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개성 언더시티.
저번 원정은 결국 실패했지만 그래도 1차, 2차에 이어진 신강남 사태 덕분에 이 목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큰 이익을 얻었고, 이곳 개성 언더시티는 스캐빈저들의 도시답지 않게 번성하고 있었다.
“흐음? 왜 갑자기 ‘목장’에 있는 가축들이랑 도시에 들어오는 인간이 늘었지?”
“그, 그게~ 요 근래 일어난 신강남 사태 덕분입니다. 이 목사님.”
“그게 무슨 소리지?”
이 목사, 그의 관심사는 오직 ‘인간’ 목장의 번성과 어떻게 하면 신의 사도(도살왕의 사도)들이 더욱 만족할 만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외의 사소한 문제는 모두 다른 스캐빈저들에게 일임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도시 규모가 커지고 별다른 일을 안 했는데 인간 목장의 인간들이 늘고 있어서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위임한 스캐빈저를 부른 것이다.
“신강남 사태라는 사건이 두 번 벌어졌습니다. 하나는 황금 마인 기사라고 저희 그… 레그혼 님을 죽인 놈이 신강남을 뒤집어 놨고,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좌 산거정의 세력들이 이 혼란 속에서 한 번 더 난리를 일으킨 덕분에 대박이 났습니다.”
“그 수전노들이 한 건 하긴 했나 보군. 그래서 그놈들이 ‘가축’과 ‘금붙이’랑 교환하자고 가져온 거냐?”
“예, 정답입니다. 히히히.”
“흐음… 나쁘지 않은 거래군. 하긴 그딴 건 우리가 가지고 있어도 쓸모없으니까~”
“그리고 맞다, 목사님. 다음 문제가……. 그, 식량 문제가 전에 말씀하신 대로 중국 쪽에 커넥션을 이어 보려고 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번영하는 언더시티라곤 해도 핵심적인 문제가 있었다.
다른 물건은 암시장을 열거나 다른 세력과 거래해서 구하는 게 쉬웠지만 식량만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느 세력이든 생명체들로 가득하기에 식량은 공통적으로 소모되는 것이었고, 성좌 도살왕 같은 악(惡) 성향 세력과 그것을 거래하려는 이들이 만무했기 때문이다.
질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식량 공급을 해결해야 했기에 가까운 중국 쪽에 여러 스캐빈저를 보냈었다.
“성좌 진황(秦皇)과 성좌 용봉왕(龍鳳王), 그리고 공산당 정부까지 전부?”
“예. 성좌 진황과 성좌 용봉왕은 소중한 백성을 가축처럼 잡아먹는 놈들과 어떻게 거래를 하느냐! 하면서 화를 냈다고 했고, 중국 공산당 정부는 식량 거래 말고 자신들과 용병 거래하지 않겠냐고, 성과급으로 인간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 정부는 그 용병 거래를 함으로써 식량을 준다는 이야기인가?”
더 웃긴 사실은 신적 절대자인 성좌들이 더 백성과 시민을 소중히 여기고, 공산당 정부는 가차 없이 성과급으로 인간까지 준다는 사실이었다.
웃음도 안 나오는 코미디 같은 현실이었지만 도살왕의 수하인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숭고하게 신을 섬기는 우리를 자기네 들개로 삼으려 하다니. 어리석은 짱개 놈들 같으니…….”
“아무튼 거절하시는 의도인 건 알겠습니다. 근데 그러면… 식량 수급을 다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의 문제로 돌아가야겠죠. 여기 몰려오는 스캐빈저들도 엄청 늘었는데…….”
“그러면 우리가 늘 하던 원초적인 방안으로 돌아가야겠지.”
성좌를 모시는 이들이 가진 해답은 간단하다.
그 이름을 걸고 싸우고, 원하는 것을 바치고, 힘과 세력을 키운다.
급격히 불어난 세력을 감당할 수 없다면 싸움을 통해 얻으면 그만이다.
“결국 싸움으로 얻어야겠지.”
“하나 문제는 그… 황금 마인 기사인데, 그놈이 방해하면 어떻게 하죠? 막 골드 드래곤까지 타고 다니는 놈이던데…….”
“으음… 그러면 이건 어떤가? 남쪽, 그리고 대한민국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악(惡) 성향 성좌들의 군세와의 합동 작전. 주공은 우리고 나머지는 그냥 적당히 혼란 속에서 주워 먹으라고 하는 거지. 그 약탈꾼 놈들처럼 말이야.”
성좌 산거정의 세력이 신강남을 약탈해서 재미를 본 것처럼 이 목사는 다른 세력들에게 자신들이 설치는 동안 이익을 보라고 제안할 생각이었다.
