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유성원의 트레일러.
그리고 백가연의 연락은 한창 머맨 워로드를 쓰러뜨리고 정산 중인 유성원에게 곧바로 닿았다.
5천억이 입금되었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유성원은 전화를 끊고 자신의 계좌부터 확인한다.
[입금 금액 500,000,000,000원]
“실화냐, 이거?”
[실화입니다, 마스터. 거짓 없는 확실한 금액입니다.]
“…염병.”
솔직히 말해서 유성원은 그들이 끝까지 의뢰를 맡기지 않을 줄 알았다.
아니, 세상에 한두 푼도 아니고, 5천억을 어떻게 정부에서 한 번에 낸단 말인가?
아무리 대한민국 총 예산이 약 500조 정도 된다고 하지만 개인에게, 그것도 마인 하나 잡는 데 단순 의뢰비로 내기엔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그만큼 급했나? 젠장… 계좌 거래 금지도 귀신같이 풀었네! 하아~”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돈 받았으니 해야지. 안 하려고 더럽게 군 건데… 이걸 받네.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일단 아이언 포트리스로 가서 준비한 다음 바로 서울 올라가면 되겠다. 아칼론, 속도 상관없고, 법규 상관없으니까 최대 속도로 운전해 줘.”
[대한민국 도로교통법에 의거, 벌금형이 나올지 모릅니다만?]
“5천억이 있는데 그깟 벌금이 대수야? 충선 아저씨도 그거 접고~ 바깥 상황 보고 나갈 준비합시다.”
우우우웅!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동시에 아칼론이 액셀을 밟아 가속을 하는지 트레일러의 엔진이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성원은 내키지 않는 기분을 풀고 현재 전선 상황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알기 위해 신소미에게 연락을 넣었다.
“누님, 접니다. 아영이 데려왔나요? 상태는 어떻죠?”
(예, 데려왔어요. 상태도 무사하고. 그래서, 일은 다 본 건가요?)
“예. 남쪽 전선 2개 대충 정리했고, 이제 좀 쉬려고 돌아가는 길인데……. 그 망할 정부에서 5천억 입금 때려 버렸네요.”
(5천억을요? 아, 물론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안 좋은 것 같았는데, 그 정도일 줄이야. 그러면 유청과 이야기해서 바로 여기 물자들을 준비해서 그쪽 트레일러에 실을 준비를 하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눈치가 빠른 그녀답게 무엇을 해야 할지 한 번에 알아차렸고, 유성원은 웃으면서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다음 이제 전선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뉴스를 틀었는데, 거의 뚫리지 않던 서울 북쪽 장벽이 일부 파괴된 장면과 함께 도살왕의 악마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헌터들과 군인들이 싸우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와, 저건 심각한데? 나 32년 인생에 저거 뚫린 거 처음 봐. 충선 아재는 봤어?”
“아뇨. 저도 서울에 자주 불려 갔지만 저거 뚫린 거 보는 건 처음입니다.”
『메에에에에에에에에에!』
『젠장! 뚫고 들어왔어!』
『누가 막아! 하필이면 제일 단단한 렘렘이라니!』
풀 플레이트 메일을 걸친 양 수인 악마, 렘렘. 철퇴를 휘두르며 헌터들의 방해를 뚫고 들어가 제네레이터를 신나게 두들기는 중이었다.
헌터들은 그를 막기 위해 사격 및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그 외에도 A급 몬스터 용족 도살자, B급 몬스터 거인 도살자와 같은 도살왕 휘하의 대형 악마들과 아크데몬 비스트-렘렘 직속 부하들인 거대한 검은 양들이 들어와 마구 날뛰어서 소용없었다.
“가면 저 대형 몹들부터 정리해야겠네.”
“근데 우리가 속도를 맞출 수 있을까요? 이거 꽤 위험해 보이는데……. 대장님, 먼저 가서 막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으음… 그래야 하나? 어? 저기 뭐가 빛이…….”
