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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90화 (90/293)

[90화]

“보자… 자네 사진 찍었고, 지문 등록했으니 됐네. 원하는 대로 임시 관리자로 해 줄 테니 기다리게나. 원래 없는 지위라서 복잡하거든. 아니면 보고 있겠나?”

“아뇨. 뭐~ 봐도 뭐가 뭔지 모르니 알아서 하세요.”

단말기 화면에 여러 창과 영어 단어들이 좌르륵 올라가는 걸 보는데, 가방끈이 짧은 나로서는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보고 있어도 뭘 어쩔 수 없는 만큼 고개를 돌려서 철창 너머에 있는 아이언 포트리스라는 곳을 바라보는 게 더 속 편했다.

“그나저나 진짜로 엄청 넓네. 저거 다 어떻게 청소하고 치우지? 일단 거주할 곳부터 우선적으로 청소하면 되려나?”

“음? 자네, 여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나 보구먼.”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약하던 길드와 헌터의 일을 어떻게 압니까? 알면 이상한 거죠.”

“음, 그런가? 이렇게 듣고 보니 세대 차이가 참 크게 느껴지는구먼. 으음~ 그런 자네를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면 이 기지, 보안을 비롯해서 시설 유지의 대부분이 자동화되어 있는 곳일세.”

“네?”

파앗! 파앗!

끼기긱! 우우우웅!

내가 당황해서 놀람과 동시에 아이언 포트리스 기지에서 갑자기 불빛들이 켜지고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깬 듯 기지는 스스로 곳곳의 문을 열었고, 동시에 어디선가 무수히 나타난 드론들이 기지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그저 말도 안 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어떻게 옛 유적에서 저런 게 나오는지를 물었다.

“어, 어떻게? 이, 이 기지, 수십 년 전 물건 아니에요? 어떻게 이런 게…….”

“뭐, 이곳 아이언 포트리스는 한때 동아시아 최고이자 최대의 거점으로 최고의 길드가 있던 곳이며, 몬스터의 시대를 넘어 성좌의 시대가 되었어도 그랜드마스터의 비호 아래 세계를 지키는 기지였네.”

“엑, 그런 거 전혀 몰랐는데요?”

“그야 그랜드마스터는 한국 정부와 헌터계에 그리 좋은 인물이 아니니 말이야.”

“아아… 맞다.”

그랜드마스터.

한국 최강의 헌터였고 세계에도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지만, 결국 한국을 떠났다는 꼬리표와 함께 자기 세력을 모두 데리고 가서 한국에 또 한 번 큰 위기를 만든 자였다.

역사에 남을 법한 대단한 헌터였지만 한국으로서는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배우는 부분에선 어쩔 수 없이 무시하지 않는 정도로만 언급이 되었고, 그와 그의 길드가 어느 정도의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알리면 알릴수록 그들이 바보가 되니 말일세. 보게. 이게 진짜 아이언 포트리스일세. 그랜드마스터의 힘과 자본이 모인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최고의 헌터와 기술진들을 모아서 만들어 낸 최고의 작품이지.”

“와아아…….”

“본래라면 그분이 떠나실 때 모조리 파괴했어야 했지만 그러기엔 아까웠지. 그래서 내가 이곳의 소유권을 받아 지키고 있던 걸세.”

“용케 정부나 협회가 안 건드렸네요? 이런 금덩어리는 국가에서 막 몰수할 것 같았는데…….”

“그랜드마스터는 이후 유럽, 아프리카에 새로이 길드를 만들었고, 지금은 그쪽 최강의 길드라네. 떠났지만 내가 그쪽 길드로서 소유권을 지키고 있으니까 건드리면 미운털 박힌 놈들이 다시 들어오겠지.”

“아… 먹으면 뒤지는 금덩이였구나.”

철컹!

그때, 우리 앞을 막던 철창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우린 다시 트레일러를 타고 아이언 포트리스 내부로 들어간다.

내부로 들어가는데, 수천 대에 가까운 드론들이 돌아다니면서 정돈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아까와 다른 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트레일러는 그대로 기지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건물로 향했고, 안에 주차시킨 다음 우리는 내리게 된다.

“밖에서 보는 거랑 엄청 다르네요? 뭐야? 이거?”

겉으로 보기엔 세월의 흐름을 직격으로 맞은 듯한 낡은 모습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생각 이상으로 깨끗했고, 우리를 안내하려고 드론 하나가 마중 나와 있었다.

인기척이 없을 뿐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미래 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나는 이게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기지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야 목적이 다르니 말이지. 그냥 길드 건물이라면 이렇게까지 안 했을 걸세. 이 아이언 포트리스의 설계 사상은 인류 최후의 요새라는 느낌일세. 몬스터들에게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요람이 되어 버틸 수 있는 희망이 되고자 하는 것이었지.”

