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후우, 아따! 이 자슥들아! 미쳐 브러!”
“그럼 얌전히 죽어라! 망할 벌레야!”
“아! 자꾸 벌레라 하지 말어!”
파르르륵!
소리침과 동시에 날개를 떨면서 날아오른 최충선은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공격을 피하고 반격한다.
아직은 여유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저 한중호를 끝장내야 지금 도시를 위협하는 언데드 무리들이 멈추는데, 소모전으로는 결국 패배할 게 뻔해서 놈을 없애기 위해 남은 전력을 모두 데리고 왔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스캐빈저들을 지원받은 놈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이거 틀린 것 같은데 말이지. 제길!’
어떻게든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저 검은 마법사 한중호의 준비가 워낙 철두철미해서 이 자리는 더 이상 있으면 안 되는 함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S급의 체면을 따지지 않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대로 도망치면 ‘광주’를 지킬 여력이 없는 거라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쉽게 그러지도 못했다.
“아, 외골격 겁나 단단하네. 저거 뭐로 만들어진 거야? 생물일 텐데……. 철갑탄으로도 안 뚫리는 건 처음 봤어.”
“그래도 S급이라는 거지. 야, 나카무라, 뭣 좀 해 봐라.”
“디버프… 넣은 게 저인데스. 그보다 중국서 온 저 탱커 탱크… 너무 잘하무니다.”
뒤에서 부적으로 주술을 시전하는 주술사가 S급 헌터인 최충선을 맨손으로 막아 내는 두 무인을 보며 감탄한다.
중국 스캐빈저 쪽에서 지원 온 이들로, 이 둘이 이 함정의 핵심이었다.
저 둘이 아니었다면 하늘을 나는 데다 단단한 외골격에 괴력으로 무장한 괴물로 변신 가능한 S급 헌터, 드루이드 오브 비틀의 움직임을 묶는 건 상상도 못했을 거고 이번 작전에서 이렇게 나서지 못했으리라.
“빈빈(彬彬)! 놈이 날려고 한다! 막아!”
“알고 있다! 뎬쭤(殿座)! 너는 절대 잡히지 마!”
“짱개 자슥들!”
대머리인 두 남자는 각각 빈빈이라 불린 이는 창을, 뎬쭤라 불린 이는 검과 사슬낫을 써서 최충선의 움직임을 봉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둘 다 A급 헌터로 S급 헌터를 직접 쓰러뜨릴 생각을 하지 않고 철저히 움직임을 막는 데만 주력하고 있어서 반격하려고 하면 슥 빠져 버리면 그만이었다.
“윽!”
“좋았어! 뚫었다! 오! 벌레 인간으로 변해도 체액이 아니라 피가 나오는 건가?”
그렇게 도망쳐야 할 때를 놓치고 버틴 결과, 데미지가 누적된 최충선의 외골격이 결국 부서진다.
제아무리 단단한들 계속해서 때리면 언젠가 손상이 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약점이 생긴 상처 입은 짐승을 잡는 건 보다 쉬운 일이었다.
“젠장!”
“이제 와서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지!”
“잡아! S급은 잡으면 보상이 크다고!”
“암, 평생 먹고살 수 있지! 게다가 경험치도 커!”
가시적인 피해가 보이자 밑에서 진형을 짜는 다른 인원들까지 기세가 올라서 사격과 마법으로 지원이 더욱 거세진다.
최충선은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기라든가 고집이 아니라, 이대로 도망쳐 봐야 희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읍, 이제 끝났어.’
안 그래도 이미 무한정 몰려오는 언데드 군세에 ‘광주’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지금 이 수는 그야말로 최후의 발악이었다.
이대로 도망친들 맞이하는 건 스캐빈저들과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유린당할 시민들의 모습과 수십 년을 지킨 고향이 불타는 광경뿐이었다.
‘망할 정부… 협회, 길드 놈들, 그렇게 내가 도와 달라는 것을 진작 도와주기만 했어도…….’
그동안 수없이 정부와 협회에 신호를 보내고, 자신의 길드를 키우려고 노력했다.
외국으로 가니 마니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협박을 해 봤지만, S급 한 명으로는 아무리 해 봐야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도살왕과 맞선 전선이 아닌 남부는 상대적으로 던전이나 몬스터도 약소인 데다 자신이 없으면 안전이 보장이 안 되기에 성장할 시간도, 방안도 마련할 수 없었다.
