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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72화 (72/293)

[72화]

잠시 후, 백가연 학원장은 전신을 감싸는 전투복과 개인 무장인 클러(Claw)를 점검하고선 곧바로 다시 전황에 대해 살피기 시작한다.

S급 몬스터 보하쿠.

성좌 산거정 직속 사도로 곳곳에 황금과 보석 장신구로 장식된 해적 스타일의 코트를 입고 선장모를 쓴, 오징어의 머리를 한 아인형 몬스터였다.

“주 무장은 총기와 커틀러스인가? 주력 스킬에 대한 자료는 없고?”

“예. 사실상 성좌 산거정의 성소를 지키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했을 뿐, 직접 싸우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난적이군. 괜히 나온 게 아닐 텐데……. 일단 해적 클래스 계열 쪽 자료를 주게. 기반은 그쪽 스킬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학원장님. 아무리 공식 S급이시라고는 해도 이미…….”

“괜찮네. 내 상태는 내가 더 잘 아네.”

허세를 부려 보지만, 백가연 학원장의 전투복 안은 긴장으로 인한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S급 헌터라지만 부상과 후유증으로 인해 이미 현역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다.

S급으로 남겨 준 이유는 그저 대외에 발표하기 위한 형식적인 모습이었을 뿐, 실제로는 그 정도 역량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약탈. 식욕으로 고기를 얻기 위해 목숨 거는 그 짐승 같은 도살왕네 부하보다는 훨씬 승산이 있네. 득이 될 게 없다는 거만 알리면 물러나 주는 놈들이니 말이야.”

“하지만 이번엔 심상치 않습니다.”

“언제는 다 알고 싸웠었나? 던전 갈 때마다 지옥문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고, 늦든 빠르든 헌터는 역시 몬스터와 싸우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지. 흐흠~ 아무튼 이대로는 늦을 것 같으니 내가 따로 가겠네.”

드르륵.

지금 상황에서는 시간이 매우 귀중했기에 그녀는 그대로 달리는 트레일러의 문을 열고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썩어도 S급 헌터라는 걸 증명하듯 하얀 궤적만을 남기며 달려가는 백가연 학원장이었다.

그녀는 수원으로 향하는 몬스터들의 후방을 노려서 일단 시간을 번 다음 합류할 계획이었다.

‘저기 슬슬 보이는군. 마력 파장도 그렇고 저 시끄러운 목소리, 확실히 몬스터의 군세인데……. 으음? 왜 멈춰 있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키아아아악! 이, 이놈, 뭐야?]

[젠장! 젠장! 우리의 약탈 계획이!]

[보, 보하쿠 님이! 당하고 있다니!]

‘전투 중? 대체 누구랑 싸우는 거지?’

빠르게 달려서 S급 몬스터 보하쿠 무리를 따라잡은 백가연은 그들이 멈춰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 시야를 돌려서 그들과 교전하고 있는 이들을 확인했다.

“황금과 마정석에 눈이 멀어 약자를 노리는 약탈자들을 처단하는 것이야말로 기사도의 귀감! 기사들이여! 이곳에 우리의 명예가 가득하다. 모조리 쳐부숴라!”

“예! 단장님!”

[예스, 마이 마스터!]

[알겠다, 계약자여!]

[감사하다… 주인…….]

‘호오? 황금 마인 기사인가? 그런데 저자가 왜 산거정과 싸우는 거지?’

신강남 사태를 일으킨 황금 마인 기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녀도 익히 들어왔다.

정신이 나간 건지 전신을 감싼 황금 갑옷에 골드 드래곤을 끌고 다니면서 전장을 휘젓는 미지의 존재.

S급 몬스터와 마인 사건에 끼어들어서 처음엔 우호적이었지만, 신강남 사태를 가져옴으로써 대한민국의 적이 된 자로 그녀에게도 신기한 존재였다.

‘수원 쪽에 대기하던 부대는 땡잡은 셈이군. 고맙긴 하지만 이유는 알아야겠지?’

[큭! 후하하하하! 역시 전신에 황금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런지 보통이 아니군! 하나 나 보하크! 반드시 네놈을 잡고 만다!]

“황금을 쓴 거랑 강함이랑 무슨 관계가?”

[당연히 강한 자가! 더 많은 황금을 가지니! 황금의 용에 황금 갑옷을 입은 네가 강한 건 당연한 거지!]

“조금은 그럴싸하군. 흡!”

카아아앙!

백가연은 조심스럽게 진형의 바깥을 돌아서 황금 마인 기사와 S급 몬스터 보하쿠의 격돌을 바라본다.

