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99화 (99/293)

[99화]

약 5분 전…….

충격적인 5천억 선지급.

모두가 아는 대한민국 정부의 처리 방식이라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정부 예산 5천억의 사용 허가가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정말로 대한민국이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더라도 무리일 것이다.

“아니, 진짜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인지 유성원은 백가연 어르신에게 다시 한 번 물었지만, 그녀는 재차 확인해 주듯 한 번 더 말한다.

“그러네. 그러니 어서 빨리 오게.”

“아니, 미친놈들인가? 왜? 아, 진짜!”

잠시 후, 진짜 5천억을 지불할 거라는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한 유성원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테이블에 앉았다.

“사태가… 그 정도로 심각한 모양인가 보군요.”

“예. 그렇습니다.”

“아~ 돈 낸다고 하니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어쩌죠? 돈을 받으려면 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 제 계좌랑 여기 아이언 포트리스의 계좌는 거래 불가 상태라서~ 좀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기 전 자연히 5천억을 받을 계좌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가게 되자, 유성원은 곧바로 자신의 계좌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데 현재 유성원의 계좌와 아이언 포트리스의 계좌가 임시로 거래 불가 상태가 되어 있었다.

“뭐라고요? 대체 무슨 짓을?”

“그냥 던전 간 사이에 그 신강남에 계신 분들이 소송을 걸었는데… 참 기가 막힌 속도네요. 재판이야 불참석했으니 그렇다 치고, 민사도 아직 안 했는데 어떻게 그 과정을 스킵한 거지?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기가 막히네요.”

“아마 신강남 후원자들의 입김이 들어갔겠지. 일단 명분은 법적 절차를 위한 임시 조치라고 쓰여 있네.”

물론 서울 길드의 사주로 이루어진 유성원에게 걸린 피해 보상 소송에서 유성원이 아무 법적인 대응 조치를 안 하고 떠난 탓에 생긴 결과였다.

일견 자업자득이라 볼 수 있지만, 이게 바로 그가 노리는 것이었다.

“그, 그… 다른 구성원의 계좌가 있지 않습니까? 우선 그걸로 거래하죠.”

“있긴 하죠. 그렇지만 이렇게 법적인 절차를 넘어서서 남의 계좌를 주무를 수 있으면 5천억을 받으나 1조를 받으나 의미 없죠. 그러니… 깔끔하게 5천억 현찰로 가져오십시오.”

“이런 미친!”

말이 쉬워서 5천억이지, 5만원 권 기준 1만 장이 5억이니 5만원 권으로 1천만 장이 되어야 5천억이다.

1천만 장. 그걸 가져오면 또 그냥 받지 않을 거고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가져야 하니 사실상 그거 다 하다가는 대한민국이 멸망할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정부 측 사람은 벌떡 일어나며 반발하지만 유성원은 끄떡도 안 한다.

“아니면 마정석도 받을게요. 마력 잔량 수치랑 등급 다 나와 있는 보증서를 떼서 와야겠지만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뭐, 제가 일부러 이랬나요? 민사 제치고 계좌 잠글 줄은 상상도 못했죠.”

“제발 부탁하네. 백가연 어르신 쪽으로 보낼 테니, 현찰로 가져오라는 건 봐주게.”

“왜 그러세요? 이러니 제가 잘못한 것 같잖아요. 아무튼 기다릴 테니 돈 오면 말씀 주세요. 아니면 협상 결렬이라고 생각할게요.”

냉정하게 말한 유성원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서 물러난다.

그 혐오하던 꼰대들이 난처한 얼굴을 하는 걸 보며 통쾌함을 느낀 그였지만, 옆에서 자신을 날카롭게 보는 시선에 그 기분도 금방 식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예. 이 정도는 해 줘야죠. 그러니까 거울 요법이라고 해야 하나요? 무력한 밑바닥 인생의 느낌을 이해하려나 모르겠네요.”

“이렇게 해서 자네가 얻는 게 뭔가?”

“제가 뭘 얻는 게 아니죠. 마땅히 저분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죠. 비싼 돈 받고, 권력 누리고 살았으면 이제 대가도 치러야죠. 저 밑바닥 사람들에겐 무능해서, 게을러서, 노력을 안 해서 그렇게 산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각성 빼면 아무 재능 없고 무능한 건 맞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유성원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물론 백가연만은 뭐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그녀는 결국 이런 세상이 만들어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리저리 핑계 대면서 그냥 한 달 내내 쉬고 싶은 생각뿐인데……. 상황을 보니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유청~ 너 지금까지 흐름 다 듣고 있었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부패하고 어리석은 무리와 거리를 두고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 하나 그 안에서도 썩지 않은 부위는 저희가 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멀쩡한 양반들을 도우라는 건가?”

“아니면 내부에서 또 대립을 세우는 자들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적의 적과 손을 잡는다. 간단한 이치이지요. 지금 저희만으로도 압박을 줄 수 있지만, 거기에 아군이 늘어나면 더 큰 압박이 될 겁니다.”