이거라면 서로 연합할 생각을 안 하는 악(惡) 성향 성좌끼리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혼란을 일으킨 판에 끼어서 이익을 보려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고 해도 쉽게 방해할 수 없겠지.”
“조,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러면 바로 일에 착수하게. 나는 계속해서 연구를 해야 하니, 일정이 조율이 되면 불러 주게.”
그렇게 이 목사는 스캐빈저에게 일을 지시한 다음 자신은 다시 연구실로 향한다.
세계를 성좌 도살왕 님을 위한 ‘인간 목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완벽한 인간의 가축화 시스템을 완성해야 했고, 더 안정적으로, 더 많은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있게 품종 개량 또한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보자… 어디부터 연락을 해야 할까? 이거 판이 엄청 커지겠는걸? 키히히.”
신강남 사태가 끝나고, 세상은 평화로울 날 없이 다음 파란이 준비되기 시작한다.
***
백야 길드, 길드장 사무실.
생각을 되돌려 보면 언제나 인생에 있어서 어딘가의 장이라든가, 리더가 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카데미아 스태프에서 하부 팀장을 맡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냥 다수의 인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명령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인사였을 뿐 무언가를 하기 위한 지위가 아니었다.
“하아~ 자, 그러면 보자. 뭐부터 해야 할까? 일단 서로 소개나 하시죠. 아영이는 뭐, 학원장님을 잘 알 거고, 나도 다른 분들과 이야기했지만 신소미 길드장님이랑 전 학원장님은 서로 간에 아시는지?”
“음, 모르는 건 아니지. 허허. 여기서 소개나 한다고 친해지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유성원 저 친구 소개라면 동료로 생각하지.”
“예.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소개는 대략 잘 넘어갔고, 그러니까 이제 해야 할 건 역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내가 다른 걸 말할 주변머리도 못 되고, 여기 모인 양반들을 잘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우리의 공통 쟁점인 C급 던전 공략에 대해서 바로 말을 꺼내기로 한다.
“일단 저희의 공통 목표는 C급 던전 가는 겁니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네. 바로 아무도 안 가는 B급 던전을 가면 되는 거지.”
“…야! 아영아! 너 혹시 삽 가진 거 있냐? 오늘 사람 한 명 묻어야겠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언급한 걸로 뒷북을 치시네?”
“예! 아저씨, 여기요!”
“너는 왜 삽을 들고 다니냐?”
이 망할 할망구의 뒷북에 나는 순간적으로 발끈해서 아영이랑 쇼를 했지만, 이상하게 할망구는 태연했다.
아무튼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건가 싶어 일단 기다려 본다.
그냥 뒷북으로 끝나면 물론 가만 안 있겠지만 말이다.
“으음, 자네들도 B급 던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라는 거군.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 게 사실이지. 보자… 신소미 길드장 자네, B급 던전 경험은 얼마나 되나?”
“딱 한 번입니다. A급 승급 시험 때문에 간 게 전부였죠.”
“B급만 쳐도 나는 약 300번가량이 넘네. 지금은 퇴물이어도 일단 S급까지 올라가는 동안 레벨 업을 게을리한 게 아니니 말이지. 백야 길드 같은 곳에서 B급 던전에 도전해서 금방 클리어하면 수상하게 보겠지만, 내가 합류해 있으면 그런 건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는 거지.”
음, 저렇게 들으니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외부에서 봐도 S급 헌터에 경험이 충만한 자가 같이 B급 던전 가는 거랑, C급도 아슬아슬하게 가는 중견 하위 길드에서 가는 거랑은 차이가 클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협회에는 학원장 자리를 그만두고 제자 키운다고 해 놨으니, 자네 데리고 B급 던전을 가도 전혀 무리가 없지.”
“음, 납득이 갑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로 갈 건가요?”
“자네가 원하면 지금 즉시도 출동 가능하네. 여기 올 때 현역 때 쓰던 내 트레일러에 모든 준비를 다 해 놨고, B급 던전의 데이터도 사전에 리스트까지 쫙 뽑아 놓고 협회와 조율도 끝났으니 그냥 가면 되네.”
오,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이니 안심이 되기 시작한다.
경쟁이 없는 B급 던전이라곤 하지만 난 가 본 적 없고, 백야 같은 중견 하위 길드는 경험도 거의 없어서 아마 사전 준비한다면 빡세게 해야 해서 오래 걸릴 텐데……. 백가연 어르신이 있으니 뭔가 하이패스로 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열린 길을 안 가라는 법은 없죠. 좋습니다. 지금 가죠.”
“훗, 그럴 줄 알았네. 호기로운 젊은이라 마음에 들어. 거기 두 사람은 어떻게 할 텐가?”
“당연히 가야죠!”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경험을 늘려야 하니까요.”
레벨 업에 목마른 나와 아영이는 당연했고, 신소미 길드장님도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걸 원했는지 갑작스러운 제안에 승낙한다.
