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아, 예. 이제 와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걔네들, 뽑은 거예요.”
“한 명, 한 명이 S급에 준하는 그 전력이요?”
“예. 뭐, 그래서 통일성이 없잖아요.”
“음~ 취향인 줄 알았죠.”
취향이라는 말에 유성원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그나마 섬멸이 멀쩡할 뿐 그녀를 제외하면 나머지 셋은 일반적 취향과 거리가 먼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신소미는 유성원의 능력과 스킬에 대해 갈수록 의문이 커져 가고 있었다.
레벨에 비해서 충격적일 정도로 막강한 능력도 능력이지만, 스케일도 점점 커지는 게 기묘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전력 강화는 결국 수단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지금 중요한 건 누구랑 손을 잡을 것이냐? 아니면 그것도 안 할 것이냐? 를 택해야 하는 거죠.”
“으음~ 그게 가장 고민이에요. 제일 좋은 선택은 길드랑 손잡고 꿀 빠는 건데, 거기랑 손잡자니 워낙 복잡한 관계가 돼서 불가능하고, 남은 선택은 협회, 정부뿐인데. 정부는… 그냥 싫어요.”
보호 시설에서 당한 일도 일이었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문의했을 때 돌아온 공무원들의 불친절, 군대 시절의 악몽 때문에 반감이 매우 커 차라리 자연인 생활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 남은 건 협회뿐이네요. 물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그쪽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건 아니고, 이름만 올려 두고 한 번 부르는 데 던전 레이드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금액을 불러서 못 부르게 만들 거예요.”
“과연, 비용으로 수작질을 막는다는 거군요.”
어떻게 보면 비겁하기 짝이 없는 갑질이지만 유성원이 세상에서 배운 거라곤 그런 것이기에 그대로 돌려주는 것뿐이다.
일단 그렇게 방침을 정하고 언더시티에서 쇼핑을 마친 둘은 숲으로 나와서 임시로 만들어 둔 거점으로 향한다.
사실 말이 거점이지, 거의 휴양지에 있을 법한 별장 수준의 오두막으로 아칼론의 솜씨가 빛났다.
‘내가 혼자 만들 때보다 한 10만 배 나은 것 같네. 와우~’
[다녀오셨습니까? 마스터.]
“아칼론, 어차피 임시 거점인데 이렇게까지 힘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마스터가 머물러야 하는 것은 물론 여성도 머물러야 함. 또한 현 사태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음. 추가로 텐트보다 나은 거주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임.]
“아니, 칭찬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마라. 아무튼 다른 애들은?”
[가울프 경은 순찰, 크록베인 경은 수행, 섬멸 경은 기도 중입니다.]
“그래? 저녁때쯤에 불러 줘. 회의 겸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어제도 본 풍경이지만 신소미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각성자의 시대에 그 무엇이든 나올 수 있다곤 하지만, 이 정도로 통일성 없는 조합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서울 길드와 유사한 느낌이었는데, 아무튼 그들은 유성원의 지인인 그녀에게도 깍듯했고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마담 신소미, 요리 작업은 저에게 맡기고 마스터의 곁에 계시길. 이곳은 저희의 진영, 손님에게 일을 시켜서는 체면이 서질 않습니다.]
“기껏 갈고닦은 솜씨를 못 써서 아쉽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저 협회랑 어떻게 이야기할지 상담해 주시는 게 좋을 같긴 해요.”
“뭐, 그러죠.”
자신의 갈고닦은 기술을 보여 주지 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구분이 가기에 그녀는 유성원을 돕기로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성원은 결국 밑바닥 출신. 협회 인원과 공식적인 대면을 할 시에는 어떤 실수나 빈틈이 나올지 모르기에 전문가의 상담이 꼭 필요했다.
“잘못해서 호구 잡히고 싶지 않거든요. 아무튼 요구는 일단 협회 소속으로 두지만 제 자유에 대한 보장과 만약 소집 명령은 안 받고, 협회에서 일 시킬 경우 비용을 지불하면 그때 하는 식으로 하고 싶은데…….”
