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1조가 누구 집 애 이름인 줄 아시오? 의뢰비라곤 하나 한 번 사용료가 그 정도라는 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액수를 깎든가 해야 합니다.”
“그 말 진심인가? 뭐, 그러면 어쩔 수 없는데… 만약 다른 곳에서 1조를 내고, 대한민국을 공격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막을 텐가?”
“……!”
백가연의 지적에 안색이 파래지는 정부 관계자였다.
물론 유성원도 일을 가리긴 하겠지만 그녀의 말대로 만약 지금 이 제안이 파토 나서 다른 세력과 계약을 맺고, 그쪽에서 1조를 지불하고 유성원을 고용해서 공격을 시키면 피해를 줄이면서 막을 수 있겠는가?
SS급 하나와 S급 4명의 전력이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무수한 파괴 공작을 시전해 대면 분명 1조쯤은 가볍게 생각될 정도의 피해를 입을 것이다.
“오히려 먼저 제안을 해 준 것에 대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입장이지. 생각해 보게. 우리에게 제안 안 하고 먼저 길드나 타국과 이 협의를 했다면? 그래서 1조를 지불할 능력이 되는 쪽에서 저자와 거래했다면? 그걸 보는 외부 시점은 어떻겠나?”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에 짓눌릴 것 같아. 으윽!”
“게다가 지불 능력이 된다면 언제든 쓸 수 있는 조커 카드 같은 느낌이고…….”
“근데 그놈은 대체 그 정도 돈을 받아서 뭐에 쓰려고 하는 거지?”
“알 게 뭡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건 무조건 받아야 하는 거래라는 겁니다.”
정말 일방적이고 말도 안 되는 거래였지만 무조건 받아야 하는 거래라는 것에 협회와 정부 인사들은 의견을 일치시킨다.
다른 쪽에 들어가면 진짜로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살 수 없는 상황이 오니 무조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게 될 줄 알았지. 못 쓰더라도 조커는 손에 잡고 있어야 하니 말이지. 아무튼 승낙한다고 했으니, 연락해서 그를 부르겠네.”
“…그러십시오. 하아~”
“이거 참~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군.”
결국 무리한 요구였지만 성사가 되었고,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백가연은 유성원에게 연락을 넣는다.
그의 요구가 하나도 거부당하지 않고 성사되었다는 말에 유성원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게 반발 없이 이렇게 빨리 통과된다고요?)
“…자네도 이런 거, 저런 거 다 계산하고 그렇게 보낸 거 아닌가?”
(아뇨. 일단 그냥 세게 질러 본 건데요? 뭐, 정 응하지 않으면 그냥 방랑이라도 하려고 했죠.)
유성원의 대답에 백가연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은 그에 대해서 철저히 감춰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위엄과 무게감이 있을 법한 모습으로 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와서 말 많이 하지 말고, 얌전히 사인만 하고 폼만 잡다가 가면 되는 걸세. 알았지? 그래서 언제 올 텐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가능한 한 귀찮은 건 빨리 해치우는 게 좋으니 내일 가겠습니다.)
“그러게나.”
이렇게 황금 마인 기사라 불리며 미지의 공포를 선사했던 유성원, 최선을 다해 몸을 숨겼던 그가 드디어 세상 전면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숨어 있던 때로 돌아갈 수 없으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유성원은 전화를 끊은 채로 오두막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후우~ 가면 아마 많이들 지X하겠죠?”
“일단 신강남 사태부터 따지고 들겠죠. 각종 소송에도 엮일 거예요. 그리고 각 길드들의 견제도 있을 거고 말이죠. 그리고…….”
“아, 됐어요. 이렇든 저렇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칼로 흥한 자, 망하지 않으려면 결국 칼을 더 갈고닦아야죠. 원래 아까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네. 얘들아, 나가자.”
그 어떤 일이 닥쳐온다고 해도 유성원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티탄의 말뚝을 휘두를 전력을 강하게 만드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45레벨에서 여전히 성장은 멈춰 있었지만 그동안 여러 기사도 특성에 부합하는 싸움과 활동 덕분에 꽤 많은 보상이 쌓여 있었다.
‘보자. 그동안 쌓여 있던 스킬 포인트 2개랑 길드장님 구한 것 때문에 보상 선택이 2개인가?’
