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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93화 (93/293)

[93화]

“뭐야? 고소장이네? 고소인 ‘신강남 사태 복구 시민 단체’? 신강남 사태 때 입힌 피해 보상 관련 소송이네.”

“올 게 왔구먼. 뭐, 걱정 말게. 내가 아는 로펌이 있으니 거기에…….”

“아뇨.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는 게 어떤 방식인지 들어 봐도 되겠나?”

“뭐긴요. 없는 놈은 계속 없는 놈 방식으로 해결하는 거죠.”

태연히 답한 유성원은 자신에게 온 고소장을 인벤토리에 넣고 다음 서류로 넘어간다.

다른 것들은 아이언 포트리스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자 날아온 각종 업체들의 카탈로그나 안내 서류 같은 것들이 대부분으로, 크게 신경 쓸 것들이 아니었다.

“결국 신경 쓸 건 고소장 하나뿐이네. 그것도 무시하면 그만이고. 우리가 갈 B급 던전 중에 경쟁이나 뭐, 입찰 같은 거 없죠?”

“걱정 말게. B급은 재수 없으면 손해가 나는 곳이어서 괜히 견제 입찰하려다가 자기네들 각성자 보내서 죽여야 하는 수가 있으니 말이야. 나는 오히려 자네가 그 손해 배상 소송 건을 처리할 방법이 궁금하네만? 법적 조치를 벗어난 걸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아뇨. 딱히 그럴 생각 없는데요?”

비뚤어진 것처럼 보여도 유성원은 일단 준법 시민이다.

세금도 내고, 국방의 의무도 준수하고, 예비군, 얼마 전엔 민방위 소집까지 착실히 응했고 말이다.

높으신 분과 정부에 불만은 많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키면서 욕하는 쪽을 선호한다.

“그러면 어쩔 생각인가?”

“그냥 쥐뿔도 없는 시절대로 처리하려고요.”

“지금 자네는 아카데미아 스태프였던 그때와는 다르네만?”

“있는 곳이 다르다고 태세 전환하면 그게 더 추하죠. 아무튼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 자자, 빨리 B급 던전 가자!”

걱정 말라고는 했지만 더더욱 불안한 백가연이었다.

아무리 길드와 헌터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고소장이라곤 해도 결국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조치인 만큼 실효성은 나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고소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방어 행동인데, 이런 식으로 모른 척하고 무시해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SS급 헌터이니만큼 실효성 있는 판결은 나오지 않겠지만…….’

징역을 선고한다고 해도 감히 잡을 수 없는 게 유성원이기에 재판부도 그 점은 고려할 것이다.

하나 그것보다도 의외인 것은 그 누구보다 길드와 헌터에 관해서 잘 알고 있는 신강남의 후원자들이 SS급인 유성원에게 고소장을 던진 사실 그 자체였다.

신강남의 장벽을 단신으로 무너뜨린 그의 힘을 직접 느꼈으면서도 무슨 의도로 고소를 한 것인지 백가연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흉계가 있는 것 같은데? 계좌라도 묶을 생각인 건가? 검사에게 넘어가도 이건 터무니없이 골치 아플 텐데?’

딱히 각성자의 시대가 되고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사법부는 사건에 대해 법리만 고려하지 않고 권력과 자본의 힘을 저울에 놓고 재던 자들이기에 각성자의 힘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서울 길드를 정면에서 쳐부수고 신강남이 자랑하는 장벽을 홀로 무너뜨린 유성원이 SS급 헌터라는 것엔 이견이 없을 터라 제아무리 법리로 그의 죄를 인정한들 과연 심판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정말로 손해 배상이라도 걸어서 돈을 받을 생각인가? 굳이 한다면 은행 계좌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그런 거 가지고는…….’

어차피 유성원 본인의 계좌 하나를 막아 봤자 소용없었다.