그리고 우린 곧바로 백가연 어르신의 차량을 타고서 길드를 출발, B급 던전이 있는 곳으로 바로 향하기 시작했다.
“가면서 우리가 갈 던전에 대해 설명해 주겠네. 우리가 갈 곳은 B급 던전-보이는 숲일세. 성좌 백안조(百眼鳥)의 영역이었는데, 성좌가 토벌이 되고 남은 잔존 던전일세. 주요 몬스터 타입은 없고 다채롭게 등장하는 곳일세.”
“흐음… 보이는 숲이라?”
“아무튼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계속 설명하지. B급 던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상급 던전이기에 전투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간이 늘 존재하네. 퍼즐과 추리, 또 가끔 의지를 시험하기도 하지. 내 체험담보다는 신소미 길드장의 이야기가 더 좋겠군. 나는 너무 많이 돌아서 딱히 안 떠오르니 말이야.”
“예. 제가 갔던 곳은 도살왕 계열의 B급 던전-핏빛 지옥, 온통 새빨갛고 피 냄새로 가득한 곳에서 미로를 통과하면서 계속 나타나는 악마들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보스를 제외하곤 다들 약하긴 했지만 그런 장소 자체가 사람의 멘탈을 계속 깎아먹어서 힘들었습니다.”
신소미 길드장님의 경험담을 듣자 나는 전신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와, 그러니까 전투력만 높은 게 아니라 안에 기믹이랑 상황 같은 게 사람을 괴롭힌다는 거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래도 여럿이서 가니 그나마 나으려나?
“으음~ 거의 다 왔구먼.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다행이야. 잠깐 기다리게. 통제 구역이라 협회 공무원 친구들이 지키고 있을 거라서 허가를 받아야 하거든. 그동안 포션과 장비를 점검해 두게.”
“예, 그러지요.”
생각보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얼마 이야기도 안 했는데 벌써 도착했다.
그리고 백가연 어르신이 트레일러 밖에 나가서 철조망으로 쳐진 통제 구역을 지키는 공무원들과 쑥덕쑥덕 이야기를 하자, 금방 철조망 입구를 열어 주고 우리를 들여보내 준다.
‘음, 역시 잘 안 도는 B급이라 이렇게 관리하는구나. 그런데 저걸 보면 제대로 영입한 것 같기도 하네.’
빠른 일 처리는 물론 B급 던전을 클리어하러 간다니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공무원의 눈빛.
저런 걸 보면 권력과 지위의 힘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히 느껴진다.
물론 그 편리함을 얻기 위해서 더 크고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자, 다들 하차! 던전 입구는 좀 걸어서 가야 하니 여기서 준비하고 가세나.”
백가연 어르신의 안내를 받아서 우리는 무장을 하고서 곧바로 산속으로 향한다.
던전의 영향 탓인지 낯선 식물과 나무들이 보이는 숲을 뚫고 들어가자 산 중턱에 던전 입구가 있는 것이 보인다.
보통 이런 고위 던전이면 주변에 몬스터들이 있어야 하는데… 내 미니맵에도 그렇고,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몬스터가 하나도 없네요?”
“그야 성좌를 잃고 남은 흔적이니 말이지. 그러니까 던전계의 폐가 같은 거라고 해야 할 걸세.”
“그러니까 괜히 무섭잖아요.”
“허허, 뭐가 무섭나? 아무튼 자네가 사실상 전위 담당이자 리더이니 먼저 들어가게. 우리는 그 뒤를 따르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티탄의 말뚝으로 무장한 다음 곧바로 흐릿한 던전 포탈 입구로 들어간다.
내부 풍경은 어두운 숲으로 조용하면서도 뭔가 공기가 싸늘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B급 던전이기에 신경을 집중해서 주변에 몬스터가 있나 확인하고 있는데, 왠지 뒤가 조용했다.
“음? 뭐예요? 왜 안 들어와…….”
“그러면 솔로 플레이 수고하게나. 모름지기 헌터라면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고 위기를 헤쳐 나갈 줄 알아야 하지. 허허허.”
“네? 뭐요?”
뒤를 돌아보자 백가연 어르신… 아니, 망할 할망구는 씨익 웃으면서 따봉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보이는 신소미 길드장과 아영이는 새하얀 끈에 묶인 채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미친! 이런 식으로 날 던전에 혼자 버려둔다고?
난 다급히 던전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내가 충격 먹는 사이 던전 포탈은 이미 닫힌 지 오래였다.
“이, 이게 뭐야아아아아아아아아!”
결국 B급 던전에 홀로 남은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여길 나가면 그 망할 할망구를 반드시 땅에 묻어 버리겠다고 결심까지……! 노인 공경이고 뭐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