『성좌 아테나 님의 인도 아래! 사악한 신의 악마들을 벌하러 왔다!』
『메에에! 올림푸스가 키우는 애완견인가?』
유성원이 먼저 가서 싸우는 걸 고려하는 타이밍이었다.
황금빛 섬광과 함께 거대한 양 악마 렘렘의 앞에 누군가가 떨어진다.
그리스식 투구와 갑옷을 입고 한 손엔 방패, 다른 한 손엔 긴 창을 든 여전사로 무장들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에 갈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나타난 그녀는 렘렘에게 창을 겨누었고, 렘렘은 무시 못할 강함을 가진 인간이 나타난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그녀를 노려본다.
『성좌 아테나의 사도! S급 헌터 디오메디아다! 우린 살았어!』
『저길 봐! 위에 올림푸스의 수송선인 하늘의 마차다. 지원 병력이 내려온다!』
성좌를 언급하는 면이나 올림푸스 길드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과 그녀를 태우고 온 수송기에서 계속해서 병력들이 강하하는 덕분에 주변에 있던 헌터들은 환호하면서 기적적으로 사기를 회복한다.
화면으로 그 모습을 보던 유성원과 최충선은 드디어 올림푸스 길드가 움직인 것에 놀란 눈빛이었다.
“오오, 올림푸스 길드 양반들이 결국엔 칼을 뽑았네?”
“하지만 한 부대만으로는 힘들 것 같은데요. 기적적으로 등장해서 멋지긴 한데……. 결국 S급 한 명 늘어난 것뿐이잖습니까.”
“근데 혼자 저 렘렘에게 돌진하는데? 와, 저렇게 싸우니 딱 신화 속 콜로세움 전투 같네.”
그리스식 갑옷을 입고 둥근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디오메디아와 렘렘의 격돌.
무기가 부딪칠 때마다 일어나는 충격파와 압력에 알아서 주변이 비워지면서 둘의 싸움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너의 목을! 아테나 님의 제단에 올리겠다!』
『메에에에! 나는 네년을 이 목사에게 요리시켜 위대한 도살왕 님에게 바치겠다!』
“대화도 뭔가 자기들 신이 들어가니 신화 속 내용이랑 딱 맞네. 다른 쪽은 어떻지? S급 한 마리 더 나왔다며?”
렘렘과 별도로 다른 S급 몬스터 고트맨 쪽을 살펴본 결과 그쪽엔 현재 청룡 길드 3인이 붙어서 마크 중이었다.
2마리가 와서 전력을 나눌 바에야 차라리 3명이 뭉쳐서 한쪽을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문제라면 아크데몬 비스트들은 단순한 던전 보스와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들이라는 점이었다.
“젠장! 형님!”
“큭! 무슨 몬스터가 호위를 이렇게 단단히!”
청룡 길드의 S급 3인방, 고천수와 고천용, 채지영은 가능한 한 빨리 대상을 처리하기 위해 길드의 A급, B급 전력을 모두 모아서 완전 무장을 한 렘렘보다 약해 보이는 고트맨을 노렸다.
하지만 그는 염소 머리를 한 수인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면서 여유 있게 자신을 노리는 헌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에에~ 저 배고픔밖에 모르는 하위 아귀들과 도살자만 쓰러뜨려 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그분의 직속 사도인 나는 그리 멍청하지가 않네. 바포메트 제군들, 앞으로 전진.]
[무어어어어!]
[무으으으!]
[메에으으으!]
거대한 염소 머리의 악마, 바포메트들의 호위를 받은 고트맨은 여유롭게 걸으면서 마법을 시전하여 헌터들의 사격 및 공격을 막아 내는 중이었다.
바포메트들은 각각 육중한 몸체에 갑주를 두르고 무기를 든 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호위하고 있으니, 렘렘보다 훨씬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적이었다.
“잡으려면 바포메트들부터 다 없애야겠는데요, 형님?”
“문제는 그동안 저놈이 가만히 있어 주질 않는다는 거지.”
