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야, 이거 왜 우리가 이기냐?”
기가 막힌 건 막상 싸우고 있는 유성원도 마찬가지였다.
버프 잔뜩 먹은 아크데몬 비스트들과 다시 교전을 했는데, 기사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기묘하게 자신의 주변에서 철저히 들어오는 공격에만 방어하고 합쳐서 유효타를 먹이는 방식으로 ‘단체 전투’를 벌이게 되니 자신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이기고 있었다.
[푸르륵!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히가아아아악!]
[컹컹! 이 멍청아, 왜 날 때리고 난리야?]
[비켜 보라고! 놈들이 뒤로 빠져나갔잖아! 부히이익!]
[젠장! 젠장! 그냥 너희는 다 빠져. 내가 처리할… 크억!]
서로 협동한다는 발상은 1도 없는 건지, 아크데몬 비스트들은 매우 강력하고 빠른 속도로 전투를 벌였지만 팀워크와 협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휘두르는 무기나 주먹은 유성원 일행을 노리긴 하지만 그 궤적에 아군이 있는 걸 인식 못하는지 그대로 공격이 전해졌다.
거기다 마법을 쓰는 돼지 머리의 아크데몬 비스트 이베리코의 경우 피아 구분이 없는 건지 마구잡이로 써 대고 있었다.
“이런 놈들이니, 지는 게 더 이상하지. 흠하하핫.”
[협동… 전략… 일체 없음.]
[결국 원시인 레벨의 전쟁 실력. 최첨단 기동 전술을 가진 저희에겐 미치지 못합니다.]
“한 놈 쓰러집니다! 마무리 부탁합니다, 단장님!”
“어… 어어어! 알았어!”
반면 유성원과 그 기사들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최고의 호흡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크데몬 비스트의 공격을 피하는 건 마치 서로 오랫동안 싸워 왔던 것처럼 미친 호흡을 보여 줬는데, 크록베인이 부검으로 렘렘의 균형을 무너뜨리면 가울프와 아칼론이 양팔을 각각 검과 앵커로 제압, 섬멸이 날아다니면서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들의 공격을 혼란시키거나 흘림으로써 마무리할 틈을 만들어 유성원이 거기에 피니시를 날린 것이다.
[메에에!]
“저승으로 사라져라! 징기스칸!”
콰득!
티탄의 말뚝에 적중당한 양 머리를 한 아크데몬 비스트-렘렘의 머리가 피와 뇌수를 뿌리며 터져 버린다.
여섯 아크데몬 비스트 중 드디어 하나가 쓰러진 것으로, 아크데몬 비스트들은 물론 이 목사까지 충격에 빠져 버렸다.
분명 승리 공식은 완벽했다.
여섯이나 되는 아크데몬 비스트를 한꺼번에 동원하고, 거기에 S급 헌터 중 최고의 버퍼인 더 로드 오경훈과 손잡아서 그들을 강화하는 것까지, 매우 이상적이고 완벽한 승리의 계획이었다.
“으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오경훈 길드장?”
“저 짐승 새끼들이 등신인 거지. 단체 전투도 못하는데, 능력치 버프의 상승에 적응도 못해. 와, 뭐냐? 저것들?”
“적응 못한다?”
“말 그대로다, 이 목사. 몇 번 미리 만나서 훈련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씁, 버프가 오히려 독이 되었어. 게다가 저놈들 진짜… 진짜로 협동이라는 걸 못하네. 키키킥. 한심할 지경이다.”
S급 헌터이자 나름 서울 길드의 장이었기에 오경훈은 저 망할 아크데몬 비스트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할 수 있었다.
S급 몬스터라는 것들이 기본 능력치 이상의 능력을 제어도 못하는 데다, 협동성 자체도 없어서 수치만큼의 효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이었다.
“반면에 저 망할 놈들을 봐라. 열이 받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군.”
[주인… 방어… 같이.]
“어! 알았어!”
[다음… 앞으로…….]
투우우웅!
유성원의 티탄의 말뚝과 크록베인의 부검이 교차하면서 프르제발스키의 일격을 막아 내서 밀친 다음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이어 오는 토사독의 뼈다귀 모양의 망치를 유성원이 티탄의 말뚝으로 맞서고, 크록베인이 놈의 다리에 상처를 입히는 콤비네이션을 선보였다.
