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동시에 충격파가 일어나면서 주변의 건물이 흔들리고, 바닥의 아스팔트와 타일이 깨져 나가면서 아레스 크라잉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 준다.
올림푸스 길드의 헌터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쓴 필살 스킬의 위력을 아는 건지 밝은 표정으로 충격파와 먼지가 사라진 싸움 현장을 바라보았다.
[메에에, 의외로 네놈 말이 사실이었군. 프르제발스키.]
[푸히히힝, 난 거짓말 안 한다고 했지 않나?]
그러나 서 있는 것은 아크데몬 비스트-렘렘이었다.
콧김을 뿜어내면서 자신의 몸에 묻은 콘크리트 먼지를 털어 내고 프르제발스키에게 말을 거는 그였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올림푸스 길드, 아테나의 사도인 디오메디아는 무기를 놓친 채 땅에 쓰러져 있었다.
[푸르륵, 사실은 오히려 믿지 않아서 큰코다치는 걸 생각했는데 말이지.]
[메헤헤헷! 나름 합리적인 이야기였기에 한번 들어 본 거다. 어차피 나에겐 ‘카운터 렘실드’가 있으니 말이지.]
레그혼에게 비장의 무기인 봉황승천이 있듯 같은 아크데몬 비스트인 렘렘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카운터 렘실드(Counter Ramshield).
방패와 철퇴를 드는 중전사인 그는 공격 타이밍에 맞춰 시전하면 그대로 적의 공격을 돌려주는 ‘반사’ 스킬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단단한 갑옷과 방패로 무장하고, 수인 악마의 피지컬을 가진 만큼 그를 처치하기 위해선 큰 기술을 사용하는 게 필연적이었다.
그것을 막아 내는 동시에 적에게 돌려줌으로써 큰 피해를 주는 게 그의 특기였다.
[메에에에, 아무튼 덕분에 편하게 잡았으니, 음~ 다리라도 하나 떼어 내 줄까? 그 잘난 아테나의 사도이니 맛있을 거야.]
인형을 잡아채듯 기절한 디오메디아를 잡고 들어 올린 렘렘은 마치 곤충의 다리를 뜯어내듯이 그녀의 골반과 허벅지를 잡아 비틀어 다리를 떼어 내 버린다.
순간, 기절했던 그녀는 인지를 초월한 고통을 느끼곤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푸르륵, 굳이 필요 없는데. 게다가 이 목사가 살려 두라고 하지 않았나?]
[메히힛! 그래! 살려만 두면 되는 거 아닌가? 가끔은 생식도 해 줘야지. 아무튼 진짜 다리 안 먹나? 나름 아테나 신의 가호를 받는 년이라 보통 맛있는 게 아닐 텐데? 진짜 안 먹으면 내가 먹을 테니 후회 안 하기다? 메히히힛!]
[푸르륵! 렘렘, 자네나 많이 들게. 그러면 나는 고트맨 쪽이나 가 보겠네.]
도살왕의 대악마들이 자신들의 대장을 군것질거리처럼 다루며 떠드는 광경에 올림푸스 길드의 헌터들은 분개했으나, 주변에서 날뛰는 렘렘의 부하들인 검은 양들을 막아 내는 것조차 버거운 실정이었다.
“젠장! 대자아앙! 대장님을 구해야 한다!”
“정신 차려! 지금 일단 이 몬스터들이나……!”
“이거 이미 틀린 것 같은데 말입니다?”
“패배한 거야 패배한 거고, 전황을 보십시오. 여기서 개죽음 당할 순 없습니다.”
대장의 패배에 올림푸스 길드원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아테나의 사도이자 S급 헌터인 그녀가 이렇게 쉽게 패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군것질거리처럼 농락당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비참한데 구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도망치기엔 주변에 A급 몬스터인 검은 양들의 수가 장난 아니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 으으윽… 으윽…….”
[오독, 오독… 메히힛! 이렇게 맛있는데… 아이고, 피가 왜 이렇게 많이 흐르나? 이게 다 맛있는 건데! 핥짝핥짝. 아, 죽으면 이 목사에게 혼나…….]
프르제발스키에게 주려던 다리를 씹어 먹으며, 출혈이 심한 디오메디아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안 렘렘은 흘리는 피가 아깝기도 했지만 죽으면 이 목사에게 꾸중을 듣기에 출혈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혀로 핥으면서 지혈 중이었다.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뭔가가 번쩍이는 걸 느낀 렘렘이었다.
[메힛잇?]
“그대로 뒈져라! 양꼬치 자식아!”
콰아아아아앙!
반짝거리는 것이 뭔지 확인하기 위해 렘렘은 고개를 들었다.
순간, 이미 태양빛에 반사되어 코앞까지 다가온 또 다른 황금 갑옷과 거대한 쇳덩어리가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렬한 고통과 함께 렘렘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버렸고, 땅에 내려온 황금 갑옷의 기사는 디오메디아를 받아 든 다음 티탄의 말뚝을 쓰러진 렘렘에게 겨누며 말했다.
