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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74화 (74/293)

[74화]

“SS급 마인 인간 사육사, 이 목사에 대한 것인데…….”

“거절하겠습니다.”

“아니, 들어 보게. 그…….”

“그놈에게 잡혀간 사람들을 구해 달라는 거겠죠. 네, 다 들었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나보고 그놈 본거지에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해 오라고?

저 성좌 산거정의 수하 S급 보하쿠와 비교도 안 되는 아크데몬 비스트가 11마리나 있는데 제정신인가? 미쳤나? 진짜!

S급 레그혼만 해도 전투 중에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게다가 놈들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내가 나타나면 분명 2~3마리가 동시에 날 잡으러 올 것이다.

“이야기는 좀 끝까지 들어 보고 정하는 게 낫지 않겠나? 왜 그렇게 성미가 급하나?”

“이 세상에는 듣고 나서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도 많거든요.”

밑바닥 인생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알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 할망구는 포기하지 않는 건지 꿋꿋하게 날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떠드는 걸 멈추지 않는다.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겠네.”

“거절합니다. 아니, 그 대가로 그냥 잘 먹고 잘 사시지, 왜 혼자 구하려고 아득바득 그러세요? 학원장 자리에 계속 남아 있고 싶어서? 잡혀간 지도 오래돼서 이 목사 놈이 약물이랑 스킬로 이미 사람이 아닌 걸로 만들었을 텐데……. 그 상태에선 돌려보내 줘도 가족들만 고통스러울 겁니다.”

깨어진 접시는 아무리 접착제로 붙여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처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서 평생 괴롭힐 거고, 치료에 대한 비용으로 인해 어쩌면 남은 가족들에게 더 힘든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더라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보며 슬픔이 더 커질 일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시야도 있구먼. 후우~”

“선의가 무조건 좋은 결과로만 돌아가진 않습니다요.”

“그건 아네만, 사람은 역시 자신이 행한 잘못은 되돌리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서 말이야.”

“그날 쳐들어온 이 목사가 잘못이지, 멀쩡히 시험 과제 내준 할망구가 무슨 죄입니까? 참 나~ 자자, 어깨 힘 좀 풀고, 어쩔 수 없는 일은 포기하고 털어 버립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침 식사 준비할 테니 샤워실에 가서 얼른 씻고 오세요. 피 냄새랑 땀 냄새가 아주 그냥……. 인벤토리에 갈아입으실 옷은 있죠?”

“그러지.”

그래도 답답한 어르신은 아니어서 설득이 된 건지 학원장님은 깨달음을 얻은 듯 체념한 표정으로 샤워실로 들어간다.

전설의 영웅이든 어르신이든 결국 모두 다 인간이기에 저렇게 힘 빠질 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난 아칼론에게 그분의 몫까지 아침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한 다음 뉴스를 보면서 어제 상황을 파악한다.

“오우야, 신강남, 완전히 작살이 났네. 저러면 좋든 싫든 떠날 수밖에 없겠군.”

휴대폰으로 뉴스를 켜자마자 제2차 신강남 사태에 대한 결과가 여기저기 나와 있었다.

먼저 수원으로 향했던 S급 몬스터 보하쿠의 군세가 합세하는 바람에 후방 포위는 깨졌고, 결국 기르마크와 보하쿠, A급 B급 몬스터의 군세가 신강남에 파도처럼 몰아쳐서 저지선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결국 저지선이 붕괴되자 그제야 올림푸스와 청룡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작했고, 신강남은 개판이 나서야 겨우겨우 몬스터들을 몰아냈다는 거군.”

결과적으로는 몰아냈다곤 해도 신강남의 풍경은 말이 아니었다.

저지선이 한 번 뚫려서 몰아치는 몬스터들이 신강남 시가지 곳곳을 뒤집어 놨고, 그걸 제압하는 데 쓴 무력 행동으로 인해 도심 파괴가 심각했다.

“무너진 빌딩만 12채. 주요 시설 및 은행의 예금과 VIP 금고에 있는 물건 싹 털리고 불 질러졌군. 하긴 S급 몬스터가 들어갔으니 작살날 수밖에…….”

내가 상대할 때는 다행히 도심이 아닌 시외 도로변에서 싸워서 그냥 땅만 헤집어진 거 빼고는 아무 피해 없었지만, 도심 내에서 싸우면 사방에 온갖 피해가 퍼지게 된다.

