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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89화 (89/293)

[89화]

협약을 마친 뒤 곧바로 백가연의 트레일러를 타고 협회 본부를 떠나는 유성원 일행이었다.

엘드라엔을 타고 돌아가자니, 돌아갈 거점 같은 게 없어서 일단 그녀의 트레일러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오, 바로 협약의 효과가 나오는 건가?”

황금 마인 기사와 협회의 협약이 승인이 된 직후, 그에 대한 호칭부터 공식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인류의 적인 ‘마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변화해야만 했고 이는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신강남 사태의 피해자와 서울 길드는 계속 반대하면서 황금 마인 기사라는 호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 중이었다.

아무튼 황금 마인 기사라는 이름을 벗은 그의 새로운 헌터로서의 호칭은 바로 ‘황금 용기사’였다.

“마인을 용으로 바꾼 것밖에 없잖아! 심지어 이거 엘드라엔 때문에 붙은 거지?”

“그래도 틀린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럼 생각해 둔 칭호라도 있나? 그걸 추천해 주겠네.”

“…아뇨. 됐어요.”

무엇을 하든 황금과 관련된 것밖에 떠오르지 않기에 유성원은 순순히 포기하고 새로 받은 칭호에 적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튼 뉴스에서는 이제 황금 마인 기사가 황금 용기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내보냄과 함께 SS급 헌터가 공식적으로 한국 헌터 협회와 일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인터넷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좋은 기사는 하나도 없네요. 다 경계한다거나 우려한다는 내용뿐이에요.”

인터넷 기사 제목을 읽고 있는 유성원의 뒤에 아영이가 불쑥 나타난다.

협약이 끝났으니 이제 안심하고 다시 합류할 수 있게 된 그녀는 신소미에게 길드에 대한 일을 전하고 온 것이었다.

“있겠냐? 굴러들어온 돌인데~ 애초에 신강남에다 그 깽판을 쳐 놨는데… 반가워하면 미친 거지. 그나저나 길드 상태는 어땠냐?”

“그야 혼돈 그 자체였어요. 길드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막 해명하라고 하지, 외부에서는 ‘황금 마인 기사’의 협력자냐 뭐냐, 너네 제정신이냐 하면서 난리지. 특히 청룡 길드가 멋대로 길드 내부 자료 가져가려는 거 막느라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라니까요.”

“…고생 시켜서 정말 미안하다.”

이번 경우는 엄연히 자신 때문에 벌어진 피해이니 만큼 유성원은 솔직하게 사죄하며 굽히고 들어간다.

그리고 사죄 덕인지 기분이 풀린 아영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유성원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래서, 엄마랑은 어디까지 진도를 뺐나요? 위험한 순간에 딱 나타나서 구해 줬으니까! 일단 고백은 했을 거고 그다음 2세 생산 작업에 바로 착수했나요? 지금부터 열 달 뒤에 저 남동생 생기는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 참~ 다 큰 어른들인데 뭘 부끄러워해요?”

“아니, 네가 생각하는 그림은 전혀 없었는데? 사후 대책 논의하고 준비한다고 바빠서…….”

유성원이 사실대로 말하자 아영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들은 듯 놀라 굳어 있는 그녀뿐만 아니라 뒤쪽에서 듣고 있던 백가연도 똑같은 표정으로 머그컵을 든 채로 유성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 뭡니까?”

“자네, 혹시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겐가? 혹시 그렇다면 내가 아는 병원을 소개시켜 줄 테니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게. 노산은 산모에게 큰 부담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거짓말 말게.”

“아, 진짜라니까요. 까 봅니까?”

“까 보게!”

각성하고 나서 그동안 무서운 걸 모르던 유성원은 백가연 할매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자기도 모르게 뒤로 도망쳐 버린다.

그 이전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책망받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오히려 아무 일 없으니 안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유성원의 표정을 본 신아영과 백가연만 답답할 노릇이었다.

“와, 이거 심각한데요? 그쵸? 할머니.”

