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그렇게 유성원이 머맨 워로드를 처치하자, 부산 바닷가에서 벌어진 격전은 끝이 나게 된다.
호텔 옥상에서 싸우던 전지아와 최충선도 괜히 S급은 아닌지 몰려온 머맨 아너가드들을 물리치고 무사히 내려왔다.
그리고 도망치던 헌터들과 군인들은 유성원 일행이 쓸어 놓은 전장을 보며 감탄하면서 시신들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황금 용기사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최충선의 안내를 받아 유성원의 트레일러로 들어오자마자 전지아는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정말로 그가 아니었다면 이 바닷가는 이미 빼앗기고 부산으로 머맨들이 몰려가서 민간인들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그 정도였나? 영상으로는 잘 싸워서 필요 없는 줄 알았는데……. 서두르길 잘했네.”
“아뇨. 정말로 큰일 날 뻔했습니다. 머맨 워로드가 워낙 간교한 놈이라서…….”
전지아는 머맨 워로드가 벌인 일에 대해서 설명하며 큰일 날 뻔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밝힌다.
그녀의 말을 들은 유성원은 아까 전 잡은 머맨 워로드가 그렇게 위험한 몬스터였다는 것에 놀라면서 깔끔하게 처리하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저런 걸 말해 봐야 자신에게 유리한 점 하나 없는데도 솔직하게 말하는 전지아를 보고 조금 놀랐다.
‘으음… 이건 좀…….’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뭐, 갚을 필요 없어. 그냥 참전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또 나도 경험치도 챙겼고 전리품도 건졌으니……. 와, 역시 A급 보스 몬스터는 뭔가 다르더라? 크기는 인간만 한데 죽으니까 허공에서 집채만 한 마정석이 튀어나오는 건 처음 봤어.”
머맨 워로드는 본래 머맨 궁전을 지키는 A급 보스 몬스터였다.
수하 몬스터를 보내서 침략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보스 몬스터가 밖에서 날뛰다가 잡히니 그 보상이 고스란히 넘어왔는데, 웃기게도 머맨 워로드보다 더 큰 마정석은 물론 무구 여럿이 튀어나오니 웃길 노릇이었다.
“그런데 보스 죽었다고 던전이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이제 B급-머맨 궁전으로 바뀌었더라?”
“내부 목표를 완수해야 사라지는 걸 텐데… 던전 밖에 나온 보스만 잡았으니 조건이 바뀐 거겠죠.”
“아마 새 보스 몬스터는 B급이겠지? 아무튼 슬슬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우리는 이만 가 볼게. 이건 우리 연락처.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아, 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깔끔하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트레일러를 나가는 전지아였다.
유성원은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둔 채 곧바로 이곳을 떠날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최충선이 유성원에게 슬쩍 질문을 던져 왔다.
“저기, 대장님, 지아에겐 뭔가 제안 안 하십니까?”
“원래부터 도와준 다음 얼굴 도장만 찍고 돌아갈 생각이었어. 아저씨랑은 일이 이상하게 꼬인 거지.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저랑 같이 전리품 정리나 하죠. 하아~ 지금 제 인벤토리도 꽉 차서 트레일러에 실은 판국이니까요.”
근력 SS+급인 유성원의 인벤토리마저 무게 한도가 꽉 찰 정도면 전리품의 규모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보스 몬스터로부터 얻은 이익도 많았지만, 해안가를 아우를 정도로 넓게 퍼져서 올라오는 대부분 머맨들을 쓰러뜨린 만큼 마정석과 각종 전리품들도 만만치 않았다.
또한 개중에는 머맨 아너가드가 가진 무기와 방패, 머맨 워로드가 가진 무구엔 특별한 힘을 담은 마법석 같은 것도 있어서 일일이 살펴보면서 정리해야 하기에 생각보다 일이 많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먼저 제안 같은 거 안 해도 곧 걔한테서 연락 올 가능성이 크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예?”
“이미 그 애는 지옥을 보고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빨리 일이나 마무리합시다. 리스트를 정리해야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유성원은 최충선을 재촉하며 본격적으로 전리품 정리에 들어간다.
실질적으로 현대의 일에 맞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인원이 유성원과 최충선 둘뿐인데, 얻은 전리품은 산더미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해 놔야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도 안 줄뿐더러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서울 북쪽, 이 목사의 전선.