“아아아…….”

그래서 이런 자동화가 이루어졌구나 생각하면서 뭔가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사람들의 꿈으로 만들어진 기지. 미래를 지향하며 설사 인류 문명이 망하더라도 지켜 내겠다는 의지와 소망이 담겨 있는 곳이다.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 인간의 이상향. 이곳을 만든 그랜드마스터라는 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긴 저랑은 어울리지가 않네요. 뭐, 잠깐 있는 거니까 문제없겠지.”

“그런가? 아무튼 따라오게. 중앙 통제실부터 안내해 주겠네.”

“예예~ 그런데 아영이랑 소미 길드장님은 왜 안 내리지? 음?”

“길드 일이 바쁜가 보지. 그렇게 큰 사고가 터졌는데 금방 해결되는 게 이상하지 않겠나?”

하긴 내부에서 반발도 클 거고, 황금 마인 기사 문제에 관해서 길드가 혼란에 빠졌을 테니 금방 해결되는 게 이상할 것이다.

어차피 이곳 아이언 포트리스엔 우리밖에 없으니 아무 문제없겠지만, 혹시 몰라 나는 아칼론을 불러 그에게 두 사람의 호위를 부탁해 놓고 백가연을 따라서 중앙 통제실로 향한다.

***

청룡 길드 본부.

현재 이곳엔 청룡 길드장인 고천수를 비롯해서 차기 서울 길드장이 된 오경훈과 올림푸스에서 파견 나온 아르카데스가 모여서 긴급회의 중이었다.

황금 마인 기사가 결국 황금 용기사가 되어 정식 헌터로 인정받은 것은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기존에는 3대 길드로 나뉘어서 한국 헌터계를 지배했었는데, 자신들의 지배나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세력이 나타난 것은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걸 그냥 놔둘 겁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겠나? 싸움이라도 걸까? SS급을 상대로? 단독으로 S급 몬스터를 해치운 놈을 어떻게 이기나? 상황을 냉정히 파악하게, 오경훈 길드장.”

황금 마인 기사에게서 신강남 사태로 큰 피해를 본 서울 길드는 이를 갈면서 어떻게든 하고 싶어 분개했지만, 고천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물론 자신의 성좌인 청룡은 강적을 만났다면서 즐거워하며 ‘투쟁’하라고 시끄럽게 상태창을 뿌려 댔지만 그는 냉정하게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지금 저걸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SS급 헌터를 보유한 올림푸스뿐이겠지. 아르카데스, 그래서 그쪽 본진에서는 연락이 왔나?”

“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당장 가서 화친 맺고 동맹 맺으랍니다. 절대로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면서요. 화친 선물로 뭐가 좋을지 저에게 묻던데요?”

“이, 이게 말이나 됩니까?”

올림푸스의 반응에 오경훈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선다.

신강남 사태라는 큰 피해를 입힌 놈을 견제하거나 처리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화친이니 동맹이니 언급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반발하고 있었다.

“말이 안 될 게 뭐 있나? 지금 세상은 힘이 정의인데 말이지.”

“오히려 오경훈 양반, 댁이 이상한 거죠. 지금까지 당신들이 힘이 있어서 그 지랄하고도 꿀 잘 빤 건데, 댁들보다 더 강한 황금 마인 기사에게 소송? 그 여우같이 눈치 보는 판사들이 퍽이나 댁들 편들어 주겠네.”

“내버려 두게. 입장이 바뀐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하여간 신강남이라는 걸 만드니까 저런 병신이 나오지. 옛날 서울 길드는 안 저랬는데……. 쯧쯔, 박순원 그 양반은 책임감이라도 있었지…….”

아르카데스가 대놓고 비웃어 댔지만 오경훈은 굴욕에 몸을 떨면서도 참아야 했다.

이미 서울 길드는 망해서 S급은 자신 혼자였다.

대부분의 A급 헌터들은 청룡을 비롯해 다른 길드로 빼앗긴 상황이어서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길드가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었다.

이미 3대 길드에서 나가리 되었는데, 오늘 여기에 불러 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처지였다.

“음, 내 쪽은 아무래도 백야 길드와 금이 간 상태라 상황이 안 좋을 것 같은데……. 배상금이라도 줘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면 제가 중재한다는 형식으로 해서 같이 가시죠. 아마 그쪽도 더 이상의 분쟁 요소는 남기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젠장! 젠장! 젠장! 이런 굴욕이!’