황금 마인 기사는 검인지 둔기인지 모를 거대한 쇳덩이를 휘두르는 반면, 보하쿠는 부서진 커틀러스를 들고 힘겹게 막아 내는 중이었다.

하나 그 둘의 일기토만이 아니라 주변도 거대한 전쟁판이었다.

[범선 골렘! 모조리 쏴서 없애 버려라!]

[그그그극… 그어어…….]

범선에 팔다리를 달아 놓은 듯한 거대한 골렘 다섯이 눈을 빛내면서 손에 달려 있는 대포를 쏘아 대고 있었다.

그리고 성좌 산거정의 직속 사도인 보하쿠가 이끄는 군세로 하나하나가 빌딩만 한 골렘들이 다른 해적 몬스터들을 이끌고서 날뛰는 모습은 괴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엘드라엔! 저런 거한테 안 지겠지?”

[큰 놈들이니 성과급 기대하마!]

[지지나 마!]

‘흐음… 뭔가 기묘하게 싸우는구먼. 그보다 저건 꽤 충격적인데.’

그에 맞서는 황금 마인 기사 쪽도 지지 않겠다는 듯 여러 기사들이 무위를 선보이며 그 위협적인 군세와 당당히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백가연이 뉴스나 자료에서 보던 황금 마인 기사는 뭔가 분위기가 무겁고 음험해 보였는데, 막상 지켜보니 말이 엄청 많고 가볍다는 거였다.

‘호오? 겉보기와 달리… 저 친구, 좀 평범한 냄새가 나는데?’

“아무튼 후딱 처리하고 도망가야 하니까! 다들 힘 빡세게 주고! 오징어 새끼! 너는 피데기해서 버터에 구워 버릴라! 그만 좀 뒤져!”

“으어윽! 내 커틀러스… 가?”

기어이 황금 마인 기사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보하쿠의 검이 부서진다.

여세를 몰아 황금 마인 기사는 공세를 더욱 빠르게 해 나갔고, 티탄의 말뚝은 자비 없이 보하쿠의 육신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같은 S급 몬스터지만 레그혼보다 약하군. 전공 분야가 달라서 그런 걸까?’

[꾸어억! 쿠억! 나, 나를 구해라! 이놈들아! 범선 골렘들아! 나부터 구해! 으아억!]

‘대신 맷집이 이상하게 좋네. 몸 안이 오징어라 그런가? 뼈가 없어서 그런가? 그럼 혹시 시메(신경 절단)도 되나?’

오징어같이 생긴 얼굴을 보자 문득 낚시에 관해 떠들던 상사의 말이 생각난 유성원은 오징어의 눈 위와 머리 사이에 있는 부분을 향해 주먹을 쥐고 정확하게 때린다.

[꾸악! 무, 무슨 짓이냐! 인간!]

“아, 역시 시메는 안 되나? 부서지는 느낌은 있었는데…….”

[감히 나를… 꾸르르륵!]

그렇게 비명과 함께 보하쿠는 검은 먹물을 사방으로 뿜어내면서 쓰러진다.

진짜로 시메가 되긴 했나 보다.

다만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닌 듯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도 놈은 일어나려고 애썼다.

그래 봐야 이미 제압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황금 마인 기사 유성원은 마무리하고자 티탄의 말뚝을 들어 올렸다.

“아무튼 이걸로 두 번째 S급 몬스터 킬인가?”

[제, 제발 살려 주게! 꾸륵!]

“내가 다 잡은 사냥감을 놓아줘야 할 이유가 있나? 레벨 업 경험치, 마정석, 그리고 돈 등등 이익이 몇 개인데.”

[그, 그러면 그 이익만큼 돈을 지불하겠네. 지금 날 죽이면 내가 가진 물건밖에 얻지 못하니까! 내가 그만큼 지불하면?]

S급 몬스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거품을 문 상태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제안하는 보하쿠였다.

그 장면을 본 백가연은 놀라워하면서도 잔혹한 황금 마인 기사가 그대로 티탄의 말뚝을 휘둘러 몬스터를 처리할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묻고 더블. 2배를 내면 살려 주지.”

[이런 날강도… 켁!]

“아니면 지금 저승길로 가든가? 대신 앞으로 성좌 산거정 소속의 몬스터들에겐 손 안 대기로 약속하지. 이건 그쪽도 마찬가지야. 날 건드리지 않기로 성좌에 맹세하고 약속해야 한다.”