성좌 도살왕의 사도인 아크데몬 비스트들을 모아 둔 채 잡아 온 인간을 실시간으로 요리해서 즐긴 이 목사는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유성원에 대한 소식이나 정보가 전해지지 않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흐음~ 이토록 난리를 쳤는데… 그 친구가 안 오다니 이상하군.’
[푸히히힝, 아~ 잘 먹었다. 간만에 배부르게 먹었군.]
[디저트까지 완벽해. 특히 눈알 푸딩 최고였어. 메에에!]
[그러게 말이야. 꺼어으윽!]
근 며칠 내내 이어진 광란의 연회 동안 아크데몬 비스트들에게 전쟁터에서 잡은 인간들을 아주 배불리 먹였지만 유성원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전에는 신나게 방해해 놓고 이번에는 왜 안 나타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 이 목사였지만, 안 나타나 주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으음… 상황을 지켜보나? 기묘한 일이군.”
“이 목사님!”
“쉬이잇! 귀빈들의 연회 자리에서 이 무슨 무례인가? 이리로 오게. 무슨 일인가?”
그때, 휘하의 스캐빈저 하나가 갑자기 야외 연회장에 올라오면서 목소리를 높이자 이 목사는 그를 조용히 시켰다.
연락을 전달하러 온 스캐빈저는 무시무시한 아크데몬 비스트들을 발견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방금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먼저 황금 용기사 소식입니다. 조용하던 놈이 갑자기 오늘 광주 쪽에서 일어난 스캐빈저의 대란과 머맨 워로드가 있는 부산에 가서 상황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허, 그랬군. 왜 우리 쪽에 오지 않나 했더니~ 다른 곳에서 외도를 하고 있었나? 그래서, 서울 길드의 오경훈 쪽에 물어봤나?”
“예. 물어봤지만 자기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음, 우리와 싸우기 전에 후방을 안전하게 할 생각인 건가? 아니면 그쪽 S급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처리해 준 건가? 아무튼 이래저래 우리가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군.”
일단 움직이는 걸로 보아 세상의 상태에 대해 무시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 목사였다.
하나 자신들이 위협적이라는 걸 알았다면 즉시 대책을 세우거나 싸우러 왔을 텐데, 다른 곳부터 처리하는 것을 보니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식사를 완료한 뒤 만족스러운 듯 떠들고 있는 아크데몬 비스트들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위대한 도살왕 님의 사도들이시여. 식사를 마치자마자 죄송합니다만, 아주 작은 문제가 생겨서 그런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엉? 메에에! 이 정도로 먹었으니 운동 좀 해야겠지. 메에에!]
[메에에! 더 맛있는 인간 요리를 먹게 해 준다면 살짝 도와주도록 하지.]
탁자에 앉아 있던 9마리의 아크데몬 비스트 중 둘이 일어나서 이 목사에게 다가온다.
갑옷을 입고 있는 양의 모습을 한 악마 렘렘과 염소의 형태를 한 채 로브를 입고 있는 악마 고트맨이었다.
보통 이렇게 사서 일하러 나오는 아크데몬 비스트들이 아닌데, 이 목사의 정성에 감동한 것이리라.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위대한 도살왕 님의 사도들이시여, 그다지 어려운 부탁이 아닙니다. 제가 알려 드린 곳에 있는 기계 몇 개만 부숴 주시면 됩니다.”
[메에에! 그 정도는 쉽지.]
[그럼 더 많이 처리하는 쪽이 ‘이 목사’의 신작 인간 요리를 먼저 먹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 게 좋겠군. 메에에! 느려 터진 렘렘, 네가 날 따라올지 모르겠군.]
[메에? 네가 좀 빨라도 부수는 건 내가 더 잘한다, 고트맨.]
각자 무기를 든 채 바람처럼 뛰쳐나가는 두 아크데몬 비스트를 보며 이 목사는 미소 짓는다.
그러고는 식사를 마친 뒤 아직도 널브러져 있는 남은 아크데몬 비스트들이 있는 식탁으로 가면서 말한다.
“위대한 도살왕 님의 사도들이시여, 먼저 가신 저 두 분이 제네레이터를 부수면 저 장벽은 약해지게 됩니다.”
[푸르륵! 그걸 왜 이제야 알린 거지? 진작 알렸으면 우리가 부하들에게 시켰을 텐데?]