“과한 게 독이 되었군. 그렇다고 지금 버프를 해제하면 아까랑 다를 바 없어지지. 아니, 저 양 새끼가 죽었으니 저것도 망했군. 5 대 5 인데, 하나씩 잘라 나가면 끝이니…….”
“으음, 내 전략의 실패라는 건가?”
“그래, 이 멍청한 자식아. 그냥 일방적으로 섬기기만 하니 S급 몬스터들의 기량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이 사달이 났지. 네놈은 실패했어. 오히려 저놈만 더 강하게 만들겠군. S급 몬스터 하나 잡으면 경험치가 얼만데……. 아마 레벨 업했을 테니 저놈 능력치 더 상승했을걸? 젠장!”
한심하다는 듯 이 목사를 바라보며 투정을 부리는 오경훈이었다.
복수를 위해 기껏 인류까지 배신해 가며 이 목사에게 붙었는데, 계획은 완벽했지만 S급 몬스터들이 버프를 받아 놓고 역으로 발리는 꼴이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이대로 있어 봐야 너희들 피해만 늘어날 텐데?”
“으으음, 하지만 머릿수가 하나 줄어드니 오히려 더 잘 싸우시고, 슬슬 적응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면 일단…….”
역설적이게도 아크데몬 비스트-렘렘이 죽자 싸움이 쉬워지는 아크데몬 비스트들이었다.
단체 전투의 장애인 아군이 줄어들어서 역으로 싸움이 편해지는 걸 보고는 이 목사는 둘이나 셋 정도 물러나게 해서 전투력을 발휘하기 쉽게 조율하면 승리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마법으로 프르제발스키와 렘렘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통신을 넣으려는 순간.
[끼메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이 소리는?”
“아아……! 고트맨 님!”
찢어지는 비명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이쪽 전선이 너무나 격렬해서 잊고 있었다면 잊고 있었겠지만, 또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고트맨이 청룡 길드 S급 3인방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떠올렸다.
전선이 회복되고, 여유가 생긴 A급, B급 헌터들의 지원 및 일반 헌터 길드들이 회복되자 그들은 청룡 길드가 있는 곳을 곧바로 지원 가서 고트맨을 마무리한 것이었다.
“…휴우~ 이겼군.”
“우리가! 이번! 시련 돌파했다아아아아아!”
“간만에 보너스 좀 받겠네요.”
청룡 길드의 이 승리는 더 이상 이 목사가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타였다.
내부에 배신하던 스캐빈저들은 모두 제압이 되거나 다시 헌터로 돌아섰고, 장벽은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며 군인들은 보급선이 살아나서 다시 장벽으로 복귀했고, 자잘한 몬스터들은 이제 다시 장벽에서 화력에 밀려난다.
“이건 물러날 수밖에 없겠군. 후우~ 황금 용기사, 저놈이 이 정도일 줄이야. 일단 연락을 할 수밖에…….”
“아무튼 열심히 하시고, 다음에 또 협조할 일이 있으면 연락하지. 신강남을 오래 비우면 의심받거든~ 다음엔 청룡 길드와 협력을 해서 무언가 방안을…….”
“아~ 잠깐 기다려 주시길, 오경훈 길드장님. 비록 패배해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힘써 주신 만큼 사례는 해야겠지요.”
말과 함께 이 목사는 인벤토리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오경훈에게 내민다.
스캐빈저이긴 해도 귀하신 S급 헌터에 대한 성의 표시를 할 줄 아는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 오경훈은 그것을 받아 곧바로 열었다.
안에는 꽤 값어치가 나가 보이는 보석이 박힌 반지가 하나 들어 있었는데, 느껴지는 마력도 상당한 걸로 봐선 레어급 이상의 아이템인 것 같았다.
“오오, 이거 나쁘지 않군.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옵션이니 그것을 봐야겠군.”
“누구에게 주는 건데, 문제가 있는 상품을 대접하겠습니까?”
