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01화 (101/293)

[101화]

네오 신안 언더시티.

말 그대로 전라남도 신안에 만들어진 스캐빈저들의 도시다.

해안과 섬에 위치했다는 점과 오래전부터 한국 정부의 치안력이 손에 닿지 않는다는 이점을 통해 각성자의 시대, 성좌의 시대의 혼란 속에서 언더시티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중국, 일본, 동남아를 잇는 불법적인 무역 허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성원 일행은 최충선과 함께 그대로 사람의 행적이 끊겨 폐허가 된 바닷가까지 와서 멀리 섬에 만들어진 언더시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이젠 염전이 없나 보네요? 섬에 무슨 마천루가 세워져 있네?”

“천일염 생산하던 건 기록으로나 볼 일이죠. 이제는 대신 마약 재배 및 노예 거래가 주요 산업입니다. 마치 홍콩 같은 느낌이죠.”

“섬이 작은 편인데 용케 저렇게 만들었네요. 아니, 그냥 섬이 아니라 육지로 올라와도 되지 않았나?”

“아마 중국, 일본 스캐빈저들이 투자해서 섬에 확장 공사 같은 걸 했을 겁니다. 불법 무역 루트 허브로 쓰기 위해서 말이죠. 알다시피 세계 주요 나라들은 모두 각자 악(惡) 성향 성좌와 싸우고 있습니다.”

변신을 해제한 최충선은 50대 초반의 듬직한 체구의 아저씨 모습이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유성원에게 말을 높여 설명하고 있었다.

자기보다 어려 보였지만 그와 함께 있는 기사들이 슬쩍 쳐다볼 때마다 살 떨리게 무서워서 감히 친한 척 대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저기들만 조지면 이쪽 전라도 전체는 안전한 거죠?”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충청 쪽에 영향을 끼치는 성좌 산거정이 있긴 한데… 거긴 서울 쪽이 주력이라. 저희는 신경 쓸 게 크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죠?”

“아시다시피 저기엔 인력으로 쓰기 위해 거래되는 노예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구출하는 걸 생각 안 하시는 건 아니겠죠?”

최충선의 지적에 유성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그냥 가서 스캐빈저 놈들을 다 때려 부수거나 제압하고 나면 정부나 협회가 알아서 뒤처리하겠지 싶었던 것이다.

최충선은 투구에 가려서 얼굴은 안 보이지만 유성원의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 식은땀을 흘렸다.

“음, 대충 구해서 정부나 협회에 넘겨주면 알아서 재사회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마 반기질 않을 겁니다. 재사회화 비용도 비용이지만, 노예 출신들은 자립성이나 사회성이 떨어져서 결국 빈민화되거나 스캐빈저들의 노예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크게 효과를 못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아~ 이 고블린만도 못한 새끼들이 나랑 같은 인간이라니……. 아~ 진짜 어이가 없네.’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백성과 군대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먼저 항복한 고블린 엠퍼러가 떠오르는 유성원이었다.

이 아저씨도 아저씨이지만, 대체 정부나 협회의 작자들은 책임감이라든가, 사명감이 아예 없다고 봐도 될 정도여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여간 경찰이고 뭐고 공직자 새끼들 중에 책임감이나 긍지 같은 게 있는 놈이 없으니 이렇게 된 거지. 그 보호 시설에 있는 놈들이랑 똑같군.’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 유성원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부 시설인데도 자신들의 이익과 편의만 생각하면서 사람마저 그냥 죽게 놔두는 무책임한 놈들이 가득했던 그곳.

여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였다.

“그, 그러니 그냥 위험 분자급, 주요 스캐빈저만 제거해 주시고 저 섬들은 유지하는 게 가장 나을 겁니다.”

“…흐으음~”

이런 인간들은 말을 해 줘도 못 알아먹기 때문에 결국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고 화내 봤자 자신만 힘 빠지는 일이었다.

화낼 기운조차 아깝기에 한숨을 쉬며 감정을 정리한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을 집어넣고 등을 돌리면서 기사들에게 말한다.