일단 아이언 포트리스라는 시설의 이름으로 계좌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여차하면 자신이나 신소미, 신아영 같은 협력자의 계좌를 이용하든가? 아니면 그냥 부하로 두고 있는 기사들을 헌터 등록시켜서 별도의 계좌를 개설하라고 하면 그만이었기에 실효성이 없었다.

‘후우~ 뭔가 찜찜하군.’

암만 생각을 해 봐도 우려될 부분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뭔가 찜찜했다.

유성원이 순순히 자신이 잘 아는 로펌을 이용했다면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되었을 텐데, 괜히 사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생각이 있는 것 같지만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군. 그렇다고 해서 자극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후우~’

그동안 유성원의 프로필에 대해 이미 몇 번이나 알아본 백가연은 그가 정부 조직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걸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어쭙잖게 조언해 봐야 꼰대의 잔소리로 여길 게 뻔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

가뜩이나 이 망할 아이언 포트리스에 대해 파악할 게 많은데 바깥에서도 귀찮은 자료나 보내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레벨 업 하고 싶은데! 이 망할 거대 시설에서는 숙지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엄청 많아서 겨우겨우 오늘 나와 우리 기사들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신소미 길드장… 아, 이젠 아니지. 누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긴 했지만, 그래도 저번에 홀로 B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 덕분인지 신용이 생겨서 나올 수 있었다.

“근데 왜 내가 운전이야? 너희는 기승 없어? 막 환수 같은 거 다 타더만?”

“저희는 다른 스킬로 커버하는지라.”

“철마(鐵馬)를 다룰 수 있는 게 폐하뿐이니 정말 송구한 일입니다.”

[지식도 없으니 어떻게 몰겠나?]

운전기사를 따로 고용한 것도 아니고, 시대착오적인 기사들로 가득한 유성원의 팀 구성이기에 결국 운전대는 기승(S+) 스킬을 가진 유성원이 잡아야만 했다.

“아칼론! 너는? 이런 원시적인 트레일러 정도는 문제없지 않아? 호버 바이크도 모는데?”

[하나 대한민국 도로교통법 조항에는 메카닉에 의한 대리 운전 및 자동 운전 시스템에 대한 허가가 없기에 불가능합니다.]

“…에휴, 그래. 너는 정말 준법정신이 뛰어난 깡통이구나.”

아무튼 시끄러운 기사들 덕분에 지루할 새 없이 B급 던전 근처에 도달한 트레일러였다.

이번에 도전할 B급 던전은 바로 고블린 제국.

경상북도 북쪽 경계에 자리 잡은 B급 던전으로 경상도 지방의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고블린 군대가 심심하면 남하해서 대구, 울산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자, 다들 모여. 이제 브리핑 시작한다.”

차를 주차시키고 온 유성원은 기사들을 모아 두고 곧바로 던전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기사는 물론 엘드라엔까지 작은 소녀 모습으로 참여해서 화면을 바라본다.

“B급답게 고블린이라곤 해도 장난이 아니야.”

던전 입구 주변에 자리 잡은 고블린들의 야영지와 임시 기지부터가 하급 던전에 사는 고블린들의 것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구성이었다.

약탈품이 아닌 직접 생산해서 만든 통일성 있는 무장과 갑주로 무장한 거대한 늑대로 기병대까지 있는가 하면 머스캣을 비롯한 옛날식 총기까지 든 놈들이 있는 체계적인 군 편성으로 고블린이라기에는 엄청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뭐, 외양 때문에 우리가 편의상 고블린이라고 이름을 붙인 거지만, 아마 하급 던전에서 나오는 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놈들일 거야. 이렇게 문명 레벨을 쌓은 군대를 비롯해서 마법사도 있고, 증기 기관으로 된 기계도 있어서 아마 중세 판타지+스팀 펑크가 섞인 놈들이지.”

“으음… 그래도 B급이라기엔 좀 과도한 것 같습니다만? 그래 봐야 고블린이고, 각성자들로 대처가 안 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던전 밖에 있는 놈들만이라면 사실 마정석 탄환을 갖추지 않은 일반 군대로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이겠지만, 문제는 던전 내부지. 내부가 대박이야.”