몬스터는 몰아냈지만 결국 성좌 산거정의 부하들은 소기의 약탈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피소까지 털려서 납치된 인원만 약 1,500명. 이거 100프로 도살왕네랑 거래하려고 잡아간 거겠네. 에휴~ 그러면서도 청룡이랑 올림푸스는 아주 잘났다는 듯 떠들어 대네.”

“그게 지금 이 망할 세상의 현실이지. 후우~ 옛날에 각성자끼리만 있을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말이야. 망할 성좌 놈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떼는 말이야. 가 두둥등장! 그래도 성좌 양반들은 ‘보답’은 확실히 해 주는데, 인간은 미사여구를 붙이면서 후려치잖아요. 예를 들면 북한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옛날 그대로인 군대라든가? 아, 아칼론, 고마워.”

아칼론이 놓아주는 아침 식사를 받으면서 이번엔 성좌에 대한 꼰대 같은 소리를 하시는 걸 반박하는 나였다.

저분들 세대야 각성자끼리만 싸웠던 세대이고, 우리는 이제 성좌라는 이들이 완전히 생활에 자리 잡은 세대였으니 느낌이 다를 것이다.

“뭐, 보호 시설 나가자마자 가서 월 60만 원을 처음 받았을 땐 내 돈이구나! 감동받았지만 나가 보니 또 다르다는 걸 알았죠. 하하핫. 보호 시설에선 무료로 먹혔었는데. 하핫, 60만 원도 웃기는 일이었고, 겨우겨우 아카데미아 스태프 돼서는 처음엔 또 180만 원이었던가? 이러니 사람들이 성좌에게 열광하죠. 줄 건 확실히 주니까요.”

“그게 세계를 파괴해도 말인가?”

“지구 반대편에서 인간이 죽어 나가도 내 손에 있는 만 원짜리 한 장이 더 중요한 게 인간입니다요, 학원장님. 끽해야 100년만 살다 갈 건데~ 그걸 신경 쓰는 게 더 이상하죠. 어차피 이 지구는 성좌의 게임판이 아니더라도 이미 1퍼센트 인간들의 게임판이 된 지 오래인데, 이러나저러나죠.”

내 말을 들은 할망구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금방이라도 설교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내게 뭔 말을 해도 소용없는 걸 아는 건지 금방 포기한 얼굴로 바뀌면서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으며 한탄한다.

“후우~ 자네 성좌님의 취향은 정말 독특하군. 어떻게 이런 암울한 자에게 붙은 건지.”

“저 섬기는 성좌 없슴다. 그리고 암울하든 말든 그게 뭔 상관입니까? 이런 인간도 있는 법이지. 참 내~”

“성좌를 안 섬긴다고? 그럼 대체 그 강함은?”

어우, 깜짝이야. 그걸 낸들 압니까?

어느 날 갑자기 각성했고, 그냥 막 X사기 스킬들을 찍을 수 있게 된 것뿐인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그냥 된 걸 어쩌라고!

“모르죠. 아, 그래도 딱 하나는 알아요. 신이든 뭐든 간에 저에게 이딴 걸 준 놈은 단단히 실수했다는 거죠.”

“…후~ 그럼 자네는 이제 그 힘으로 뭘 할 생각이지? 마인을 처리한 거라든가, 신강남 사태를 만든 것으로 보아서는 정체를 감추고 악(惡)을 처단하는 정의의 사자 같은 거라도 할 생각인가?”

“아뇨. 전혀 그런 생각 없어요. 그냥 재수 없어서 걸린 우연과 멍청한 놈들이 자꾸 어리석은 짓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칼을 빼 든 것뿐이에요.”

내 말을 듣자 할망구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하긴 사고를 쳐도 좀 크게 치긴 했지만, 나는 결백했다.

정말이라고~ 나는 가능한 한 싸움을 피하려 했지만 그놈들이 먼저 선을 넘었다고~

“뭐, 믿든 말든 상관없지만요. 제 목적은 일단 할 수 있는 한 레벨 업한 다음 얌전하고 조용히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조용히 짱박혀서 살다가 가는 겁니다.”

“그게 자네의 목적이라고?”

“예. 제게 성좌가 있었다면 그것에 걸고 맹세해도 좋을 내용이에요. 정말이에요.”

“…말이 안 나오는군.”

왜 말이 안 나와. 소박하면서도 적절한 꿈이지.