“으음…….”

유청의 의견을 이해하면서 휴대폰으로 지도를 열었고 자신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반길 만한 친구들을 찾는다.

똑같이 정부나 상위 길드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려면 그동안 차별 대우를 받는 이들로 자연히 생각이 이어졌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 부산이랑 광주에 가야겠네.”

수도권 위에 도살왕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은 지원대로 해 주지도 않고, 기껏 세운 아카데미에 전국의 각성자들 데려다가 훈련시키고 뭐 하면 3대 길드에서 다 빼 가고 남은 쭉정이만 줘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그렇게 차별 대우 받는 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심심하면 S급이랍시고 서울이랑 위의 라인 지켜야 한다고 불려 나가지. 그런데 이번 사태가 났는데도 불렀으려나?”

“아마 불렀을 걸세. 보고에 의하면 이 목사가 그 잘난 S급 몬스터 아크데몬 비스트 9마리를 전부 대동한 채 전선에서 그… 연회를 열고 있다고 하더군.”

“연회요?”

“그래. 전쟁터에서 사로잡은 군인과 헌터들을 그곳에서 바로 조리하더군. 정말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야. 하아~ 아무튼 그놈 때문에 전국에서도 그렇지만 올림푸스에서도 드디어 한국에 대대적인 지원을 고려할 정도일세.”

백가연 어르신의 설명을 들은 유성원은 상황이 왜 그렇게 힘든지 단숨에 이해한다.

S급 헌터 3명이 붙어야 하는 9마리의 아크데몬 비스트가 서울 전선 경계에서 죽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큰 압박이기에 지방에 있는 S급 헌터들도 다 호출하려 하는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지방에 있는 그 친구들은 잘 안 올라오려고 하지. 이미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기에도 바쁘고, 결국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거기 있는 거니 말일세.”

“이 나라에서 전통처럼 이어져 온 수도 중심 발전 정책의 피해자네요.”

“그런 셈이지.”

“아무튼 유청의 말과 합쳐서 보면 그들을 돕고 손을 잡아 S급 2명과 연대하라는 거군요.”

이때까지 홀대받은 지방의 S급들을 도움으로써 황금 용기사로서 편을 늘리고, 또한 발언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아마 그들도 유성원과 손을 잡으면 그동안 자신을 홀대한 다른 길드나 정부, 협회에 큰 압박을 줄 수 있기에 제안을 거부할 수 없으리라.

“딱 좋네. 그러면 애들 데리고 가 보겠습니다. 소미 누님은 유청과 진석, 멀블린을 붙여 드릴 테니 아영이에게 가서 구하고 나중에 같이 와 주세요.”

“폐하, 굳이 저희 셋이나 남을 일이 있습니까?”

“너희는 아직 밖에 드러나지 않은 전력이니까 숨겨 두는 거야.”

새로 얻은 기사들은 가능한 한 나중에 보이기 위해서 유성원은 진석, 유청, 멀블린을 신소미의 호위로 붙였다.

그리고 아이언 포트리스는 백가연 어르신에게 맡긴 다음 곧바로 다시 트레일러를 준비해서 지방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나오면 진짜 한 달은 죽어라 쉬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마스터, 정말 운전을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비상사태인 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대피소에 들어갔는데 도로교통법이 무슨 소용이야. 하아아~”

운전은 아칼론에게 맡기고 트레일러 뒷좌석에 누워서 한탄하는 유성원이었다.

한 달가량 초장기 싸움을 하고 나왔는데 또 전장에 투입 되어야 하는 신세라니, 한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싫다. 정말로~ 왜 나오니까 이렇게 되어 있는 거야. 하아~ 그냥 멀블린의 제안을 받아서 고블린 제국에서 머물 걸 그랬어.”

[마스터, 행선지 지정을 부탁합니다. 현재 남쪽에 있는 전선은 2개. 부산 쪽에 하나, 광주 쪽에 하나입니다.]

“아, 그렇지. 기왕 가는 거 나눠서 가지 말고 다 함께 몰려가서 싹 쓸어버리는 게 나을 텐데… 보자.”

크게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난리가 난 셈이지만 각성자의 시대를 오래 지내다 보니 대부분 주요 도시들엔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방어 시설이 튼튼히 완성되어 있고, 주변 군부대에서 대몬스터 무장을 한 군인들이 동원되었다.

그래서 작은 세력들은 기껏해야 사람이 없는 도시를 터는 정도가 전부였다.

본격적으로 시민들을 위협할 수 있고 헌터들이 필요한 대규모 전선은 주로 대도시 쪽에 형성, 현재 부산과 광주가 그 중심에 있었다.

“어디 보자… 부산 쪽은 스캐빈저&어인, 머맨, 거대 갑각류 몬스터들이 대공세를 펼치고 있고, 대장급은 A급 몬스터 머맨 워로드. 광주 쪽은 스캐빈저가 대장으로 언데드 몬스터들이 주력인가? 데스 스팅거 스캐빈저 그룹의 검은 마법사 한중호. A급 각성자네. 으으음…….”