“아무리 기사도니 뭐니 이거저거 따져도 사람이 죽기 직전이면 아무것도 안 따지는군. 아니면 저 짐승 새끼가 선을 넘어서 따질 필요가 없던 걸까? 아무튼 어이, 올림푸스 아가씨, 괜찮아?”
내려온 것은 황금의 기사였다.
그리고 하늘엔 어느새 태양빛을 반사하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황금의 용이 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누군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황금 용기사 유성원.
공식 SS급 헌터인 그가 나타나자 헌터들과 군인들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을 품기에 충분했다.
“안색이 안 좋네. 호흡도 약하고……. 역시 출혈이 심해서 그런가? 엘드라엔, 이 아가씨 좀 부탁할게요.”
[치료에 의료보험 적용 안 되는 거 알지?]
“드래곤님들이 운영하는 의료보험 서비스가 정말 있다면 오히려 신청하고 싶은데 있긴 하나? 아무튼 빠르게 부탁해요.”
엘드라엔에게 디오메디아를 맡긴 유성원은 어느새 일어난 렘렘을 바라보았다.
기습을 당해서 화가 많이 난 건지 놈은 눈에 핏대를 세우고 유성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메에에에에! 네노오옴! 감히! 감히 내 뿔을! 내 뿔으으으으을!]
“제길, 고작 뿔 하나였나?”
[고작 뿔 하나라니! 내 멋진 내 뿔을 감히이이이이!]
렘렘은 현재 양 머리 쪽의 멋진 곡선을 자랑하던 뿔 한쪽이 부서져서 어딘가 처량해진 모습이었다.
빛을 등지고 한 기습으로 단번에 머리를 터뜨릴 생각이었는데, 공격이 닿기 전 눈치챈 렘렘이 머리를 움직인 덕에 오른쪽 뿔 하나로 끝난 것이었다.
[메에에에에에! 절대 용서 못한다! 황금 용기사! 내 뿔! 내 뿔! 내 뿌우우울! 용서 못해애애애!]
“후우~ 스읍!”
본격적으로 달려오는 렘렘을 바라보면서 유성원은 긴장하기 시작한다.
상대는 전에 싸웠던 레그혼과 동급인 아크데몬 비스트. 죽기 직전까지 갔던 만큼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유성원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에게 달려간다.
렘렘의 철퇴와 유성원의 티탄의 말뚝이 부딪치면서 아까 일어났던 싸움보다 더 큰 후폭풍이 몰아치며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한 놈… 잡았다.]
[흐음~ 좀 늦었군.]
[역시 크록베인 경의 완력은 남다르군요. 한 번에 목을 쳐 낼 줄이야.]
그리고 동시에 주변에 있는 A급 몬스터, 검은 양을 비롯한 다른 몬스터들을 유성원의 기사들이 나타나서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올림푸스 길드 소속 헌터들의 부담은 순식간에 가벼워졌고,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왜 A급, B급보다 S급 헌터가 압도적으로 가치가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유청 님은 병사들의 지휘를 부탁합니다. 결국 저놈들의 목적은 시민들이 대피해 있는 대피소이니 동선을 파악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대응하겠습니다.”
그리고 트레일러를 같이 타고 온 신소미 일행은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대피소를 중심으로 수비 라인을 짜서 천검군 정예병들과 함께 바리케이드 설치 및 작전을 진행하고 무너진 장벽을 통해 들어온 도살왕의 악마들을 상대한다.
“군대와 다른 길드와의 연락과 연계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리고 아영아, 너는 진석 님과 도시 곳곳을 다니면서 내가 지시한 대로 스캐빈저들을 막으렴. 어차피 돌아서는 놈들 수준은 끽해야 D급을 넘지 못할 테니 네 상대는 아닐 거란다.”
“응. 알았어, 엄마. 바로 갈게!”
신아영은 현재 검은 전투복에 마스크, 허리엔 총기와 와이어 같은 현대적인 무장을 한 모습이었다.
물론 여전히 익숙하게 쓰던 권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린 듯 손엔 헌터용 권갑이 끼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무투가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젠 특수부대원 쪽에 더 가까워진 그녀였다.
“에휴~ 던전 나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람. 아직 전직한 클래스 스킬이랑 각종 부속 무장들 사용법도 다 못 익혔는데……. 확실히 효과적인 건 맞지만. 에휴~”
“흐하핫! 사람은 원래 역경을 넘으면서 성장하는 법일세, 레이디.”
“그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쉴 틈이 있어야 한다고요. 뭐든 과하면 독이란 말이에요.”
“오! 그것도 맞는 말이지! 흐하하핫!”
신아영은 그렇게 트레일러를 나가 잽싼 놀림으로 건물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진석 또한 그녀의 인도 아래 곳곳에서 약탈과 살인, 배신을 저지르는 헌터들을 찾아 나섰다.
