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서울, 협회 본부.
S급 몬스터 2마리의 습격 소식과 이미 청룡 길드가 중심이 되어 교전이 시작되었다는 것까지 모두 협회에 전해진다.
현재 협회는 국가비상대책 회의까지 겸하는 자리로 격상했기 때문에 협회와 길드 관련자들 외에도 국방부 장관, 대통령까지 참여한 상태였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아이언 포트리스에 있던 백가연 또한 강제로 이 자리에 불려 나와서 일단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S급 몬스터 둘, 렘렘과 고트맨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협회장님은 지원을 위해서 먼저 나가셔서 지금 안 계십니다만, 다른 아크데몬 비스트들도 투입될 가능성이 큽니다. 올림푸스 길드에선 뭔가 대답이 없습니까?”
“그게… 일단 S급이자 아테나의 사도인 디오메디아가 개인 비행기로 오는 중이라 3시간 내에 도착할 겁니다. 다만 헤라클레스의 가호를 받은 쪽은 갑자기 상태가 급변해서 못 올 것 같다고 합니다.”
“그, 그러면 어쩌나?”
“대신 태평양 전선에 있는 S급 헌터, 트리토니아스가 우선 오기로 했습니다. 5시간 내면 도착한다고 합니다. 다만 여러 전선을 맡고 있는 올림푸스 특성상 추가적인 지원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전해 달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S급 헌터 둘과 그들의 팀, 이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올림푸스였다.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SS급인 헤라클레스의 가호를 받은 이를 부르고 싶었지만, 올림푸스가 세계 안전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부산과 광주 쪽 상황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럼 그쪽에서 일하는 S급 두 분을 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청룡의 3명, 올림푸스 2명, 서울 한 명, 협회장님에다 거기 둘까지 하면 총 9명, A급과 B급 인원들까지 생각하면 어떻게든…….”
일단 계산상으로는 해볼 만한 전력이 뭉치게 된다.
아크데몬 비스트 전원이 동시에 공격하는 게 아닌 소수로 들이닥친다면 9명의 S급 헌터에 A급, B급 다수를 동원한 전력으로는 서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부 사람들과 다른 길드 사람들이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던 중 협회장 대신 남은 협회 간부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꺼냈다.
“그, 그게,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문제요?”
“아뇨. 그게 아니라, 최충선 헌터가… 협회의 소집을 거부했습니다.”
“거부라니? 대체 무슨 일이…….”
“심지어 앞으로는 헌터 협회의 지시를 받지 않겠다고 하고 집도 떠날 거라고 전했습니다. 뭣 하면 헌터 자격을 뺏어 버려도 좋다고 하더군요.”
갑작스러운 S급 헌터의 지시 무시 및 협회 이탈 소식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협회 사람들은 물론 정부 인원들도 놀란 표정이 되어서 협회 간부에게 자세한 사정을 묻기 시작한다.
“아,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일인가? S급 한 명이 빠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겐가?”
“그래서 어떤 사태가 일어난 건지 알아봤는데……. 최충선 헌터가 있는 광주 전선 쪽에 황금 용기사가 나타나 그를 구했고, 그다음부터 그쪽으로 합류했다더군요. 게다가 부산에서 그가 황금 용기사의 지시를 받는 장면이라든가, ‘대장님’이라고 부르면서 깍듯이 대하는 걸 목격한 사례도 있는 걸 보면 완전히 그의 밑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 터진 거지. 호들갑은~’
백가연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말대로 언젠가 터질 일이 터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남쪽을 책임지는 두 사람, 최충선과 전지아 모두 S급 헌터로 다른 곳 어디를 가도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는 존재다.
‘챙겨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비를 한 것도 아니니 저리 호들갑을 떨지. 쯧쯔쯔.’
그저 고향 문제, 가족 문제 등등… 자신들이 없으면 안 되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강제로 부담해 주는 것뿐, 그런 문제만 해결되거나 아니면 아예 그걸 부담할 필요성이 사라지면 언제든 자유로워질 이들이었다.
‘물론 아마 감시라든가 상황을 지켜볼 자들을 두긴 했었겠지. 하나 상황이 대처할 새도 없이 크게 급변한 것도 문제고, 이번 사태에 대처하느라 여유도 없는 게 그 이유겠지.’
물론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면 진즉에 스캐빈저나 3대 길드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협회에서도 그들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다른 세력이 손을 뻗거나 혹은 거래를 제안하는 것에 대응할 수 있게 사람을 깔아 두긴 했을 거다.
거기다 그동안 사람을 보내서 감정선을 자극하거나 가끔 지원을 해 주는 식으로 유지를 해 왔을 터.