“이렇게 어려워지니 우리 성좌님, 너무 좋아하는데요? 아주 박수 치고 난리 났어요.”
[당신이 거대한 위기를 맞이하자 성좌 청룡이 매우 좋아합니다.]
[이 시련과 싸워 반드시 이겨 내길 바라며 그는 박수와 함께 환호합니다.]
[이 고난에서 승리하면 그는 자신의 사도들에게 충분한 은혜를 베풀 것입니다.]
‘투쟁’을 좋아하는 성좌 청룡은 난감해하는 자신의 사도들을 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하나 성좌의 그런 행동에 이미 익숙해진 고천수는 숨을 몰아쉬며 침착하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짚어 나간다.
“고트맨은 내가 맡아서 붙들어 놓겠다. 너희는 바포메트 제거에 협조해라.”
“형님, 괜찮겠습니까? 발 빼는 건 어떻게 하고요?”
“그냥 발을 빼는 거랑 뭣 좀 해 보다가 빼는 거랑 대우 차이가 나니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올림푸스 놈들도 온 것 같으니 괜찮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투는 지속된다.
하나 올림푸스 길드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판세는 아직 힘든 상황이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일반 군인들의 보급이 끊긴 것이 치명적이었다.
마정석 탄환으로 화망을 펼치면 효율적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몬스터들인데, 탄약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후퇴하거나 총검으로 싸워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탄약… 탄약만! 젠장!”
“아니, 대체 도시 내에 스캐빈저들이 얼마나 있는 건데! 으아아악!”
“하아~ 중사님, 저 먼저 갑니다.”
급한 대로 수류탄과 같은 공용 화기를 사용해 보지만 마정석탄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
거기다 헌터들도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장벽이 뚫린 시점에서 시가전으로 들어가게 되니 효율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절대 피난소로 가게 두지 마라!”
“막아! 막아! 아! 협회장님은 언제 오냐고! S급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할 판국인데!”
“그분은 끊긴 보급 루트 복구하느라 바쁘… 크악!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우리 자리를 정한 것뿐인데~”
심지어 장벽이 뚫려서 상황이 안 좋은 걸 알자, 일부 스캐빈저와 일반 헌터의 경계에 있던 이들은 스캐빈저로 돌변해서 다른 헌터의 뒤를 치기까지 했다.
박쥐 같은 포지션인 이들은 헌터들이 이기면 그쪽에 붙어서 이득을 취하고, 몬스터나 스캐빈저들이 이기면 그들에게 달라붙어서 이득을 취하는 매우 합리적인 인간들이었다.
방금까지 같이 싸우던 헌터들의 뒤를 친 이들은 떨어지는 소지품을 잽싸게 싹 쓸어 담은 다음 현장을 이탈한다.
“스캐빈저는 역시 판단이 중요하지. 장벽 뚫린 시점에서 한국은 이제 텄다, 텄어. 중국이나 일본으로 갈 배편이나 알아보자고~”
“근데 지금 신안 언더시티가 장난 아니라던데, 괜찮을까요? 형님?”
“거기가 언제 멀쩡하던 때가 있었어? 또 짱깨랑 쪽바리들이랑 싸우는 게 일상인데…….”
“그렇지만 올림푸스 지원도 왔는데, 너무 섣부른 결정 아닙니까?”
“고작 한두 명으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어차피 이 나라는 망했으니 어서 가자고. 흐흐흐.”
이처럼 군인들은 보급이 모자라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고, 헌터들마저도 내부 분열이 일어나서 혼돈에 빠진 상황.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던 올림푸스 길드의 지원이 왔지만 아직 뚜렷할 만큼 전세의 변화도 없는 상태였다.
기세 좋게 하늘에서 내려와 아크데몬 비스트-렘렘과 싸우는 아테나의 사도 디오메디아는 일대일로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큭!”
[메에에!]