저 표정만 봐도 또 꼰대 소리 하고 싶은데 참고 계신 걸로 보였지만,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뜨더니 한숨을 쉬며 입을 연다.

“그래, 하긴 그것도 좋겠지. 세상을 위해 뭘 한다느니 하면서 설쳐도 보람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그렇죠? 강요할 순 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자네는 정말 그걸로 괜찮나? 조금이라도 그런 힘이 왜 자신에게 들어온 건지 생각해 본 적 없나?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나?”

“예. 당연하죠. 그런 거에 일일이 의미가 있었으면 나쁜 짓 하는 스캐빈저 놈들도 무슨 선택받아서 그러나요? 아, 잘 먹었다.”

의미니, 운명이니, 정의니, 신이니 각종 개소리들은 엿 처먹으라고 해라.

그런 것 중 하나라도 살아 있으면 지금 이 세상이 이 꼴이 나지 않았으리라.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아진 나는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아칼론을 성소로 돌려보낸 뒤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뭐, 그런 게 있어도 적어도 저는 그런 거에 어울리는 놈이 아닙니다. 다른 애 찾아보세요. 어리고, 밝고, 희망찬 그런 애들 말이죠. 아, 그리고 저 이제 이대로 서울 떠날 겁니다. 유성원이라는 인물은 이미 신강남의 배 회장에게 원한을 샀으니 도망가야죠.”

“…그럼 마지막으로 다른 의뢰가 있네만? 그거까지만 들어 주게.”

“하아~ 짐 챙기는 동안 마음대로 말하세요.”

“나 대신 그랜드마스터의 유산을 맡아 주게. 자네 정도로 강한 데다 본인의 안전을 생각하는 이라면 더없이 안전하겠지.”

…지금 이 양반, 뭐라고 한 거지? 뭘 맡아 달라고?

그랜드마스터의 유산? 한때 인류 최강의 각성자였던 그랜드마스터의 유사안?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놀라서 쳐다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을 계속한다.

“그렇다네. 유산. 나도 나이가 있는데, 이걸 넘겨줄 친구가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그런데 마침 딱 맡아 주기 좋은 친구가 보이더군.”

“…맡아만 주는 거 맞죠?”

“정확히는 유산이 있는 상자를 여는 열쇠 같은 거라네. 자네가 맡고 있다가 줄 만한 친구에게 전해 주게나. 이게 의뢰일세.”

“아니, 하나 더 붙었잖아요. 그리고 제가 애먼 인간에게 주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랜드마스터의 유산? 맙소사,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의 각성자들이 노리는 그런 위험한 걸 나보고 가지고 있으라고?

게다가 내가 어느 정도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고도 맡기려 하다니, 제정신인가?

“그거야 모르지. 어차피 인생에 목표 하나쯤 없으면 심심할 테니 괜찮지 않은가? 대가도 넉넉하게 주겠네.”

“저 딱히 돈에는 궁한 게 아니라서 그런 귀찮은 임무는…….”

“가령 자네가 골치를 썩이고 있는 레벨 업 문제라든가? 협회나 다른 길드와의 충돌로 생기는 각종 문제에 대한 은폐와 공작, 외국 루트를 이용한 아이템 판매 및 구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자네를 섬기겠다는 걸세.”

푸웁!

이 할망구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나? 누가 누굴 섬겨?

그러니까 그랜드마스터의 유산을 맡기는 김에 내 조교(?)를 하겠다는 거잖아.

하지만 그래도 그냥 거절하기엔 치트키라고 생각될 정도의 실리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제안이었다.

“아, 잠깐만. 제가 레벨 업 문제로 골치 아픈 걸 어떻게 알았죠?”

“그야 자네를 조사하면서 엮인 백야 길드에 물었지. 자네 정체를 안다고 하니 바로 통하더구먼. 또 자네가 45레벨이라는 것까지 잘 알고 있네.”

“…하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무튼 어떤가? 썩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미인에다가 초유능하고 경력도 많은 S급 헌터의 보좌를 받을 수 있는 걸세. 호호홋.”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하다니, 노친네가 참 뻔뻔하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좋습니다. 받아들이도록 하죠.”

관심도 없는 유물을 보관하다가 넘겨주는 조건으로 S급 헌터이자 살아 있는 역사의 전면적인 협조를 얻을 수 있으면 꽤나 싸게 먹히는 일이었다.

메리트가 너무 커서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새로운 협조자를 얻게 된 나는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서울을 떠나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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