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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70화 (70/293)

[70화]

“신강남이 폐단으로 가득하고 몹쓸 놈들로 가득한 곳이긴 하지만, 저 장벽을 요새로 삼아서 산거정과 스캐빈저가 언더시티로 만들면 서울은 당분간 전쟁터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어떤 여파가 생기는지부터 생각하는 게 어떤지?”

“어르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은 그럼 거기부터… 해결을 하죠.”

지금은 헌터 일에서 은퇴해서 세력이나 길드를 이끌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십 년간 던전을 오가면서 생존한 그 연륜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고, 의견 자체가 핵심을 짚었기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망할 할망구가 또 극성이군.”

“맞는 의견이라 반박할 건 없지만……. 쩝~ 그나저나 그쪽도 별로 내키지 않나 보군요.”

“올림푸스만 하겠나? 아르카데스.”

“에이~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뭐든 상관없는 거죠. 서울 길드가 찢어지고, 무너져 내리면 생길 떡고물에 약간의 관심 정도? 청룡처럼 대놓고 한국 내 톱 길드를 목표로 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고천수 청룡 길드장과 올림푸스에서 파견 나온 아르카데스.

둘 다 S급 헌터로 아르카데스는 한국 소속은 아니지만 황금 마인 기사 조사 때문에 올림푸스에 와 있다가 비상소집으로 끌려 나온 처지였다.

“나도 딱히 망하길 바라지는 않네. 그렇다고 도와줄 의리도 없지만 말이야.”

“저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이 둘은 신강남이 망하든 지켜지든 상관없는 입장이라는 걸 확인한 다음, 회의는 등한시한 채 서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정보 교환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그쪽은 황금 마인 기사에 대해 뭐 좀 알아낸 거 있나?”

“어이쿠,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으시는지요?”

“그야 황금 마인 기사의 무기가 티탄의 말뚝이니 그렇지. 자네들이 모시는 성좌 중 하나 헤파이스토스 님의 작품. 우리가 바보인 줄 아나? 그 정도는 조사하면 금방 나오네.”

“역시 청룡이군요. 저희도 알아채고 엄청 꽁꽁 숨기고 있었는데… 흐음~”

이 둘 외에도 지금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길드들이 모두 황금 마인 기사에 대한 조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SS급 마인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확실하게 인류의 적이라는 면으로 판단해 보면 애매했다.

일단 도살왕의 사도와 몬스터를 퇴치했고, 서울 길드와 충돌한 건 배 회장의 악독한 취미 때문이었으니 선과 악을 따지자면 선 쪽에 가까운 편이기도 한 만큼 대화가 통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티탄의 말뚝이라는 게 밝혀져도 그 물건 자체가 워낙 많이 만들어진 물건이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특정 물건 하나가 빠져나가도 도저히 찾기가 힘듭니다. 애초에 무기로 쓰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아무나 쓰지 못하는 거라서 거의 이동하지 않을 테니 조사하면 금방 나오지 않겠나?”

“뭐, 수상한 곳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문제는 성좌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거라서 더 이상 못 캔다는 거죠.”

“그럼 그거라도 공유해 줄 생각 없나? 우린 반드시 놈을 찾아야 하네. 우리 천용이 녀석이 정민수를 뺏기는 바람에 레벨 다운을 먹어서 말이야.”

성좌 청룡의 귀감은 ‘투쟁’. 특히 남과 경쟁해서 승리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성좌다.

승리하면 그만한 보상을 주지만 패배하면 페널티가 주어지기에 청룡 길드원들은 항상 필사적이다.

하나 저번 정민수 토벌에서 그들은 농락당한 건 물론 황금 마인 기사에게 그 타깃을 빼앗기는 바람에 S급 헌터이자 자신의 동생이었던 고천용에게 페널티가 주어졌고, 귀중한 레벨이 5나 낮아졌다.

“그것을 되돌리려면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하네.”

“음, 하긴 숨어 있는 짐승을 잡으려면 불을 피워야 하니 말이죠. 잠시만 기다리시죠.”

아르카데스는 기꺼이 청룡 길드에게 자료를 넘겨준다.

어차피 자신들의 목적은 어떻게든 자취가 나타난 황금 마인 기사와 접촉해서 그를 영입하는 것이었기에 함부로 찔러 볼 수 없던 차에 청룡 길드가 그 역할을 해 준다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으음, 저희끼리 이야기하는 사이에 회의도 끝나 가는 것 같군요. 결국 백가연 어르신 말대로 신강남 전선부터 모두 다 함께 밀기로 정했나 봅니다.”