싸움의 여파로 주변이 부서질 뿐 서로 뚜렷한 유효타 같은 걸 주지 못해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아크데몬 비스트-렘렘은 철퇴로 방패를 후려치면서 자신의 맹공에 버티는 인간을 증오스럽다는 듯 노려봤고, 디오메디아 쪽도 역시 소문으로 듣던 성좌 도살왕 소속의 아크데몬 비스트라는 S급 몬스터를 상대해 보니 보통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혼자서 싸우기엔 상대가 너무 나빠!’
[메에에에에에!]
상대는 탄탄한 갑주에 방패까지 든 중전사 형태로 수인형 악마라는 점까지 포함해서 S급 몬스터라는 등급에 어울리는 완력과 민첩성을 모두 겸비한 바람에 자신이 일대일로 싸워 이기기엔 매우 힘든 몬스터였다.
‘시간만 끌어선 이길 수 없어. 제길! 트리토니아스는 언제 오는 거야? 나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하더니!’
[푸르륵! 계집 상대로 속수무책이군, 렘렘. 언제까지 시간 끌 생각이지?]
‘저, 저건?’
난감해하는 사이, 장벽 위에서 또 다른 중압감이 느껴져 디오메디아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렘렘과 비슷할 정도로 큰 말의 머리를 한 수인 악마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뿜어내는 패기와 날카로운 눈빛부터 시작해서 범상치 않은 느낌.
또 눈앞의 렘렘을 편하게 부르는 것으로 보아 못해도 동급의 존재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또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
[메에에! 조금 놀아 주고 있었을 뿐이다, 프르제발스키! 왜 온 거냐?]
[푸히힝, 너도 레그혼처럼 당할까 봐 걱정돼서 왔지. 푸히힝!]
자신들을 내려다보면서 이죽거리는 프르제발스키의 모습에 디오메디아는 큰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했다.
저놈도 분명 S급 몬스터일 텐데, 아군이 먼저 온 게 아니라 적의 증원이 먼저인 것에 심리적인 부담을 느낀 것이다.
물론 현재 모습을 보자면 일단 관망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안심할 수는 없었다.
‘…주변 전황은 좋아지지 않고, 이대로라면 당한다!’
“이 거대한 양들, 더럽게 안 죽어!”
“대장님이 이길 때까지 버텨야 한다!”
“양이! 양이 날… 으아아아!”
그래, 지금 하는 건 일대일 결투가 아니다.
아직 전쟁 중으로 주변에선 아군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디오메디아는 비장의 수를 사용하기로 결심하고 창을 고쳐 잡는다.
[메에에에! 당하긴 누가 당한다고 그래! 메에에! 거기서 똑똑히 봐라! 내가 이 인간 암컷을 처리하는 걸 말이야!]
‘좋아. 마침 악마끼리 말싸움을 해서 그런가! 흥분한 상태야. 이 틈을 노리자!’
그리고 마침 딱 격분해서 달려드는 렘렘을 본 디오메디아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맞서 달려가며 철퇴를 내려치려는 렘렘의 빈틈을 발견하고, 자신의 비장의 기술을 꽂아 넣을 작정이었다.
‘성좌 아테나 님께서 나에게 내려 주신 디오메데스의 가호, 그 가호에 따라 신을 상처 입히고 울게 만든 무예로 끝장낸다!’
[메에에에에에!]
“아레스 크라잉(Ares Crying)!”
격분한 덕에 정확하게 노릴 수 있던 겨드랑이 아래 빈틈, 거기에 신조차 상처 입고 울게 만든 최강의 수(手). 그녀의 힘이 실린 황금의 창은 찬란한 섬광을 뿜어내며 렘렘을 향해 찔러 들어간다.
[메시시싯. 인간은 역시 단순해.]
그러나 순간 렘렘의 표정은 흥분을 넘어 격분한 것에서 자신의 노림수에 걸린 어리석은 짐승을 보는 사냥꾼 같은 미소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본 디오메디아는 깜짝 놀랐지만 이미 그녀의 창은 렘렘에게 닿았고, 찬란한 빛이 그대로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