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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08화 (108/293)

[108화]

서울, 협회 본사.

현재 상황에 대해 요약하자면 급한 불이 꺼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5천억이라는 큰 금액의 값어치를 하듯 유성원이 참전해서 S급 몬스터 렘렘을 억누르고, 놈이 이끌고 온 A급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진압되자 그쪽 장벽에서 몬스터들의 유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 역시 비싼 값 하지 않나?”

“값어치를 안 하면 큰일 날 일이죠. 휴우~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이 목사만 잡으면 되는 거지? 하면서 그쪽으로 공격 나갈 줄 알았는데…….”

“그랬다가 잡고 오기도 전에 나라가 망하면 남은 5천억을 못 받으니까 정리하고 가라고 했지. 호호홋.”

“그거 하나는 다행이군요. 후우~”

뚫린 장벽을 유성원과 그의 기사들, 거기에 올림푸스 길드원들까지 합세해서 막아 주니 이제 도시 내부에 남은 악마들만 처리하면 되었다.

거기에 하늘에 떠 있는 골드 드래곤의 존재감과 신소미, 신아영 후방 담당의 활약 덕분인지 기습을 하며 자기 이익을 얻던 스캐빈저들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협회장님이 보급 부대를 데리고 도착했답니다. 루트를 살린 겁니다!”

“휴우~ 다행이야.”

“거기에 대피소로 가던 악마들도 처리 중이라고 합니다. 또 각 길드들도 들어오는 몬스터의 물길이 끊기니 제압이 수월해지고 있습니다.”

“한강 서쪽에서 올림푸스 길드의 S급 헌터, 트리토니아스와 그 팀이 물길로 들어왔습니다. 곧바로 지원하러 간다고 합니다.”

이후 들어오는 소식은 연속해서 호재였다.

물론 장벽이 뚫리고 내부까지 몬스터들이 들어오게 한 시점에서 호재는 아니었지만, 진압이 수월하게 되어 간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직 우려가 되는 점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좋아진들 그것은 유성원이 렘렘을 상대하고 있어서일 뿐, 디오메디아처럼 패배하면 상황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지금 그의 상황은 어떻소?”

“보자…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카메라를 돌려 보죠.”

『메에… 에에… 쿠헉! 컥!』

『케밥 자식, 더럽게 단단하네.』

그리고 다시 카메라는 유성원과 렘렘이 싸우는 곳을 비추었다.

둘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고 있었다.

아무런 손상이나 상처 같은 것 없이 갑주가 찬란하게 빛나는 유성원에 비해 렘렘은 기습으로 부러진 한쪽 뿔과 더불어 갑옷 여기저기가 부서져 있었다.

방패도 우그러진 상태로 땅에 엎드린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강약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으로 완벽히 유성원이 압도 중이었다.

“나도 솔직히 긴장했는데… 막상 까 보니 훨씬 쉽긴 하네. 역시 레벨이 깡패인가?”

[메으으윽!]

레그혼과 싸웠을 때의 경험 때문에 일견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의 유성원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레벨은 61로 상승하고, 힘든 격전도 치른 데다, 무엇보다 이젠 경험이라는 자산이 쌓여 있는 상태였기에 렘렘 혼자서는 그를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놈이 튼튼한 중전사 타입이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것이지,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였다면 진작 티탄의 말뚝에 다진 고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이런 일이! 메에엑! 인간 따위에게……!]

“아무튼 너 잡고도 할 일 많으니까 얌전히 뒈져라.”

[푸르륵! 그렇게 둘 순 없지.]

마무리하려고 달려가려던 차, 렘렘과 유성원 사이로 말의 머리를 한 아크데몬 비스트 프르제발스키가 끼어든다.

엄연히 구면이었기에 유성원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어? 오랜만이다? 말 대가리. 근데 의외네? 전에는 안 끼어들더니, 이번엔 끼어들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없던 동료애라도 생긴 거냐?”

[푸히힝, 아니~ 나도 이 불쌍한 어린 양이 죽는 걸 바라보고 싶었지만, 사전에 협의한 계획은 지켜야 하니 말이야.]

“계획?”

[그래. ‘레그혼’을 잃고 난 뒤, 네놈이 또 우리 일을 방해할 거라는 걸 우리가 예상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히이히히히히히히힝!]