“그래, 심각하구나. 아마 애초에 연애나 결혼 같은 것에 관심을 두던 친구가 아닌 데다 독신 생활도 길고, 여성을 대한 적이 없어서 밥상을 앞에 갖다 놔도 못 먹으니…….”

“즉, 폐하의 후계자 생산에 큰 차질이 있다는 거군요.”

신아영과 백가연 어르신이 떠드는 사이로 유청이 불쑥 끼어들었다.

갑자기 낯선 인물이 나타나자 신아영과 백가연은 깜짝 놀라서 그를 경계했다.

그에 유청은 곧바로 예를 갖춰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신은 유청으로, 폐하의 군사인 자입니다. 성소에서 대기하던 중 그냥 듣고 있지 못할 소리가 들렸기에 이렇게 나왔습니다.”

“폐하? 자네, 언제 왕위를 계승했는가? 아니면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이분, 아마 아저씨가 새롭게 소환한 기사일 거예요. 그 기사분들이 아저씨를 부르는 호칭이 다 다른데, 저분은 ‘폐하’라고 부르는 스타일인가 보죠.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시면 돼요. 마스터, 단장, 계약자, 주인, 거기에 이번엔 폐하네요. 다음엔 뭘지 참 궁금하네요.”

눈치가 빠른 신아영이 유성원의 기사들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 주자 그제야 백가연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성소에 있어야 할 그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에 놀란 유성원이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갔다.

“유청이었나? 너는 왜 갑자기 나온 거야? 할 일 없다고 해서 재무 정리하라고 내 인벤토리에 있는 거 표로 만들어 줬는데 갑자기…….”

“그야 중요한 이야기가 들렸으니 나온 겁니다, 폐하.”

“별로 안 중요해. 그러니까 제발 얌전히 들어가 있어 줘.”

“거절합니다. 저는 참모로서 폐하의 주변 인적 관계에 대해서도 파악할 의무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유성원이지만, 위풍당당한 유청의 기세와 남다른 존재감에 더 이상 반발하기가 힘들었다.

진짜 고귀한 인간 앞에선 나약해지는 자신의 본성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휘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는 건 좋은데, 나중에 나한테 알려 줘. 알았지?”

“알겠습니다, 폐하.”

‘하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얘네는 다루기가 너무 힘들어서 돌겠어.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보면 괜히 위축이 되는 느낌이고. 아무튼 나보다 잘난 놈이니 알아서 하겠지. 에휴~’

결국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들인 걸 깨닫고 그냥 포기해 버린다.

그보다 이제부터는 헌터 일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기에 자신들이 일할 길드 본부이자 새로운 거처부터 구하는 일이 먼저였다.

“뭐, 지방에 가격 저렴한 산이라도 사서 직접 만들면 되겠지. 몬스터 사태 이후 국립공원도 폐쇄된 마당이니 어디든 싸게 구할 수 있을 테니…….”

“음? 그 말로 봐서는 자네, 거점을 찾나?”

“아, 예. 언제까지 얹혀 살 순 없잖습니까? 정 안 되면 그냥 트레일러라도 사서 방랑이라도 할까 생각 중입니다.”

“자네, 면허 없지 않은가?”

“저 기승 스킬 등급 S+입니다. 면허증보다 훨씬 믿음직하죠.”

용을 타겠다는 일념하에 찍은 스킬이었지만 이 스킬은 세상 모든 ‘탈것’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무재 스킬처럼 그냥 자리에 앉아서 차의 핸들만 잡아도 능숙하게 조종할 수 있으며, 심지어 S+ 등급이라 한 번도 몬 적 없는 항공기 같은 것도 가능할 만큼 운전에는 아무 문제없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일단 트레일러라도 사러 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도망치듯이 뺑뺑 돌며 기름 태우면 미안하잖아요.”

“미안할 게 뭐 있나? 이미 우리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중인데.”

“벌써 B급 던전 잡았어요?”

“내가 전에 그랜드마스터의 유산 맡아 달라고 했던 거 기억하나?”

그동안 무척이나 사건이 많았지만, 그런 제안을 했던 적이 있는 걸 기억하는 유성원이었다.

그랜드마스터의 유산.