[두려움을 이기고 레이디를 구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간 그 태도! 기사도의 귀감 그 자체이며, 지극히 명예롭도다!]
[보상 선택(기사 소환 or 무구 증정 or 스킬 포인트 +1)이 1개 주어집니다.]
바로 근래 신소미 길드장을 구한 것, S급 몬스터 보하쿠와 맞선 것, 신강남에서 악을 규탄하고 그 존재를 밝혀낸 것 등등 그동안 혼란스러운 일들이 가득한 가운데 쌓여 온 보상들을 드디어 풀어내기로 한 것이다.
“후우~ 언제 봐도 배울 수 있는 스킬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야. 으으 머리 아파.”
“그것참 배부른 고민이네요. 누구는 성좌가 주는 이상한 시련을 하나 돌파할 때마다 얻든가, 아니면 비싼 스킬 북을 사야 배우는데 말이죠.”
“저도 제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요. 스태프로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마치 게임 속에 있는데 혼자만 장르가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치트 플레이를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남들은 하급 스킬부터 착착 올라가야 하는데, 이쪽은 제한 없이 최고급, 유니크 스킬들을 막 찍는 것부터가 법칙 위반이었다.
“아무튼 몰라요.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할래? 하고 묻기에 대충 대답했는데 이 모양이 된 거니까요. 난 아직도 왜 나 같은 놈에게 이런 게 찾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참 나~ 별 이상한 푸념했네요. 스킬이나 찍어야지.”
자신의 상태창은 자신에게밖에 보이지 않기에 그는 스킬 라인을 쭉 훑어보면서 군단 및 조직 관련 스킬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이번에 청룡 길드랑 싸운 만큼 자신의 조직에 대해서 부쩍 관심이 많아진 유성원은 이제 본격적으로 ‘기사단’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사단 스킬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이래서 너희를 부른 거지만 말이야. 야, 니들이 추천 좀 해 봐.”
그리고 그 구상을 위해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각자 흩어져서 일을 하던 기사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일단 자기 밑에서 같이 일한 녀석들의 기사단을 구성하는 게 색깔도 맞고 지휘도 편리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스터에겐 당연히 은하 기사단을 추천 드립니다. 전원이 저 같은 KMG 시리즈는 아니지만 양산 모델인 ‘소드 나이트’들과 ‘지원 드론’ 시리즈들을 보시면 매우 든든하실 겁니다.]
[아칼론 경의 양산 모델이라면 마력 자동 수복 시스템이 없을 텐데, 유지 보수와 장기 전투를 생각하면 어불성설 아닌가? 여기선 당연히 전원에게 마력만 보충하면 언제든 전력투구할 수 있는 ‘심연의 기사단’이지. 흠하핫! 계약자여, 어떤가?]
“그건 저희 ‘성천 기사단’도 같습니다. 가울프 경, 불길한 심연의 힘보단 역시 천상의 힘이야말로 단장님의 황금 갑옷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사단… 잘 부순다… 먹는 만큼… 이지만…….]
어쩌면 예상했던 내용으로, 넷은 각자 자신들이 속했던 기사단을 유성원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넷 다 유성원의 취향은 아니었다.
기사단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보면 전투 조직이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좀 더 다양한 역할이 포괄된 전투 조직이었다.
“그… 좀 다양한 기능을 가진 조직 없니? 정보, 탐사, 암살 같은 게 가능한 조직 말이야.”
[저희는 기사입니다, 대장님.]
[계약자여, 뭘 잘못 먹었나?]
[우린… 싸우는 게… 일이다.]
“신의 뜻에 따라 적을 섬멸한다. 그게 전부입니다!”
넷 다 오로지 전투에만 집착하는 집단에 있던 탓일까?
그들은 유성원이 말한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분명 전략이나 전술에 대해선 아는 것 같은데… 이럴 때만 이러니 황당하면서도 갑갑한 유성원이었다.
“됐다. 내가 찾아볼게. 하아~ 근데 내 거 연관으로 찾으면 죄다 무슨 친위대 같은 거만 나온단 말이지.”
[그야 계약자에겐 엄연히 왕재(王才) 스킬이 있으니 그렇겠지.]
“아, 맞다.”