“의뢰 형식으로 하고 싶다는 거네요. 비용은 어떻게?”
“엄청 비싸게 해서 아무도 의뢰할 생각 안 하게 하는 방법이죠! 어차피 SS급 헌터면 웬만큼 비싸도 뭐라고 안 하지 않을까요?”
“그건 맞지만 속셈이 훤히 보일 텐데요? 하긴 그건 당신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긴 하죠.”
“아무튼 먼저 의견을… 할망구에게 보내야겠네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유성원 쪽이 무조건 갑의 위치에 있는 만큼 그가 내민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 어떻게 조율할지는 협회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할 일이다.
그렇게 유성원은 간단한 대본과 요구 조건을 적은 서류를 만들어서 먼저 메일로 백가연 어르신에게 보낸다.
***
서울 시내, 백가연의 자택.
협회 본부에서 회의를 한 이후, 그녀는 곧바로 자택으로 돌아와 신아영과 함께 유성원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어떻든 간에 중심인물은 유성원으로, 결국 모든 건 그의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되기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또 도망친 동안 다른 사건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걱정보다는 이 기회에 좀 썸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 내려오면 이제 아빠라고 부르렴! 하는 거 말이에요.”
“허허~ 나이 찬 남녀가 있으니 뭐, 가능성 있지 않을까?”
“전혀요! 우리 엄마도 문제가 있지만, 그 아저씨도 연애 경험 같은 거 전혀 없을 것 같아서 기대가 안 생겨요. 그나마 길드에서 우리 엄마 구했다는 걸 들었을 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요.”
유성원도 나름 문제였지만, 미혼모인 신소미도 아픈 사정을 갖고 있어서 신아영은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걸 크게 기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차라리 이렇게 둘만 붙어 있을 때 뭔가 진전이 있었으면 하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다.
“뭐, 마음이 아예 없지 않으니 그 친구도 열심히 달려가서 구했겠지. 허허. 오? 연락이 왔구먼. 보자… 이 친구, 협회랑 손을 잡는다고 하는군.”
“어라? 제일 약한 데 아니에요?”
“약하니까 발언력이 높아지지. 그 친구다운 선택이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데를 고를 줄 알았지.”
예상이라도 한 듯 말하며 백가연은 유성원의 요구를 살펴본다.
요점은 헌터 등록을 하여 협회에 소속이 되긴 하나 소집 명령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고, 협회의 의뢰를 받는 형식으로 일하겠다는 의미였다.
다만 문제는 의뢰 액수는 건당 무조건 1조, 전투 습득물은 세금 제외하고 모조리 유성원 것으로 정말 날강도나 다름없는 계약이었다.
“거의 이건 의뢰를 받지 않을 생각이구먼.”
“그 아저씨답네요.”
“그렇지. 다만 협회에서 이 조건을 받아들일지가 의문이군. 흐음~ 하긴 이 친구가 갑이니 뭐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 아영아, 너도 갈 테냐?”
“물론 가야죠. 저도 일단… 백야 길드의 길드장 대리이니까요. 하아~”
미성년자였지만 엄연히 백야 길드의 2인자이며 후계자인 그녀에게도 참석할 권리는 충분히 있었다.
그동안 신소미가 부재중일 때 백야 길드에 일어난 난리를 수습한 것도 그녀였고 말이다.
난데없이 황금 마인 기사와 연관되어 버린 곳이라는 소식에 혼란에 빠진 길드원들은 의아해하면서 신소미 길드장을 찾았는데, 그녀 대신 신아영이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결국 길드원들 나가고 스태프들 그만두는 건 못 막았어요. 하아~ 뭐라고 안 하겠죠?”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너희 성좌뿐이겠지. 그런데 그걸 안 한다는 건 어쩌면 너희는 오래전부터 방치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들에게 있어 별이란 결국 게임 테이블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지.”