‘…그걸 보느니 여기서 영원히 잠드는 게 낫지.’
[하아~ 이걸 또 해야 하네. 그냥 덮쳐 버리면 속 편한데…….]
“이게 먼 소리당가?”
보통 인간보다 감각이 월등히 좋은 최충선은 난데없이 들린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소리의 출처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러자 그곳엔 태양빛을 반사해서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 갑옷의 기사가 기묘한 호버 바이크 뒤쪽에 선 채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거?”
“어, 언제 와 있던 거지?”
“화, 황금 마인… 아니! 황금 용기사!”
그제야 ‘황금 용기사’라 불리는 유성원의 존재를 눈치챈 스캐빈저들은 깜짝 놀랐고, 검은 마법사 한중호도 놀라서 기겁한다.
황금 용기사에 대한 건 이미 뉴스에서 질리도록 들어 와서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도 뚫을 수 없는 방비를 한 신강남을 뒤엎고 3대 길드 중 하나인 서울 길드를 정면에서 격파한 자로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뭐, 뭐야? 저놈이 왜 여기에?”
“아, 역시 S급은 다르네. 아무튼 들켰으니 어쩔 수 없지. 하아~ 잘 들어라, 스캐빈저랑 쓰레기들아. 이 목사의 꾐에 빠져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는 그 어리석은 생각을 고쳐 주기 위해 내가 친히 왔다.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나와 내 기사들이 휘두르는 검을 상대해 봐라. 아칼론! 급속 강하! 가울프! 크록베인! 이제 나와도 된다.”
[예스, 마스터!]
[크오오오오!]
[흐음……! 시작되었군.]
유성원의 외침과 동시에 하늘에서는 그와 아칼론이 강하, 크록베인은 숲에서 튀어나와 최충선 쪽으로 합류했으며 가울프는 신나게 언데드 소환을 하고 있는 검은 마법사 한중호의 뒤에 어비스 나이트메어를 탄 채 나타났다.
“어, 어느새 뒤에서? 본 실드! 젠장! 나를 보호해라! 녀석들아!”
[네놈이 적의 대장인가 보군. 확 눈에 띄는 모습으로 죽여 달라고 애원하니 어쩔 수 없지.]
“제, 젠장! 뭣들 하고 있어? 빨리 저놈을…….”
한중호가 명령을 내리지만 스캐빈저들은 말을 탄 채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심연의 기사 가울프의 위압감에 눌려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나마 언데드들은 그런 영향이 없어서 한중호의 앞으로 나가서 방패가 되지만, 어비스 나이트메어가 가뿐히 짓밟으면서 돌파한다.
“제, 젠장! 도망쳐야……!”
[내 사정권 안에 든 이상 그건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네크로맨서.]
“으아아악!”
콰드득!
좀비와 스켈레톤을 돌파하고, 보호 마법으로 쓴 본 실드까지 부숴 버린 가울프는 그대로 돌진해서 가볍게 한중호의 목을 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무시하겠지만, 그가 사령술사라는 것을 안 가울프는 베테랑답게 한중호의 시신의 심장을 찌르고, 심연 마법으로 불태우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어떤 형태든 간에 사령술사라는 것들의 수작질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지. 흠흐흐… 아무튼 적장의 머리는 취했고, 이제 잔당 처리만 남았군.]
“히이익!”
“사, 살려 줘어어어!”
“도망쳐! 빨리 튀어!”
순식간에 대장의 머리가 날아가자 주변에 있던 스캐빈저들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알아서 다들 흩어지기 시작한다.
A급인 대장이 상대도 안 되는 걸 보았으니 자신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 가울프는 그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말 머리를 돌려서 하나의 머리라도 더 얻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한다.
“크록베인은 장수풍뎅이 양반 호위! 아칼론은 잔당 섬멸! 나머지는 내가 처리한… 다!”
“사비(傻屄)! 샤!(杀)!”
“어? 짱개네? 왜 짱개가 여기 있어?”
채앵!
빈빈의 창과 유성원의 티탄의 말뚝이 격돌했다.
그가 중국말을 하며 자신을 노려보자 유성원은 깜짝 놀란다.