“그냥 가자.”

“왜, 왜 가십니까?”

“나머지는 댁이 알아서 하쇼. 장수풍뎅이 양반.”

“저기! 잠깐!”

유성원이 등을 돌려 가려고 하자 최충선은 다급히 그를 불렀다.

하지만 유성원은 더 이상 대답도 하지 않고 아칼론의 호버 바이크를 타고서 사라진다.

여기까지 와서 왜 돌아간 건지 모르는 최충선은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일단 그를 쫓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다시 장수풍뎅이 괴인 모습으로 변하여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아니, 자기 입으로 온 김에 다 처리하고 간다며! 젠장! 어떻게 잡은 희망인데!’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는 썩었을지언정 S급 헌터로서의 눈은 죽지 않은지라 그들의 강함이 진짜라는 걸 알았기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세상은 ‘각성자’의 힘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시대다.

그것만이 오직 안전을 보장했으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따르게 하는 가치였다.

그러니 SS급 헌터에 S급 기사들 다수면 정말로 뭐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간다고? 대체 무슨……. 정말 저래도 되는 건가? 아니, 어쩌면…….’

유성원의 행동과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해서 유성원 일행을 쫓는 최충선이었다.

[계약자여. 저 풍뎅이 녀석, 계속 따라오네만?]

“내버려 둬. 도시로 돌아가는 거겠지. 아무튼 가자마자 트레일러 타고 부산 쪽으로 갈 거야. 머맨 워로드인지 나발인지 잡아 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나 계약자여, 본래 계획은 남쪽에 있는 S급 헌터들과 손잡는 거 아니었나?]

“난 저런 인간이 질색이거든.”

자기가 똥 싸 놓고, 남이 치워 주길 기다리는 자.

물론 할 수 없는 일을 못한 것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고생스럽고 괴로워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안 한 건 충분히 죄악이었다.

이 전라도 쪽의 유일한 S급 헌터라면 적어도 나태하고 복지부동에 빠진 지방 정부나 협회를 충분히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지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충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똑같이 포기한 거여도 나랑은 완전 다르지.’

재능, 능력, 배경, 돈 등등 아무것도 없어서 포기한 것과 무언가 시도할 수 있는데 포기한 것은 천지 차이였다.

유성원은 그렇기에 최충선의 제안을 거절하고 도시로 돌아왔다. 곧장 내부에 주차해 둔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가려는데, 도시 내부가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만세에에에!”

“저, 정말 감사합니다, 황금 용기사님. 광주 시장으로서 정말 감사를…….”

“황금 용기사님, AA일보의 이명찬 기자입니다. 이번에 어떤 연유로 이쪽을 도우러 오신 건지 한 말씀이라도…….”

“와아아아아아!”

도시로 들어오니 자신들을 구한 게 누군지 아는 듯 환호성과 함께 시민들이 자신의 트레일러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 유성원이었다.

그리고 내려오자마자 시장으로 보이는 노땅과 기자가 달려들어서 마이크를 내밀지만 아까 최충선과 똑같은 인간들이나 다름없기에 그들을 무시하고 트레일러로 들어간다.

“바쁘니까 꺼져. 엘드라엔, 섬멸, 타라. 바로 이곳을 떠난다.”

[오~ 벌써 가는 게냐? 알았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엘드라엔은 인간 폼으로 변해서 차량으로 들어왔고, 섬멸도 트레일러 천장에 착지해서 내부로 들어간다.

시장과 기자들은 답변 하나 없이 가는 그들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래도 도시를 구해 준 이들이었기에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도시 내부에 정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에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자, 잠까아아안!”

“저 풍뎅이 양반, 되게 끈질기네.”

쿵!

트레일러를 운전해서 나가려는데, 묵직한 소리와 함께 트레일러 앞에 최충선이 착지해서는 막아섰다.

가뜩이나 바쁜데 길을 막아서자, 유성원은 인상을 찌푸린다.