“대체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협회에선 뭘 한 겐가? 이런 일을 막으라고 예산이 들어가는 것일 텐데!”
“그게, 정황상 검은 마법사 한중호의 스캐빈저 세력과 교전하던 중 둘이 만나서 무언가 교섭이 일어났고, 돌아오자마자 최충선이 그를 따른 걸 보면 도저히 틈이 없었습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그 친구가 따로 뭘 하는 성격은 아닐 텐데?’
유성원의 성격과 그의 지식수준을 알기에 백가연은 그가 딱히 뭔가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 이야기를 들어 봐야 알겠지만, 아마 최충선 쪽이 유성원의 말과 행동을 보고 영향을 받아서 지금 하는 일을 놓아 버리고 그의 밑에 들어갔다는 추측이 훨씬 맞을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큰일 난 건 사실입니다. 최충선 헌터를 되돌리지 않으면 지금 서울 쪽 S급 공략도 문제지만 광주, 전라 쪽의 치안 공백이 커져서 군 예산을 추가 투입하거나 아니면 길드에 별도로 의뢰해야 할 판국입니다.”
“젠장! 망할 황금 용기사 같으니! 이런 망할 협약을 맺은 것도 모자라서 우릴 엿 먹이기까지 해? 그럼 전지아 양은 어떤가? 그쪽은 그냥 온다고 했지?”
“그녀도 지금 혼자서 전라도 쪽까지 커버해야 해서 못 온다고 합니다. 자신을 오게 하고 싶으면 A급 15명을 보내 달라더군요. 하아~”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면 안 오겠답니다.”
이렇게 응하지 않는 2명 때문에 9명이라고 생각한 S급은 7명으로까지 줄어들었고, 9마리의 아크데몬 비스트를 상대하기엔 눈에 띄게 모자라 보였다.
더 무서운 건 만약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올림푸스는 전력을 아낄 생각에 발을 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또 인원이 줄게 되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붕괴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게 진작 좀 잘해 주지 그랬나?”
“어르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할 생각은 있었고?”
“…….”
예리하기 짝이 없는 백가연의 질문에 협회와 정부 요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 없이 잘하고 있으니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겠지.
아니, 설사 말이 있었어도 그동안 그냥 희생하라느니, 나라가 위험하다느니, 사람 생명이 소중하다느니 등등 갖은 핑계를 대면서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을 따지고 보면 황금 용기사인 유성원 그놈 때문이 아닙니까?”
“신호탄이 된 건 그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잘해 왔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엔 SS급 하나와 S급 헌터 넷이 추가되었겠지. 뭐, 정부와 협회 탓만은 아니지만 말이지.”
그러면서 슬쩍 청룡 길드와 서울 길드, 올림푸스 길드에서 온 사람들을 쳐다보는 백가연이었다.
3대 길드의 과열된 경쟁.
각자 목표와 보상만을 우선시한 운영과 고위 각성자 독점, 기업과 연합한 사회 지배와 권력 횡포 등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제 와서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 사실 돈만 쓰면 SS급 헌터 1명, S급 헌터 4명이 고용되는 수단도 있지 않나? 그러면 S급 이상이 5명. 뭐, 최충선 그 친구까지 치면 6명, 나까지 치면 7명인가? 후후훗.”
비장의 카드로 숨겨 놓은 기사인 유청과 진석을 빼고, 유성원과 휘하의 기사들, 거기에 최충선 헌터와 백가연 본인까지 치면 정말로 SS급 1명에 S급 6명 해서 총 7명이라는, 지금 협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헌터 숫자와 동일한 숫자가 나오게 된다.
“어르신까지 이러기입니까?”
“내가 아카데미에서 뭐 하나라도 바꿔 보려고 똥 쌀 때 보태 준 게 있나? 후후훗. 아무튼 자알~ 생각해 보게.”
그나마 남쪽의 상황이 조금 풀리게 되었지만 그것도 유성원의 덕.
오히려 그것 때문에 S급 2명이 자신들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자 손해가 커진 상황이다.
그 말대로 돈을 쓴다고 다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직 하나 남아 있지 않은가? 돈 써서 해결할 방법 말이야. 까짓것 5천억 선금 좀 내면 어떤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어르신. 5천억이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니고,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이…….”
“즉, 그 친구에게 계약대로 줄 생각은 없었다는 거군.”
“…….”
침묵으로 긍정의 표시를 대신하는 정부 직원이었다.
1조의 거액을 동원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미래를 생각해 볼 경우 이런 위기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돈을 내야 할 것이다.
