 ‘S급 몬스터-고트맨’을 쓰러뜨렸고, 그 덕에 ‘성좌 청룡’의 축복과 보상을 받아서 SS급 스테이터스로 성장! 물론 정식 SS급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전투력을 증명해야 하지만 최근 업계에 불행한 소식이 연이은 상황에서 간만에 나온 낭보라고 할 수 있다.’ 으음…….”

오, 역시 성좌 청룡인가? 성좌가 보상은 칼같이 해 주는 곳 중 하나답다는 생각이 든다.

길드 정세의 변화는 확실히 볼만한 것이었기에 계속해서 읽어 보았다.

일단 청룡 길드는 떡상 그 자체. 길드장의 SS급 스테이터스 달성은 고무적이었고 앞으로도 3대 길드의 정점으로서 자리를 굳혀 나갈 것이다.

“어라? 신임 서울 길드장… 오경훈 얘? 행방불명? 뭔 일 났어요?”

“그렇다더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행방을 알 수 없다는데……. 아무튼 신강남은 그걸로 또 한 번 요동칠 거야. 이미 기존 3대 길드 체제는 무너진 거나 다름없고, 자네가 이제 새로이 3대 길드의 일각에 자리 잡은 거나 마찬가지이지.”

“제가요?”

“S급 이상의 헌터 5명… 아니, 최충선 그 친구까지 포함하면 6명, 이 늙은이도 포함하면 7명이 하나의 조직에 모여 있는데 그러면 그게 세력이 아니고 뭐겠나?”

“신(臣) 유청과 진석 장군님도 있기에 총 9명이옵니다, 폐하.”

오… 확실히 그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신흥 세력의 대장 같은 느낌이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 생각이고, 나는 여전히 세상의 풍파에 휘둘리지 않고, 가능하면 싸움 없이 조용히 살다가 가고 싶은 마음으로 한가득이었다.

최근 행보를 통해 설득력이 많이 없어졌지만, 이 궁극의 목표를 아직 잊지 않은 나는 빨리 차량이 고블린 제국 던전에 도착하길 빌며 서류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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