나름 지방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때를 기다렸던 거물들이다.

머맨 워로드는 광안리 쪽 바다 위에 있는 A급 던전 머맨 궁전에 속한 몬스터이지만, 지성을 갖고 있어 던전의 몬스터들을 이끌고 스캐빈저들과 동시에 연계 작전을 펼쳤다.

‘데스 스팅거’ 스캐빈저 그룹은 중국, 일본, 한국 마피아 세력의 허브로서 세력을 키워 온 악질 스캐빈저 길드였는데, 이번에 갑자기 마피아답지 않게 이 목사의 제안을 승낙하고 스캐빈저들을 이끌고 공격에 나선 것이었다.

“데스 스팅거 쪽이 더 심각해 보이네. 여긴 중국, 일본 측 스캐빈저들이 합류했을 가능성도 크니까. 그리고… 지금 시대는 몬스터보다 인간이 더 무섭지.”

몬스터들의 군대도 무섭지만, 그래도 인간이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게 더 무섭기에 유성원은 우선적으로 ‘광주’로 향하자고 한다.

그러자 트레일러를 운전하는 아칼론은 곧바로 핸들을 돌려 광주 쪽으로 행선지를 잡고 운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협회 공식 데이터를 통해 적들의 상태 및 도시의 위험도를 보며 유성원은 간단한 작전 회의를 진행한다.

***

광주 도심 장벽.

던전의 시대가 열린 뒤로 대부분의 도시에는 외부 장벽과 보호 시설, 수십만 인파를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는 필수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장벽 아래에는 수많은 좀비와 스켈레톤을 위시한 언데드 몬스터들이 무수히 몰려들었는데, 군인들은 물론이고 헌터들까지 그 군세에 저항하느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젠장! 한중호 개새끼! 얌전히 마약 팔고 매춘이나 하지! 시X, 누가 네크로맨서 클래스 아니라고 할까 봐 또 지랄이네!”

“그보다 은탄 다 떨어져 가는데 어쩌지?”

“어쩌긴! 성수라도 바르거나 총에다 인챈트 발라야지! 아무튼 계속 쏴! 그보다 우리 대장은?”

그들이 말하는 대장은 이곳 광주와 전라도 전체를 수호하는 S급 헌터.

현재 그는 이 도시를 위협하는 A급 스캐빈저 데스 스팅거의 두목 한중호를 잡으러 동료들과 함께 날아가 전투 중인 상태였다.

“흐음~ 이 목사 놈의 봉기에 맞춰서 중국, 일본에서 B급 이상 애들까지 빌렸는데… ‘광주’ 먹기 힘드네. 저 아저씨는 왜 이렇게 잘 버티는 거야? 쳇! 레이징 데드!”

‘검은 마법사’라는 이명을 가졌지만 스캐빈저인 한중호는 검은 양복에 구두는 물론 헤어스타일까지 왁스로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휘둘러 자기 주변에 계속해서 언데드를 일으켜 세우며 눈앞에서 싸우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죠. 기껏 중국 마피아랑 일본에서 A, B급 10명을 빌려 왔는데도 백중세라니. 물론 그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일단 수족들 다 잘라 내고 혼자 남으면 아무리 S급이라도 무리겠지요.”

[아따! 시부럴! 중호 시끼야! 싸게 나오랑께! 거시기 만들어 줄 텡께! 이 쪽바리랑 짱개 새끼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오래 걸리겠는데? 저 양반이 원체 단단해서 말이야. 어우~ 저리 싸우는데 외골격에 금도 안 가나?”

다수의 헌터들에게 둘러싸여 싸우는 자는 공격을 받아 내면서 소환에 열중하는 한중호를 악에 받쳐 열심히 불러 댔다.

현재 인간의 형상이 아닌 그는 3미터가량의 거대한 체구에 머리엔 기다란 뿔이 셋 달린 케이론 장수풍뎅이와 인간을 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최충선 아재, 드디어 내년이 제삿날이겠군. 레이징 데드! 후우~ 여유 있게, 마나 탐 할까?”

수백의 해골과 좀비를 깨워 낸 한중호는 여유 있는 행동으로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어 마치 음료수 광고처럼 폼 나게 마신다.

그걸 본 장수풍뎅이 인간은 씩씩거리면서 손으로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저 느자구 없는 새끼! 아악!]

“나 볼 시간에 주변이나 보십쇼. 아재.”

[염병!]

그는 바로 이곳 전라도 쪽을 수비하는 기둥인 S급 헌터, 최충선이었다.

클래스는 드루이드 오브 비틀. 자체 비행과 괴력, 외골격으로 인한 방어력까지 모두 가진 자여서 개인 전투력은 훌륭했지만 다수의 적을 처치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그리하여 중국, 일본의 스캐빈저들에게서 지원받은 헌터들 때문에 현재 수세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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