돈 액수도 액수지만, 다른 길드나 헌터들의 반발도 클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쉽게 결정하지 못할 문제였다.
‘에휴, 이 모지리 자슥들…….’
처음에 유성원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일단 설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는 게 다시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뭘 다른 헌터들까지 생각하나? 억울하면 S급 7명을 길드에 모아 놓든가 라고 하면 그만이지. 아니면 한국 시장을 떠나라고 하면 그만이고. 못해도 SS급 마인 정도 되는 상대를 상대할 때 부를 건데 뭐가 문제인가?”
“그 말씀도 맞긴 합니다만, 뭔가 다른 방안이 없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1조는 너무……. 차라리 훈장이라든가, 영웅 대접 같은 거라면 몰라도… 이런 식으로 돈 가지고 사람 목숨 쥐고 흔드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들으면 배가 터져라 웃을 소리군. 돈 가지고 사람 목숨 쥐고 흔드는 건 딱히 지금 시대에만 있던 일이 아닐세.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구먼.”
“윽……!”
“뭐, 마음대로 하게. 어차피 나라가 멸망하게 되면 더 이상 대통령이니 협회장이니 간부니 뭐니 잘난 척하면서 앉아 있지도 못할 거고, 대한민국 금전으로는 거래도 못할 텐데~ 잘해 보게나. 후후.”
백가연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앉아서 눈을 감고 여유를 부린다.
하나 결국 아무런 조치도 안 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 갔고, 안 좋은 뉴스만 연이어서 전해져 왔다.
“서울 길드에서 방금 선포가! 남쪽의 산거정을 막아야 하기에 오경훈 길드장은 지원 못 간다고 합니다!”
“S급 몬스터 렘렘에 의해서 도시 방어 시스템의 동력을 공급하는 제네레이터가 하나 파괴되었습니다. A급 몬스터와 B급 몬스터에 의해서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막을 전력이 없습니다!”
“그… 제771수비 부대가 보급 언제 오냐고 합니다. 탄환이… 없다고…….”
“내부 스캐빈저들 급습으로 보급 대대 차량과 트레일러들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이드 엑셀리온 길드장 사망! 길드원들은 일단 후퇴한다고 합니다.”
조금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그마한 눈덩이가 굴러가는 것처럼 일들이 커져 나가고 있었다.
스캐빈저들의 내부 습격, 지연되는 보급, 늘어만 가는 사상자 및 피해 보고. 같이 싸우던 여러 헌터 길드에서는 피해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온다.
서울 전선 쪽의 상황이 나와 있는 화면을 보면서 열심히 떠들고 전화를 거는 이들이었지만 근본적인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대통령님, 저희 길드장님에게서 이야기가 왔습니다. ‘친애하는 대통령님께. S급 헌터 우리 포함해서 9명을 모아 준다고 해 놓고 왜 온 건 협회장님 하나뿐입니까? 4명으로는 S급 몬스터 2마리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버겁습니다. 지원 안 할 거면 미리 말하십시오. 우리도 우리 살 궁리하게. 10분 이내에 답변 없으면 우리도 빠집니다.’”
“그, 그게… 그…….”
“역시 고천수 길드장이군. 눈치가 아주 빨라. 아니면 이미 저 친구가 이야기를 전한 것 같군. 3명 나가리 되었다는 걸 말일세.”
지금 한창 싸우고 있는 청룡 길드, 고천수 길드장의 최후통첩.
아마 이곳에 있는 길드원에게서 여기 상황을 통신으로 연락을 받았고 곧바로 대답이 온 것이리라.
다른 어떤 소식보다도 지금 3명의 S급 헌터는 물론 A급, B급 헌터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빠지면 말 그대로 서울 전선은 무너지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와 협회엔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었다.
“…주겠습니다. 어르신.”
“으음? 잘 안 들리는데?”
“1조 주겠습니다, 어르신! 물론 선금 5천억까지요. 그 친구에게 북쪽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빨리 투입되라고 전하십시오. 그리고 지면 국물도 없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잘~ 알았네. 아, 그리고 지금 서울 길드에서 건 소송의 법적 조치로 그 친구 계좌가 마비된 거 알고 있나?”
“바로 조치 풀어서 입금하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연락을 부탁합니다. 지금 한시가 급하잖습니까.”
협회 간부나 다른 정부 요인들은 결국 헌터 한 놈에게 나라 재정 가운데 1조를 줘야 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현재 최악에 치달은 상황을 해결할 방도가 없기에 그 누구도 반박하거나 지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결국 의뢰를 성사시켜 선금 5천억을 받아 내는 데 성공한 만큼 백가연은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어 유성원에게 연락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