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꽤 늦었군. 대충 시간 맞추려고 대화도 했는데 말이야.”
“흥, 내가 너희처럼 어디 마음대로 가는 게 쉬운 줄 아나? 아무튼 보자. 상황이…….”
[푸헉!]
5 대 6의 싸움.
유성원이 둘을 맡고, 나머지 기사들이 아크데몬 비스트를 하나씩 맡아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유성원은 렘렘과 프르제발스키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미 경험이 있는 덕인지 둘을 한꺼번에 상대함에도 역으로 압도하면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메에엑! 이 망할 놈이……! 윽!]
“네 비장의 수인 카운터 렘실드는 이미 봐 놨다. 고로 그냥 평타로 잡으면 그만이지!”
콰아아앙!
올림푸스 길드의 디오메디아가 당한 전투 자료 덕에 렘렘의 비기를 안 유성원은 철저히 티탄의 말뚝만을 사용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상대가 가진 비장의 기술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커서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은 렘렘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었다.
[히이히히힝! 네놈! 실력이 너무 늘었군.]
“어, 칭찬해 줘서 고마워.”
쿠우우우웅!
티탄의 말뚝을 휘두른 일격을 막자 땅이 울림과 동시에 공격을 막은 프르제발스키를 중심으로 폭발하듯 땅이 꺼져 들었다.
단순히 완력만 늘어난 게 아니라, 무용을 겸비한 전투 능력에 솔직히 놀라는 프르제발스키였다.
렘렘과 함께 속공으로 협공을 하는데,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한 손으로 휘두르는 티탄의 말뚝으로 공세를 유지할 뿐 아니라 맨손으로 메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둘이서 협공하는데도 역으로 밀리자 두 아크데몬 비스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메에에… 프르제발스키, 이대론 안 된다. 쿨럭!]
[푸르륵! 알고 있어! 저 인간, 정말 터무니없군. 이렇게 빨리 강해지는 인간이라니…….]
“너희들, 레그혼이라는 놈과 동기니까 분명 그 닭대가리가 했던 것처럼 봉황승천 비슷한 변신 같은 게 있겠지? 미안한데, 나는 강한 상대랑 싸워서 흥분하는 그런 체질 아니니까 그런 거 하지 못하게 그냥 죽일 거야.”
심지어 적은 일체의 방심이나 오만도 품지 않는 타입,
렘렘과 프르제발스키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유성원을 상대하며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의 도움을 바랐지만, 이미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기사들과 백중세라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메에엑!]
“그러니 곱게 죽어라, 좀!”
[그렇게는 안 되지!]
콰아아앙!
렘렘 쪽이 받은 데미지가 많아서 더 약한 만큼 그쪽을 먼저 집중 공격하는 유성원이었다.
일단 한 놈의 목을 따야 다른 일이 편해지기에 전력을 다해서 맹공을 펼치는데, 프르제발스키가 귀신같이 몸을 던져서 막거나 빈틈을 노렸기에 렘렘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우세한데… 역시 그래도 S급이라는 건가? 어렵네! 하긴 저번에는 요행으로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
[푸히히힝……!]
‘우세한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나!’
레그혼 때는 적이 자신을 얕보고 있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이번 두 아크데몬 비스트는 자신의 강함을 알고 진심으로 달려드는 것이라 차이가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우세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시간 끌어서 좋을 건 없기는 한데, 이놈들 느낌도 이상해.’
이 아크데몬 비스트라는 놈들이 자기 목숨을 버려 가면서 싸우는 타입도 아니고, 패배한 아군의 부하까지 잡아먹을 정도로 비정하기 짝이 없으면서 딱히 체면이나 용맹에 구애받는 스타일도 아니다.
한데, 이렇게 버티는 모습을 보면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드는 유성원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심심하면 쳐들어왔다가 뭔가 수틀리거나 재미없으면 빠지던 놈들인데, 지금은 왜 이렇게 열심인 거야? 음?’
[됐다! 푸르륵!]
콰아악!
공세를 퍼붓다가 어느 순간 프르제발스키의 눈이 빛나더니 갑자기 놈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티탄의 말뚝을 잡고 그대로 말발굽이 있는 다리로 발차기를 해 왔다.
‘뭐야?’
유성원은 깜짝 놀랐지만 간신히 피해 냈다.
그러면서 티탄의 말뚝을 잡고 놓지 않는 프르제발스키의 힘에 속으로 놀랐다.