구세대 한국 최강의 헌터였던 그랜드마스터가 한국에 남기고 간 유산.

백가연은 그것을 성좌가 없으면서 강력한 헌터인 유성원에게 넘겨준 뒤, 그에게 다음 세대의 제대로 된 인물에게 전해 달라고 한 것이었다.

“아영이 주면 된다고 했잖아요.”

“아직 A급이지 않나? 그 정도로는 유산을 받아도 지킬 수 없다네. 자네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S급은 되어야 자격이 있지. 아무튼 이제 다 왔구먼. 보게. 저것이 그랜드마스터의 유산 중 하나, 과거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의 안전을 수호하던 곳인 아이언 포트리스일세.”

백가연이 가리킨 창밖을 보자, 그곳엔 높은 철창으로 봉쇄되어 있는 거대한 군사 기지 같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과거엔 수많은 사람들이 거닐었을 법한 넓고 거대한 기지.

하나 지금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곳곳에 관리가 안 된 듯 보이는 거미줄과 잡초들이 무성한 공터가 지난 시간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보다시피 서울에 위치하면서도 공간은 확실히 넓고, 본래 길드가 사용했던 기지인 만큼 주요 기반 시설은 다 있지. 스태프까지 포함해서 2천 명까지 수용 가능한 초대형 기지일세. 지금은 내 소유가 되어 있지.”

“와아… 난데없이 엄청난 게 나왔네요. 저거 팔면 가격 꽤 나오지 않나요?”

“그야 당연하지. 사겠다는 기업, 길드 다 넘쳐 났지만 나는 팔지 않았네. 여기가 어떤 곳인데… 그런 놈들에게 넘기겠나? 토지라든가 여러 유지비를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아무튼 이곳을 지켜 내고 다음으로 이어 줄 친구에게 넘겼으니 다행이군.”

그렇게 멋대로 넘기니 마니 이야기하면서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기지를 바라보는 백가연이었다.

아마 유성원은 상상도 못할 과거와 사건, 이 장소에 있던 추억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리라.

(아아! 백가연 어르신! ‘아이언 포트리스’에 도착했습니다. 한데 입구 보안 시스템이 막고 있어서 이걸 열어 주셔야 들어갈 수 있는데…….)

“아! 알았네. 지금 가네. 따라오게나. 이제 이곳의 주인이 바뀌는 절차를 밟아야 하니 말이야.”

“주인은 아니고, 그냥 임시 관리자라고 해 주세요.”

유성원의 이 말은 자신은 절대 그랜드마스터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하는 의사 표명이며 이곳 또한 헌터 일을 할 동안만 잠시 머물 곳이라는 뜻을 내포한 말이었다.

하나 백가연은 상관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트레일러에서 내리는 그를 바라본다.

“읏챠. 오오! 나와서 보니까 더 굉장하네.”

‘이렇게 시대가 이어져 나가는 거겠지. 허허.’

유성원의 뒷모습을 보며 백가연은 수십 년 전 자신이 처음 이 아이언 포트리스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땐 그저 미남에 돈 잘 버는 헌터 하나 잡아서 빨리 은퇴해야지, 하는 생각만 했었다.

하나 그 소녀는 어느새 세계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다가 노인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뭐 해요? 할매. 빨리 와서 문이나 열어요. 트레일러 기사님이 난감해하잖아요.”

“아! 알았네. 지금 가고 있네. 비밀번호가 순간 생각 안 나서 그거 떠올리느라 그런 거야.”

“엑! 그러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유성원의 일침에 상념을 마친 백가연은 빠르게 달려가 입구에 있는 콘솔을 조작해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덤으로 유성원의 정보를 곧바로 등록하여 이 아이언 포트리스의 새로운 주인이자 후계자로 만들고는 칭호만 잽싸게 임시 관리자라고 다르게 써 놓는다.

즉, 겉포장만 임시 관리자일 뿐 유성원은 사실상 이곳의 주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끝까지 외부인으로 남으려는 유성원도 징글맞은 놈이었지만, 그것을 넘어서 호칭만 바꿔치기해서 그를 후계자로 만든 백가연도 만만치 않은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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