[(전설)타락한 봉황의 정수]
비록 타락했으나 이 생물은 왕(王)의 상징입니다. 카리스마에 보정이 주어지며 보유한 왕(王), 황제(皇帝) 관련 스킬이 강화 됩니다.
[강화된 스킬-‘패황 기사 유천의 사라진 유산, 패황천검류(覇皇天劍流)’]
레그혼을 통해서 배우게 된 타락한 봉황의 정수.
본래 유성원에게 없는 카리스마 및 왕, 황제 관련 스킬을 강화시켜 주는 스킬로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가울프가 말하자 기억해 냈다.
“그래서 로열 가드나 친위대 같은 것만 떼거리로 나온 거군.”
[그것도 나쁘진 않지. 그런 류라면 기본적으로 정예들이라서 누굴 뽑아도 일을 잘할 테니 말이지.]
“아니. 내가 원하는 방향이랑 조금 다른 게 문제라.”
단순한 전투 능력보다는 육각형의 다양한 능력을 원하는 유성원이었다.
하지만 신소미는 스킬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군대 및 다수의 소환수를 일제히 소환하는 스킬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아, 있다! 2개 있네! 정령 기사 실레이온 포레스트 블레이드의 블러디 리프 수호대, 패황 기사 유천의 천검군(天劍軍). 스킬이 있으니 이렇게 나오는구나.”
“…그게 있다고요?”
“그런데 둘 다 필요조건에 통솔(EX) 스킬이 필요하네요. 그럼 하나 배우고,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음, 설명을 보면 블러디 리프 수호대는 엘프들로 이루어진 특수군이네요. 마법, 궁술, 근접전 모두 다 활용하는 부대이고, 천검군은 패황 기사 유천의 친위 부대로 대륙 곳곳의 정보를 모으고 싸움을 대비한 부대… 이거다! 찾았어요!”
패황 기사 유천의 천검군을 택한 유성원은 스킬 포인트 2개를 통솔(EX)과 패황 기사 유천의 천검군에 찍는다.
[(전설)통솔(EX)]
집단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기술.
그 어떤 조직이든 당신의 지휘 아래에 오면 전력을 다하게 됩니다. 영웅적 부대, 전설적 부대를 통솔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설)패황 기사 유천의 천검군(天劍軍) 소환]
패황 기사 유천의 아래에서 혼란에 이른 한 대륙을 통일해 전설을 써 내려간 군단입니다. 소환하려는 병력 수와 기사, 부대장급 기사, 소환자의 패황 기사 유천과의 인연과 연관성에 따라 필요한 마력 수치가 다릅니다.
“…이건 마법 아닌가? 그냥 되네?”
“아마 폐하가 가진 스킬을 인연으로 마력만 공급해 주면 저쪽에서 마력을 써서 오는 걸 겁니다.”
“그러니까 착불로 쟤네가 쓴다는 거야?”
“뭐, 비슷한 개념이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가? 아무튼 되면 좋은 거니 더 이상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유성원이었다.
“아무튼 역시 비싼 부대는 소환 대가도 비싼가 보네.”
큰 힘엔 큰 대가가 따르는 것처럼 전설급 부대는 그 비용도 매우 크게 들었다.
하지만 마력 소모가 무슨 문제인가! 유성원의 깡 스테이터스는 SS급 클래스!
마력 수치가 자그마치 1,806(SS급)이기에 웬만해서는 소환에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거 왜 이래?”
[천검군 소환에 필요한 마력 수치(현재)]
천검군 정예 병사-1인 편성당 필요 마력 수치 100
천검군 정예 궁수-1인 편성당 필요 마력 수치 150
천검군 정예 기병-1인 편성당 필요 마력 수치 300
천검군 보행 기사-1인 편성당 필요 마력 수치 500
…….
…….
…….
마치 휴가철 지방 휴양지 식당의 메뉴판을 본 것처럼 유성원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설적 부대라곤 하지만 필요한 마력 수치가 터무니없이 높았기 때문이다.
일반 정예 보병만 쳐도 18명이 고작인 만큼 군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었다.
“으아아아! 이거 왜 이래? 너무 터무니없잖아!”
“뭔지 모르지만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걸지도…….”
당혹스러워하는 유성원을 보면서 신소미는 아까까지 일어났던 질투심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을 받는다.
유성원은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면서 대체 왜 필요 마력 수치가 이렇게 높은지 제대로 확인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