[꾸르륵… 꾸륵… 좋다. 조건을 무조건 수용한다! 우리의 성좌 산거정 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전원 전투 중지! 범선 골렘들아! 전투 중지 신호를 보내라!]

펑펑!

마찬가지로 황금 마인 기사인 유성원도 자신의 기사들과 엘드라엔을 호출해서 전투를 중지한다.

5대 중 2대만 남은 범선 골렘들은 다른 곳의 전투도 중지시키기 위해서 지시에 따라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보하쿠와 황금 마인 기사 측 모두 즉시 전투 종료 후 항복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어디 그럼 지불해 보실까? 설마 여기서 거짓이라고 하진 않겠지?”

[걱정 마라, 인간, 우리도 성좌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이상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잠시만 기다려라. 읏챠… 여기 놓을 테니 세면서 수거해라.]

보하쿠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작은 보물 상자 같은 걸 꺼내더니 손가락을 넣고 돌려서 연다.

그러자 작은 크기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양의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헤에~ 황금과 마정석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것도 챙겨 뒀을 줄이야.”

[아~ 사실 목표는 다른 금고에 있는 황금들이었지만 약탈하러 갔던 은행에 잔뜩 쌓여 있던 걸 일단은 챙겨 놨었지. 이 종이 쪼가리들은 우리에겐 가치 없지만, 스캐빈저 녀석들과 거래할 때는 좋아서 말이야.]

“확실히 예전엔 산거정 세력이 좀 날리긴 했지. 이거 세는 것도 힘들겠네. 좀 묶음으로 주든가~ 과연 이게 네 가치인가? 아무리 그래도 널 죽임으로써 얻는 경험치보다는…….”

[아, 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쇼. 아직! 아직 이런 종이 쪼가리는 엄청 있으니까!]

말로는 모자라다고 했지만, 사실은 보하쿠가 주는 게 모두 현금이라 엄청 고마운 유성원이었다.

이 정도로 두둑하면 이제 산을 사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아니! 단 하나의 산만 사는 게 아니라 주변의 산까지 사서 완전히 고립된 생활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산울타리! 같은 개념이지. 인터넷이나 통신은 아칼론과 상담해서 무선으로 해결하면 되고… 또…….’

[이, 이만큼이면 족하나?]

“좋아. 좋은 거래였어.”

액수를 산정하기 어렵지만 뉴스 자료에 나온 사진과 대조해 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5만 원권은 족히 조 단위를 넘어설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이제 인생 핀 거나 다름없었다.

갑옷 안에서 웃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유성원은 보하쿠의 무리를 그대로 돌려보내 준다.

‘퍄하~ 마음 같아선 저 지폐 묶음에 들어가서 헤엄치고 싶네. 그보다 딱히 뭐라고 안 하나?’

[음? 왜 그러나? 계약자여?]

“아니, 웬일로 너희가 아무 말이 없나 싶어서. 사리사욕에 미쳤냐느니 하면서 또 뭔가 뜰 것 같았는데 말이야.”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기사도 특성도 오늘은 너무 조용했다.

그의 말을 들은 가울프는 피식 웃으면서 세세히 설명해 준다.

[저건 몸값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 명예롭게 싸우고, 승패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조약을 맺는다. 깔끔하지 않은가? 그 안에서 비열한 책략이나 명예에 저촉된 일은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야.]

“아니, 뭐~ 나쁜 놈들과 손을 잡았느니 뭐니 하며 뭐라고 할 줄 알았지. 그나저나~ 거기 숨어 계신 손님은 뭐 하시는 분이죠?”

산거정의 부하 보하쿠가 떠난 뒤 남은 건 오직 자신들뿐이어야 하는데,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을 들고 다갔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백가연 학원장은 모습을 드러내며 자기소개를 한다.

“원래 저 도적 무리를 상대했어야 할 사람이지. 황금 마인 기사 양반, 정식으로 소개하자면 나는…….”

“아카데미아 학원장 백가연 님 맞으시죠?”

“오? 나를 아는가? 이거 놀랍군. 그 유명한 황금 마인 기사가 날 알아주다니.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늙은이와 잠시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유성원은 그저 백가연 학원장에 대한 은혜만 갚는 게 목적일 뿐이었다.

괜히 자신의 신원이 알려지는 걸 반기지 않기 때문에 무기와 돈을 싹 집어넣고 돌아선다.

“아뇨. 제 할 일은 끝나서요. 그럼 이만…….”

“아까 몬스터에게 받은 돈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거 그대로 쓸 수 없을걸?”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성원은 돌아서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받은 돈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몸을 돌려 백가연 학원장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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