“그야 신의 사도님들에게 아무것도 바치지 않고 부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허허허, 제물도! 경배도! 예배도 없이 어찌 신에게 무엇을 바란단 말입니까? 신앙심이란 신을 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먼저입니다.”
[푸르륵, 너무나 바른말이라 뭐라 할 게 없군. 푸르르륵.]
프르제발스키는 우아하게 와인 잔을 들어 마시면서 이 목사를 바라본다.
이 목사.
인간인 주제에 자신들과 같은 레벨의 사도가 되었으면서도 놈은 자신들을 철저히 섬기는 입장으로 대하고 있으며 성좌 도살왕이 내리는 수많은 가호를 거부하고 순수하게 신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오직 그것에 만족하는 자였다.
‘푸히잉, 기묘할 따름이지.’
“자,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혹시 저녁때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면 반영해 드리죠. 허허허.”
[그럼 나는 인간 눈알 푸딩! 그거! 또 해 줘! 또 해 줘! 꿀꿀!]
“하하, 알겠습니다, 이베리코 님. 그러면 저녁에 쓸 눈알을 또 뽑으러 가야겠군요.”
자상하게 웃는 이 목사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자(聖子) 그 자체였다.
오직 신에게 봉사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며,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힘과 협조를 요구하지만 대가를 철저히 지불하는 건 물론 성심성의가 가득 담긴 태도로 인간 목장을 만들고 자신들을 철저히 섬기고 대우한다.
‘성자 같은 헌신과 신앙을 바치는 동시에 동족을 우리의 먹잇감으로 요리하고, 목장을 만드는 짓은 보통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지. 아주 미쳐 버렸거나, 아니면 상상도 못할 정도의 증오를 가슴에 품고 있겠지.’
“허허, 프르제발스키 님, 왜 그러십니까? 특별히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신지요?”
[푸르륵! 아니, 상관없네. 잠깐 우리 애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을 뿐이야.]
“알겠습니다.”
프르제발스키의 말을 들은 이 목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앞에 있는 접시들을 치우고 다른 일을 하러 간다.
그럼에도 프르제발스키는 계속해서 이 목사를 바라보았다.
각성자에게 패배하든 아니면 정말로 이 지구 전부를 인간 목장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든 간에 언젠가 이 목사의 과업은 끝을 보게 되어 있었다.
과연 그 순간 그가 어떤 모습이 될지, 프르제발스키는 기쁘게 그것을 기다리자고 생각하며 와인을 마저 마신다.
***
서울 북부 전선.
[비상경보! 비상경보! S급 몬스터-아크데몬 비스트 렘렘과 S급 몬스터-아크데몬 비스트 고트맨이 전선에 참여해서 현재 장벽으로 다가오는 중입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S급 몬스터…….]
“드디어 왔군. 자고 있는 애들 다 깨우고, 지영이를 어서 불러와라. 그리고 협회에 연락해서 그 망할 올림푸스 놈들은 언제 지원 올 건지도 확인하고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또 전선에 퍼져 있는 A급 녀석들 다 불러오고, 전선 공백은 군인들보고 일단 때우고 있으라고 해라.”
“예!”
장벽을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던 고천수는 S급 몬스터 둘의 등장에 올 것이 왔다는 듯 미리 생각해 둔 대로 지시를 내리고는 곧바로 아크데몬 비스트인 렘렘과 고트맨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성좌 ‘청룡’이 당신이 새로운 투쟁을 맞이한 것을 반가워합니다.]
[성좌 ‘청룡’은 이 투쟁에서 승리하면 커다란 대가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성좌 ‘청룡’은 오랜만에 맞이한 투쟁인 만큼 절대 도망치지 말라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역대급 위기였지만 청룡 길드의 성좌 청룡은 신이 나는지 고천수에게 연속으로 상태창을 띄우면서 자신을 만족시키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늘 무리한 요구만 하는군.’
“오, 온다!”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마라! 상대는 S급! 하나 잡으면 우리 투쟁의 성좌 청룡께서 그만큼 보상을 해 주신다! 그러니 용기를 내라!”
사기를 충천시키는 다른 길드 간부의 말을 들으며 고천수는 이제 10미터가량 거리까지 온 S급 몬스터 렘렘과 고트맨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은 다음, 바로 푸른 섬광이 되어 가장 먼저 뛰쳐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