“그러시든지. 나는 북쪽 도살왕 계열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니 상관없지.”

“아무튼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만, 황금 마인 기사 건 잘 부탁드립니다.”

“사냥감이 크고 거대할수록 보상도 큰 법이지. 그리고 만만치 않은 상대를 상대하고 있는 건 오히려 그쪽 아니던가?”

“하하하.”

대한민국으로만 놓고 보면 크게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올림푸스 길드이지만, 세계구로 놓고 보면 고천수의 지적대로 거대한 상대들과 전선을 펼치고 있기에 늘 바쁜 그들이었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고, 협회, 정부, 길드 다들 각자 자신들의 목적과 생각을 이루기 위해 자리를 벗어난다.

***

같은 날 저녁.

백야 길드 본사, 길드장 사무실.

일전 S급 마인 정민수 토벌 건에 참여했기에 백야 길드는 평온한 일상 상태로 오늘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길드장인 신소미는 오늘 던전에 다녀온 헌터들의 보고서를 체크하면서 업무를 계속해 나가는데, 앞에 있던 손님용 소파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선다.

“으아아앙! 숙제랑 레포트가 너무 많아. 엄마, 살려 줘어어!”

바로 길드장의 딸 신아영으로, 그녀는 아카데미아에서 하교하자마자 이곳으로 와서 산더미처럼 밀린 숙제와 수업을 대신할 레포트를 만들기 위해 분투 중이었다.

약 한 달가량 유성원을 감금하는 척하면서 놀았으니 당연한 대가였다.

“다 네가 원해서 한 일이잖니? 얌전히 하렴.”

“네에~ 근데 엄마, 그러고 보니 신강남은 지금 어때? 우리 길드까지 여파 올 것 같아?”

“다행히 신강남에 총력을 투입해서 정리한다고 하네. 그런데 성원 씨는 뭐 하고 있니?”

“아저씨? 아직도 민방위 끌려가서 일하고 있대. 갑자기 투입 늘어서 보급 물품 더 꺼내야 한다고 투덜대더라. 그냥 자기가 가서 해결하면 될 텐데~ 엄마, 이 아저씨는 왜 이러는 거야?”

신아영이 보기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게 유성원의 행동이었다.

본인부터가 일단 SS급 마인으로 지정될 만큼 막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끄는 기사들은 모두 S급 헌터에 비견될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데 하는 건 고작 민방위에서 뺑이 중이다.

“그는 그저 ‘포기’에 익숙한 사람이란다. 서커스단의 코끼리에 대한 얘기를 혹시 아니?”

“어~ 수업에서 들은 것 같은데~ 아! 그 코끼리를 새끼 때부터 사슬에 매어 두고 끊지 못하게 학습시키면 커서도 못 나간다는 그거 맞나?”

“그래, 그거야. SS급 마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힘을 가졌어도 이미 ‘세상’을 포기했기에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는 거란다. 가여운 사람이지.”

유성원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아영이와 어울리는 문제 때문에 사전에 조사했었다.

올해 32세, 아카데미아 9년째 근무, 군대를 제외한 학창 시절은 모두 보호 시설에서 보냄.

아마 그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보호 시설에서 지내던 시절로, 그가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두 알아낸 그녀였다.

“9살 때 몬스터를 피해 도망가던 길에 사고로 가족을 잃고 보호 시설에 들어갔고, 거기서 성인까지 지냈는데……. 당시 그랜드마스터 사태로 인한 각성자 공백이 커서 여러 곳에서 전투와 희생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엄청 바쁜 곳이었단다.”

“그 보호 시설에서 그럼 나쁜 짓을 당한 거야?”

“아니, 거기서부터는 이야기가 복잡하단다. 사람이 아무리 선성을 유지하려고 해도 결국 환경과 상황이 가혹해지면 이성과 존엄이 무너지게 되니까…….”

유성원의 유년 시절 상황을 보면 그랜드마스터 사태로 인해 S급 헌터를 비롯한 수많은 헌터들이 한국을 떠나는 바람에 가장 헌터 공백이 심했던 때였고, 대한민국 전체가 몬스터와 던전들로 가장 고통받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치료 시설이 부족해서 아마 다치거나 죽어 가는 자들도 보호 시설로 많이 밀려왔을 거야. 그러니 아이들은 충분한 케어가 안 되었겠지. 그 혼돈 속에서 대체 어떤 고통과 생각과 상처를 입었을지 상상이 안 가.’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기록과 사진 몇 장으로 남아 있는 모습에서 유성원의 상황을 유추해 내는 것뿐이었다.