그렇게 말하고는 신호라도 보내듯 크고 길게 울기 시작한 프르제발스키였다.

그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유성원은 긴장하는데…….

그때, 멀리서 거대한 그림자들 여럿이 날아와 착지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추가된 아크데몬 비스트의 모습은 각각 소, 돼지, 개, 오리의 형상을 한 것들로 총 넷.

거기에 렘렘에다 프르제발스키까지 합치면 총 6마리의 아크데몬 비스트가 이곳에 모인 것이다.

“어우,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는데. 파티 짜서 레이드라도 하나?”

“허허허, 우리 위대한 사도님을 일대일로 쓰러뜨렸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그리고 돼지 머리를 한 아크데몬 비스트의 어깨에서 내려온 한 사람이 유성원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핏빛 사제복에 안경을 쓰고, 메말랐지만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눈동자를 지닌 노인.

오늘 처음 만나지만 그 인상은 매우 익숙했는데, 절대 못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황금 용기사였나? 반갑네. 정식으로 소개하지. 위대하신 도살왕 님의 종이자, 언젠가 그분의 배 속으로 돌아갈 자. 본명은 이…….”

“됐고, 댁은 그냥 이 목사면 충분해. 사람이 사람 같아야 이름을 듣지. 참 나~ 인간 가지고 온갖 조리해 대고 몬스터에게 먹이는 사람이 어디 사람인가?”

“허허, 자네의 성급한 의견에 비탄을 금치 못하겠군. 나는 ‘괴물’에게 사람을 먹이는 게 아닐세. 엄연히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이지. 인신 공양과 다를 바가 없지. 인권이 상승하고 생명을 중시하게 된 현대 문명에서는 금기가 되었지만, 인신 공양을 하지 않은 시기보다 한 시기가 역사적으로 길다는 걸 알아 두게.”

“어우, 똑똑해서 좋으시겠어요.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거래를 하도록 하지.”

거래. 서로 이익에 따라서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

실컷 싸우고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뻔뻔스러워 보였지만, 이 목사는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듯 자애로운 얼굴로 유성원에게 손을 내밀며 제안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저 아래에 있는 인간들뿐이고 그들이 가진 재보나 돈, 마정석, 장비류, 금속은 하나도 필요 없네. 그래서~ 우리와의 싸움을 피해 주면 저 아래에서 얻는 모든 재보와 마정석, 장비류를 넘겨주겠네. 그 가치는 분명 1조 따위는 껌 값으로 보일 만큼 엄청난 것이겠지.”

터무니없는 제안을 던지는 것 같았지만 이 목사의 눈빛은 한없이 진심을 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오직 목장에서 기를 ‘인간’뿐이니, 그 외에 필요 없는 것을 모두 양보하겠다는 제안은 신빙성이 있는 것이었다.

그 외의 것인 대한민국 4천만 인구가 만들어 낸 금전과 보물, 마정석을 모두 준다는 제안은 파격적임을 넘어서 너무나 획기적이었다.

“아뇨. 저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어요. 돈이라는 게 너무 많으면 많은 대로 문제라서…….”

“1조는… 그럼 많은 돈이 아니라는 건가?”

“아, 그건 반대로… 제가 꾀부리다가 뒤통수 맞은 격이라. 에휴~ 이게 다 댁 때문이지만…….”

“내 그동안 신의 사명에 대해 별별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런 시답지 않은 소리는 또 처음이군.”

이 목사가 역으로 황당함을 느낄 정도로 유성원의 불평은 시시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성좌 도살왕의 직속 사도로서 ‘인간 목장’을 키우는 그에게 누구도 이런 시시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 잔혹하고 막장 인생인 스캐빈저들에게도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어서 그에게 함부로 말도 못하고 기껏해야 상대하는 S급 헌터들이 거창한 말로 사악한 존재, 살아 있는 악마라고 하는 게 전부였다.

“시답지 않은 소리든 아니든 그냥 얌전히 돌아가시면 저도 더 이상 쫓지 않죠.”

“껄껄껄껄! 이거 참 미치겠군.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손잡자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라? 정말 이해 못할 자군. 내가 누군지 아는데도 그냥 돌려보내겠다고?”

“이 망할 세상에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게 목사님만도 아니고, 전 그냥 ‘저’만 안전하면 그만이에요.”