완력의 비교는 이미 진작 끝나 있던 차였다. 지금 놈의 외양엔 아무 변화도 없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무기를 잡는 것에 깜짝 놀란 유성원이었다.
“너, 뭐 한 거냐?”
[뭘 했을까? 푸히히힝!]
콰아앙!
그 말과 동시에 빠른 속도의 발차기가 날아와 얼굴을 가격한다.
간신히 말발굽을 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갑자기 눈에 띄게 속도와 힘이 늘어난 것에 유성원은 당혹스러웠다.
‘뭐야? 이 녀석들, 갑자기 세져 가지고……. 무슨 리미터라도 푼 건가?’
[버프예요. 지금 전투 중인 아크데몬 비스트들에게 동시에 5개의 버프가 활성화되어 있어요.]
“소미 누님? 지금 버프라고? 아니, 저놈들이 버프랑 시너지 같은 거 서로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메에에에! 푸히히힝! 멍멍! 부히이익!
다행히 연결해 둔 통신으로 후방을 보조하고 있는 신소미가 알려 준 덕분에 의혹은 금방 풀린다.
그러나 알았다곤 해도 힘이 솟아 넘치는 듯 일제히 포효하는 아크데몬 비스트들을 보며 당혹스러워하는 유성원 일행이었다.
그리고 유성원의 말대로 그들이 서로 버프 같은 것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닌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게 나오자 자연스럽게 저 멀리에서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이 목사’ 패거리를 주목하게 된다.
“아, 역시 저건가?”
[음, 아슬아슬했구먼.]
[원래 새로운 파티원을 추가하고 버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멍청한 놈. 게다가 이놈들이…….]
[허허허, 그런가?]
이 목사의 바로 옆에서 뭔가 정신 집중을 하고 있는 후드를 쓰고 얼굴을 가린 남성의 모습을 알아챈다.
인간이 몬스터에게 버프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성좌 도살왕의 사도라는 소속감으로 뭉칠 수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우와~ 잘나신 아크데몬 비스트 님께서 인간의 버프에 의존할 정도로 내가 무섭긴 했나 봐?”
[푸르르륵! 이 목사 놈이 멋대로 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군. 네놈의 살을 씹어 먹어 주지.]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버프를 한 인간을 보기 위해 슬쩍 뒤를 보며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프르제발스키였다.
인간 따위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넘긴 것에 굴욕감을 느끼는 거였다.
하지만 어쨌든 압도당하던 상황에서 벗어나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 이상의 반항은 하지 않는다.
[현재 버프량은 총 5개. ‘군주의 카리스마’, ‘질풍노도’, ‘용맹함의 연설’, ‘위풍당당’, ‘필사의 외침’이에요. 스킬들에 대한 것을 검색해 본 결과, 능력치 상승분만 보면 모든 능력치 기본의 1.8배, 속도 증가, 상태 이상 방어, 고통 통각 감소 등등 여러 효과까지 중첩되어 있어요.]
‘워우… 장난 아니네. 일단 물러서서 애들을 부를까?’
그냥 아크데몬 비스트만 해도 S급 몬스터로 강력한 존재인데, 능력치 상승 1.8배에 갖은 버프까지 줄줄이 달고 있으니 더 난감했다.
여기에 참고로 저 아크데몬 비스트들 모두 레그혼이 했던 봉황승천 같은 또 한 번의 변신 스킬까지 있으니 위험도는 더더욱 올라간다.
유성원이 기사들에게 눈빛을 보내며 한발 물러서자, 기사들은 마치 마음을 읽는 것처럼 같이 물러서서 유성원 곁으로 잽싸게 모인다.
“이야, 너희 진짜 대단하다? 딱 부르려는데 그냥 알아서 오네?”
[이 정도는 기본이지. 흠하핫. 그래서 계약자여, 무슨 일이지?]
“딱 봐도 쟤네, 상태 변한 거 보이지? 능력치만 1.8배이고 이거저거 다 증가된 상태야. 거기에 변신도 한 번 더 남았는데, 과연 이대로 전투하는 게 좋을까 싶어서 말이지. 아, 물론 후퇴하자는 건 아니고. 그… 혹시 저 버프들 제거할 디스펠이나 디버프 같은 거 있는 사람?”
[…없다.]
[그런 기능은 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흠하하핫, 나도 없네.]
“뭐, 그럴 것 같았어. 하하하. 근데 이거 참~ 적이 공격해 오는데 어떻게 할래?”