어린 유성원의 시야를 상상한다.

아마 사람이 죽는 건 기본적으로 봤을 것이고, 치료 역량과 시설의 한계로 인해 살릴 수 없어서 버려지는 인간도 바라봤을 것이다.

세상의 잔혹함 속에 무력함만 배워 온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무슨 생각을 가지게 될까?

“아마 포기와 체념부터 체득했겠지. 학업 성적표를 봐도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게 아니니…….”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얻을 수 있는 게 없고, 재능도 지혜도 가지지 못한 자가 할 수 있는 건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뿐이리라.

그렇게 20년 넘게 포기와 체념에 익숙해졌으니 SS급 힘이 주어져도 그것으로 무언가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재능이나 능력이 없는 것 같진 않던데……. 아, 각성하면서 얻은 거구나!”

“그래. 안타까운 일이지.”

그렇다고 강제로 떠밀거나 설득할 수도 없는 게, 힘의 차이도 있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학습한 인생의 진리를 뒤엎기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또 포기와 체념만 배운 그에게 남의 희망이 되라는 것도 잔혹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증오와 분노에 물든 케이스가 아니니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랬다면 지금쯤 우리는 진짜 황금 마인 기사가 날뛰는 걸 봐야 했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아, 그건 정말 무섭겠다. 그렇지만 저대로 놔두는 것도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그건 나도 안단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다 큰 성인이 삶의 방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고통과 고난을 넘어온 이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바꾸려면 무언가 계기가 있거나 자신의 가치관이 잘못되었다는 걸 증명하는 사건이 있어야 하는데, 유성원의 성향상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이라서 갑자기 생긴 막대한 힘을 제어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 3대 길드나 여기저기에서 보면 좋은 성좌 만나서 스테이터스랑 헌터 등급 높다고 건방 떠는 사람들 천지이니까 말이야.”

“올~ 그래도 마지막에 점수 주면서 변호해 주는 거 보면 엄마도 그 아저씨를 괜찮게 생각하는 거네?”

“……! 크, 크흠! 그런 게 아니라! 너, 너 때문에 생긴 빚을 갚아야 하니 그런 거란다! 너도 A급으로 스테이터스 올랐다고 자신의 강함에 취하지 말고, 그 사람처럼 항상 자신을 경계하고 다스리렴.”

“네에에~ 하아~ 이거 언제 끝낸다암~”

신소미는 살짝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격언으로 포장한 다음 곧바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아영은 이미 눈치챈 듯 피식 웃고는 다시 산더미같이 남아 있는 숙제에 빠져들었다.

***

“자, 여러분, 오늘 수고하셨고 일단 돌아가서 주무신 다음 내일 오전에 다시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직 비상사태 끝난 거 아닙니다. 뉴스에서는 일단 총력 투입해서 해결한다고 했지만, 제2차 신강남 사태 종결 선언이 나는 게 아니면 여러분들의 소집은 계속…….”

아카데미아에 머물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신강남이 뚫린 게 아니라서 그런지 민방위에 소집된 우리는 일을 마치자 퇴근이 허락된다.

사람들이 떠나는 걸 보면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한 끝에 결국 아카데미아에 받은 내 전속 스태프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쩝,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총력 투입한다고 하니까 며칠만 지나면 제2차 신강남 사태도 종결 나겠지.”

전속 스태프용 숙소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씻은 다음에 팬티 바람으로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한다.

총력 투입이 정해졌다는 것만 뉴스로 확인하고 갑자기 일이 바빠져서 제대로 소식 체크를 못했기에 세세한 사안에 대해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보자. 오~ 포위 섬멸진! 그렇군. 성좌 산거정의 거점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반으로 뚝 잘라 내서 병력 보급을 막은 거군. 진작 이런 기동 전략을 쓰지. 대체 누가… 어?”

새로운 전략과 함께 전세를 뒤집은 것으로 보이는 뉴스가 나와서 바로 체크해 보았다.

단 한 수로 전황을 바꾼 이가 누군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에 바로 페이지를 둘러보며 확인하는데 낯선 인물의 모습이 보인다.

안대를 쓴 상처투성이 할망구. 아카데미아 스태프였던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학원장님? 이 할망구가 왜 여기에?”

위풍당당하게 전선을 지휘하는 그 모습을 본 나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뉴스를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본래 누가 새로이 지휘를 하든 무시하는 나였지만, 이 백가연 학원장님과는 따로 사연이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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