하나 오경훈은 굴욕을 참긴 했지만 속에선 분노와 증오가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자신들은 피해자인데, 왜 이놈들도 그렇고 망할 세상은 그 황금 마인 기사를 싸고도는 것인가, 하는 부조리에 대한 분노.

일반 시민이라면 자주 겪고, 일상처럼 느끼는 힘과 권력의 부조리였지만 오경훈은 평생 이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기에 인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어디 두고 보자!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줄 아냐?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하나 이미 서울 길드의 몰락은 시작된 상황이다.

신강남 사태에 이어 이번 협약까지 완수되자 후원자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흩어지거나 아니면 다른 길드나 기업의 후원자로 계약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개중에 배 회장처럼 기묘한 취미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댄 양반들은 아예 외국으로 도주하거나 스캐빈저와 손을 잡는 등등 서울 길드의 기반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반드시 엿 먹여 주지. 네놈들도, 이 망할 세상도!’

오경훈은 서울 길드가 완전히 몰락하기 전에 황금 마인 기사는 물론이고 청룡과 올림푸스에게도 한 방 먹여 주자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조용히 열어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

아이언 포트리스, 중앙 통제실.

[유성원 임시 관리자님, 환영합니다. 기지 관리 튜토리얼을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다음은 시설 내부에 관한 위험 상황 등급에 따른 대처 매뉴얼입니다. 우선 코드 그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 어어. 그, 그럴게요. 그어어…….”

현재 유성원은 중앙 통제실에 있는 컴퓨터에 앉아 화면을 보면서 안에 있는 프로그램대로 아이언 포트리스의 시스템을 다루는 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는 다른 기사들 전원이 나와서 각자 이곳 아이언 포트리스의 일원이라는 신분 등록을 하고 있었다.

[나이트 아칼론 경은 생명 반응이 없으며 등록되어 있지 않은 마정석 엔진, 아칼론 경의 형식 넘버는 세계에 존재하는 골렘, 아키텍트, 메카닉, 로봇, 드론을 비롯한 모든 기체(機體)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아이언 포트리스의 관리 시스템에게 다시금 정정을 요구한다. 우리 나이트 메탈 골렘 시리즈 KMG-001 아칼론. 단순한 골렘, 아키텍트, 메카닉, 로봇, 드론 같은 존재가 아니다. ‘기사’로서 모든 것을 걸고 주인의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다.]

[의미를 알 수 없음. 사용 목적도 인식 불가. 제조사도, 내부 구조도 모르는 기체입니다. 임시 관리자님, 해당 기체는 ‘아이언 포트리스’의 보안 규정을 위반하였으므로…….]

그리고 메카닉인 ‘아칼론’이 ‘아이언 포트리스’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SF 영화에서 규격과 정보가 통하지 않는 A.I가 서로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주는 느낌이었다.

결국 이것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유성원뿐이기에 바로 둘 사이를 중재한다.

“배제하지 마라. 이 기지 고철 된다. 그냥 승인해. 아칼론은 내 소환수니까 그걸로 등록해. 깡통끼리 뭐 하는 건지. 하아~”

[그럼 ‘KMG-001 아칼론’을 임시 관리자님의 소환식 골렘으로 등록하겠습니다. 아칼론 경, 환영합니다.]

[정정 요구. 나는 골렘이 아니다.]

“좀 더 발전된 신형인 네가 참아라. 구형에겐 아무리 말해도 호환 문제 때문에 안 되는 것도 있잖아.”

[이해 완료. 역시 마스터는 명석한 주인입니다.]

유성원의 말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따봉까지 하면서 좋아하는 아칼론이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문제를 해결한 유성원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지겨운 튜토리얼을 계속 진행한다.

다른 기사들도 각자 흩어져서 새로운 거점에 적응하느라 몇 시간가량 조용해지니 집중이 잘되었다.

“우와아아아! 이게 그 ‘전설’의 아이언 포트리스구나! 엄마! 진짜 대박이야!”

“이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니?”

‘아, 아영이랑 소미 길드장님이 왔나? 꽤 늦었군. 뭐 길드 일이라는 게… 어?’

뒤를 돌아본 유성원은 순간 깜짝 놀랐다.

아영이도 그렇고 신소미 길드장도 그렇고 뭔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신소미 길드장의 눈.

본래 현명함이 담긴 듯한 아름다운 황금안이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검은 눈이었다.

또한 그녀들에게서 느껴지던 기운이나 느낌이 확 약해진 듯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보통 사태가 아닌 것을 눈치챈 유성원은 벌떡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미 자신의 변화를 눈치챘다고 생각한 신소미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충격적인 고백을 내뱉었다.

“예. 저 성좌에게 버려졌어요.”

“저도 계약 파기! 당했어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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