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필요 마력 수치 증가 요소]
패황 기사 유천 아님 +10
천검군 기사단장 연흑 없음 +5
천검군 제1부대장 진석 없음 +5
천검군 보급대장 중한 없음 +5
…….
…….
…….
마치 월말에 받아 본 카드 사용 내역서처럼 주루룩 내려오는 리스트 앞에 유성원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전설적인 부대를 역시 쉽게 운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역시 세상일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리고 아예 없지 않은 감소 요소도 확인하는 걸 잊지 않는다.
[필요 마력 수치 감소 요소]
패황천검류 습득 -5
통솔(EX) 습득 -10
“과연, 이러니 제대로 쓸 수 없지. 아무튼 저 증가하는 걸 줄이고, 이 감소 요소를 늘리면 병력을 늘릴 수 있다는 거네. 그렇지만 대부분…….”
특정 스킬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인물, 즉 기사 소환을 해서 구성을 갖추라고 하고 있었다.
유성원은 은근 황당하면서도 악덕 상술에 당한 기분을 체감 중이었다.
“기사들은 별도 판매라니! 장난감을 사도 이러진 않는다고!”
“스킬 2개로 군대를 얻으려는 게 역으로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네크로맨서들도 사령술을 비롯해서 다양한 스킬들을 배우고 쌓아 올려야 하잖아요.”
“…그렇죠? 역시 쉬운 게 이상한 거겠죠?”
“당연하죠.”
신소미의 말을 납득하면서 유성원은 결국 남은 2개의 선택 보상을 이용해서 기사 뽑기를 다시 시도하자고 생각한다.
다만 그 전에 천검군(天劍軍)이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보기 위해 병사 하나를 소환해 보기로 했다.
“보자. 군 편성이…….”
[군대 소환은 총 1,806(현재 당신의 마력) 수치만큼 가능합니다.]
[천검군 정예 병사×1 100/1,806]
[소환]
“폐하의 부름에 응하였나이다.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허공에 마력의 일그러짐이 발생하더니 그곳에서 순백의 바탕에 청색으로 장식된 갑옷을 입고 검과 창을 든 병사가 나타난다.
단번에 봐도 화려한 갑옷에 투구까지 깔끔하게 착용, 정예병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병사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무릎을 꿇고 유성원 앞에 예를 갖춘다.
다만 자세히 보면 뭔가 인간 같지 않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이 흐릿했는데……. 살색이나 혈색은 있지만 마치 살아 있는 유령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묘하네. 그렇지만 병사는 병사이니 다행인가? 너 이름이?”
“…송구스러우나 지금 저는 폐하의 군대의 병사였다는 기록에서 다시금 소환된 존재라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그래?”
“그래도 전 위대하신 패황 기사 유천 님과 함께했고, 천검군에 남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우니 개의치 마시고 저를 전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폐하!”
이름이 없는 일개 병사라곤 믿을 수 없는 당당한 태도. 천검군의 일원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남은 덕에 이렇게 죽고 난 이후에 소환된 것만으로도 그는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한 것인지 자긍심이 매우 강해 보였다.
아무튼 유성원은 그 찬란한 모습에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참아 내며 평정을 유지한다.
“아… 으음…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시험 삼아서 부른 거니까 싸움은 없어. 다만 소환 스킬을 익히고 난 뒤라 이것저것 확인하기 위해 부른 거니까… 미안한데, 돌아가 줄래?”
“저희는 언제나 폐하의 부름을 받고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폐하. 언제, 어떻게든 저희를 부리시면 됩니다. 그럼!”
천검군 정예병은 깍듯이 예를 갖추고 무릎을 꿇자마자 그대로 사라진다.
그의 절도와 예의가 너무 부담스러웠던 유성원은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일개 병사가 그 정도이니 마음이 든든한 건 사실이지만, 상위 기사들을 계속 얻어서 이 천검군이 갖춰지면 숨도 못 쉴 것 같은 분위기가 될까 무서운 유성원이었다.
“와~ 일개 병사가 이 정도 군기면 진짜 기사들 소환하면 난리 나겠는데요? 저기, 소미 길드장님?”
“방금 병사… 스테이터스랑 스킬 봤어요?”
“아뇨. 그럴 새가 없어서… 왜요?”