철저히 밑바닥 근성인 유성원과 도살왕이라는 신을 독실하게 따르는 이 목사는 서로 절대 이해 못할 존재였다.

그것을 짐작한 두 사람은 곧바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껄껄껄,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미 나는 손해를 많이 입어서 이대로 못 물러나는데 말이지.”

“목숨이 있어야 다음도 있는 법이죠.”

“그건 자네에게 해 줄 말일세. 그럼 대화는 여기까지군. 프르제발스키 님, 교섭은 결렬되었습니다. 계획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 목사가 뒤로 물러서고, 아크데몬 비스트 여섯이 한 발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말 대가리 프르제발스키가 유성원을 노려본다.

[확실히 ‘레그혼’과 싸우던 때와는 달라졌군. 푸르륵! 그때 내가 같이 참전할까 봐 두려워하던 친구가 이제는 겁 없이 서 있을 줄이야. 우리가 여섯이나 되는데 말이지.]

“아~ 그때는 그랬었죠. 확실히 레벨 업도 하고 더 경험을 쌓으니까 다른 기분이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죠.”

[집결 완료. 급속 냉각 실시. 아칼론 도착했습니다.]

“검은 양 처리 무사히 마쳤습니다, 단장님.”

[놈들의 살은 질기고, 가죽이 두껍더군. 흠하하핫.]

[나… 더 많이… 먹고 싶었다. 주인…….]

딱 타이밍 맞춰서 유성원의 곁에 모이는 기사들.

이걸로 5 대 6. 숫자는 안 맞지만, 이미 렘렘은 유성원에게 반 죽다가 살아난 셈이어서 5 대 5.5 정도로 봐도 무방했다.

한 마리를 직접 상대해 보고 자신이 우위였다는 것도 알았기에 자신감을 가진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을 잡고 전투태세를 갖춘다.

“이러면 이제 해볼 만하지. 아무튼 말 대가리, 너는 잡으면 내가 D마트에 납품해 줄게.”

[푸르륵히히힝!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아주 좋군. 하지만 우리가 자네를 대비하기 위해서 머릿수만 맞춰 온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게.]

“그래! 명심하지! 얘들아! 가자! 오늘은 너희가 원하는 강적들이 상대다. 아낌없이 전력을 쏟아부어라!”

[오오오오!]

유성원을 비롯한 기사들은 그 즉시 돌진했고, 아크데몬 비스트들도 포효하며 맞서기 위해 뛰쳐나왔다.

S급 헌터와 몬스터들이 단체로 격돌하는 전장은 생에 한 번 보기 힘든 대격돌이었다.

그리하여 장벽과 제네레이터 복구 작업에 투입되거나 잔존 몬스터를 처치하는 헌터들, 방송사 드론들까지 벽 위로 올라와서 그 모습을 주시했다.

“와, 대박이다. SS급, S급 헌터와 S급 몬스터들이 무슨 전쟁을…….”

“어이, 김 씨! 닥치고 제네레이터 복구공사나 계속해.”

그리고 관람하는 인원과 한창 복구공사에 참여 중인 군인, 헌터들 사이에서 후드를 쓰고 얼굴을 가린 한 남성이 전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휴우~ 망할 황금 용기사 같으니. 드디어 복수의 순간이 왔다. 흐흐흐.’

그는 바로 오경훈.

서울 길드의 현 길드장이자 이번 사태에서 이 목사의 편에 붙어서 인류를 배신한 자였다.

신강남을 지킨다는 핑계로 짱박혀 있던 그는 이 목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출발했고, 이 목사가 유성원과 시답지 않은 거래 이야기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어이? 저거 뭐야? 이봐, 거긴 장벽…….”

“뭐야? 저거!”

‘망할 황금 용기사,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복구공사 중인 장벽을 바람처럼 빠져나간 그는 관람 모드인 이 목사에게 합류하러 간다.

그 모습에 주변의 다른 헌터들이나 사람들이 말릴까? 하고 고민했지만, 어차피 바쁜 상황이라 걸음도 빠른 그를 제지할 수 없어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오경훈은 능숙하게 스캐빈저 행세를 하며 크게 돌아서 이 목사 쪽에 합류, 본격적으로 더 로드 클래스의 힘을 활용해서 신강남을 몰락시킨 황금 용기사를 없앨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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