스캐빈저들이 이 목사의 제안에 다들 일어난 건 알았는데, 설마하니 중국 쪽 스캐빈저까지 엮여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逃げろ(도망쳐라)!”
“어? 쟤는 일본 놈이네? 생각보다 얘네 글로벌한 조직인가 보네.”
콰득!
빈빈이라는 사내의 창을 쳐 내고 수직으로 휘둘러 그의 머리를 터뜨리는 동시에 일본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성원이었다.
너무 빠른 강습으로 내려와 달라붙은 덕에 빈빈이 피할 틈도 없이 빠르게 들어온 공격.
자연히 막아야 했는데, 압도적인 완력 차이라서 막은 창이 부러지면서 동시에 머리통도 날아가 버린다.
“…빈빈! 헉!”
“다음은 너다. 빡빡이2.”
촤르르륵!
피가 묻은 티탄의 말뚝을 뎬쭤에게 겨누자, 말은 못 알아들어도 다음 목표가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참고로 최충선을 잡으려던 다른 스캐빈저들은 황금 용기사가 등장하자마자 이미 도망친 지 오래였고, 그와 가까이 있던 이들만 유성원이나 크록베인 혹은 아칼론에게 걸려서 죽은 것이었다.
‘이게 그… 황금 용기사인가? 그리고 구성원 전원 S급이라는 게… 지, 진짜였단 말인가?’
보고 있지만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황금 용기사가 자신을 구하러 올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와 줄 줄이야.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큰 풍뎅이… 상태… 어떠냐?]
“아따 거시기… 아, 아니!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사투리로 말하려다가 최충선은 급 표준말로 선회했다.
비록 광주 토박이로 이곳에서 계속 살아왔지만 심심하면 S급이라고 서울에서 일 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 회의를 위해 일부러 익혀 둔 것이었다.
[나는… 크록베인 경… 이다.]
“크, 크록베인 경, 대체 저분은 왜 여기에?”
[모른다… 나는… 오직… 주인의 뜻을… 따른다… 그래서… 너 지킨다.]
쿵!
자신보다 살짝 큰 용인인 크록베인에게 열심히 물어보는 최충선이었지만 대화가 통할 타입이 아닌 게 아쉬웠다.
아무튼 그가 지켜 주는 동안은 안심할 수 있기에 그는 부서진 어깨 쪽 외골격에 포션을 부으면서 자가 치유를 했고, 유성원이 돌아올 때쯤엔 이미 치료를 끝낸 뒤였다.
“역시나 지방 떨거지들이라서 별거 없네. 짱개랑 일본 놈들이 있을 땐 좀 놀랐는데… 걔네도 수준이 별로여서 말이지.”
[검은 마법사 놈도 생각보다 별로였다. 계약자여, 너무 시시하더군. 차라리 내가 섬멸 경 대신 그 도시에 남을 걸 그랬나?]
“가울프, 너는 누가 봐도 다른 몬스터 같은 걸로 착각할 외모라니까. 아무튼… 상태는 괜찮으신가요? 그러니까… 최충선 헌터님?”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구원자나 다름이 없었다.
하나 최충선은 자신이 구해졌지만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아직 도시 쪽의 공격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어? 그러니까… 정말… 정말 고맙네! 하, 하지만 나보다도 지금 도시가…….”
“도시엔 이미 지킬 사람을 놔두고 왔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마 저놈들 죽은 소식이 퍼졌을 테니 금방 물러날 겁니다. 아무튼 계속 움직일 수 있으시죠?”
“아! 아직은 멀쩡하네.”
“기왕 칼 뽑은 김에 이쪽 스캐빈저들의 언더시티들 싹 다 치우게 안내 좀 해 주시죠. 정보는 다 모으고 계셨지 않나요?”
“아… 아, 아! 그러지. 잠시만, 일단 변신 풀고 난 다음에… 휴대폰을 좀…….”
유성원의 제안에 깜짝 놀라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도 그렇고 그와 함께 있는 기사들의 눈빛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은 최충선은 곧바로 인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다음 자료들을 찾았다.
“여기! 여기 있네! 여기 네오 신안 언더시티가 이 전남 쪽 최대 스캐빈저 소굴일세. 그러니까…….”
정부나 협회가 무시하던 이곳에 기적처럼 생긴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최충선은 유성원에게 스캐빈저들의 영역과 세력권, 기지에 대해 세세히 알려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