“방금 병사, C급 헌터의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었어요. 스킬도 자그마치 4개! 잠시만요.”
[천검군 정예병]
[스테이터스]
Str:100(C+) Dex:75(D+) Vit:110(C+) Mag:30(E+)
[보유 스킬]
불굴-이 병사는 황제의 곁을 지키는 최정예 병사이기에 절대로 먼저 도망치지 않습니다.
천검군의 무예-천검군은 패황 기사 유천의 최정예 부대이기에 최고의 무예를 가르쳤습니다.
천검군의 특급 무구-티타니암 광물로 특별 제조한 최고급 갑옷, 검, 창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급 대마법(對魔法)-마력 수치 100 이하로 시전하는 마법 무효화
방금 소환한 병사의 스펙을 적어 주자 유성원은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마력 수치만 충족되면 소환할 수 있는 병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고스펙과 무장인 것이다.
C급 근접 헌터 하나 구하려고 발을 구르고 돈을 쓰던 백야 길드의 길드장인 신소미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하아~ 저 기사분들도 처음 봤을 땐 놀랐는데, 이건 정말이지…….”
“아, 얘들 다 이렇게 스테이터스랑 스킬을 다 보유하고 있구나.”
“네?”
“아, 저는 스테이터스 해석 스킬 같은 게 없어서 직접 물어보거나 아니면 싸워 보면서 알아내서요.”
그 말대로 유성원은 최대한 효율성을 따지고 자기 자신의 강함만 생각했기에 상대의 스킬이나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는 스킬이 전혀 없었다.
스킬 포인트 하나하나가 아깝기도 했고, 어차피 모든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게 목적이라 굳이 해석 스킬을 가질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근데 이제 와서 큰 의미가 있나 싶어요. 일일이 스테이터스랑 스킬을 안 봐도 무기를 맞대거나, 싸워 보거나, 아니면 바라만 봐도 느낌이 오거든요.”
그동안 무재(武才) 스킬 덕분에 상대의 스테이터스 같은 것을 보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신소미는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그가 싸워 온 것을 본 만큼 쉽게 납득한다.
“아무튼 이건 여기까지 하죠. 천검군은 진짜 군대 규모로 사용하려면 여기 적힌 감소 요인들을 천천히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기사나 소환해야겠네요.”
기껏 얻은 스킬에 제약 사항이 많이 따랐지만 그래도 제약 사항을 풀어 나가면 강력해질 게 눈에 보여서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역으로 생각하면 작은 규모부터 시작해서 익숙해지는 것도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는 남은 보상 2개로 기사 둘을 뽑기 위해 오두막 밖으로 나선다.
“후우~ 완전 랜덤이라서 좀 불안하긴 한데…….”
“약한 기사가 나올까 봐요?”
“약한 건 둘째 치고, 성향에 문제가 있을까 봐 두렵죠. 따지고 보면 쟤네 넷이 잘 지내는 것만 해도 신기한 일 아닌가요?”
각자 용인, 심연의 어둠, 기계, 천족인데 서로 싸움 같은 것도 나지 않고 가치관 차이로 분쟁 같은 게 없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물론 다들 성좌들의 기록에 남을 만큼의 인물들이니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기사가 들어감으로써 이 균형이 깨질까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소환 안 할 수도 없죠. 후우~ 군대도 결국 늘어나는 게 한계가 있게 되었으니… 자, 갑니다. 이번엔… 빠꾸 없이! 2명을 동시에 소환이다!”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유성원은 기사 소환을 빠르게 눌러서 2명을 동시에 부른다.
그러자 마법진 2개가 유성원의 앞에 나타나면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새로이 나타나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뒤에서 대기하는 기존의 기사들은 각자 두 손을 모은 채 자기들 쪽 기사가 나오길 빌고 있었다.
[저는 기원합니다. ‘KMG-002 엑칼’이나 ‘KMG-003 바리사다’가 왔으면 좋겠군요. 둘만 되어도 포메이션을 짜기가 좋아서…….]
[…용인… 추가… 되었으면…….]
“음, 성천 기사단 셋이 모이면 특정 포메이션이……. 부디 제발…….”
각종 소망과 두려움 속에 마법진 위의 빛 안에서 사람의 인영(人影)이 보였고, 곧 빛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낯선 갑옷을 입은 남성 둘.