멋쩍게 웃으면서 현 상황을 파악한 유성원은 기사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투지에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는 이놈들이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걸 단숨에 감지한다.
“…좋아. 그래, 물러서지 않는 건 좋아. 근데 혹시 좋은 계획이라도 있어?”
[…이길 때… 까지… 싸운다!]
“저희도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단장님!”
거의 근성론에 입각한 기합에 유성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대답할 시간도 부족했다.
미친 듯이 포효를 지르며 다가오는 아크데몬 비스트들을 보며 일단은 싸우면서 생각하자고 결정한 그는 무기를 겨눈 채 코앞까지 달려온 프르제발스키를 향해 돌입하려 한다.
“그래, 너네가 안 물러난다니까 일단 한번 해 보자!”
[계약자여, 한마디만 듣고 가게.]
“뭔데?”
[우리 기사들이 언제나 명예로운 싸움으로 전설을 써 나갈 때, 꼭 수치 같은 거나 단순히 힘이 앞서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 두게나.]
콰아아아아앙!
이미 가울프의 이야기가 끝난 시점에서 유성원은 교전을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이해 못한 유성원이었는데, 네 기사들끼리는 뭔가 통했는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각자 무기를 들고 유성원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
서울, 협회 본부.
일단 서울 내부는 빠르게 정상화가 진행되었다.
스캐빈저로 돌아서려던 일반 헌터들이 얌전해지자 혼란스러웠던 보급 루트도 제대로 정리되었고, 장벽 복구 작전은 순조로이 진행되어 간다.
하나 아직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쉽게 풀릴 것 같았던 아크데몬 비스트와의 전투는 어느새 제2차 국면에 접어들었고, 그것을 보며 협회와 정부 인원들은 긴장감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대체 어떤 자가 저들에게 버프를…….”
“그걸 확인하는 게 여러분의 역할 아닌지요?”
압도하던 전황에서 한 번 물러났다가 다시 싸우는데, 아크데몬 비스트에게 버프가 들어간 사실이 신소미의 보고로 알려지자 협회에서는 그 정체를 밝히라고 재촉한다.
저 정도로 뛰어난 능력치 배율과 이로운 효과로 가득한 버프 스킬을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각성자는 그리 많지 않았고, 특정 스킬은 전용 스킬이어서 알기 쉬웠다.
“군주의 카리스마 같은 전용 스킬이 있는 걸 보면 저거… 더 로드 클래스 아닙니까?”
“아니, 대체 이 목사가 어디서 더 로드 클래스를 구한 거지? 스캐빈저 중에는 갈 놈이 없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도 오경훈 정도나 가능할 테고.”
“설마 저거 오경훈 본인은 아니겠죠?”
“그럴 리 없네. 지금 그는 신강남에서 S급 몬스터 보하쿠의 진격을 막아 내는 데 전력을 쏟고 있네. 아니, 애초에 아무리 그가 황금 용기사에게 감정이 안 좋다고 해도 스캐빈저와 손잡을 리 없지 않은가?”
“하긴… 손잡으면 잃을 게 너무 많죠.”
신강남의 우월성이나 도시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결국 수도권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무사해야 한다.
따라서 다들 저기서 버프 중인 이가 오경훈이라는 건 상상도 못하고, 오경훈과 같은 클래스를 가진 이일 거라고 생각하고 금방 넘어간다.
“아마 중국 쪽에서 넘어온 자일 겁니다. 이 목사의 인맥이라면 중국 측과도 접촉 가능할 테니 말이죠.”
“아무튼 지금 문제는 다른 것보다도 저기 싸우는 쪽이 아닐지? 지금이라도 지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꼽긴 해도 지금 버프가 발린 저 아크데몬 비스트들이 이기면 곤란해집니다.”
의심은 금방 희석되고, 화제는 눈앞에서 크게 벌어지는 사건 쪽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최상급 버프가 발린 6마리의 아크데몬 비스트와 싸우는 유성원 일행 쪽으로 말이다.
5천억 선금을 받아 간 건 횡포였지만, 그가 있었기에 장벽이 안전해지고 위기에서 구해진 만큼 일단 살려 두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확실히 살리기 위해서라도 다른 길드에 연락해서 별동대를… 이기고 있는데?”
“어? 이기고 있네?”
위기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고려하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선은 갑자기 유성원 측이 다시 우세해졌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놀란 정부 요인과 길드 사절들은 전장에 집중하는데, 어떤 마법을 쓴 건지 신기하게도 유성원 측이 다시금 승기를 잡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