지구라는 별의 게임판을 정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성좌가 있는 반면, 손을 써도 어떻게 안 되는 경우 자신의 리소스를 아끼기 위해 포기하는 성좌도 있다.
그 위대한 별들의 시야에 결국 남겨진 인간들은 더 이상 관심도 가지 않는 체스 말일 뿐이었다.
“그래서 성좌에 묶인 인간들은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더욱더 미친 듯이 날뛰지. 저기 이 목사처럼 말이야. 아무튼 연락은 했으니, 갈 준비를 하자꾸나.”
“아, 예! 바로 옷 갈아입을게요. 할머니!”
“이 녀석~ 내가 비록 할머니 나이이긴 해도 아직은 정정하단다.”
그렇게 백가연과 신아영은 준비를 마친 다음 트레일러를 타고 협회로 향했다.
협회에서는 이미 황금 마인 기사의 의사를 전해 들은지라 협회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이 모두 대기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건에는 관련 없는 정부 관계자들까지 보였는데, 백가연은 그들을 보자 인상을 찌푸린다.
“이쪽 사람들은 그 친구가 찾은 적 없네만?”
“우리도 엄연히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르신. 협회의 일은 결국 정부와…….”
“그 친구가 자네들을 싫어한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이야기는 나중에도 들을 수 있지만, 지금 그 친구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요소에 대해 단 한 개라도 말을 좀 해 보지 않겠나?”
백가연의 지적에 정부 관계자들의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전부터 계속 유성원이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 왔는데도 이들은 산통을 깨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보 습득에서 뒤처지는 걸 막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거래 성사를 아예 막아 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저희는 그저 듣기만 하겠습니다. 정부로서도 이번 사태는 무시 못할 일이거든요.”
“그러면 아주 조용히 있게. 절대 입 놀리지 말고.”
저 정도면 그냥 물러나라고 해도 물러나지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으라고 하는 백가연이었다.
결국 직접 계약하는 것이니만큼 유성원을 부르거나 혹은 연락을 해서 인터뷰를 해야 했기에 충돌이 일어나선 안 된다. 하여 강조해서 당부하지만, 과연 지켜질지가 의문이었다.
‘뭐, 사고 치면 결국 멍청한 놈들이라는 거지.’
“아무튼 백가연 어르신, 황금 마인 기사의 요구에 대해서 어서 들어 봅시다.”
“알았네. 그러면 하나씩 말해 주도록 하지.”
협회장의 진행 아래, 곧바로 백가연은 유성원에게 받은 요구 사항에 대해서 그들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해 준다.
하나, 예상했듯이 이야기를 들은 협회장과 간부들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의 표정은 모두 똑같이 일그러진다.
그의 조건은 너무나 독선적인 걸 넘어서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그 어떤 헌터도 이런 조건을 내건 적이 없는 것으로, 듣다가 도저히 참지 못한 협회 간부 하나가 책상을 치며 일어나 따지기 시작했다.
“지금 장난하자는 겁니까? 어르신, 세상에 이런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주장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메신저일 뿐인데 너무하는구만~”
“황당해서, 참! 협회에 소속만 두고, 던전은 다닐 건데 소집 명령에는 응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날로 먹을 속셈 아닙니까? 심지어 의뢰 형식? 의뢰비 1조? 말도 안 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돈을 받으면 일해 준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SS급을 보유한 협회라는 타이틀도 쓸 만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친구 하나만 보더라도 무지막지한 전력인데, S급에 준하는 기사 넷과 드래곤까지 있는데… 1조면 오히려 싼 게 아닐까?”
SS급 헌터를 S급 3명으로 잡고 봐도 총 7명에 환수 중 정점에 있는 골드 드래곤까지 한 부대라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금액이었다.
비용이 세긴 했지만, 이들을 투입하는 일이면 그만한 위기나 중요한 상황일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건지 아니면 황당해서 너무 화가 나는 건지 정부 관계자들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 지적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