화면은 다음으로 넘어가서 던전 내부의 풍경이 비추어진다.

3개의 탑이 둘러싼 거대한 성. 그 아래는 수많은 공장들로 가득했고 시커먼 매연이 사방으로 퍼져 올라간다.

성벽엔 각종 대포 및 대공포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아래로는 수많은 고블린들이 각자 일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3개의 탑에서 나온 마법의 빛이 성을 감싸고 있어 주변에 장벽이 펼쳐진 상태로 딱 봐도 그 탑들이 중앙의 성을 보호하는 형태였다.

“보다시피 마법진으로 본성이 보호받는 구조이고 병력도 막대하지. 드론으로 찍은 사진들로 추정한 결과 이 던전, 아니… 고블린 제국 도시에 사는 고블린의 숫자만 약 40만. 물론 시민도 있겠지만 총기 및 각종 무장, 게다가 이렇게 탑승하는 기계 골렘 같은 게 있어서 난이도가 B급이지.”

고블린이라 몬스터 개인은 약하지만 이렇게 단단한 성채 안에 중무장하고 있으면 더 이상 일반 몬스터라고 얕볼 수 없고, 장기적인 전투를 각오해야만 한다.

물론 초인의 경지에 든 B급은 과할 수 있겠지만 외견만 보고서 판단한 요소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탑과 성 내부에 어떤 기믹이 있을지 모르기에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상향 조정된 던전 등급이었다.

“드론들로 알아본 결과, 본성에 보스 몬스터인 고블린 엠퍼러가 고블린 로열 가드와 함께 있는 것을 확인. 딱 보아도 이거 잡으면 끝인 느낌이지.”

“그러면 정면에서 엘드라엔 님의 브레스나 단장의 패황천검류로 방어막을 파괴하고 전원 돌입해서 쳐부수면 되겠군요.”

“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폐하. 적의 황제만 잡아 봐야 결국 새로운 ‘황제’를 세우면 그만일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건 이 던전 자체인 고블린 제국을 파괴하는 게 목적인 것 같습니다.”

강습해서 수장만 따고 끝내고 싶었지만 유청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이들의 말을 따라서 고블린 엠퍼러만 쓰러뜨렸는데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일단 목표를 탑을 모두 부수고 본성을 클리어하는 방향으로 잡는다.

“음, 세세한 클리어 방법은 내부에 들어가면 밝혀지겠지만 아무튼 괜히 다른 애들이 안 돌려는 곳이라. 사실 이 정도면 거의 A급 취급 받아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개별 병력의 전투력은 약해서 B급 지정이네. 뭐… 이 전력이면 못 깨는 게 이상하겠지.”

자신이 SS급이라는 건 제쳐 두고라도 현재 S급이 6명에 C급 18명가량이니 B급 던전, 아니 A급으로 쳐도 과도한 전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보는 대로 전투력 비중이 높고 트릭이나 미궁 같은 요소는 거의 없는 던전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딱이지!”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폐하.”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던전을 돌 수 있다는 점이다.

곧바로 트레일러에서 내린 유성원과 기사들은 그대로 각자 탈것을 타고 도열한다.

참고로 유청과 진석의 탈것은 둘 다 거대한 군마(軍馬)로 마갑을 멋있게 착용한 것들이었다.

“와, 너희 말, 뭔가 엄청 크고 멋지다?”

“하하핫,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폐하. 하나 역시 황금의 용을 타고 계신 폐하보단 못하죠.”

‘너무 커서 자주 못 타고 다닌다고 하면 꼴사납겠지?’

엘드라엔은 확실히 거대하고 아름다운 골드 드래곤이었지만, 그렇기에 대규모 전투 외에는 동원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타고 다닐 수가 없었다.