건물 2개를 넘어가자 3명의 인간이 옷차림이 다른 길드 헌터들을 죽인 뒤, 시체에서 물건을 뒤지고 마정석과 무기를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근데 이거 은근 개털인데?”
“어차피 우리 수준에서 잡은 놈인데 뭘 더 바라냐? 아, 근데 계집은 기왕이면 산 채로 잡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 이거 아직 따뜻한데 아쉽구만… 씁!”
“미친 새꺄, 도살왕 악마들이 곧 피 냄새 맡고 올 텐데 그거 할 틈이 어딨냐? 빨리 튀자고!”
“으으…….”
평소엔 헌터인 척하다가 인류 문명에 패색이 느껴지면 스캐빈저로 돌변하는 것. 늘 그렇듯 이것이 약자들의 생존 방식이다.
신아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어머니가 내린 명령대로 스캐빈저로 변한 헌터들을 위에서 급습했다.
약해 빠진 놈들이기에 턱에 주먹을 날리자 머리가 180도로 꺾이더니 그대로 절명한다.
“크헉!”
“히익! 차, 찬욱아! 뭐야? 저거? 도, 도망쳐!”
“젠장! 우리 걸 노리는 건가? 이, 이 속도면 못해도 C급 헌터… 으아아!”
“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 너희는 판단을 잘못했어! SS급 헌터이자, S급 몬스터를 단독으로 처발라 버리고, 서울 길드와 신강남을 파괴한 황금 용기사가 참전했는데 배신을 때려? 어휴 병신들! 게 섯거라!”
신아영이 미리 작성한 대사를 읊으면서 죽은 스캐빈저를 내버려 두고 남은 이들을 쫓는 시늉을 하자, 다른 스캐빈저들은 잽싸게 흩어지면서 도망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쫓아가다가 멈춘 그녀는 현장에서 시체를 정리하는 진석과 합류한다.
“음? 쫓아서 다 없앨 줄 알았는데… 그냥 왔나?”
“원래 목적이 이거예요. 일일이 잡으려 해 봤자 우리 숫자도 숫자고, 결국 저 쓰레기들도 살려고 저러는 거거든요. 정말로 역겹지만 말이죠. 그리고 살려 놔야 저 쓰레기들이 다른 쓰레기들에게 연락을 해서 다시 스탠스를 바꾸게 할 테니까요.”
이 목사처럼 순수하게 완전한 악(惡) 성향을 따르는 스캐빈저는 오히려 드문 존재다.
대부분이 문명 생활을 향유하면서 자기 이득을 챙기고 싶어 하기에 스캐빈저가 되었다가 일반 헌터가 되었다가 하면서 유리한 상황으로 스탠스를 맞추는 것이다.
고로 인류 문명의 승산이 크다고 보이면 그들은 다시 헌터로 잽싸게 돌아가서 도살왕의 악마들과 싸울 것이다.
“하아~ 이게 최선이라니, 정말 씁쓸하네요.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하면 돼요. 하나 혹은 둘만 본보기로 죽인 다음에 상황 전파하는 거, 아셨죠?”
“알았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후방에서 노는 거보단 낫겠군.”
“아, 하나 더. 너무 S급 티 많이 내지 말라고 하네요. 그러니 그것만 조심하세요.”
“그러도록 하지. 아영 양도 몸조심하고, 여차하면 날 부르게나. 바람처럼 달려가서 위험을 막는 방패가 되도록 할 테니~”
그동안 유성원의 주위에 있던 기사들과는 다른 진짜 ‘기사’다운 매너와 배려를 보여 주는 진석이었지만, 신아영은 그런 그를 징그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로서는 유성원의 새로운 기사들이랍시고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의 존재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녀가 친화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데다 유청과 진석 또한 ‘기사도’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다니는 기사들이었기에 충분히 배려해 주어 대화와 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가끔 이렇게 아귀가 안 맞는 경우가 있었다.
“뭐예요, 그 이상한 사족은? 정말 느끼해요.”
“느끼하다니? 우리 세상에선 일상적인 멘트인데? 말이란 표현이 많을수록 정성이 실리는 걸세.”
“아… 음… 여기 기준에선 한 500년 전쯤 과거로 가야 호평받을 것 같아요. 하아~”
겉보기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기사였지만 엄연히 유성원의 소환으로 이 세상에 강림한 존재였기에 인식과 문화가 이곳 사람들과 엄청 다를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서 단 한 번도 교류가 없던 나라의 사람끼리 모아서 서로 대화만 통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봐도 성원 아저씨가 소환한 기사들 중에서 진석 아저씨랑 유청 오빠가 가장 이상한 것 같아요.”
“허! 그건 좀 심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용인(龍人)이나 심연의 기사, 천족이나 깡통보다도 이상하다고? 정정을 요구… 가 버렸구먼. 그러면 나도 폐하의 명을 따라 일해야겠지.”
반박하기도 전에 멀리 슝! 날아가 버린 신아영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신 진석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건물을 넘나들며 헌터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 목사가 시작한 이 전쟁은 드디어 황금 용기사 세력의 참전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