이미 볼일 다 봤는데 질척하게 달라붙는 건 더없이 추해서 무시하고 싶었지만, 트레일러에 달라붙어서 애걸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잠깐 이야기 좀, 이야기 좀 들어 주십시오, 유성원 님!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멍청하고 무능한 놈이 맞았습니다. S급 헌터라곤 하지만 그저 산림청에서 일하다가 각성해서 드루이드 클래스를 받고 스킬 트리를 잘 타서 S급이 된 다음 헌터 일만 하고 교육만 해서 못 깨달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

“아저씨! 됐고, 비키세요. 댁들 똥은 댁들이 치우시고, 나는 내 할 일 하러 가야 하니까요. 아! 트레일러 막지 말고, 저리 비켜요.”

“제발! 제발 이야기 좀 들어 주십시오.”

“아! 들을 거 없다니까. 그냥 지금처럼 평생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사십쇼. 내가 뭐 시키기라도 합니까? 아칼론, 그냥 가자.”

쿠웅!

하지만 고집이 강한 건지 최충선은 놓치지 않으려는 듯 트레일러 위로 올라타서 매달린다.

당연히 트레일러 내의 유성원과 기사들은 그것을 느꼈고 다들 유성원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저거 어떻게 합니까? 단장님. 제가 떨어뜨리고 올까요?”

“내버려 둬. 무시하면 그만이지. 저 양반도 할 일이 있을 테니 언제까지고 달라붙지 못할 거야. 아무튼 경상도 쪽 상태나 볼까? 오…….”

『현재 서울에서는 ‘도살왕’과 그 부하인 ‘SS급 마인 이 목사’의 괴물들과 교전 중에 있습니다. 아직 대피 못한 시민분이 있다면 신속히 근처 대피소로 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

“아, 이거 말고…….”

『…여긴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입니다. 현재 이곳 디-시티 호텔 전선에는 여전히 엄청난 숫자의 머맨들과 해양 괴수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부산 지역 길드들과 군대가 저항하는 중입니다. 하나 적 지휘관인 ‘머맨 워로드’가 ‘머맨 궁전’에서 몬스터들을 끊임없이 보내고 있어서 끝없는 소모전만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틀어 보니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예상대로 부산의 격전지에서는 지금 치열한 싸움 중이며, 곳곳이 난리가 난 상황 그대로였다.

하나 유성원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부산 쪽 소식을 들으면서 작전을 궁리한다.

“그나저나 영상 보니까 생각보다 잘 버티는 것 같은데?”

“그야 저기 부산 친구는 상당히 유능하니까요.”

“이 망할 풍뎅이 아저씨는 언제 여기 탔어?”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최충선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가만히 있었다.

여기 있는 인원들의 눈을 피해 기척을 숨기고 들어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놀란 기사들은 동시에 무기를 꺼내 들고 그를 노려보았는데, 최충선은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그게, 하루살이로 변해서 위쪽 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래 보여도 다양한 곤충으로 변할 수 있거든요.”

“진짜 벌레 양반이네. 잠깐만? 그러면 아까 싸울 때 계속 얻어터지지 않고 도망칠 수 있지 않았어?”

“그게… 변신 잘못하면 스테이터스가 스케일링되어서 엄청 낮아져서 오히려 죽을 수 있어서 말이죠. 물론 다른 방안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부탁입니다. 이야기 좀 들어 주십시오.”

“하아~ 그럼 부산까지 가는 동안만 들어 보도록 하죠.”

이렇게까지 쫓아온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었고, 비싼 트레일러를 파괴하고 싶지 않았기에 유성원은 일단 가는 동안 시간이나 죽일 겸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인 듯 최충선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으며 말한다.

“저를 부하로 삼아 주십시오. 평생 대장님으로 모시며 따르겠습니다.”

나름 달려오면서 머리를 쓴 건지 파격적인 제안을 던진 최충선이었다.

S급 헌터가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밑에 들어오겠다고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나름 큰 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유성원의 표정은 전혀 반갑지 않다는 듯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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