크고 아름다운 게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유성원은 내심 다른 기사들처럼 평범한 것도 구비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거지 근성 탓인지 그렇게 되면 비싼 돈 주고 계약한 그녀를 안 탈까 봐 참고 있는 것이었다.

[…주인… 고블린 놈들이… 눈치챈 것 같다.]

“그야 이렇게 큰 드래곤을 타고 있는데… 눈치 못 채면 쟤네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끼아아아악! 끼이익!

멀리서 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엘드라엔 위에 타고 있던 유성원은 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티탄의 말뚝을 겨누면서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기사도에 걸맞은 선전포고를 하기 시작한다.

“오래간만에 하려니 떨리네. 크흠! 그러니까… 겁 없이! 우리의 세상을 침범한 녹색 악마들이여! 너희를 심판하기 위해! 나 황금 용기사 유성원과 내 명예로운 부하들이 이곳에 왔다. 목숨이 아깝다면 무기를 버리고 도망쳐라! 그러지 않는다면 너희는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할 것이다! 전군, 던전으로 전진하라!”

“예!”

“폐하의 명예를 위해!”

“가자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들은 돌진을 시작했다.

길을 가로막은 고블린들이 뭐라 뭐라 떠들면서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그렇게 유성원은 자신이 손쓰기도 전에 모조리 쓸어버리는 기사들을 담담히 바라보며 엘드라엔에게 던전 입구로 가 달라고 한다.

***

대한민국 헌터 협회.

한편, 대놓고 유성원에게 검사를 거절당한 협회는 동시에 신강남 쪽에서 건 소송 문제 때문에 두통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협약을 했지만 통제를 받지 않으려는 유성원도 문제이지만, 그를 자극하려는 신강남도 골치였기에 당장 실무진을 부르는 건 물론 다시금 작동한 아이언 포트리스의 백가연까지 불러서 회의 중이었다.

“진짜로 그 친구, 어떻게 통제 안 됩니까? 협회 검사부터 거절하다니…….”

“내가 뭘 어떻게 하겠나? 나도 그의 곁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최선일세. 그나저나 그 소송은 뭔가? 물론 신강남의 장벽이 부서진 건 그 친구 책임이 맞긴 하지만, 간신히 얌전해진 사자의 코털을 건들 필요는 없을 텐데?”

평소엔 권력과 힘의 관계에 대해서 면밀히 생각하고 굽실거리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신강남을 단신으로 무너뜨리고 3대 길드의 일각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자에게 이렇게 당당히 나설 거라곤 상상도 못한 그녀였다.

“그건… 아무래도 서울 길드가 한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길드원 이탈도 이탈이지만, 후원자들이 이탈하는 게 가속화되고 있어서 뭐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아직 완전히 망한 게 아니고, 남을 수밖에 없는 후원자들이 법조계와 언론사에 선이 있는 만큼… 그…….”

“최후의 발악이라고 하기엔 행동이 너무 단순한데?”

진짜로 다급해서 불을 끄려고 하는 거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여서 다수의 활동을 보여야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치졸한 방식이다.

뭔가 다른 음모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 백가연은 서울 길드를 조사하기 위해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알아봐야겠구먼. 뭔가 느낌이 불길해.”

“그것보다도 그놈에 대해서가 우선이 아닐까요?”

“자넨 우선순위도 모르나? 다소 비협조적이지만 처치 곤란이던 B급 던전을 돌아 주고 있는 친구랑 지금 간신히 얌전해진 사자를 깨우려는 놈이랑 어느 쪽이 더 심각한지 모르는 겐가?”

“하지만 서울 길드 입장을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추잡한 변명을 듣고 싶지 않은 건지 백가연은 몸을 돌려서 회의실을 나간다.

아무리 노력해서 똥을 치우려 해도, 싸는 놈이 더 많으면 결국 세상은 똥판이 되기 마련이다.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그녀는 SS급 헌터와 관련된 사태에도 바뀌지 않은 그들에게 실망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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