“하하핫, 보통 이런 걸 주는 놈들은 수작 부리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지. 무력화 마법이라든가, 아니면 심플하게 독을 넣어 둔다든가. 셀 수도 없을 정도였지. 어차피 이 목사 네놈은 성좌에게 맹세를……!”
한참 자랑하듯 말하던 순간, 오경훈은 가슴에 찌릿한 고통을 느꼈다.
고통 속에서 그는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단검을 발견했고, 그것을 쥐고 있는 이 목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 너… 커, 컥! 이걸… 쿨럭! 어떻게?”
분명 이 목사는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성좌’에 맹세까지 했었다.
한데 어떻게 자신을 해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경훈은 고통과 함께 죽음의 감각을 느끼면서 이 목사를 노려보았다.
그는 성자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단검을 잡은 채 알려 준다.
“혹시 성(聖) 베드로에 대해 아시는지요? 그는 모든 사람이 예수를 버릴지라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바로 그날 밤 예수를 세 번 부정하였지요. 허허허. 하나, 이후 다시 부활한 예수에 의해 용서받고, 양을 돌보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컥! 컥!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저는 그동안 충실히 도살왕 님을 섬겼고 그분에게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분을 섬기는 것뿐이었거든요. 하지만 너무 거절하는 것 또한 도살왕 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아서 저는 그분에게 바로 이 성(聖) 베드로의 이야기를 하며 저에게 당신을 세 번 부정할 기회를 달라고 했지요.”
성좌의 맹세를 부정할 수 있는 세 번의 기회. 이 목사가 성좌 도살왕에게 허락받은 권능.
매우 귀중한 기회였기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S급 헌터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썼으니 나름 알차게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개… 자…….”
“후후후, 저희도 손해만 보고 살 순 없잖습니까?”
그렇게 오경훈의 숨은 끊어졌다.
이 목사는 그의 시신을 챙겨 도살왕의 부하 악마를 부려 북쪽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살아남은 아크데몬 비스트들도 그의 뒤를 따라 후퇴한다.
그렇게 수많은 희생을 낳은 이 목사와의 전쟁은 누구의 승리라고 확정하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
***
이 목사의 철수 신호에 아크데몬 비스트들은 무섭게 노려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얌전히 빠져나갔다.
죽은 렘렘의 시체만 남기고 돌아가는 걸 바라보던 가울프가 유성원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다.
[계약자여, 쫓지 않는가? 보아하니 놈들에게 있던 버프도 떨어진 것 같다만?]
“내버려 둬. 쟤네 아직 비장의 변신을 쓰지도 않았고… 그리고… 솔직히 지쳤어. 쉬고 싶다. 아무튼 쉬고 싶어!”
고블린 제국 던전에 이어서 광주, 부산, 그리고 서울까지 와서 이루어진 연전의 격전.
한숨 잔 거 빼고는 제대로 휴식을 못 취한 유성원은 이제 싸움이라면 진저리가 나는 상태였다.
유성원은 그 말을 하고서 곧바로 렘렘의 시신에서 전리품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양 새끼, 역시 아크데몬 비스트라서 보상은 짭짤하네. 아무튼 소득은 나쁘지 않으니 다 챙기고 얼른 가자. 이젠 나도 지쳤어. 이상한 애들 붙기 전에 가…….”
“실례합니다! 황금 용기사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누어도 괜찮겠습니까?”
모든 일을 마치고 가려는 순간, 그리스 시대에서나 볼 법한 갑옷으로 무장한 자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
딱 봐도 올림푸스 길드 소속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그의 모습에 유성원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단호히 거부한다.
“아니, 없어. 그러니 돌아가. 정 이야기하고 싶으면 약 한 달 뒤쯤 연락 넣으면 받아 줄게. 이상.”
“예? 아, 저기…….”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초등학생 싸움인 양 격렬히 거부하며 유성원은 그대로 도망치듯이 사라진다.
올림푸스 길드에서 온 전령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를 못 잡았기에 기사들이라도 노리려 했지만, 유성원의 기사들 역시 기사단의 성소로 도망친 지 오래였다.
허망한 듯 멍하니 허공을 보던 올림푸스 길드의 전령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다른 곳으로 연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