한 명은 안경을 쓴, 날카롭고 차가워 보이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30대 후반에 강인한 느낌을 가진 거구의 남성이었다.
둘 다 비슷한 순백에 청색 계열의 디자인의 갑주에 망토를 걸치고 각자 무기를 차고 있었는데, 나타나자마자 유성원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외친다.
“다시 선 천검군의 깃발 앞에 영광을! 제1부장이었던 이진석 다시금 인사 올립니다, 폐하!”
“천검군의 깃발 앞에 영광을! 참모 유청, 폐하의 부름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기사 소환에서 ‘천검의 기사 진석’을 소환했습니다. 동시에 이들이 합류함으로써 천검군의 필요 마력 수치(5)가 줄어듭니다.]
[기사 소환에서 ‘천검의 군사 유청’을 소환했습니다. 동시에 이들이 합류함으로써 천검군의 필요 마력 수치(5)가 줄어듭니다.]
유성원은 이 기사들의 모습에서 기(氣)에 눌린다는 게 뭔지 제대로 체험 중이었다.
이 기사들은 먼저 소환한 넷과 사뭇 다르게 뭔가 강력한 의지가 흘러넘치는 건 물론 고귀함과 기백이 느껴졌다.
‘이, 이게 진짜구나!’
물론 이건 아칼론, 가울프, 섬멸, 크록베인을 폄하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들도 분명 자신들이 가진 가치관에 맞는 임무나 사명이 있다면 능히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금 눈앞의 이 둘은 바로 ‘천검군’이라는 것에 생애를 바친 것도 모자라서 그 전설에 영혼까지 묶인, 천검군이 사명 그 자체인 자들이었다.
“그, 그러니까… 저기, 천검군의 기사들이지?”
“그렇습니다, 폐하.”
“그러니까… 나는 그, 너희의 원래 주인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거든?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 너희 성에 안 찰 것 같으면 그냥 돌아가도 좋아. 억지로 따를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만약 너희가 보기에 부족하다면 개의치 말고 돌아가도 돼.”
그 충격적인 발언에 신소미는 물론 뒤에 있던 네 기사들이 기겁한 표정이 되어 바라본다.
귀중한 보상 포인트로 소환했는데 대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너무나 황당한 발언에 보다 못한 가울프가 다가와서 유성원에게 귓말로 따진다.
[계약자여, 제정신인가? 저 친구들이 뭐가 문제인 건가? 왜 귀중히 뽑은 전력을 갑자기 돌려보내려 하는 겐가? 딱히 배신을 할 것 같지 않네만?]
“얘네는… 나랑 그… 인간으로서의 격이 달라. 참새가 어떻게 매를 이끌어. 천검군 스킬이 어쩌고 간에 쟤네는 나랑 안 맞아.”
[그럼 우리도 참새인가?]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크기 자체가 다르다니까……. 아무튼 자, 잠깐 뒤로 가 있어. 나중에 설명할게.”
그렇게 이해를 못하는 가울프를 일단 뒤로 물러나게 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아직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둘은 바라보는데……. 이 둘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나 큰 인간들이다.
말 그대로 전설로 남은 기사들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 진짜 처절히 평범한 인간이었던 유성원은 그들을 보자마자 인간으로서의 차이를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내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싶다.’
그래, 만약 이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자신은 일반병으로서 그들의 명령에 따라 죽으러 가야 하는 신세가 딱일 것 같았다.
그 정도의 격차를 느끼는 유성원은 감당할 수 없기에 그들을 돌려보내거나 내보내려 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 이제 일어서도 되니까 자세 풀고, 내가 천검군 스킬을 갖고 있긴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폐하’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인간이 아니고,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니까 너희의 선택을 존중할 테니 돌아가고 싶으면 지금 돌아가도 돼. 만약 못 돌아가면 그~ 적절한 거처를 마련해 주거나 지금 이 시대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풀어 줄게. 뭐, 내가 죽을 때까지 여흥이라 생각하고 말이지.”
아무튼 스스로의 한계를 생각한 유성원은 그들에게 자유로운 제안을 해 주었다.
그것을 들은 천검군의 기사 진석과 참모인 유청은 서로를 보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유성원은 뭔가 불길한 예감에 빠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